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38화 (238/650)

238화 원하는 것을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말하게 한다

고제상은 잠시 주변에 앉아있는 다른 팀장들을 돌아본 후 한진영을 향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현재 저희 팀이 보유하고 있는 오일 선물의 총 계약 수는…… 2,000계약입니다.”

“2,000계약.”

고제상의 말에 자리에 있던 팀장 중 하나가 짧은 탄성을 내뱉었다.

꽤 많은 수량을 보유했을 것으로 예상되기는 했다.

근월물부터 시작해서 차월물과 차차월물 그리고 1년 내에 오픈된 모든 매물에 손을 댄 만큼 그 수량이 작지 않을 거라는 것은 익히 예상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2,000계약은 작지 않은 수준을 까마득히 상회한 수준이었다.

고제상은 뿌듯한 마음을 표정으로 그대로 드러내며 계속 이야기했다.

“롤오버 비용을 대기 위해 정리한 것 외에 청산 물량은 없다시피 합니다. 그렇게 끌고 온 선물의 현재 계약당 평균 수익 금액은 53,000달러가량입니다.”

“53,000달러. 나쁘지 않네요. 그럼 총 수익 금액은 현재 기준으로 얼마죠?”

“네. 현재 기준 환율로 적용 시에 1,320억입니다.”

“허어~”

고제상의 대답이 나오자마자 자리에 있던 이들의 입에서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오일 선물에서만 1,000억이 넘는 수익을 올린 것에 사람들은 할 말을 잃고 만 것이었다.

한진영은 탄성을 터트리며 놀란 다른 팀장들과 달리 차분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 뒤 홍대민 쪽을 돌아봤다.

“홍 팀장님 쪽은 어떻습니까?”

홍대민 주식운용 팀장은 한진영의 질문에 급히 정신을 차리고 대답했다.

“네. 현재 주식운용 팀은 국내 주식에 약 4,800억을 투자한 상태입니다. 대부분 유가 하락으로 인해 수혜를 받을 종목을 집중 매수했으며 매수 종목으로는…….”

홍대민은 차분한 목소리로 한진영을 비롯하여 자리에 있는 팀장들을 향해 현재 세이지 자산운용의 주식운용 팀이 보유하고 있는 종목들을 이야기했다.

대부분 항공주와 선박 관련주 그리고 여행주를 비롯하여 유가 하락 시에 혜택을 받을 종목들 위주로 포트폴리오가 짜여있는 상황이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숨죽인 채 보유현황을 가만히 들었다.

그리고 뒤에 이어 나올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기다렸다.

“……여기까지가 주식운용 팀이 보유하고 있는 현황이었습니다.”

“꿀꺽.”

모두가 기다린 말이 나올 것으로 보이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일제히 마른침을 넘겼다.

홍대민은 잠시 말을 멈추고 분위기를 고조시킨 후에 천천히 입을 열었다.

“현재 저희가 집행한 자금에 대한 수익률은…… 약 42%입니다.”

자리에 있던 팀장들은 모두 허공으로 시선을 돌려 머릿속으로 계산했다.

“4,800억에 42%니까…….”

홍대민은 모두 같은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수익 금액은 2,000억이 살짝 넘는 2,020억입니다.”

“2,000억.”

“2,000억?”

“와~ 죽이네.”

팀장들은 각기 다른 탄성을 터트렸다.

아무리 유가 관련 주들만 싹쓸이했다고 하기로서니 이런 식의 수익률이 나올 거로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홍대민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한쪽에 앉아 있는 김준하와 박도하를 향해 말했다.

“퀀트 팀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종목 선정부터 해서 진입 시점과 중간청산 과정까지 모두 퀀트 팀의 조언을 받아 진행하여 이렇게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홍 팀장님의 판단력으로 이런 성과를 보인 겁니다. 저희는 그저 선택에 도움이 되는 정도를 했을 뿐입니다.”

홍대민의 말에 박도하가 급히 손을 저었다.

그저 자기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사용하기 편하도록 한 게 전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대민은 박도하와 김준하를 칭찬하기 바빴다.

“생각도 못 한 유가 하락에 이득을 보는 곳을 퀀트 프로그램이 많이 찾아 주었습니다. 그 덕분에 높은 수익을 보인 것이니 퀀트 팀의 도움이 2,000억이 넘는 수익을 만들어 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한진영은 홍대민이 어떤 의미에서 박도하와 김준하를 칭찬하는지 알고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펀드매니저와 그 팀원들이라고 하더라도 모든 종목을 다 알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리서치 팀의 도움이 필요했고, 때때로 다른 증권사나 자산운용사의 패를 훔쳐보며 투자하고는 했다.

수혜업종을 잘 골랐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서 어떤 종목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이 천차만별로 갈리는 상황에서의 선택은 정말로 중요한 문제였다.

그런데 그런 일을 기가 막히게 도와주는 팀이 존재한다는 것에 홍대민은 든든한 아군을 등에 업고 있다고 느낄 게 분명했다.

그 어떤 리서치 센터의 유능한 분석가보다 더욱 뛰어난 값을 도출해내는 프로그램에 홍대민은 흠뻑 취한 모습이었다.

“이해합니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기대한 것인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니 기쁘군요.”

한진영은 박도하와 김준하에게도 수고했다는 말을 전한 후 뒤를 이어 채권팀과 외환팀의 보고도 들었다.

상대적으로 파생팀과 주식운용팀보다 낮은 수익률을 보였지만, 채권팀과 외환팀도 나름의 충분한 자기 몫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한진영은 자리에 있는 모든 이들의 보고를 들은 후 앞에 놓인 종이 위에 적힌 숫자를 확인하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회의실에 있던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한진영이 생각을 멈추기를 기다렸다.

사람들은 기대했던 것과 달리 기뻐하지 않는 한진영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꼈다.

단순한 계산만으로도 3,000억이 넘는 수익을 단기간에 올린 것에 어째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다.

그렇게 한동안 회의실에는 침묵이 흐른 뒤 한진영이 입을 열며 침묵을 깼다.

“애매하네요.”

한진영이 팔짱을 풀고 앞에 숫자가 적힌 메모장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수익이 애매합니다.”

“애매요? 적다는 말씀이신가요?”

홍대민이 다른 팀장들을 대신하여 앞장서 한진영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자산운용사는 물론이고 웬만한 중형급 증권사 이상의 수익을 올린 것인데 어째서 이 정도 수익에 애매하다는 표현을 하는 것인지 모르게는 홍대민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이 이런 표현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수익이 작아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조만간 대한정유에 3,000억의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그렇게 된다면 이 타이밍에 모든 포지션을 털 수밖에 없게 되어 애매하다고 말한 겁니다.”

“3,000억을 대한정유에 투자하신다고요?”

자리에 있던 팀장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갑작스럽게 다른 곳도 아니라 대한정유에 그것도 3,000억이라는 돈을 투자한다는 것이 심하게 말해 황당하다는 느낌마저 든 팀장들이었다.

그러나 그중 홍대민만은 침착한 모습을 유지한 채 한진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얼마 전에 발표한 2차전지 관련 사업에 재무적투자자(FI)로 참석한다는 말씀이신가요?”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한진영은 홍대민의 모습에 밝게 웃고는 다시 숫자가 적힌 종이를 내려다봤다.

“거기에 기풍철강의 유상증자에도 참여해야 하는데…….”

“기풍철강 유상증자에도 참석하신다고요?”

“네. 기풍철강 이야기도 들으셨을 겁니다. 거기 유상증자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듣기로는 유상증자는 홀딩스라는 지주사를 기준으로 한다고 하던데…….”

“네. 바로 거기입니다. 기풍홀딩스에 3,000억을 투자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금 박혀 있는 자금을 대부분 뺀 뒤에 리밸런싱을 진행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애매하다고 말한 겁니다. 철수 뒤에 다시 진입한다는 것은 끌고 가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니 리밸런싱을 아무리 잘한다고 하더라도 처음 잡은 지금의 포지션보다 더 효율적일 수는 없을 테니까요.”

한진영이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람들은 한진영의 고민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한정유에 이어 기풍철강에까지 투자를 진행한다는 것만이 그들의 귀에 맴돌 뿐이었다.

한진영이 대한정유와 기풍철강에 각각 3,000억씩 총액 6,000억을 투자한다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보다 한진영이 2차전지 산업에 큰 기대를 하고 있다는 뜻과 같았다.

지금 상황에서 6,000억을 투입한다는 것은 산업의 지배권까지도 노리고 있다는 것으로 봐도 이상하지 않은 이야기였다.

자리에 있던 팀장들은 유가를 120달러에 매도 치자고 말할 때보다 지금 한진영의 모습에 더 놀라고 있었다.

“저기 대표님.”

한쪽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최석영이 조용히 손을 들었다.

“아. 최 차장님.”

한진영은 손을 들고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는 최석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네. 혹시…… 개인 투자자들에게 자금을 받으면 어떨까 합니다.”

“개인 투자자들이요?”

“네. 현재 우리는 소수의 기업을 상대로 자금을 받아 운용하고 있는데 이참에 개인들에게도 문을 열어주는 것이 어떤가 싶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흐음…… 개인이라…….”

한진영이 고개를 돌려 조지훈이 앉아있는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지훈을 향해 싱긋 웃어 보였다.

조지훈은 조금 뒤 한진영에게 보고할 자료를 살피다 최석영의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마치 짠 것처럼 한진영이 원하는 말을 최석영이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오기 전에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오늘 있을 회의의 컨셉을 이야기했었다.

“오늘 회의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개인 투자자의 유치를 이야기하게 할 거야. 내가 개인 투자자들의 유치를 먼저 이야기하면 직원들 사이에서 너무 급하게 달려 나가는 게 아니냐는 말과 함께 브레이크가 걸릴 위험이 있어. 하지만 팀장들이 원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나온다면 내가 힘을 실어줘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일을 끌고 갈 수 있어. 오늘은 바로 그런 상황을 연출하도록 할 테니 잘 봐.”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을 듣고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었다.

그냥 한진영이 개인 투자자들을 받겠다고 하면 되는 일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음 말을 듣고 한진영이 다른 팀장의 입을 통해 개인 투자자의 유치 이야기가 나오기를 바란 이유를 알게 됐다.

“최 차장님 그건 좀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닐까요?”

“무리요?”

“네. 지금은 내실을 다질 때입니다. 대표님. 차라리 투자를 철회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홍대민이 브레이크를 걸고 들어왔다.

최석영은 그런 홍대민을 향해 지지 않으려는 듯이 바로 이야기했다.

“지금이 개인 투자자들을 받기 위한 적기입니다. 홍 팀장님께서 사무실로 찾아오는 개인 투자자들을 보지 못하셔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은데 지금 개인 투자자들은 우리에게 돈을 맡기고 싶어 안달이 난 상황입니다.”

“어떤 상황인지 보지 않아도 이해합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셔야 합니다. 무턱대고 우리가 돈을 받기만 해서 되겠느냐고 말입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현재 우리가 운용하는 자금 규모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커진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잠시 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대표님.”

홍대민이 한진영에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기존 운용금액에 수익금까지 더한다면 벌써 조 단위 금액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지금 우리 회사의 규모를 생각했을 때 이것만으로도 큰 무리가 느껴지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런데도 계속 이끌어 갈 수 있었던 이유는 소수의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받아 운용하고 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투자자 규모를 늘리면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홍 팀장님의 말씀 이해합니다.”

홍대민은 한진영을 향해 이야기했지만, 최석영이 나서서 홍대민의 말을 반박했다.

“홍 팀장님. 지금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우니 투자를 철회하자는 것은 대한정유와 기풍철강과 맺어왔던 신뢰에 금이 가는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투자는 진행되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개인 투자자들의 돈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최석영이 자기의 주장에 힘을 보태달라는 뜻으로 다른 팀장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2차전지의 가능성을 보고 대표님이 투자를 진행하는 것에 우리가 힘을 보태야 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진영은 최석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팀장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하여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면 분명 자리에 있던 이들 모두 고개를 흔들며 반대를 했을 게 분명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안전한 것을 더욱 탐하기 때문이었다.

1조라는 돈도 충분히 큰돈이었고, 이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였으니 무리는 하지는 말자고 했을 게 눈에 그려졌다.

그러나 한진영은 더 큰 것을 원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지지 속에서 2차전지로의 투자가 이어져야 했다.

한진영은 이제 됐다는 표정으로 조지훈을 돌아본 뒤 말했다.

“실버만삭스에 연락했나?”

“네. 연락했습니다. 현재 실버만삭스를 통해 투자한 3배수짜리 인버스 ETF의 경우 12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은 상태라고 합니다. 그래서 12달러 선에서 정리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좋아. 그럼 세금을 제하고 얼마나 들어오는 거지?”

자리에 있던 이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진영과 조지훈의 이야기를 들었다.

조지훈은 그런 그들을 향해 믿기지 않는 말을 건넸다.

“총수익금은 7,100억입니다. 이중 세금과 실버만삭스에게 건넬 자금을 제외하면 우리 쪽으로 넘어올 금액이 4,600억 정도 됩니다.”

“4,600억이라…… 그럼 이렇게 하죠.”

한진영은 자리에 있던 팀장들을 향해 말했다.

“개인 투자자들에게 2,000억만 모금하도록 합시다. 이 펀드는 오직 2차전지에 관련된 것에만 투자하도록 하는 특수목적용 펀드로 오픈을 하는 겁니다. 그렇게 들어온 자금과 우리 쪽에 넘어올 4,600억 중에 4,000억을 모아 대한정유와 기풍철강에 투자하는 것으로 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되면 관리에 골치를 썩일 필요도 없고 개인 투자자들을 모은다는 목적에도 부합되는 방법 아닙니까? 그리고 애매해 보였던 우리 포지션을 풀지 않아도 되고요. 저는 이게 딱 좋아 보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팀장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하늘에서 떨어진 것과 같은 4,600억이라는 자금 이야기에 온통 가득 차 있었기에 다른 생각을 할 수가 없는 상태였다.

한진영은 몽롱해 보이기까지 한 팀장들의 모습을 훑어본 뒤 그럼 이렇게 결정하는 것으로 하자는 말을 남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