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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37화 (237/650)

237화 세계시장으로 가기 위한 발판

사람들을 진정시킨 최석영은 땀을 훔치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차라리 이참에 개인 고객들도 받는 건 어떨까? 그렇다면 저렇게 막아도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최석영의 말에 조수아가 턱으로 대표실을 가리키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대표님이 싫다고 하셨잖아요.”

“나도 알아. 아는데 그래도 아깝잖아. 지금 돈 싸 들고 온 사람들이 저게 몇 명이야. 저것뿐만이 아니야. 모르긴 몰라도 우리가 개인 고객 받겠다고 하면 아마 난리가 날걸. 몇 년 전에 보여줬던 그 펀드 사태 광경을 우리가 연출할지도 몰라.”

“제 말이요. 저도 아깝다니까요. 저 사람들을 저렇게 보내는 게 얼마나 아까운지 몰라요.”

조수아는 이미 결정이 난 사항인데도 안타깝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최석영도 그런 조수아와 같은 마음인지 문밖에서 한참이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그때 최석영에게 직원이 다가왔다.

“차장님. YTM과 MBS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최석영이 귀찮다는 표정을 짓자 곁에 있던 조수아가 놀란 표정으로 최석영에게 말했다.

“뭐예요? 이제는 공중파에서도 섭외가 물밀듯이 들어오는 거예요?”

“공중파뿐만 인 줄 알아? 어제 연락 들어온 곳 들으면 조 과장 기절할지도 모르겠는데?”

“어디서 연락이 왔는데요?”

“NBD. NBD 에서 연락이 왔다니까.”

최석영의 말에 조수아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NBD 요? 우리가 아는 그 미국의 NBD 요?”

“그래 조 과장도 알고 나도 아는 그 NBD.”

“잠깐만요.”

조수아는 잠시 손을 들어 최석영의 말을 멈추게 했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고 최석영에게 연락이 왔다는 말을 전하러 온 직원에게 물었다.

“진짜예요?”

“아니. 지금 내가 말했는데…….”

“차장님은 가만히 계시고요.”

조수아는 최석영에게 조용히 입 다물고 있으라는 듯이 눈을 부라리고 다시 직원을 향해 물었다.

“NBD 에서 연락이 온 게 정말이에요?”

“네? 네. 맞습니다. 그런데 왜 그러세요?”

“그러니까 NBD 에서 섭외 전화를…… 우리한테…… 어? 여기 계시는 최 차장님을…… 모시겠다고…… 맞아요?”

“네. 맞는데 뭐가 잘못됐나요?”

“왜요?”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섭외 요청이 왔다는 말을 전하러 왔다가 낭패당했다고 느낀 직원은 울상을 하고는 최석영을 바라봤다.

도와달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최석영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만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최 차장님. 영어 잘해요?”

“영어? 못하지. 내가 잘하겠어?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라 뉴스채널에 나와서 이야기할 정도로 하지도 못하지.”

“그런데 왜 최 차장님을 섭외한다는 거예요?”

조수아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그런 조수아의 궁금증에 대답해줄 말이 최석영이 아닌 조수아의 등 쪽에서 나왔다.

“NBD 에서 통역까지 다 붙여주고 녹화방송으로 하겠다는 조건으로 섭외가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 할만한 거죠.”

조수아는 대답이 들려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다가온 조지훈이 가볍게 조수아에게 인사하고는 최석영을 향해 말했다.

“차장님. 다음 주 수요일 약속 잡았습니다.”

“수요일 어디서?”

“서울호텔에서요. 촬영팀과 NBD 앵커를 비롯한 제작진들이 다음 주 월요일 입국한다고 해요. 그래서 화요일 사전 미팅을 가지고 촬영은 수요일에 하는 거로 잡았어요.”

“빠듯하겠는데?”

최석영이 손가락을 꼽으며 준비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조수아는 그런 최석영의 모습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조지훈에게 물었다.

“도대체 NBD 가 최 차장님과 무슨 촬영을 하신다는데요?”

“아~”

조지훈은 최석영이 생각을 정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 조수아에게 설명했다.

“NBD 에서 최 차장님의 명성을 들은 것 같아요. 그래서 잠시 오일 시장에 대한 전망을 듣고 싶다고 해서 스케줄을 잡았어요.”

“천하의 NBD 방송이 최 차장님의 전망을 듣고 싶다고 했다고요?”

“아무래도 120달러부터 하방을 보아온 사람이 세계에서도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하긴. 꼭대기는 꼭대기였으니까요.”

정수리 여드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꼭대기의 꼭대기에서 하방을 공식방송에서 외쳤던 최석영이었다.

이런 그의 모습은 몇 차례에 걸쳐 방송을 통해 보여졌고, 이제는 최석영과 세이지 자산운용의 과거 행적까지 모든 것이 화젯거리가 되어가는 중이었다.

“게다가 최 차장님께서 기풍증권…… 아니 그전에는 신성증권이었죠? 신성증권 시절부터 방송에 나와 예언에 가까운 예측을 했던 것도 모두 다시 화제가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그렇게 시장을 잘 보냐면서 그 이야기도 함께 나누고 싶다고 하네요.”

조수아는 조지훈의 말속에 있는 시장을 잘 보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말했다.

“대표님은요? 뭐라고 하세요?”

조지훈은 조수아의 시선을 따라 대표실을 같이 바라보고 말했다.

“좋은 기회니까 나가보라고 하셨어요. 국내 방송의 섭외 요청도 웬만하면 다 들어주라고 하시고요. 그러니 최 차장님…….”

“알겠어.”

최석영은 그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직원을 향해 지시했다.

“YTM 다음으로 MBS와 시간을 잡아봐. 그리고 방송 출연 날짜는…….”

최석영은 직원에게 지시하던 것을 멈추고 조지훈에게 물었다.

“수요일 촬영한 게 방송되는 날은 언제래?”

“바로 호텔에서 편집해서 우리나라 시간으로 목요일 오전에 방송 내보낸다고 해요.”

“그래? 그럼 YTM은 목요일 저녁. MBS는 금요일 저녁. 싫으면 말라고 해.”

최석영은 NBD 방송 다음으로 국내 방송 스케줄을 맞췄다.

아무래도 NBD와의 방송 출연으로 효과를 얻으려는 듯한 판단 같았다.

“방송국에 은근히 NBD와 방송이 잡혔다는 걸 흘려. 그리고 나는 그 시간 아니면 안 된다는 말 꼭 전해. 그럼 아마 우리가 원하는 시간대로 잡아줄 거야.”

최석영의 말에 직원은 알겠다는 말을 남긴 후 방송국에 연락하기 위해 자리를 떠났다.

최석영은 떠나는 직원을 잠시 바라본 뒤 조지훈에게 물었다.

“지금 대표님 시간 괜찮아? 방송 때문에 잠시 만나서 의논드려야 할 것 같은데…….”

“지금은 좀 곤란하세요. 지금 바로 대표님께서 나가보아야 하시거든요.”

“지금? 대표님께서? 어디 가시는데?”

한진영이 한번 나가기만 하면 큰일이 벌어지는 것에 최석영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한진영의 스케줄을 물었다.

조지훈은 기대 반 호기심 반의 얼굴을 하는 최석영을 향해 대답했다.

“대한정유 기자회견장에 참석하기로 하셨거든요.”

“대한정유 기자회견장이 오늘이었어? 그럼 대표님도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거야?”

“참석은 아니고 우선 참관만 하기로 하셨어요. 윤길영 회장님께서 강력하게 요청하셔서요.”

“그렇구나. 그럼 가셔야지. 중요한 날이니까.”

최석영이 순순히 물러나자 조지훈이 인사를 하고 대표실로 향했다.

조수아는 그런 조지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뭐하나 대표님 손에서 움직이지 않는 게 없네요.”

혼잣말과 같은 조수아의 말에 최석영이 맞장구쳤다.

“그뿐인 줄 알아? 뭐하나 예상을 벗어나는 게 없어.”

“제 생각에는요.”

조지훈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둔 조수아는 주변을 잠시 살피고 낮은 목소리로 최석영만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 NBD 방송에 최 차장님이 나가는 것으로 시장을 밖에까지 넓히려 하시는 것 같아요.”

“나도 그 말에 동의해. 이걸 발판으로 바로 세계시장에 진출하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 기반은 닦아놓으려 하시는 것 같아. 이름도 알리는 것을 시작으로 말이야. 하아~ 그러려면 잘해야겠다. 나 먼저 갈게. 말하다 보니까 긴장돼서 숨이 안 쉬어진다. 청심환이라도 하나 먹어야 할까 봐.”

조수아는 대답도 듣지 않고 손을 흔들고 자리로 돌아가는 최석영을 보며 황당한 듯이 말했다.

“지금까지 잘 있다가 왜 갑자기 청심환을 찾아? 그리고 화면 앞에서는 누구보다 말 잘하면서 왜 저래? 하여튼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야.”

조수아는 최석영을 향해 고개를 한번 흔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

대한정유의 기자회견은 산업 전반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다.

2차전지라고 해 봤자 소형가전 혹은 휴대폰에 들어가는 게 전부인 지금 시점에서 전기자동차 시장에 참여한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란 것이었다.

전기자동차 회사 이름도 생소한 곳이었다.

그리고 전기자동차라는 것이 언제 시장에서 활성화가 될지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도 대규모 투자를 통해 대한정유는 2차전지 시장으로의 진출을 발표했고, 그 규모는 10년 동안 3조가 넘는 돈을 투입한다는 것으로 시장에 큰 반향을 일으키게 했다.

이런 대한정유의 선택은 현재 유가의 하락과 맞물려 타당해 보이는 효과를 보였다.

급등락이 일 년에도 몇 차례나 나오며 전략을 한번 잘못 세울 때마다 천문학적인 손해를 보는 오일 시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일견 이해가 갔기 때문이다.

2차전지 시장은 원료의 공급과 사용처만 안정적으로 확보가 된다면 유가 시장보다 미래 예측에 더 큰 이득이 있을 게 분명했다.

대한정유는 이걸 기대하고 시장진출을 천명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으로 시장은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런 대한정유의 판단에 불을 붙이는 발표가 기풍철강 쪽에서 연달아 나왔다.

기풍철강이 자원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는 발표가 나온 것이었다.

특히 기풍철강이 진행하겠다는 자원사업은 니켈 광산을 필두로 한 2차전지 원료에 해당하는 것들이었다.

사람들은 대한정유의 발표와 기풍철강의 발표를 다른 것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대한정유의 2차전지 사업 계획에 기풍철강이 원자재 창구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LZ그룹의 신소재 개발 발표로 대한정유와 기풍철강 그리고 LZ그룹까지 삼각편대를 이뤄 2차전지 시장에 뛰어든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들게 했다.

멈추지 않는 유가의 하락 속에서 여러 업체가 2차전지 시장으로 진출한다는 소식에 정부도 반응하기 시작했다.

정부산하의 산업자원부에서 2차전지 관련 산업을 심도 있게 살피겠다는 것으로 2차전지 산업에 힘을 주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발표 속에서도 사람들은 2차전지 산업에 의문부호를 계속 띄워 보냈다.

2차전지가 개발되고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사용처는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대한정유가 이야기한 전기자동차 및 재사용할 수 있는 배터리 산업은 아직까지 허무맹랑해 보이는 이야기로 들렸기 때문이다.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전기자동차에 회의적인 모습을 보이는 상황 속에서 테라라는 신생 회사가 2차전지를 얼마나 사용하겠냐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시각이었다.

이런 합리적인 추론 속에서도 주식시장만큼은 합리적인 의심과는 반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기풍철강이 발표 이후 30%가 넘는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좋아. 그럼 이 회장님께 연락해서 슬슬 기업 분할 이야기를 흘리라고 해. 자원산업에 대규모 투자를 해야 하는 만큼 기업 분할이 꼭 필요하다는 논지로 시장에 이야기를 흘리면 호의적인 분위기 속에서 일을 진행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면 알아들으실 거야.”

한진영의 지시에 조지훈은 필기하며 한진영의 지시를 빠뜨리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필기가 끝이 나자 다른 쪽 이야기를 꺼냈다.

“대한정유에서는 별다른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어?”

조지훈은 필기하던 펜을 노트 사이에 끼워 넣은 후 대답했다.

“공식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흘러가는 말로 언제까지 3,000억이 마련될 수 있냐고 돌려 묻기는 했습니다.”

“하긴 궁금하기도 하겠지. 우리가 투입하지 않으면 지분 매각에 들어가야 할 테니까.”

“네. 우리의 자금 투입을 모르는 몇몇 기관투자자 쪽에서 지분 매각 시기를 물어온 듯했습니다. 아무래도 자금 확보의 가장 좋은 방법이 지분 매각이기 때문에 대한정유가 지분 매각을 진행하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렇겠지.”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돌려서 말했다지만 어쩌면 조금 더 노골적으로 물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걸 조지훈이 말하기 무안하여 별 뜻 없는 것처럼 이야기한 것으로 보였다.

한진영은 잠시 생각하고는 조지훈을 향해 손가락을 들어 지시했다.

“가서 팀장급들 회의실로 모이라고 해. 슬슬 한 타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고개 숙여 대답하고는 급히 대표실을 나갔다.

조지훈이 대표실을 나가고 나서 하던 일을 마무리한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팀장들이 모여있는 회의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어느새 모였는지 김준하를 비롯하여 세이지 자산운용의 팀장들이 모두 모여 한진영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자 다들 한 타임 정리할 때가 됐다는 말을 듣고 자리에 오셨죠?”

한진영이 자리에 앉으며 말하자 팀장들은 마른침을 넘겼다.

드디어 120달러에서 잡고 미친 듯이 끌고 내려온 유가 관련 상품들을 정리할 때가 됐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팀장들을 둘러본 후 계속 이야기했다.

“지난 몇 달 동안 지루했지만, 물량을 놓치지 않고 잘 잡고 계셨습니다. 70달러대에 들어간 지금 한번 정산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다들 모이시라 했습니다.”

한진영은 우선 자리에 있던 이들을 둘러본 후 가장 먼저 원자재 관련 선물 투자를 진행해온 고제상에게 말했다.

“지금까지 수익이 어떻습니까?”

짧게 던진 한진영의 말이었다.

자리에 있던 팀장들은 그런 짧은 한진영의 말에 긴장한 눈으로 고제상을 바라봤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처음으로 듣는 수익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120달러에서 선물 매도를 각 차월물에 차곡차곡 쌓아서 들어갔던 세이지 자산운용이었다.

그리고 근월물은 결제에 가까워지면 롤오버 비용을 지불하고라도 오버하여 그 수량을 엎어서 여기까지 끌고 온 상태였다.

단순 계산상으로도 오일 가격 1달러 변동에 1,000달러가 움직이는 선물의 특성상 한 계약만으로도 50,000달러 이상의 수익이 나 있어야 했다.

자리에 있던 이들은 고제상을 향해 기대에 찬 눈으로 그가 꺼낼 말에 귀를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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