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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40화 (240/650)

240화 기회가 있을 때 확실히 밟아놓는다

여력이 있건 없건 이건 무조건 해야 할 일이었다.

여력이 없다고 하여 방치할 수만은 없었다.

오히려 다른 일을 빼서 이곳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이 정상적일 정도로 기풍의 후계문제는 이유정 본부장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이런 일에 정신을 쏟을 여력이 없다니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나요? 기풍철강의 후계 자리인데요?”

한진영은 팔꿈치를 책상 위에 가져다 댄 채 손가락으로 조지훈을 가리키며 말했다.

“잘 생각해봐. 후계 구도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야?”

“회장님의 복심이요?”

“그래. 그게 가장 중요하기는 하지. 하지만 그건 회장님의 마음이니 내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야. 내가 어쩔 수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그래서 내가 성우를 위해 많이 준비해준 것. 그게 뭐야?”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생각하다 대답했다.

“돈이요?”

한진영은 조지훈의 대답에 손바닥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탕!

책상을 두드린 소리가 사무실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 소리가 채 가라앉기 전에 한진영이 말했다.

“그래. 돈이 가장 중요해. 뭐 돈이 안 중요한 적은 없었지만 이번만큼은 정말 중요하지. 왜인 것 같나?”

한진영의 계속된 질문에 조지훈이 바로 대답했다.

“우리가 확보한 기풍홀딩스의 지분을 확보하기 위해서 아닙니까?”

“그렇지.”

한진영은 제대로 대답하는 조지훈의 모습에 만족한 듯이 웃고는 책상 위에 올려놓은 손을 거뒀다.

그리고 팔걸이에 손을 올린 채 말했다.

“지분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1,500억이 필요해. 자기 몫인 반을 가지고 간다는 전제하에서 말이지. 게다가 지금 기세 좋게 주가가 오르는 것을 생각했을 때 아마 저쪽에서는 2,000억 혹은 그 이상을 생각하고 있을 거야.”

물적분할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주가는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었다.

분할하여 시장에 다시 공개되는 주식 수를 최소한으로 하겠다는 발표와 지배권 및 이익을 최대한 기풍홀딩스가 가지겠다는 발표가 힘을 얻은 덕분이었다.

물론 가장 첫 번째 위치한 긍정적인 요인은 바로 대한정유와 2차전지 산업에 힘을 합치겠다는 발표였다.

주주는 물론이고 시장까지 이런 두 회사의 행보에 2차전지 산업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됐고, 이렇게 신사업에 의욕적으로 진출하는 기풍그룹에 호의적인 모습을 기존 소액주주들이 보여주며 물적분할은 큰 잡음 없이 진행됐다.

주가는 발표가 있고 난 뒤 벌써 15%가 넘게 상승한 상태였다.

여기에 물적분할이 끝이 나고 기풍홀딩스에 힘이 실린다면 상승 폭은 더 클 수도 있다는 것이 현재 시장의 반응이었다.

한진영은 바로 이런 시장의 반응을 이유정 본부장이 계산에 넣었을 때 나온 그들의 결괏값을 이야기 한 것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계산이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2,000억 이상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게 분명합니다. 그것도 매우 보수적인 시각으로 계산했을 때 2,000억일 겁니다. 조금 사이즈를 키운다면 3,000억 혹은 그 이상도 염두에 두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러니 돈이 무척 필요하지 않겠어?”

한진영은 재미있다는 듯이 팔짱을 낀 채로 손으로 자기의 팔뚝을 두드리며 말했다.

“아무리 기풍의 후계자 자리에 꼽힌다고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2,000억이나 3,000억을 가지고 있을 수가 없어. 성우 봐서 알잖아. 천하에 기풍증권 사장이라는 놈이 60억을 만들기 위해 대출까지 받았던 거 말이야. 물론 그 녀석이 유독 눈 밖에 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뭐 이유정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 지금 다급한 상태일 거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도요?”

“그러니 지금부터 준비해야지. 그래야 3년 뒤가 됐건 5년 뒤가 됐건 매입이 진행할 때 돈을 맞출 수 있을 테니까.”

기풍홀딩스와 세이지 자산운용 간에는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계약 한 가지를 더 맺은 상태였다.

3년이 지난 뒤부터 기풍홀딩스에서 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으며, 그게 언제이든 기풍홀딩스가 매입 의사를 밝힐 때 무조건 이유정이나 이성우에게 되팔아야 한다는 조항을 건 것이었다.

그리고 그 조항은 5년이 지났을 때까지 유효하며 5년이 지나게 되면 기풍홀딩스가 요구하더라도 세이지 자산운용이 지분을 마음대로 팔아도 된다는 계약을 맺은 것이었다.

이유정도 이런 계약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돈을 마련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고 있을 거라는 것이 한진영의 주장이었다.

“분할은 이유정 입장에서는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일이야.”

“도움이 된다고요?”

“그래. 분할되어 기업공개 되는 곳들이 어딘지를 떠올려봐.”

“기풍증권이야 이미 공개되어 있으니 제외하고…… 기풍철강과 기풍자원 그리고 기풍인터내셔널이 물적분할의 대상 아닙니까?”

“맞아. 그곳들을 잘 생각해봐.”

“잘 생각해보라면…….”

조지훈은 가만히 세 곳과 이유정을 연관하여 생각하다 무언가를 떠올렸다.

“아~ 그렇네요. 기풍자원과 기풍인터내셔널 모두 이유정 본부장 밑에 있던 곳들이네요.”

“그래. 기풍철강조차 이유정 본부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야. 이러니 반대할 이유가 있나? 아무리 우리가 투자를 진행한 곳이라고 하더라도 계약은 종이로 하는 거라는 말이 있듯이 계약서에 쓰여있는 것을 우리가 어길 수는 없어. 그러니 불만이 있을 수가 없지. 오히려 이유정 본부장 쪽에서는 결판이 났다고 생각할 거다.”

“결판이 나다니요?”

“봐라.”

한진영이 팔짱을 끼었던 손을 풀고 조지훈에게 손짓까지 곁들여 설명했다.

“성우는 60억 사건으로 회장님께 신뢰를 잃었어. 그리고 돈을 빌리며 이미 금융기관들에 손을 벌린 이력이 있기 때문에 새롭게 대출 등을 받기 힘들어. 이런 상황에서 성우가 돈을 구할 곳이 있다고 생각할까? 그것도 자기네들조차 버거워하는 수천억의 돈을?”

“그럼 이유정 본부장 쪽에서만 돈을 구한다면…….”

“그럼 게임은 끝날 거라고 생각할 거야.”

조지훈은 한진영의 설명에 지금의 상황이 이해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그렇겠네요.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어떻게든 돈을 벌기 위해 눈에 불을 켜겠어요. 돈만 마련할 수 있다면 기풍그룹은 온전히 자기 손에 들어오는 걸 테니까요.”

“그래. 우리가 확보한 지분만큼만 손에 넣으면 돼. 그럼 나머지는 자연스럽게 회장님에게서 상속이 되는 걸 테니까.”

조지훈은 정리가 된 상황에 머릿속에 무언가가 떠올랐다.

“이걸 가만히 두고 보고만 있지 않으시겠네요.”

지난번에도 이야기 한 것이지만 가만히 놔둬도 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세이지가 확보한 3,000억 치의 지분은 3년 뒤 최소 3배. 많으면 5배까지 상승하여 구하려고 해야 구하지 못할 정도가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의 성격상 이걸 그냥 놔둘 리가 없었다.

만약의 경우라는 싹을 잘라버린다는 명목하에 가지고 있는 돈조차 모두 날려버리려 할 것이 분명했다.

한진영은 이제 점점 자기에 대해 잘 알아가는 조지훈을 보고 웃었다.

“내 마음을 꿰뚫어 보고 있네. 맞아. 가만히 두고 볼 수만은 없지. 세상에 만에 하나라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는 하니까. 기회가 있을 때 확실하게 밟아놔야 해.”

“기회가 있을 때라면…… 지금이 기회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래.”

한진영은 다시 팔짱을 끼고 몸을 등받이에 기댄 후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조만간 그리니치 펀드라는 곳에서 찾아올지 몰라. 찾아오면 나한테 바로 알려.”

“그리니치 펀드요?”

“어. 미국계 펀드.”

한진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미소 지었다.

그리고 혼잣말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재미있는 곳이야. 그것도 아주 많이…… 매우 재미있는 곳이야.”

조지훈은 한진영이 말한 재미있다는 뜻이 말 그대로 재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 섬뜩함과 함께 조지훈을 향해 덮쳐왔다.

***

세이지 자산운용의 명성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다.

2차전지 펀드가 성공한 이후 은행들에서 먼저 세이지 자산운용에 펀드 개설을 요청할 정도로 세이지 자산운용은 자산운용계의 신흥강자로 급부상했다.

그리고 이런 세이지 자산운용의 명성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까지 뻗어나갔다.

3배수 오일 인버스 ETF에서만 6,000억이 넘는 수익을 올린 것은 경이로운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게다가 본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오일의 매도포지션을 풀지 않고 계속 든 채로 시장을 관망하고 있다는 소식에 세이지 자산운용이란 어떤 곳인지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런 관심은 실버만삭스와의 협업 소식에 더욱 크게 부각됐다.

실버만삭스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협업을 맺은 회사로 전 세계로 놓고 보아도 다섯 군데가 되지 않는 해외 협업 대상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최근 미국에서 무섭게 진행되고 있는 극초단타(HFT, High Frequency Trading) 매매 프로그램을 만든 곳이라는 사실에도 사람들은 세이지 자산운용을 주목했다.

2억 달러라는 금액에 미국의 3곳에 공동 매각했고, 그 프로그램이 현재 미국의 주식시장을 뒤흔들고 있다는 것에 세이지 자산운용의 기술력에도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언제나 변방에 위치하여 아시아에서도 홍콩, 일본, 중국에 밀렸던 대한민국이 잠시지만 주류 시장의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이렇게 관심을 받은 지 열흘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똑똑.

“네.”

안에서 대답이 들리자 조지훈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한진영은 부르지 않았는데도 찾아 들어온 조지훈을 올려다보고는 물었다.

“왜?”

“대표님. 왔습니다.”

“왔다고?”

잠시 한진영은 조지훈이 말하는 왔다는 것이 무엇인지 떠올렸다.

그리고 희미하게 미소 지으면서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 어디 있나?”

“우선은 회의실로 모셨습니다.”

“몇 명이나 왔지?”

“찾아온 사람은 네 명입니다. 그중 두 명만 그리니치 펀드 사람으로 보였습니다.”

“나머지 둘은 변호사와 통역이던가?”

“네. 그런 것처럼 보였습니다.”

보지 않고도 잘 알고 있는 한진영이었다.

그는 기다리던 사람의 등장에 조지훈의 어깨를 툭툭 치고는 문밖으로 나섰다.

그리고 거침없는 발걸음으로 그리니치 펀드 사람들이 있다는 회의실로 향했다.

“대표님. 그리니치 펀드가 무엇입니까?”

도저히 궁금증을 참지 못했던 조지훈이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지난번부터 묻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당시에 올지 안 올지도 모르는 마당에 그리니치가 무엇이냐부터 물을 수가 없어 참았던 조지훈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그리니치 펀드 사람들이 찾아왔고 한진영이 기다리던 오랜 친구를 맞은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조지훈은 용기를 내 묻게 되었다.

한진영은 회의실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조지훈을 돌아봤다.

“하긴 너도 알아두는 편이 좋겠다. 그래야 나하고 손발을 맞출 수 있을 테니까.”

한진영은 조지훈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조지훈을 끌어당겼다.

그리고 조지훈의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기꾼들이야.”

“사…….”

조지훈은 깜짝 놀란 모습으로 한진영의 말을 따라 외치려다 참았다.

한진영이 자기 귀에만 대고 말한 것이 다른 사람들이 알면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급히 벌렸던 입을 다물고 한진영을 향해 궁금하다는 뜻을 가득 담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눈빛에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나는 그들에게 최대한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야. 그러니까 그렇게만 알아둬.”

“사…… 꾼들과 긍정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신다고요?”

그리니치 펀드가 어떤 사람들인지 미리 알아본 조지훈이었다.

그리니치 펀드는 사기꾼과는 거리가 먼 곳이었다.

설혹 진짜 사기꾼이라면 왜 그들과 긍정적으로 대화를 하려는 것인지 조지훈은 알지 못했다.

한진영은 가만히 서 있는 조지훈의 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우리가 하려는 일에 그들이 필요하거든. 그러니 가자. 기다리겠다.”

조지훈의 등을 두어 번 두드린 한진영이 회의실로 향해 걸어갔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말한 우리가 하려는 일이 무엇인지 잠시 생각했다.

지금 한진영과 세이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바닥 다지기를 하는 작업은 기풍철강 쪽 일이었다.

오일과 2차전지 관련된 작업은 대부분 수확만 기다리면 되는 상황에서 이성우를 기풍철강의 꼭대기로 올리는 작업을 하는 것만이 아직 계속 진행되고 있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 작업의 가장 크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 바로 이유정 본부장의 자금을 말리는 것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하는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이유정 본부장의 자금을 말리는 일이라는 것을 떠올렸다.

그렇지만 알게 됐다고 하여 어째서 그리니치 펀드와 이유정 본부장의 자금 말리는 일이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에게 그리니치 펀드가 찾아올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 따로 그리니치 펀드가 어떤 곳인지 알아봤었다.

운용금액만 70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펀드가 바로 그리니치 펀드였다.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80조가 넘는 것으로, 자그마한 국가의 1년 예산을 움직인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를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수익률 또한 놀랄 정도였다.

연수익률 10%를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꾸준히 올리며 업계에서는 경이롭다는 표현을 듣는 곳이었다.

세이지 자산운용에 비하면 수익률이 보잘것없어 보이겠지만, 세이지는 이제 설립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는 곳이었다.

그에 비해 그리니치 펀드는 설립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업계의 노장이었다.

그런 곳이 연수익률 10%를 꾸준히, 그것도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올렸다는 것에 업계에서는 아직도 그리니치 펀드를 탑으로 인정해주며 존경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이런 곳이 사기꾼이라고 하니 조지훈은 믿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이곳을 이용하여 이유정 본부장의 돈을 말리는 일을 하려고 한다고 하다니 조지훈은 도저히 한진영의 생각을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믿기 어려운 일이더라도 한진영이 말한 순간 바뀌었다.

조지훈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지나고 나면 모든 것이 한진영의 말대로 되는 것을 몇 번이나 보았기에 의문을 접어두고 한진영의 뒤를 쫓아 회의실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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