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화 사라진 하루
시장이 공포에 휩싸여 버렸다.
당장 부도가 난 기업이 아님에도 -90%의 하락을 보인 기업들이 수두룩하게 보였다.
우량주를 넘어 세계에서 손꼽는 기업들도 -10%가 넘게 무너져 내렸다.
특별한 이슈가 발생한 것도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금리 상승을 결정하지도 않았으며, 미국이 공격받는 상황이 연출되지도 않았다.
세계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기업이 무너진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미국 대통령이 암살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지도 않았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상황이 펼쳐진 것에 시장은 사색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더는 거래가 힘들다는 뜻으로 서킷브레이커가 터지며 잠시간의 휴식기에 돌입했다.
이성우는 멈춰진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며 혼잣말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냐? 미국 망하는 거냐?”
순식간에 빠져 내려오는 모습에 어떤 상황도 예측이 불가능하게 되어 버렸다.
서킷브레이커가 터졌음에도 시장은 멈출 기미가 없는 것인지 예상호가는 계속 땅굴을 파고 내려갈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성우는 급히 한진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고 있었냐?”
“이걸 알고 있었다면 신이었겠지.”
“그래. 신이 아닌 사람이라면 이런 걸 예상할 수가 없었을 거야. 하지만…… 너라면 예상하지 않았겠느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이성우는 마지막 말을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돌아보며 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이성우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한진영이라면…….
이런 상황을 예상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리가 만들어진 것부터가 이런 상황을 예상하여 만들어진 자리인 것만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아무리 거래량 폭증의 광경을 보고 즐기자는 자리라지만 타이밍이 이렇게 교묘하게 맞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있던 세이지 자산운용의 팀장들은 놀람과 두려움이 담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사람들의 시선을 모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을 따라 시선을 위로 올리며 말했다.
“왜 일어나?”
“왜 일어나기는? 가야지.”
“가기는…… 어딜?”
“어디긴 어디야. 얘가 자다가 왜 봉창 두드리는 소리를 해? 집에 가야지. 네가 조금 전에 내일 출근 안 하냐면서 물었던 거 기억 안 나?”
“그거야…… 야! 지금 집에 간다는 말이 나와? 저런 광경을 보고도?”
“어.”
한진영은 시계를 돌아봤다.
거래량이 폭증했을 때에서 정확하게 20분이 흐른 뒤였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더 볼 필요 없어.”
“다…… 끝났다고요?”
홍대민이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한진영은 홍대민을 시작해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상황은 종료되었으니 이제 돌아가죠. 우리에겐 내일도 있으니까요.”
“상황이 종료되기는…… 지금도 계속되는 거 아냐?”
이성우는 고개를 돌려 예상 호가를 확인했다.
선물지수가 -17%를 가리키고 있었다.
현물은 선물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었다.
은행주 같은 엉덩이 무거운 것들을 제외하고는 죄다 -30% 이상의 폭락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진영이 상황이 종료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으니 지금 한진영이 보는 것과 자기가 보는 것이 다른 거냐는 생각이 들기만 한 이성우였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정부에서 가만히 있지 않아. 뭐 그전에 우리 같은 기관들이 먼저 움직이겠지. 홍 팀장님.”
“네?”
“만약 홍 팀장님께서 저 속에 있다고 하면 거래가 멈춰있는 사이 어떤 판단을 내리실 것 같습니까?”
홍대민은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멈춰있는 주가 상태를 확인한 후 빠르게 판단했다.
“풀매수 들어갈 것 같습니다.”
“이유는요?”
“기업들의 모멘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으니까요.”
“그렇죠. 그겁니다. 그럼 서킷이 풀린 뒤에는 어떻게 될 것 같아?”
한진영이 이성우를 돌아보고 물었다.
이성우는 홍대민과 한진영의 대화를 떠올리고 눈을 끔벅거리며 대답했다.
“오르겠네.”
“그래. 오를 거야. 그러니까 지금 상황은 끝났다고 이야기하는 거다.”
한진영은 마시던 맥주캔을 모여 있는 곳에 가져다 놓은 뒤 말했다.
“지금은 해프닝이야. 그리고 해프닝은 여기서 마무리가 될 거다. 기업의 가치가 훼손되거나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만한 이유가 없으니까 오래 갈 수가 없어.”
“그럼 저희도 움직일까요? 지금 회사에 있으니 바로 직원들 불러오면 한두 시간 내에 매매 세팅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이 의자에서 반쯤 일어나며 말했다.
한진영의 말대로라면 지금이 바로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기회는 몇 년에 한 번 오는 것이었기에 꼭 잡아야 한다고 생각한 홍대민이었다.
이런 생각은 이성우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었다.
웃으며 떠들고 있었지만, 한진영이 여기서 마무리된다는 말에 전화기를 부여잡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이지가 움직이면 볼 것도 없이 움직이라는 지시를 넣기 위해서였다.
세이지는 직원들을 회사로 불러야 했지만 해외파트의 기풍증권 직원들은 지금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게 분명했다.
자기 전화 한 번에 해외파트가 운용하는 자금을 한 번에 모두 쓸어 넣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성우는 전화를 해야 하는 것인지 말아야 하는 것인지 눈치를 살폈다.
한진영은 홍대민과 이성우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오늘 거래는 취소가 될 테니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야.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고 그냥 집에나 가자.”
“취소된다고요?”
“취소돼?”
홍대민과 이성우는 동시에 한진영에게 물었다.
한진영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질문을 던진 이성우와 홍대민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궁금증이 가득 담긴 얼굴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훑어본 후 말했다.
“이런 사건을 미국의 증권거래소가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거래가 진행됐던 것도 모두 취소할 테고요.”
“거래를 취소하다니요? 이미 당사자끼리 합의가…….”
“합의가 안 된 것이니까요. 사는 쪽은 몰라도 파는 쪽은 동의 없이 팔았다는 것을 꼬투리 잡아 거래를 취소할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증권거래소에서는 그걸 인정해줄 테고요.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이요.”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HFT 프로그램이 촉발한 지금의 사태를 오류로 인정하여 거래를 취소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이런 일은 드물지는 않지만, 종종 있기는 했었다.
터무니없는 거래가 이루어진 경우 거래 자체를 취소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이 일어나는 일이었다.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난 채로 여전히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오늘 이벤트는 여기까지가 전부였으니 돌아가서 쉬도록 합시다. 그래야 내일도 일을 할 수 있으니까요. 조 비서. 정리하자.”
한진영이 조지훈에게 지시를 내리자마자 묶였던 거래가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호가에서 까마득하게 내려갔던 것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차게 오르며 하락세를 회복하는 모습을 보였다.
***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SE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주가의 이상 급락을 가져온 ‘이례적 거래’에 대해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NYSE 유로넥스트의 대변인은 전날 거래는 ‘잘못된(erroneous) 거래가 상당수 있었다’라는 말로 전날 움직임을 인정하지 않는 말을 남겼다.
그리고 이어진 미국의 나스닥거래소를 운영하는 나스닥 OMX 그룹은 공포의 20분간 등락 폭이 ‘60%’ 이상인 거래는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번 결정은 잘못된 거래이기에 이의제기는 받지 않는다는 말을 덧붙이며 어제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줬다.
블룸버그통신에 의하면 취소 결정을 내린 종목은 286개로 해당 주식 목록은 조만간 공개될 것이라고 밝혔다.
공포의 20분이 이제는 ‘사라진 하루’가 되어 버린 순간이었다.
세이지 자산운용의 직원들은 전날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봤어? 나 집에서 보면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미쳤던데요. -99% 나온 종목도 있데요.”
“-99%가 아니라 -100%가 찍힌 종목도 있었어. 뭐 제로가 아니라서 실제로 -100%는 아니지만…… 거래창에 뜨기는 -100%까지 떴으니 -100% 나온 거나 마찬가지지.”
왼손에는 커피를 오른손에는 담배를 들고 있는 세이지의 직원들은 신난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도대체 이유가 뭐래요?”
“발표는 프로그램 오류로 인한 폭락이라는데…… 소문에는…….”
“소문에는요?”
“HFT 프로그램 때문이라는 소문이 돌더라.”
“HFT 프로그램 때문이요? 우리도 HFT 프로그램 써봐서 알지만, 그것 때문에 폭락이 올 일이 있나요? 오히려 지수가 안 움직여서 더 답답할 텐데…….”
“우리만 쓸 때나 그렇지.”
“그럼…….”
담배를 한 대 깊게 피운 고 과장은 담배 연기를 내뿜은 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궁금해하는 동료를 위해 자기가 들은 소문을 이야기해줬다.
“우리 프로그램을 사 간 곳이 몇 군데야? 세 군데 아니야? 그러니 아주 난리가 아니었다고 하더라. 게다가 그 3곳이 각자 하나씩 돌린 것도 아니라 몇 개를 동시에 마구 돌렸다나 봐. 그래서 결국 다른 프로그램 매매에도 영향을 미치는 바람에…… 쾅~”
고 과장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손으로 폭탄이 터지는 광경을 묘사했다.
그리고 웃으며 오른손으로 담배를 다시 빼 들고는 말했다.
“터져버린 거지. 듣기로는 뭐 죄다 휴지 조각되고 난리도 아니었다고 하더라. 그러니 미국 증권거래소가 어제 거래를 취소해버린 거 아니겠어?”
“그럴 것 같았어요. 서킷브레이커가 풀린 뒤에 매수세가 들어와서 -23% 찍었던 P&G가 -2% 선까지 회복하기는 했지만 대부분의 종목들은 제대로 회복하지 못했으니까요. 게다가 분명 프로그램은 -20%가 찍히는 순간 손절 때려버렸을 텐데 이거 인정되면…….”
“폭동이야. 거기다 미국은 총기 합법 국가 아니냐? 총 들고 증권거래소 쫓아 들어갈 사람이 아마 백만 명일 거다. 죽어도 인정 못 할걸. 인정하는 순간 벌집이 될 텐데 누가 그걸 인정해.”
고 과장은 상상하는 것만으로 끔찍하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사람은 잠시 그 상황에 자기가 속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무언가가 떠올랐던지 고 과장이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동료를 향해 물었다.
“그런데 우리는 괜찮을까?”
“우리가 왜요?”
“그 프로그램을 만든 곳이 어디냐? 우리 아니야? 그럼 화살이 우리한테로 쏟아질지도 몰라.”
“설마요? 바다 건너에 있는 우리한테까지 책임을 물으려…….”
설마 그렇겠냐고 말을 하던 이가 고 과장을 돌아봤다.
조금 전까지 재미있다는 듯이 이야기하던 고 과장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해있었다.
“정말로 우리한테 책임을 물을까요?”
“후우~ 아니길 빌어야지.”
고 과장은 깊은 한숨과 함께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고 과장만큼이나 크게 걱정을 하는 이가 세이지 자산운용의 회의실에 자리하고 있었다.
걱정의 무게를 잰다면 거래하지 않은 이 중에서 가장 큰 무게를 짊어지고 있을 것만 같은 인물이었다.
박도하는 바짝 긴장한 얼굴로 조지훈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인 SEC에서 공식적으로 HFT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 요청이 들어온 상태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미국 하원 의회에서는 질의서가 들어왔습니다. 이게 바로 질의서입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을 향해 미 하원에서 보내온 질의서를 건넸다.
한진영은 잠시 질의서를 살핀 뒤에 곁에 앉아 있는 최석영에게 질의서를 건넸다.
최석영은 가볍게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을 살핀 뒤 곁에 자리한 고제상에게 건넸고, 그렇게 질의서가 한 바퀴 돌아 박도하에게까지 건네졌다.
박도하는 긴장한 얼굴로 질의서를 살폈다.
한진영은 그때까지 조용히 다물고 있던 입을 열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질의서에 보다시피 저들은 우리를 타겟으로 잡으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HFT를 직접 돌린 톨슨 테크놀로지와 같은 운용사를 타겟으로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니 있는 그대로 성의껏 대답해서 보내주도록 하세요.”
박도하는 서류에서 눈을 떼 한진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서류를 접어 자기 앞에 내려놓으며 안심한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다행입니다. 저는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 모릅니다.”
“미국에서 잡아갈까 봐 겁이라도 났던 겁니까?”
“왜 아니겠습니까? 미국에서 그 난리를 친 게 제가 만든 프로그램 때문 아닙니까? 그러니 뭐라도 책임을 지라고 할까 봐 살이 덜덜 떨렸습니다.”
고제상의 말에 다시 한번 몸을 부르르 떤 박도하였다.
농담처럼 말하고 있지만 어제 다 같이 미친 광경을 본 이후 한숨 잠을 자지 못했던 박도하였다.
그리고 회사에 와서도 모두 그 이야기를 하는 통에 박도하는 남몰래 한숨을 쉬고 있었다.
한진영은 아직 근심이 남아있는 박도하의 표정을 살핀 뒤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만든 프로그램을 가지고 미국에서 그 난리를 친 저 세 곳의 회사가 문제인 것이지요. 그래서 질의서에서도 명확하게 명시가 되어 있는 겁니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도록 말입니다.”
한진영은 박도하를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만든 사람은 잘못이 없습니다. 운용한 사람이 잘못이 있지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번 일로 우리를 엮을 꼬투리는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박도하는 그제야 안심했다.
한동안 미국을 비롯하여 해외시장에서 발을 뺀 세이지 자산운용이었다.
그들이 엮고 싶다고 해도 엮을 아무런 인과관계가 남아있지 않았다.
조지훈은 그제야 한진영이 모든 해외시장에서 물량을 거둬들이라는 지시를 내린 이유를 알게 됐다.
한진영은 바로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