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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47화 (247/650)

247화 문제는 다음이다

회의실을 나온 한진영과 조지훈은 사무실 밖으로 향했다.

조지훈은 앞서 걷는 한진영을 향해 빠르게 다가가 말했다.

“대표님. 제가 차를 가지고 나올 테니 앞에서 기다리십시오.”

“됐어. 뭐 하러 그래? 어차피 가는 길에 타고 가면 되는데.”

“그래도…… 대표님께서 지하 주차장까지 가셔야 하니까요.”

한진영은 조지훈보다 먼저 손을 뻗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 뒤 웃었다.

“나는 뭐 밑에 내려가지도 못하는 사람인가? 괜찮아. 지하 주차장 간다고 죽지 않아.”

한진영은 가볍게 조지훈의 등을 두드려주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뒤를 이어 조지훈이 엘리베이터의 지하 주차장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한진영은 닫히는 문을 바라보고는 뒤에 기댄 채로 말했다.

“자 이제 아무도 없으니까 물어봐.”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머쓱함과 민망함이 같이 섞여 있는 표정의 조지훈은 살짝 고개를 숙인 채로 웃었다.

“알고 계셨습니까?”

“누가 보면 이번이 처음인 줄 알겠어. 그냥 편하게 물어봐. 조금 뒤에는 물어보고 싶어도 못 물어볼 테니까.”

“네. 그럼…….”

조지훈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몸을 비스듬히 세운 후 한진영에게 질문했다.

“알고 계셨습니까?”

“뭘?”

“어…….”

뭘 알고 있었냐는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조지훈을 보고는 한진영이 웃으며 먼저 이야기했다.

“조 비서가 뭘 알고 있었냐고 물어볼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이 상황 자체를 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쉬울 거야.”

“다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렇지 않았겠어?”

오히려 조지훈에게 되묻는 한진영이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질문에 뜨문뜨문 입을 열었다.

“그럴……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설마…… 모든 걸…… 알고 계실 거라고는…….”

“편하게 생각해. 편하게…… 내가 이런 상황을 유도한 건 아니지만 이게 문제가 될 것 같아서 HFT 프로그램에서 손에서 턴 거야. 그리고 예상대로 HFT 프로그램은 문제를 일으켰고…… 뭐 우리 손에 있었다면 이런 문제가 안 일어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 하지만 프로그램은 이번 사고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게 내 생각이야.”

“역시 그러셨군요. 결국 어떤 식으로든 HFT 프로그램이 문제를 일으킬 거로 생각하셨군요. 저는 그걸 왜 파시나 했습니다.”

“그렇지. 사건은 어떤 방법을 이용해서든 일어날 테니까.”

한진영이 지금까지 지난 시절과 비교하며 깨달은 게 있었다.

일어날 사건은 과거의 방법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일어난다는 것이었다.

“역시…….”

“그리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서 뭐 크게 이변이 생기거나 그러지는 않을 거로 생각했어. 이 정도 일은 되돌릴 수 있는 일이니까.”

“역시…….”

“뭘 그렇게 역시 역시 그러고 있어?”

한진영은 추임새를 넣듯이 감탄사를 내뱉는 조지훈의 뒷머리를 쓰다듬고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그리고 천천히 지하 주차장을 걸어가며 말했다.

“기계로 사고가 터진 건 해결하기 쉬워. 기계 오작동이니 다시 하자는 말이 통하거든. 이득을 본 사람들이 불만이 있을 수 있는데 그들도 기계 오작동에 의한 사고였다는 말에는 순순히 물러나 주거든. 지금까지 그래왔으니까. 그리고 결정적으로 법적으로도 그것에 대한 장치가 다 되어 있어서 이번처럼 이의제기는 받지 않겠다는 말에도 누구 하나 뭐라고 할 수 없는 거야.”

한진영은 차 앞에 서서 문을 열어줄 때까지 기다리며 나머지를 이야기했다.

“문제는 다음이지.”

“다음이 문제라고요?”

문손잡이를 잡은 조지훈은 열지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돌렸다.

지금까지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으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문제가 있다는 말이 나오자 문을 열 생각도 하지 못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대신해서 문을 열었다.

그리고 문에 손을 걸친 채로 조지훈에게 말했다.

“그래. 롤백을 시키는 것까지는 문제가 없어. 그런데 나스닥거래소에서 뭐라고 그랬는지 기억해?”

“어떤 걸…… 아!”

조지훈은 그냥 롤백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큰소리로 대답했다.

“등락 폭이 60% 이상이었던 종목만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 전체가 아니라고…… 그럼 어떻게 될까?”

“손해를 보는 사람이 나오겠죠.”

“가진 돈만 잃어버린 사람만 나온다면 다행이지. 우리나라의 신용이나 미수 같은 상품을 쓴 사람은 어떻게 될까?”

“증거금을 채우기 위해…… 아~”

“그래. 문제는 그거야. 증거금이 부족한 사태가 터질 거라는 거지. 그리고…….”

조지훈이 궁금한 눈으로 동그랗게 눈을 뜨고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빨리 다음 말을 해달라는 아이 같은 눈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이 재미있게 느껴졌는지 크게 한번 웃은 뒤 몸을 차에 반쯤 넣으며 말했다.

“내가 뭘 준비했는지 운전석에 앉기 전까지 생각해봐.”

“준비하셨던 거라면…….”

한진영이 닫은 차 문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겨있던 조지훈은 운전석으로 냉큼 달려가 차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리고 차에 올라타자마자 한진영이 있는 뒷좌석으로 몸을 돌린 후 조금 전 떠올린 해답을 이야기했다.

“이유정 본부장 일 아닙니까?”

조지훈은 한진영의 눈을 살피다 손으로 차분히 이유를 꼽아갔다.

“오일이야 들어가 있는 물량을 다 거둬들였고…… 그러면서 이번 일에 휩쓸리지 않으려 해외 물량도 다 거둬들였고…… 남아있는 일은 이유정 본부장 일인데…… 맞죠? 이유정 본부장 일이지요?”

“맞아.”

“그런데 그건…… 그리니치 펀드…… 그거로 해결할 문제 아니었나요?”

조지훈은 차 안에 한진영과 둘만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조심스러웠다.

그만큼 이 일은 입 밖에 꺼내기에 위험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이제 마지막 조각을 눈앞에 둔 강아지처럼 보채고 있는 조지훈을 향해 친절히 대답해줬다.

“그리니치 펀드의 환매는 단순히 한두 가지의 이유만으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일이야. 그랬으니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살아남아 있지 않았겠어? 여러 가지 일이 복잡하게 얽히고설켜야 무너지는 거야.”

“아~”

조지훈은 한진영의 설명에 이제야 모든 것이 환하게 보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모래성도 20년 동안 세월이 흘렀다면 암석처럼 단단히 굳어지기 마련이었다.

그게 세월의 힘이었고 무서움이었다.

한진영은 바로 이번 일이 그리니치 펀드라는 단단하게 굳어진 모래성을 무너뜨리는 여러 가지 계기 중 하나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겹치며 단단하던 모래성이 쓰러진다는 것도 지난 시절 경험을 통해 잘 기억하고 있었다.

한진영은 무언가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조지훈의 모습에 웃으며 앞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제 앞에 보고 운전해야지. 어머니가 기다리겠다.”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모든 의문이 풀리자 크게 대답하고 몸을 돌려 운전대를 잡았다.

한진영은 그리니치 펀드가 무너지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던 지난 시절을 떠올리며 차창 밖을 바라봤다.

***

한진영을 태운 차는 서울 시내에 위치한 SL호텔로 향했다.

1년에 몇 번 찾지 않는 부모님을 뵙기 위해서였다.

조지훈은 운전대를 잡은 채로 룸미러를 슬쩍 바라보며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두 분이 모두 서울로 올라오신 건가요? 그것도 SL호텔 같이 고급 호텔에 말입니다.”

한진영과 함께 다니며 한진영의 부모님이 어떤 분들인지 알게 된 조지훈이었다.

자린고비까지는 아니지만, 근검절약이 몸에 밴 한진영의 부모님은 생전 이런 곳에 오지 않을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나마 한진영의 어머니라면 가능하기도 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러나 조지훈이 만나본 한진영의 아버지는 절대 이런 곳에 발길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서산 시내에 위치한 브랜드 커피숍조차 아깝다고 안 가는 분이 서울에 고급 호텔에 찾아온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어울리지 않았다.

조지훈의 질문에 한진영이 무슨 의미로 묻는 것인지 이해했다.

“조 비서. 우리 부모님이 어떤 분들이냐? 우리가 타고 온 이 차를 보시고도 기겁하신 분들이야. 그리고 자네 손 붙잡고 나 돈 허투루 쓰지 못하게 부탁한다는 말까지 건넨 분들이라고. 그런 분들이 이런 곳에 자기 돈 내고 오셨겠어?”

“그럼…….”

“동창분 아들이 그 호텔에서 결혼한다나 봐. 그래서 겸사겸사 식전에 구경한다고 친구분들 초대하신 모양이야. 그 길에 올라오신 거고…….”

“아~ 역시 돈 내고 오신 건 아니시죠?”

“당연하지. 사준다니까 오신 거다. 그것도 어머니한테 들으니 여기까지 차 몰고 올라오는 기름값 아깝다고 아버지는 안 가신다고 했나 봐. 그걸 어머니가 억지로 끌고 올라오신 거고…….”

“역시…….”

조지훈은 운전대를 잡은 채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이런 부모님의 모습을 창피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생활을 해오신 두 분을 존경했다.

돈을 무서워하고, 경계하며, 두려워하는 것은 천문학적인 돈을 움직이는 한진영에게도 필요한 덕목이었기 때문이다.

“대표님. 그럼 올라오신 김에 댁으로 모시지 왜 호텔에서 뵙기로 하신 겁니까?”

“나도 그러고 싶지. 그런데 서울은 머무르는 만큼 돈 내야 하는 줄 아는 분들이야. 그러니 어떻게 하루 묵으라고 하겠어? 오히려 이렇게 잠깐 시간 내어 얼굴 보기로 한 것도 내가 겨우 부탁해서 만나는 거야.”

그냥 볼일만 보고 내려가겠다는 부모님을 한진영이 애원하듯이 부탁하여 만든 자리로 약속 전에 잠깐 얼굴만 보자고 하여 이루어진 자리였다.

한진영은 회사 대표임에도 사장이 더 일을 많이 해야지 업무시간에 나와서야 되겠냐는 아버지의 호통을 떠올리며 웃었다.

차가 호텔 입구에 도착하자 한진영이 차로 세 명의 직원이 달려들었다.

한 사람은 조심스럽게 한진영이 타고 있던 차 문을 열어줬으며 다른 한 사람은 조지훈 쪽으로 건너가 차 키를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받았다.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뒤쪽에 따라오는 차들을 정리하며 혹시라도 한진영이 타고 온 차가 다치는 일을 경계했다.

한진영과 조지훈은 이런 모습에 익숙한 듯이 행동했다.

한진영이 타고 온 차 정도면 대한민국에서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대접을 받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직원에게 차 키를 건네고 당부사항 몇 가지를 알려준 뒤 급히 한진영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한진영을 호텔 안으로 안내했다.

한진영은 1층 로비에 자리한 커피숍으로 자연스럽게 걸어갔다.

위에 위치한 식당에 올라가기 전에 부모님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었다.

창문이 위치한 곳에 자리한 한진영은 약속 시간보다 5분 먼저 도착하여 자리를 잡았다.

“대표님. 그럼 저는…….”

“아니야. 조 비서도 앉아. 우리 부모님 모르는 것도 아니고…… 앉아서 인사하고 용돈이나 좀 받아가.”

한진영이 웃으며 조지훈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자기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조지훈에게 부모님이 안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부터 한진영의 부모님은 그 누구보다 조지훈의 처지를 딱하게 생각했다.

힘들게 살아온 것에 같이 가슴 아파했고 앞으로 자기들이 부모가 되어 조지훈의 든든한 그늘막이 되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만날 때마다 건넸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에게 용돈 주는 맛에 산다며 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항상 손에 쥐여주었다.

몇 푼 안 되는 돈이었지만 조지훈에게는 그 무엇보다 무거운 가치를 가진 돈이었다.

진짜로 가족이 된 듯한 따뜻함을 한진영의 부모님에게서 느낄 수 있었다.

“괜찮으니까 앉아.”

한진영의 말에 나가서 기다리려던 조지훈은 한진영의 곁에 조심스럽게 의자를 빼 앉았다.

그렇게 약속 시간까지 시간은 흘러갔다.

한진영은 시계를 내려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늦을 분들이 아닌데 뭐지?”

세상을 자로 재면서 사는 것인지 약속시간에서 1분 늦는 것조차 싫어하던 한진영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약속 시간을 지났는데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한진영은 이상함을 느꼈다.

“차가 밀린다고 하셨나?”

“아니요. 제가 10분 전에 확인하기로는 거의 다 도착했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저한테 시간 맞춰 왔냐고 확인까지 하셨는데…… 이상하네요.”

“그러게…….”

다른 사람이 5분 정도 늦는다면 그럴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만하지만, 생전 그러지 않던 한진영의 부모님이 늦으니 이상함만 느껴진 한진영과 조지훈이었다.

조지훈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제가 나가서 확인 한번 해보겠습니다.”

“같이 가자. 나도 궁금하니까.”

어머니는 몰라도 칼같이 움직이는 아버지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에 이상함을 느낀 한진영은 조지훈과 함께 호텔 입구로 향했다.

“아니. 왜 발레파킹을 안 해준다는 거야?”

“손님. 손님께서 직접 하세요. 저희 바쁜 거 보이지 않으세요?”

“이봐. 내가 할 테니까 그냥 놔둬.”

밖으로 나가자 한진영의 부모님과 호텔 직원. 그리고 부모님의 친구분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뒤섞여 있었다.

“가만히 있어. 이런 건 서비스가 아니지. 우리나라에서 제일 좋다는 호텔에서 어? 차를 골라서 발레파킹을 해주나?”

“손님. 말씀이 지나치십니다. 골라서 하다니요? 자꾸 이렇게 소란을 피우시면 강제로 쫓아낼 수밖에 없다는 것만 아세요.”

“뭐? 내 아들이 여기서 결혼하기로 했어. 그런데 고객을 쫓아내? 세상에 고객을 쫓아내는 곳이 어디 있어?”

“소란을 피우니 그런 것 아닙니까? 이봐. 위에 연락해서 보안요원들 좀 보내달라고 해. 정 안되면 강제로 내보내야 하니까.”

“뭐? 이것들이 정말…….”

부모님의 친구분과 호텔 직원이 언성을 높이고 싸우고 있었으며 한진영의 부모님들은 곁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이 한진영의 눈에 들어왔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이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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