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39화 (239/650)

239화 여의도에서 가장 미쳐있는 곳

7월 중순부터 8월 말까지는 유럽을 비롯하여 미국이 휴가 시즌에 돌입하는 기간이었다.

이 시기의 증시를 비롯한 외환과 채권 그리고 원자재 시장은 모두 문만 열어놓은 채 쉬어가는 시간을 가지고는 했다.

특별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변동성이 극도로 줄어들었으며, 그저 가던 방향으로 가든가 아니면 횡보하며 휴가 기간을 조용히 보내는 것이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개점 휴업과도 같은 시장의 흐름 속에 여의도에 위치한 증권사들 앞에 모여 있는 커피숍만이 호황을 보이고 있었다.

“아니. 회사보다 여기가 사람 더 많은 것 같아.”

장 대리는 혼잣말하며 커피숍 안을 두리번거렸다.

“저기 있구나.”

장 대리는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동료가 앉아있는 곳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먼저 와 있던 강 대리와 현 과장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제가 시간 딱 맞춰 오고 현 과장님이 일찍 온 것 같은데요?”

“할 일이 없으면 일찍 오면 되지. 봐라. 조금만 늦게 왔으면 자리 없을 뻔했어.”

“안 그래도 그거 여쭤보려고요. 오늘 뭔 날이에요? 여기 사람 왜 이렇게 많아요? 아직 장도 끝나지 않았잖아요.”

장 대리가 커피숍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한번 훑어보고 말했다.

장 대리의 말대로 이제 점심시간이 지나 오후 타임에 들어간 시간대였다.

아직도 한 시간은 더 지나야 장 마감 동시호가에 들어갈 만한 시간이었다.

이런 시간에 어떻게 커피숍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있는 건지 장 대리는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이었다.

“장사 하루 이틀 하냐? 7월 말에 무슨 별일이 있는다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어?”

“현 과장님 기억나지 않으세요? 작년에 다들 그렇게 마음 놓고 있다가 한 방 얻어맞았잖아요.”

“하긴. 그때 다들 좀 심하게 얻어맞았지. 그리고 그때 자리를 지키고 있던 곳은 저 높은 곳으로 날아 올라 버렸고…….”

현 과장이 손을 들어 새가 하늘을 날아오른 것 같은 시늉을 취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강 대리가 현 과장이 말하는 날아오른 곳이 어딘지 떠올리고 물었다.

“세이지 자산운용 말씀하시는 거죠?”

“그래. 세이지. 그때 그쪽 사람들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제대로 한몫 챙겼다고 하더라. 국정원도 알지 못한 정보를 미리 알아내서 과감하게 배팅했다던데…… 대단해. 하여튼 대단해.”

“국정원이 알아내지 못한 걸 어떻게 알아냈을까요? 북한 쪽에 연줄이 있었을까요?”

장 대리가 궁금한 듯 묻자 이번에는 강 대리가 대답했다.

“국정원도 알지 못한 사실을 알았다고 대단한 게 아니라 국정원이 그만큼 무능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국정원이 무능하다고? 국정원이 왜 무능해?”

“삼선전자도 알았대.”

“삼선전자도 알았대?”

“그래. 동유럽 쪽 지사에서 먼저 연락받고 본사에 문의가 들어가자 본사에서 역으로 국정원에 물어봤다고 하더라. 국정원은 그때마다 모르는 이야기라고 대답했다고 하고…….”

“그럼 세이지 말고도 아는 곳이 있었다는 말이네.”

“몇몇은 알았나 봐. 그런데 그런 곳들과 세이지의 다른 점은 다른 곳들은 긴가민가하고 있을 때 세이지는 과감하게 배팅을 했다는 게 다른 거지. 그 덕분에 저렇게 독립한 거잖아.”

기풍증권에 있던 전략팀 이야기는 전설처럼 여의도 증권가에 흘러 다녔다.

그리고 그 전략팀의 중심에 있는 한진영에 대한 이야기는 영웅담처럼 증권가 직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이번에 거기 세이지 자산운용에서 2차전지 펀드 판매한 이야기 들으셨어요?”

“들었지. 3분 만에 완판돼서 난리가 났다며?”

“3분도 열리자마자 주문이 폭주한 바람에 처리가 지연되어 3분 걸린 거래요. 제대로 하면 5초 완판이었다고 하던데요.”

“미쳤어. 2,000억이었다며?”

“그러니까요. 2,000억 완판 시키는 데 3분밖에 걸리지 않았다니 진짜 미친 거 같아요.”

현 과장과 강 대리가 혀를 내두르자 이번엔 장 대리가 감탄사를 내뱉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것도 들으셨어요? 그 소문으로만 무성하던 실버만삭스의 3배수 오일 인버스 ETF 이야기요.”

“아~ 그거? 알지. 실버만삭스가 꼭대기에서 오일 인버스에 들어가서 한 방에 6배 튀겨서 나왔다며?”

“그런데 그게…… 실버만삭스 자금이 아니었대요.”

“실버만삭스 자금이 아니었다고?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현 과장과 강 대리가 장 대리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한동안 시끄러웠던 이야기였다.

3배수 오일 인버스 ETF에서 누군가가 엄청난 돈을 벌었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 얼마나 벌었는지 이야기 나오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5억 달러 이상의 돈을 벌었다는 것만큼은 모든 언론에서 공통되게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대한민국의 세이지처럼 바다 건너 미국에서도 누군가가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누가 그만큼 벌었을지 관심 있게 지켜봤다.

그리고 그것이 실버만삭스라는 것에 사람들은 모두 같은 마음으로 인정했다.

실버만삭스라면 그럴 수 있다.

돈에 관한 것이라면 냄새를 귀신같이 맡는 실버만삭스라면 최고점에서 들어가서 6배의 이익을 남겨 먹고 수천억을 번 채로 나온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만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장 대리는 그게 사실은 실버만삭스의 돈이 아니라고 말했다.

현 과장은 몸을 장 대리 쪽으로 바짝 당긴 채 물었다.

“어딘데? 실버만삭스가 아니면?”

“제가 듣기로는…….”

잠시 뜸을 들인 장 대리가 주변을 살핀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세이지 자산운용이 실버만삭스의 CFD 계좌를 이용하여 3배수짜리 인버스에 들어간 거라고 해요.”

“뭐라고? 어디라고? 세이지 자산운용?”

현 과장이 깜짝 놀란 얼굴로 소리를 지르자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현 과장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모두 비슷한 종류의 업종에서 밥을 벌어 먹고사는 사람들이었기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세이지 자산운용이라는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관심을 보인 것이었다.

장 대리는 급히 현 과장을 대신해서 사람들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했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하다는 모습이었지만 인사하는 모습에는 이제 그만 관심을 거두고 볼일들 보라는 표정이 얼굴 속에 담겨 있었다.

잠시의 소란이 지나고 난 뒤 현 과장이 정신을 차리고 장대리를 향해 다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실버만삭스가 아니라 세이지 자산운용이었다니?”

“제가 자세히 이야기해드릴 테니까 이번엔 놀라지 말고 차분히 이야기 들으세요. 너도 마찬가지야. 호들갑 떨지 마.”

조금 전 소리를 지르지 않았지만, 이번 이야기를 듣고는 어쩔지 몰랐던 강 대리까지 주의를 준 장 대리는 낮은 목소리로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세이지 자산운용이 실버만삭스와 업무협약을 맺은 건 아시죠?”

“알지.”

“그 업무협약의 일환으로 세이지 자산운용이 실버만삭스의 CFD 계좌를 사용했다고 해요.”

“그러니까 네 말은 세이지 자산운용이 CFD 계좌까지 사용해서 3배수 인버스 ETF에 돈을 집어넣었다는 말이야?”

“맞아요.”

“완전 또라이네. 미친 거 아니야? 살짝만 흔들려도 원금을 다 날릴 텐데 그 미친 짓을 했다고?”

이야기를 듣던 강 대리가 참지 못하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장 대리와 현 과장은 그런 강 대리를 향해 눈길을 보냈고 강 대리는 불이 뿜어져 나올 것 같은 두 쌍의 눈에 찔끔하고는 고개를 숙였다.

장 대리는 강 대리가 입을 다무는 모습을 확인하고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5억 달러가 넘는 수익을 올린 건 알고 계시죠? 미국 쪽에서 도는 이야기에는 6억 달러 이상이 될 것 같다고 해요.”

“미쳤네.”

“그중에 약 4억 달러가 한국으로 넘어온대요. 수수료하고 세금 같은 거 다 떼고요.”

“4억 달러? 도대체 이번 일로 세이지 자산운용은 돈을 얼마나 번 거야?”

“기풍증권에 제 지인이 다니는데 기풍증권하고 세이지하고 좋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다는 거 아시죠? 기풍증권에서 도는 이야기로는 하나라고 해요.”

“하나?”

장 대리가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현 과장과 강 대리는 장 대리를 따라 손가락을 들어 올리고는 서로를 마주 봤다.

장 대리가 말하는 검지손가락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두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을 향해 장 대리는 손가락을 들어 올린 채로 말했다.

“하나요. 1조.”

“어?”

“에?”

현 과장과 강 대리는 입에서 소리가 터져 나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아무리 돈을 많이 벌었다 기로서니 조 단위로까지 돈이 올라갈 거로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버만삭스에서 벌어들인 돈만 7천억이라니까 뭐 1조는 우습게 넘겼겠지요. 1조도 사실 최소로 잡았을 때라는 말이 있어요. 생각해보세요. 120달러에서 유가 하락을 이야기하던 곳인데…… 지금 유가 얼마 됐는지 아시죠? 60달러에요. 60달러. 반 토막이 나버렸다고요. 그리고…….”

“그리고?”

“하락 포지션을 아직도 풀지 않았대요. 소문에는 오일 매도 선물 포지션만 2,000계약이라고 하던데…….”

“2,000계약을 아직도 풀지 않고 있다고? 완전 또라이네. 또라이.”

“좋은 의미로 미친 거다. 정말 미쳤어. 세이지 놈들은 뭐 하는 놈들이냐? 120달러에서 잡은 걸 60달러가 됐는데도 안 풀고 있다고? 도대체 어디까지 본다는 말이야?”

강 대리와 현 과장은 탄성을 내뱉는 것을 멈추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탄성은 다른 사람들의 귀에도 들렸다.

그들의 시선은 일제히 현 과장 일행이 있는 곳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사람들이 쳐다보자 시끄럽게 한 것을 미안해하던 현 과장과 장 대리의 모습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보다 지금 나누는 대화에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60달러도 깨졌으니 50달러? 아니지. 50달러를 봤다면 60달러쯤에서 정리하기 시작해야 하는 게 기본이잖아. 그럼 40달러?”

“150달러를 이야기하던 오일을 120달러에서 잡고 40달러를 봤다고요? 미친 거 아니에요?”

“내 말이 그 말이다. 완전 미친놈들 아냐?”

커피숍에 있던 사람들은 현 과장과 그의 일행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다들 알게 됐다.

그리고 연신 미쳤다는 말을 내뱉는 현 과장의 말을 공감했다.

지금 여의도에서 제일 미쳐있는 곳은 세이지 자산운용이었기 때문이다.

“2차전지에 투자하겠다는 펀드는 그럼 뭐 어디에 투자하려고 그런 건지 들으신 거 있으세요?”

“들었을 리가 있겠어? 상상도 못 하던 곳에서 상상도 못 하는 투자를 감행하는 놈들인데 이건 뭐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할지 감도 못 잡겠다. 미친놈들이야. 정말 미친놈들이야.”

실버만삭스 이야기가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현 과장은 연신 미친놈들이라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현 과장과 마찬가지로 커피숍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을 경악하게 만드는 일이 세이지의 이름으로 계속 나왔다.

***

[대한정유 신사업 투자에 세이지 자산운용이 재무적 투자자로 참여]

[3,000억 규모의 투자 진행]

[대한정유 2차전지 배터리 사업부의 분사 결정]

[세이지 자산운용 대한에너지 지분 20% 획득]

세이지 자산운용이 3분 만에 완판 시켰다는 펀드의 투자처가 공개됐다.

펀드 판매 때부터 2차전지에 투자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펀드는 그곳이 대한정유였다는 사실에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놀람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대한정유 때보다 더욱 놀랄만한 이야기가 시장을 강타한 것이었다.

[세이지 자산운용, 기풍홀딩스 유상증자에 참여 결정]

[기풍철강, 홀딩스로 지주사 전환 선언]

[기풍홀딩스와 세이지 자산운용은 3자 배정 유상증자 계약 체결]

[기풍홀딩스 3,000억의 유상증자를 통해 자원개발 사업 진행할 것으로 발표]

[기풍홀딩스 산하에 기풍철강 물적분할 예정, 기풍자원 또한 기풍홀딩스 자회사로 분할 계획]

[기풍철강, 지주사 전환으로 기업 재정비 선언]

기풍철강의 지주사 전환은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기존의 기풍철강을 홀딩스로 전환한 뒤 철강 분야와 자원개발 분야, 그리고 무역과 인프라 개발 등을 진행하는 인터내셔널 등으로 물적분할을 추진하는 것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당황하고 말았다.

이런 식의 물적분할 후 지주사 체제로의 전환은 너무나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류의 분할은 반발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주주가치가 훼손되는 물적분할을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일 것으로 생각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너무나 쉽게 물적분할이 진행됐다.

긴급 이사회 회의에서 물적분할에 대한 반대의견이 이사회 위원들 사이에서 나오지 않았다.

뒤이어 국민연금이 일찌감치 물적분할에 공개적으로 동의하는 발표를 하여 이미 대세는 기울어져 버렸다고 선언해버렸다.

내부의 반발도 예상보다 훨씬 적었다.

물적분할을 통해 지주사로의 전환은 숙명 같은 것이라며 내부 직원들 또한 너무나 쉽게 물적분할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조지훈은 보고를 마친 뒤 한진영의 책상 앞에 서서 얼마 전 이야기를 꺼냈다.

“예상 밖이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예상 밖이야?”

“이유정 본부장 쪽도 분할을 찬성한 것 말입니다.”

“이유정 본부장이 반대할 줄 알았어?”

“네. 아무래도 홀딩스 지분을 우리가 배정받게 되는 것이니까요. 우리와 이성우 사장님의 관계를 모르지도 않을 테고 말입니다.”

반발할 것으로 예상했던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과 같이 전혀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유정의 모습에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계약이 확실하게 맺어진 것이고 이정훈 회장님이 위에서 컨트롤하는 일이라 잘못될 리가 없다고 하기로서니 너무 쉽게 허락한 게 아닌가 싶어서 말입니다.”

“최소한 싫다는 말 한두 번쯤은 내뱉어야 하는 데 그러지 않은 게 이상하다는 것 아냐?”

“맞습니다. 저라면 당연히 싫다고 했을 테니까요.”

“이해해. 네 말도 이해해. 하지만 이유정 본부장은 지금 이런 일에 정신을 쏟을 여력이 없을 거야.”

이유정 본부장은 여력이 없을 거라는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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