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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42화 (242/650)

242화 돈이 절실한 상대를 찾아갔다

그리니치 펀드의 사람들은 한진영에게 인사를 하고 세이지 자산운용을 떠났다.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보자는 말을 건넨 롭 코든이었지만, 오늘 자리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한진영은 알고 있었다.

앞으로는 보고 싶다고 하여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떠나는 그리니치 펀드 사람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던 한진영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자 이번엔 뭐가 궁금하지?”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급히 얼굴을 쓰다듬었다.

자기의 마음이 그대로 얼굴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예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에 웃으며 책상 의자가 아닌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느긋이 앉아 맞은편 소파를 향해 턱짓하며 조지훈에게 말했다.

“괜찮아. 아까 내가 이야기했잖아. 자세한 건 이따 이야기하자고. 그러니 편히 앉아서 이야기해.”

한진영의 말에 그제야 조지훈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조금 전 자리에서 있었던 의문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리니치 펀드는 저도 알 정도로 유명한 곳인데…… 분명 대표님께서는 사기꾼이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지.”

“그리니치가 정말 사기꾼들이 맞나요?”

“맞아. 사기꾼.”

한진영은 다리를 꼬고 앉아 웃으며 말했다.

“폰지 사기라고 알고 있지?”

“네. 알고 있죠. 유명한 사기 방법 아닙니까? 높은 수익률을 미끼로 고객을 유치해서 새롭게 들어온 고객의 돈으로 먼저 들어온 고객의 돈을 지급하는…… 그렇게 신뢰를 쌓고…… 잠시만요.”

조지훈은 폰지 사기 이야기를 스스로 하다 말고 급히 한진영에게 물었다.

“설마 그리니치 펀드가 폰지 사기라는 말씀이세요?”

“맞아. 그리니치 펀드가 폰지 사기야.”

“무슨 말도 안 되는…… 아차. 죄송합니다.”

조지훈이 급히 말실수한 것을 깨닫고 한진영을 향해 고개 숙여 사과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에 기분 나빠하는 기색 하나 없이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네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어온 펀드에 10년이 넘게 월가 최고의 펀드라는 찬사를 받아온 곳이니까.”

“규모는 어떻고요? 800억 달러라고 하잖아요.”

한진영이 자기의 반응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조지훈은 자기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쏟아냈다.

“대표님께도 가입자 명단을 드리기도 했지만 이미 외부로 노출된 가입자들 면면을 봐도 장난이 아니에요. 미국 상원의원 다수에 하원의원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 사람들을 상대로 폰지 사기를 쳤다고요? 아니. 애초에 폰지 사기는 짧게 치고 빠지는 게 특징 아닌가요? 폰지 사기의 한 전형인 우리나라 다단계 사기 수법이 다 이렇게 고객들 유치한 다음에 빠르게 손 털고 도망갔잖아요.”

“어지간히도 믿기 어렵나 보구나.”

쉴 새 없이 쏟아낸 조지훈의 모습에 한진영이 웃으며 말했다.

조지훈은 그제야 자기가 무리하다시피 의문을 쏟아낸 걸 깨닫고 다시 고개 숙여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아니야. 죄송할 것 없어. 그게 당연한 반응이야.”

한진영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손가락으로 조지훈에게 창문을 열라는 지시를 내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인 한진영은 조지훈의 의문을 하나씩 풀어줬다.

“우선 규모 이야기부터 할까? 외부에서 말하는 규모는 아무 의미 없어. 왜냐? 새롭게 들어온 사람 돈으로 기존 가입자들 이자를 주는 데 돈을 썼으니 남아 있는 돈이 있을까? 없겠지. 그러니 800억 달러가 아니라 8,000억 달러라고 하더라도 남아 있지 않은 돈에 규모는 아무 의미가 없어지는 거야.”

“남아 있는 게 없을 거라고요? 800억 달러. 90조나 되는 돈이 다요?”

“얼마나 남아 있겠냐? 남아 있으면 또 뭐 어쩔 거고? 남아 있다고 하더라도 어쩌기에는 너무 먼 곳에 와버렸어.”

한진영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이야기했다.

“후우~ 그리고 가입자들이 아무리 유명하고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별수 없어. 은행이나 증권사 등도 마찬가지고. 그냥 사기 앞에 만인이 평등해지는 거다. 권력이 있다고 해서 없는 돈이 나타나는 건 아니니까.”

한진영은 황당하다 못해 텅 비어있는 눈을 하는 조지훈을 향해 나머지 질문들에 대한 답을 건넸다.

“빨리 털고 도망가는 게 전형적인 폰지 사기의 수법이지.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오면 어떨까?”

한진영은 잠시 말을 멈춘 후 다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10억을 목표로 해서 들어왔는데 갑자기 100억이 들어오면 어떻겠어? 그리고 뒤를 이어 또 1,000억이 들어오면?”

“그러니까 그리니치 펀드가 이렇게 오래 지속된 이유는 털고 나가는 것보다 유지하는 게 이득일 정도로 돈이 계속 쏟아져 들어와서라는 말씀이세요?”

“그렇지. 털고 나가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이자 다 지급해도 될 정도로 돈이 마르지 않고 들어오니까 계속 유지했던 거야.”

“그럼 지금도 마찬가지인가요?”

조지훈의 말에 한진영은 깊게 담배 연기를 빨아들였다.

그리고 다시 한번 길게 연기를 내 뿜은 후 말했다.

“지금은 다르지. 그러니까 우리한테까지 온 거 아니겠어?”

“우리한테 온 게 달라진 이유인가요?”

“그래. 생각해봐. 잘 나가는 곳의 특징이 뭐야? 앉아 있어도 알아서 돈이 들어오는 곳이 잘 나가는 곳이라는 증거야. 그런데 지금 그리니치 펀드는 어때? 우리가 돈을 많이 벌었다는 소문을 듣자마자 사람을 우리에게 보냈어. 이건 누가 봐도 지금 그리니치 펀드 상황이 좋지 않다는 뜻이야.”

“그럼…….”

“마지막 한탕을 해 먹기 위해 준비 중이란 거지.”

한진영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 조지훈을 올려다봤다.

“사기를 오랫동안 치면 마음에 빈틈이 생겨. 그리니치 펀드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지난 서브프라임 때 실수를 한 거지.”

“실수요?”

“어. 실수.”

한진영은 그리니치 펀드가 파산하고 나왔었던 기사들을 떠올리며 이야기했다.

“서브프라임 때 어땠냐? 모든 펀드가 곤두박질치고 금융산업이 망하냐 마냐는 소리가 나올 때 아니야? 그런 때에도 이놈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1%의 수익을 올렸다고 발표했어. 지금까지 실제로 거래를 해본 적이 없으니 자기네들 딴에는 수익 10% 이상을 올리던 걸 줄여 1%만 수익 올렸다고 발표하면 될 줄 알았겠지. 마이너스로 발표하는 건 자기네들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으니 1% 수익으로 적당히 타협한 거야.”

한진영은 말을 하며 웃음이 나오는 걸 참았다.

90조라는 엄청난 돈을 움직이는 곳이 이렇게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당시에는 믿지 못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모든 진실이 드러나자 그리니치 펀드는 생각보다 더 한심한 곳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한진영은 고개를 흔들며 계속 이야기했다.

“그전부터 이상하다는 의심을 받고는 있었지. 하지만 지난 서브프라임 때가 결정적이었어. 서브프라임이 터졌는데도 수익을 본다? 게다가 어떤 방식으로 수익을 봤는지 공개도 하지 못하고? 그러니 사람들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챌 수밖에 없지. 그렇게 투자금 반환을 요청에 견딜 수가 없게 된 거고…….”

“그럼 한탕 해 먹고 튀려고 신규 투자자들을 유치하고 다닌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래서 이번에 돈을 많이 번 우리에게 찾아온 거고요?”

“그렇지. 기왕 이렇게 된 거 아직 사람들이 모를 때 쭉쭉 빨아먹으려 하는 거지. 그리고 될 수 있다면 증인석에 서서 자기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해줄 사람들의 돈도 돌려줘야 하고…….”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천하의 그리니치 펀드가 그런 곳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럼…… 그들이 그냥 아무런 말도 없이 자리를 뜬 이유는…….”

“사기를 가장 치기 쉬운 존재는 누구인 거 같아? 돈이 많은 사람? 천만에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이 사기 치기 제일 좋은 대상이야.”

한진영은 소파에 손을 얹은 채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보다 더 사기 치기 좋은 상대를 찾았으니 거기로 갔겠지.”

“그럼 이유정 본부장은 사기를…… 당할까요?”

“그건 이유정 본부장의 운명에 따라 달라지지 않겠어?”

조지훈은 무심한 듯한 한진영의 말이 그대로 들리지 않았다.

이유정의 자금을 말리기 위해 자연스럽게 세이지에 접근한 그리니치 펀드를 이유정 쪽으로 돌린 한진영이었다.

그리니치와 접촉을 한다면 돈이 급한 이유정 본부장이 무리할 거라는 것을 알고 한 행동이 분명했다.

그러기에 조지훈의 눈으로는 이유정 본부장의 운명을 한진영이 만들어 낸 것처럼 보였다.

한진영은 잔뜩 구름 낀 차창 밖의 하늘을 소파에 앉은 채로 바라봤다.

“그리니치 펀드까지 움직이는 것을 보니 조만간 미국에서 사고가 터지겠다.”

한진영은 혼잣말에 가까운 말을 건네고 차창 밖을 하염없이 바라봤다.

***

어디서부터 소문이 흘러나온 것인지 그리니치 펀드가 국내에서 투자자를 모집한다는 이야기가 업계에 파다하게 퍼졌다.

증권사를 비롯한 기관 투자자는 물론이고, 일반 투자자들까지 한꺼번에 모집한다는 이야기에 강남에 돈 좀 있다는 투자자들은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소문을 듣고 한진영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이 하나둘 나타났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프라임리츠의 정병선 회장이 대표적인 사람이었다.

한진영은 수화기 너머에 있는 정병선 회장에게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 저는 추천해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나중에 저희 회사에서 투자자를 모집할 때 그때 오시는 게 어떻습니까?”

전형적으로 고객을 뺏기고 싶지 않은 사람의 말처럼 들리는 이야기를 건넨 한진영이었다.

그러나 정병선은 한진영의 말속에 숨어있는 뜻을 알아챌 수 있었다.

정병선은 한진영의 말에 바로 마음을 정했다.

-알겠습니다. 세이지 자산운용이 신규 가입자를 오픈할 때까지 기다리는 편이 낫겠군요. 꼭 제일 먼저 저에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언제나 프라임리츠는 제 마음속에 있는 첫 번째 고객이니까요.”

한진영의 너스레에 정병선은 같이 웃으며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다.

정병선과 같은 이런 상황은 몇 번 더 펼쳐졌다.

한진영이 알고 있는 대기업 회장을 비롯하여 지난 신성증권 시절 알게 된 VIP 고객들과 하다못해 처음 시흥지점에서 거래를 텄던 김영수 사장까지 한진영에게 따로 연락하여 그리니치 펀드에 관해 묻기 바빴다.

한진영은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김영수 사장의 전화를 끊고 가만히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뭐 얼마나 바닥까지 쓸어가려고 이래?”

한진영의 생각보다 더 심했다.

돈이 있는 몇몇을 엮어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모습이 아니었다.

돈 좀 있다고 소문난 사람은 죄다 끌어모으려는 듯한 그리니치의 모습에 한진영은 한숨이 나왔다.

“예전에는 내가 주류에 속하지 못해서 잘 몰랐었던 건가?”

한진영은 이때 당시 대한민국에서 그리니치 펀드에 돈 있는 사람 몇몇이 당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폰지 사기에 당한 것이 창피하여 외부에 알리지 않았을 뿐이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당했음을 알게 됐다.

한진영은 고개를 흔들며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 회의실로 들어갔다.

한진영이 오기 전까지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던 세이지 자산운용의 팀장들은 한진영이 들어오자 긴장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한번 훑어본 뒤 회의실 앞으로 향했다.

자리에 있던 최석영을 비롯한 팀장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보통은 자리에 앉은 뒤에 팀장들을 향해 보고를 지시하던 한진영이 이번에는 자리에도 앉지 않은 채 회의실 앞으로 향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회의실 앞에 서서 제일 먼저 홍대민을 향해 말했다.

“현재 나스닥을 비롯한 해외에 투자된 자산이 얼마나 되죠?”

홍대민은 해외자산부터 물어보는 한진영의 말에 바로 대답했다.

“얼마 없습니다. 대략 200만 달러 정도가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투자를 진행하지 않아서 정찰병 형식의 금액만 집행된 정도입니다.”

현재 세이지 자산운용은 국내 투자에 집중되어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버만삭스를 통해 투자된 것이 있었지만 CFD 계좌를 청산하여 회수한 이후 나머지는 신경 쓰기에도 미미한 수중의 것들만 남은 상태였다.

한진영은 홍대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후 지시를 내렸다.

“해외자산을 모두 정리하세요.”

“모두요?”

모두라는 말에 깜짝 놀란 홍대민이 다시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홍대민의 반응을 이해했다.

자산을 ‘모두’ 정리하는 일은 매우 드문 경우였다.

시장을 철수하는 것이 아니라면 최소한은 유지하고 있어야 나중에 들어갈 때 좀 더 편하게 진입할 수가 있었다.

그래서 세이지 자산운용도 200만 달러 규모의 자산을 보유 중인 것이었다.

당장보다 미래를 위해서 남겨놓는 것.

그게 지금 각 시장에 남겨놓은 자투리들인데 한진영은 그것들을 모두 거둬들이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었다.

한진영은 당황한 표정의 홍대민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고제상 팀장을 바라보고 지시했다.

“현재 오일 선물 가격이 50달러를 무너뜨리고 40달러대에 들어섰습니다. 아직도 남아 있는 자리가 있지만 이쯤에서 정리하도록 합니다.”

“여기서 말입니까?”

고제상은 홍대민보다 더 크게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대표님. 이제 시작 아닙니까? 미국의 셰일오일 회사들이 많이 철수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RIG 숫자가 여전히 700개에서 800개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OPEC이 셰일오일의 파산을 타겟으로 잡은 만큼 산업 초창기에 유지하던 200개 수준까지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고제상은 고지가 보이는 상황에서 정리하자는 한진영의 말에 적잖이 당황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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