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49화 (249/650)

249화 두 번 만나지 못하는 귀인

한진영이 매장 소파에 앉아 지점장에게 대접을 받는 사이 조지훈은 다른 직원들과 함께 디스플레이매장 뒤편에 자리한 건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한 조지훈은 천에 쌓인 벤틀리 플라잉 스퍼를 꼼꼼히 살폈다.

자그마한 기스라도 있는지 외관을 살피는 것부터 시작해서 엔진룸 내부와 시트까지 모든 것을 확실하게 살핀 조지훈은 5분여간의 시운전까지 마치고 한진영에게로 다시 돌아왔다.

조지훈은 소파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는 한진영에게 다가가 보고했다.

“차에는 이상이 없었습니다. 깨끗한 새 차 맞습니다.”

“좋아.”

한진영은 조지훈의 보고를 받고 잔뜩 기대에 찬 눈을 하는 지점장에게 말했다.

“시작하죠.”

지점장은 한진영의 말에 활짝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본래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차의 경우에는 할인을…….”

“할인 필요 없습니다. 당장 제가 급해서 사는 차니 할인받을 생각은 없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지점장은 반쯤 몸이 허공에 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이 역시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구나.’

지점장은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일할 때 꾀를 부리지도 않았으며, 가족들에게도 좋은 아빠이자 남편으로 살아왔다고 다른 사람에게도 당당히 말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하늘에서 이렇게 귀인을 내려주어 지금까지 착하게 산 데 대한 보상을 내려준다고 생각했다.

‘예수님, 부처님 앞으로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그러니 이런 손님 열 명만 더 내려주세요. 그럼 평생 은혜 갚으며 살겠습니다.’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차를 그 가격 그대로 사 가는 데다, 그 차가 다른 차도 아닌 벤틀리라는 것에 지점장은 죽었다 살아난 조상을 만난 것처럼 극진히 한진영을 대했다.

한진영은 그런 지점장과 직원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빠르게 자동차 계약을 진행했다.

한쪽에서는 결제를 비롯하여 차 구비사항을 정리하였고, 다른 쪽에서는 빠르게 자동차 등록과 번호판을 받기 위해 구청으로 달려가며 양쪽으로 움직였다.

조지훈은 자동차를 인도받는 데 길면 수개월 빨라 봐야 4~6주가 걸리는 시스템이 한 시간도 걸리지 않는 마법을 직접 목격했다.

자동차 등록부터 번호판 부착까지 30분 만에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모습에 조지훈은 세상에 돈이면 무엇이든 된다는 말을 새삼 깨닫는 중이었다.

한진영의 원하는 대로 30분 만에 모든 처리가 마무리되었다.

지점장 이하 청담동 폭스바겐 매장의 모든 직원이 매달린 덕분에 이루어진 일이었다.

지점장은 마지막 서류를 한진영에게 내밀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무엇이든지 사장님께서 원하시는 게 있다면 들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점장은 서류를 정리하여 조지훈에게 넘기는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사기를 친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3억 5천을 주고 사겠다는 것도 한진영이었으며, 임시번호판도 거치지 않고 바로 정식번호판을 달겠다는 것도 한진영이 요구한 것이었다.

그래서 잘못한 것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불편한 마음을 지울 수는 없던 지점장이었다.

할인을 통해 팔아야 할 물건을 정식 가격에 판 것에 미안한 감정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필요 없습니다.”

한진영은 마무리를 하고 시계를 바라봤다.

지금이면 얼추 부모님이 식사를 마칠 시간이 다 되어가는 듯 보였다.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지점장에게 말했다.

“저는 시간을 돈 주고 산 겁니다.”

한진영은 잠시 상의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털어냈다.

그리고 지점장을 향해 다시 이야기했다.

“사람마다 시간의 가치는 다릅니다. 저는 지금 당장 차가 필요했고, 제가 산 차가 바로 거기에 딱 어울리는 좋은 차였습니다. 그래서 고민 없이 산 것이니 지점장님께서는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리고 오늘 서비스에 저는 매우 만족합니다. 자주 찾아뵙겠습니다.”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그때까지 건네지 않던 명함을 주머니에서 꺼내 건넸다.

지점장은 지금까지 한진영이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 몇 번이나 묻고 싶었었다.

그러나 스스로 밝히지 않는 한진영의 모습에 귀찮게 묻지 않고 그저 조용히 알려주기를 바랐던 지점장이었다.

이 동네에서는 그게 미덕이었고 예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인내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지점장이었다.

“세이지 자산운용? 아~ 세이지 자산운용!”

지점장은 큰 소리로 한진영이 건넨 명함을 받아 들고 외쳤다.

돈이 도는 동네에 자리한 곳이었기에 돈 있는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게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지점장이었다.

그는 한진영이 지금 뜨겁다 못해 가진 자들이 들어가고 싶어 목을 맨다는 펀드의 개설자인 세이지 자산운용의 대표라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조만간 차 몇 대 더 살 것 같으니 그때는 할인도 해주시고 서비스도 더 해주시기 바랍니다.”

“아. 네. 네.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최선을 다해 만족해하시는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하겠습니다. 만나서 영광이었습니다.”

지점장은 허리가 접힐 정도로 인사했다.

귀인인 줄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에 지점장은 어제 꿨던 꿈이 돼지꿈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진영은 SL호텔까지 차를 몰고 갈 직원을 한 명만 지원해달라고 부탁했다.

지점장은 한진영의 말에 직원을 불러 한진영이 새로 산 차를 몰고 한진영의 롤스로이스를 따라 SL호텔로 가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매장 밖에까지 나와 떠나는 한진영을 향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그때까지 얼굴에 주름이 파일 정도로 웃고 있던 지점장은 차가 더는 보이지 않자 손을 내리고 조금은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박 차장이 지점장을 향해 물었다.

“지점장님. 왜 그러세요?”

신나게 웃어도 모자랄 판에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점장이 이상하게만 보인 박 차장이었다.

박 차장은 여전히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기만 한 지점장을 향해 다시 물었다.

“뭐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거라도 있으세요?”

“있지. 그것도 아주 많이 있지.”

“네?”

혹시나 해서 물어본 말에 바로 반응하는 지점장의 모습을 보고 박 차장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무 좋은 일 아니에요? 디스플레이 되어 있는 차를 제값 주고 팔았잖아요. 그것도 임시번호판도 아니라 정식번호판까지 달아서 말이에요. 차에 이상이 있어도 이제 저 차는 반품이 아니라 A/S 센터로 들어가는 거라 우리는 아무 잘못도 없게 되는 거고요.”

“그래. 모든 게 좋아. 그런데…….”

지점장이 박 차장을 돌아보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왜 4,000cc V8이 있었을까? 6,000cc V12라인이 있었으면 더 비싸게 팔았을 텐데…… 게다가 저건 풀옵션 모델도 아니잖아. 풀옵션이었으면 4억 넘게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지점장은 디스플레이 해놓는 차를 굳이 풀옵션으로 깔아놓을 필요 없다고 이야기한 과거의 자신을 탓했다.

“다 내 잘못이지. 내가 미래를 보지 못했어. 이럴 줄 알았다면 풀옵션으로 꽉꽉 채워서 가지고 왔을 텐데…….”

지점장은 말을 마치고 무슨 다짐을 하는 것처럼 허리에 손까지 올리고 말했다.

“한 대표님이 그러셨지? 또 와서 몇 대 사가겠다고 말이야. 조만간 올 거야. 저 회사로 돈이 몰린다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들려오니까 그때를 대비해서…… 본사에 말해. V12 6,000cc 모델로 몇 대 우리 쪽에 넣어달라고 말이야.”

“괜찮으시겠어요? V12 라인은 안 팔리면…… 그야말로 어찌하지도 못하는 모델이잖아요.”

“괜찮아. 사람이 기회가 왔으면 잡아야지. 난 이번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그리고 이번 기회를 이용해 지점장이 아니라 지사 사장 자리까지 노려볼 테니까 박 차장이 많이 도와줘야 해.”

“네. 제가 도와드리지 않으면 누가 도와드리겠어요.”

“그래. 오늘 귀인을 만난 거로 끝나지 말고 귀인이 친분이 있는 귀인이 되도록 노력하자. 회사 생활하면서 두 번 만나볼 수 없는 귀인이니까 말이야.”

지점장은 이제는 보이지도 않는 한진영이 떠나간 곳을 바라보면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

SL호텔 입구에서는 VIP 전담 이사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뭐라고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직접 발레파킹하라고…….”

매니저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VIP 전담 이사를 향해 이야기했다.

VIP 전담 이사는 잔뜩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발레파킹 해주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에요? 어차피 당신네 일 아닙니까? 원래 하는 일 하라는 건데 그렇게 하기 싫었어요?”

“아니요. 그런 소형차까지 하기에는…….”

“직접 요청했다면서요? 요청한 걸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된다는 것도 몰랐어요?”

“알죠. 아는데…… 아니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인데 그러세요?”

“알면 뭐 어떻게 할 건데요?”

“알면 제가 찾아가서 사과라도 하려고요.”

매니저의 말에 VIP 전담 이사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니저는 그런 이사의 모습에 지기 싫었는지 그도 기분이 별로라는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호텔에 오는 VIP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그중에 한 사람이 기분 나빠졌다고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한 사람? 그 사람은 그냥 한 사람이 아니에요.”

매니저의 말에 이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매니저는 이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냥 한 사람이 아니라니요?”

“그 사람은…….”

이사가 말을 하려고 할 때 연달아 두 대의 고급 차가 호텔로 들어왔다.

SL호텔의 직원들은 들어오는 차를 향해 달려 나갔다.

매니저와 VIP 전담 이사도 하려던 말을 멈추고 들어오는 차로 시선을 돌렸다.

이 정도 고급 차가 연달아 들어오는 일은 흔하지 않았으며 만약 이렇게 찾아오는 사람이라면 보통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

차 문을 열던 직원은 문을 통해 나오는 한진영을 보고 찔끔 놀라 하려던 말을 끝까지 내뱉지 못했다.

한진영은 차에서 내린 뒤 따라 들어온 벤틀리로 시선을 돌렸다.

벤틀리는 한진영 차 뒤에 선 뒤 시동이 꺼졌다.

그리고 차 문이 열리면서 폭스바겐 직원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와 차 키를 두 손으로 공손히 내밀었다.

한진영은 차 키를 건네받으며 인사말을 건넸다.

“수고하셨어요.”

“네. 저희 매장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애용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들어가 보세요.”

한진영에게 인사한 폭스바겐 직원은 허리를 펴고 곧바로 호텔 밖으로 나갔다.

한진영은 손에 차 키를 쥔 채로 조지훈에게 말했다.

“올라가서 내려오시라고 해. 더 계실 필요 없다고…….”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이 SL호텔 안으로 들어가자 그때까지 숨죽이며 한진영의 안색을 살피던 VIP 전담 이사가 한진영에게로 다가왔다.

“한 대표님.”

차에 기대 SL호텔을 올려다보던 한진영은 자기에게 다가온 VIP 전담 이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백 이사님이시네요.”

“네. 기억해주시는군요. 일전에 정 회장님과 뵈었었지요.”

“네. 오랜만에 뵙네요.”

자기를 알아보는 모습에 백 이사는 한진영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한 대표님. 먼저 저에게 말씀해주고 오시지 그러셨습니까? 아니면 불편한 일이 있으시면 저를 부르셔도 괜찮고요.”

백 이사는 어떻게든 한진영의 불쾌한 기분을 풀어주려는 듯이 살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백 이사의 표정에도 전혀 웃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굳이 이런 일로 백 이사님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귀찮다니요. 한 대표님의 일이라면 전혀 귀찮지 않습니다.”

백 이사는 급히 한진영의 말에 고개를 저은 후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한 대표님.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으셨다면 저를 봐서라도 용서해주십시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테니 말입니다.”

매니저는 뒤에서 백 이사의 말을 듣고 기분이 나빠졌다.

자기가 잘못한 것을 깔고 이야기하는 것에 아직도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모습이었다.

그때 조지훈이 한진영의 부모와 친구 부부를 데리고 나왔다.

한진영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이 드러나자 백 이사에게 손을 뻗어 뒤로 물러나게 했다.

그리고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식사는 어떠셨어요?”

“흐음~ 생각보다 별로더구나.”

“기분이 상하셨으니 그러셨을 거예요.”

한진영은 주변에 SL호텔의 직원이 있다는 것도 신경 쓰지 않은 채 계속 이야기했다.

“호텔의 얼굴이라는 곳에서부터 서비스가 별로이니 나머지도 볼 것도 없지요. 고생하셨어요. 그리고 이거요.”

“이게 뭐냐?”

한진영이 내민 차 키를 받아 든 아버지는 한진영과 차 키를 번갈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아버지에게 뒤에 서 있는 벤틀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부터 저 차 타세요.”

“어?”

아버지는 한진영이 가리킨 차를 바라봤다.

차에 으리으리하다는 표현을 써도 괜찮은지 모르겠지만, 그런 표현이 아니면 한진영이 가리킨 차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차는 커다랗기만 했다.

아버지는 차 키와 차 그리고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다 뭐냐?”

“식사하시는 중에 차 한 대 뽑아 왔어요. 차 때문에 무시당하는 걸 제가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서요.”

“차를…… 그 시간에 뽑아 왔다고?”

“서류 정리까지 다 해놓은 차니까 안심하고 쓰세요. 그리고 차 타시다가 불편한 거 있으시면 바로 이야기하시고요. 그것도 제가 다 처리할 테니까요.”

“나야 불편한 게 있겠냐? 내가 아니라 도로 위의 다른 차들이 불편해할 것 같은데?”

도로 위에 올라가 있는 것만으로 불편함을 느낄만한 차 모습에 한진영의 아버지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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