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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50화 (250/650)

250화 우리나라의 제일 뜨거운 존재

VIP 전담 이사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기분이 상했다고 벤틀리를 바로 사 온 한진영이었다.

이런 사람을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그는 다급히 한진영의 부모와 그의 친구들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SL호텔을 대신해서 사과하겠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한진영의 부모와 그의 친구들은 이런 백 이사의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뻣뻣하던 모습에 비해 지금의 모습은 너무 부드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그들은 당사자인 매니저가 여전히 뒤에 서서 불만 섞인 표정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진영의 아버지는 손에 한진영이 건넨 키를 꼭 쥔 채 백 이사를 일으켜 세웠다.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사과해야 할 당사자가 아니지 않습니까? 충분히 이해합니다. 그러니 일어나시고…….”

그는 백 이사의 팔을 잡아 일으켜 세우고는 한진영에게 말했다.

“진영아. 이 일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내 친구가 기분이 상했다고 SL호텔에서 치를 아들 결혼식을 취소하려고 한다고 하더라. 여기 취소하고 어디 좋은데 다른 곳 없을까? 아무래도 서울에는 네가 오래 살아서 네가 잘 알지 않겠니?”

“안 그래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어요. 굳이 이곳에서 꼭 결혼식을 올리셔야겠냐고요. 제가 더 좋은 곳으로 알아봐 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잘됐네요.”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조지훈이 기다렸다는 듯이 어딘가로 전화했다.

이곳에 오기 전 차 안에서 한진영과 나눴던 대화대로 조지훈이 움직인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 모습을 확인하고 아버지의 친구분에게 말했다.

“강남에 위치한 고려 펠리스 호텔이 있어요. 거기 어떠세요?”

“어~”

아버지의 친구는 잠시 눈치를 살폈다.

SL호텔에서 아들이 결혼식을 올리고 싶다고 이야기했을 때도 무리에 무리를 하여 겨우 가장 작은 곳을 빌린 것이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기에 없는 살림에 끌어올 수 있는 것은 다 끌어와 겨우 예약한 건데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감당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든 친구였다.

한진영은 아버지의 친구분이 무얼 걱정하는지 깨닫고 웃으며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번에 강남에 럭셔리급 호텔로, 새로 단장한 호텔인데 여기하고 최근에 많은 이야기를 해서 싸게 해줄 겁니다. 원하는 시간대에 맞추어 주기도 할 테고요. 그리고 그곳이 마음에 들지 않다면 다른 곳도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우선은 여기에서 결혼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한진영이 아버지의 친구를 안심시키고 고개를 돌리자 조지훈이 마침 전화를 마무리 지은 참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을 향해 통화 내용을 이야기했다.

“고려호텔에서 원하는 시간에 무조건 자리를 빼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홀 대관료도 받지 않고 시그니쳐 이벤트를 모두 지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괜찮다면 지금 바로 와서 구경해도 좋다는데 어떻게 할까요?”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웃으며 아버지를 비롯하여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시죠. 가보시고 한번 살펴보신 다음에 말씀해주세요. 지금 고려호텔에서는 돈도 안 받겠다고 하니까 나쁘지 않은 조건 같으니까요.”

“정말 돈 안 받겠다고 해?”

“네. 자기들이 안 받겠다고 하네요. 그렇지?”

한진영이 조지훈을 돌아보고 묻자 조지훈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자기들 쪽에서 하기만 한다면 돈은 물론이고 받을 수 있는 모든 서비스를 무상으로 제공할 계획이라면서 제발 자기들 쪽으로 와주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고려호텔이…… 왜…….”

“그건 가서 생각해보시고 우선 이동 하시죠? 아버지도 새 차 한번 운전해 보시면서 어떤지 느낌도 이따 이야기해 주세요.”

한진영이 아버지에게 말한 뒤 조지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조지훈이 고려호텔 측에 연락했다.

그때까지 가만히 보고만 있던 VIP 전담 이사는 한진영을 향해 애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표님. 다시 한번만 생각해주십시오. 제가 바로 웨딩 담당자에게 말해서 저희 영빈관을 잡아 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도 돈 안 받겠습니다. 대표님…….”

“이사님. 다음에 좋은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리 제 결혼식이 아니더라도 이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에 아버지 친구분의 아들 결혼식을 하라고 못 하겠네요. 그리고 정 회장님께 SL호텔에서 계속 이벤트를 하는 게 맞는 건지 생각해보자는 말씀을 드려야겠습니다. 오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대표님……!”

한진영은 옷자락까지 잡고 늘어지려는 듯한 백 이사를 뿌리치고 차에 올라탔다.

한진영의 아버지는 그런 한진영을 보고 차 키를 잠시 내려다봤다.

평소라면 왜 이런데다 돈을 쓰냐면서 한마디를 했을 한진영의 아버지였다.

근검절약이 몸에 밴 한진영의 아버지 성격상 이런 고급 차는 분수에 맞지 않는 거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서 타요. 진영이 차 곧 출발하겠어요.”

“그래. 어서 가자. 난 여기 한시도 더는 있고 싶지 않아.”

“그래요. 가요.”

부인을 비롯한 친구 부부까지 한진영의 아버지를 재촉하고는 차에 먼저 올라탔다.

한진영의 아버지는 잠시 차 키를 내려다본 뒤 자기들을 비웃던 매니저를 바라봤다.

한 톨의 미안함만이라도 그의 얼굴에 보였다면 한진영을 비롯하여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니저의 얼굴에는 미안함이나 죄송함 같은 류의 마음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잘해봐야 이 상황이 왜 자기에게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듯한 당혹감 정도만이 얼굴에서 보일 뿐이었다.

“그래. 가자.”

한진영의 아버지는 미련을 버리고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한진영이 건넨 차에 시동을 걸며, 앞서가면 뒤를 따르겠다는 뜻을 한진영의 차에 알렸다.

“이런…… 이런…….”

백 이사는 분을 참지 못하고 땅을 몇 차례나 굴렀다.

그리고 멀어지는 한진영의 차를 바라보고 짜증 섞인 혼잣말을 내뱉었다.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내가 여기까지 데리고 오는 데 얼마나 힘이 들었는데…….”

“……이사님.”

백 이사는 가까이 다가온 매니저를 돌아봤다.

매니저는 한진영 일행이 모두 떠나자 앞날을 위해 백 이사와의 관계를 개선해야겠다고 생각하여 가까이 다가온 것이었다.

한진영이야 앞으로 두 번 다시 보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백 이사와는 수시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크게 생각하실 필요 없습니다. 제가 저런 애송이 같은 어린놈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VIP를 모시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아실는지 모르겠는데…… 충남에 자리한 건설사인 홍남건설의 회장님이신…….”

“홍남건설의 최홍남 회장님 말씀입니까?”

“네. 그분을 제가 좀 잘 압니다. 그분에게 제가 부탁하면…….”

“여봐요!”

백 이사는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크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매니저는 백 이사의 모습에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고 말았다.

백 이사는 그런 매니저를 따라 앞으로 두 걸음 내디디며 손가락으로 매니저의 가슴을 찔렀다.

“당신이 모시고 오겠다는 최홍남 회장님이 아까 그 한 대표에게 돈을 맡기고 싶어 안달이라는 거 압니까?”

“그 애송이에게요?”

“애송이?”

백 이사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인 후 다시 소리를 질렀다.

“당신이 말하는 그 애송이라는 녀석이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일 뜨거운 존재란 말입니다. 그가 우리 VIP로 오면 따라서 같이 올 VIP급 멤버가 어림잡아도 100명이 넘습니다. 알아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냐고요? 말이 돼요. 말이 된다고 이 양반아!”

백 이사는 매니저에게서 뒤로 잠시 물러난 뒤 땅을 발로 굴렀다.

“내가 한 대표를 우리 피트니스 회원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를 공 들였는지 알아? 한 대표가 우리 피트니스 회원이 되면 피트니스 회원권 가격을 2배로 올려도 서로 가입하겠다고 난리가 벌어질 거라고. 무슨 말인지 알아? 저 애송이 하나로 우리 호텔 매출을 다른 차원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이야. 만약 그런 상황이 벌어졌다면 네가 데리고 오겠다는 최홍남 회장은 내가 VIP로 받지도 않아. 한진영을 따라오는 사람들에 비하면 최홍남은 피라미에 불과할 테니까.”

매니저는 백 이사의 말에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러나 백 이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대표가 떠나면서 정 회장에게 이벤트 재고해 보라고 하겠다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

매니저는 백 이사의 말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좌우로 젓기만 했다.

백 이사는 그런 매니저의 모습에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JTLM(Joint Technical Liaison Meeting) 국제회의를 우리가 유치하려는 거 알아?”

“알고 있죠.”

“그걸 말하는 거야 알았어?”

매니저는 백 이사의 말에 크게 놀랐다.

“JTLM은 건설 기계 분야 국제회의 아닙니까? 전 세계의 많은 산업협회 회원들이 모여서 국제 규격을 정하고 규제 등과 같은 것을 논의하는 자리인데…… 그걸 어떻게 그 애…… 아니 한 대표가 막는다는 말씀입니까?”

“한 대표가 말한 정 회장이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

“아니요.”

“정 회장이라는 양반이 우리나라 한국건설기계산업협회 임원으로 있어. 이제 무슨 말인지 좀 알겠어?”

백 이사는 잡아먹을 듯한 표정을 지우고 한심스럽다는 눈으로 매니저를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개최하는 회의니 우리나라 협회가 주관이 되어 움직여야지. 그런데 우리나라 협회가 막고 나서면 우리가 무슨 힘으로 개최 경쟁을 뚫고 들어가겠어? 올해 가장 큰 이벤트인 이 회의가 지금 방금 날아가 버리고 만 거야!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까?”

백 이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뭐 하나 제대로 아는 게 하나도 없네. 이런 사람을 스카우트 해온 인사부를 비롯한 당신과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처벌받게 할 거야. 당신 하나 때문에 우리 회사가 얼마나 피해를 본 줄 알아? 당신 각오해. 이 바닥에서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내가 만들어 버릴 테니까.”

백 이사는 한참이나 매니저를 향해 쏘아붙이고도 화가 삭지 않았던지 한동안 호텔 정문에서 소리까지 지르며 분을 삭이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매니저의 얼굴이 누렇게 뜨고 말았다.

단숨에 고급 외제차를 사 오는 한진영의 모습과 백 이사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제야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매니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표정으로 직원들을 돌아봤지만 아무도 그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백 이사가 말한 관련된 사람들은 모두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직원들은 매니저와 거리를 두기 위해 뒤로 슬금슬금 물러났다.

그렇게 매니저는 홀로 호텔 정문 앞에 서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 같은 표정으로 서 있기만 했다.

***

미국은 3대 지수를 조정하여 새롭게 발표했다.

공포의 20분 동안 나왔던 이상 거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발표 뒤에 새롭게 계산하여 지수를 발표한 것이었다.

‘이상 거래’라 불리는 것들이 취소되자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는 듯이 보였다.

폭락을 보였던 종목들이 폭락 전으로 모습을 되돌아갔기 때문이다.

시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정을 찾아갔다.

대형주들조차 휴짓조각이 되어버린 모습이 사라지자 이런 상황을 초래한 범인을 찾기 위해 사람들은 혈안이 되어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돌아보던 사람들의 눈에 한 가지가 들어왔다.

[지난 시장의 혼란은 초단타매매 때문으로 보여]

[증권거래위원회(SEC) 초단타매매 집중단속 발표]

[시장을 어지럽히는 초단타매매 업체들만 50여 곳에 이르는 것으로 예상되며 그중 10여 곳이 지난 혼란을 만들어낸 것으로 확인]

[미 하원은 초단타매매를 진행하는 업체 대표들에 의회 참석 요청]

사람들의 시선은 초단타매매로 불리는 HFT 매매에 쏠려 들어갔다.

그리고 초단타매매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서 분노에 찬 목소리를 내뱉었다.

사람이 아닌 컴퓨터가 그것도 시장의 움직임을 왜곡까지 시키는 것에 사람들은 분노를 일으켰다.

게다가 이런 불공정 거래가 시장의 폭락을 일으켰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이대로 가만히 초단타매매를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는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증권거래위원회도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기에 누군가는 지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증권거래위원회 초단타매매를 진행하는 업체들에 대해 규제 카드 만지작거려]

[FBI 수사를 받는 초단타매매 업체 대표들. 자택에서 수천만 달러 발견]

[미 의회는 초단타매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공감대 형성]

[시장참여자들 재발 방지 촉구와 사태의 주범에게 강력한 처벌 요구]

이곳저곳에서 일어난 사람들의 성난 목소리는 미국을 넘어 대한민국에까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에 반응하기라도 하듯이 한국거래소가 즉각적으로 움직였다.

바로 세이지 자산운용에 프로그램을 만든 이가 맞는 것인지 확인하는 문서를 보낸 것이었다.

조지훈은 한국거래소에서 넘어온 문서를 들고 한진영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있는 그대로 적어서 보내.”

“있는 그대로요?”

“그래. 더 보태지도 말고 빼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알았지?”

심각한 표정의 조지훈과 달리 한진영의 얼굴은 태연하기만 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얼굴을 바라보고 손에 든 서류로 눈을 돌렸다.

서류에는 SEC에서 이번 사태가 일어난 원인으로 세이지 자산운용에서 만든 HFT 프로그램을 지목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한국거래소는 SEC에서 협조 요청이 오기 전에 대비하는 차원에서 세이지 자산운용에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 맞는지, 그리고 만들었다면 프로그램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 담긴 서류를 보내온 것이었다.

조지훈은 서류를 잠시 내려보던 시선을 한진영 쪽으로 옮겼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박도하 팀장에게 말해서 프로그램의 특징을 비롯한 알고리즘까지 원하는 것은 모두 다 공개 하라고 해.”

“모두 다요?”

“그래. 모두 다.”

한진영의 결정에 조지훈은 깜짝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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