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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51화 (251/650)

251화 사람들은 기분 나빠할 겨를이 없다

조지훈은 급히 자기가 들은 지시가 맞는 것인지 한진영에게 되물었다.

“대표님. 프로그램의 특징을 건네주는 것만으로도 흔한 일이 아닌데 알고리즘까지 모두 공개 하라니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핵심 기술을 그대로 외부에 드러내게 되는 것 아닙니까? 게다가 우리는 프로그램을 팔기까지 했는데 우리에게서 프로그램을 사 간 곳들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한진영은 걱정이 가득 담긴 듯한 조지훈의 말에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우리에게는 쓸모가 없는 것이라서 공개하라고 한 거야.”

“쓸모가 없다고요? 어째서 그게 쓸모가 없는 겁니까? 톨슨 테크놀로지 등은 그걸 위해 2억 달러를 쓰지 않았습니까?”

“규제가 들어갈 텐데 쓸 수가 없는 게 당연한 거 아니겠어?”

“규제라면…….”

조지훈은 그제야 SEC에서 초단타매매에 관해 철퇴를 내릴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범을 가만히 두지 않겠다는 SEC의 결정이 떨어진 것이었다.

“범인은 밝혀졌으니 재발 방지를 하려 할 거야. 앞으로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정보를 달라고 하는 거니까 줘. 어차피 나중에 써먹지도 못하는 거 이참에 점수나 따도록 말이야.”

“그럼 우리에게 HFT 프로그램을 돈을 주고 사 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어떻게 되기는. 뻔하지 않아?”

한진영이 조지훈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웃음 속에서 톨슨 테크놀로지 등의 미래가 보이는 것만 같았다.

“이번 일로 그 세 곳은 회사 문이 닫히게 될 거야.”

“그렇게 될까요?”

“그럼. 그리고 회사 대표들은 최소 10년 이상 햇빛을 받지 못하게 될 거야.”

“사람을 죽여도 10년 이상의 벌을 받기 어려운데…….”

“미국이니까. 미국이라서 가능한 거야.”

한진영은 지난 시절 그들의 처벌을 떠올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일벌백계를 하겠다는 듯이 HFT 프로그램으로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기업에 철퇴를 내리쳤다.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 프로그램을 사용하더라도 걸리면 어떻게 된다는 것을 똑똑히 보여주겠다는 듯이 미 법원은 기업의 대표들에게 중죄를 내렸다.

금융 범죄만큼은 싹을 잘라버리는 미국이라서 가능한 조치와 법의 잣대였다.

우리나라라면 징역은 고사하고 잘해야 집행유예 혹은 무혐의 처분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장의 폭락을 야기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프로그램이 한 것이기에 기계에 죄를 묻기 어렵다는 식으로 어영부영 지나갔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그런 게 통하지 않았다.

“대표님께서 왜 꼬투리 하나 남기지 않으려 하셨는지 이제 이해가 갑니다.”

“이번 일은 미 증시를 한번 크게 뒤흔들었던 사건이야. 그런 일을 바다 건너 있다는 이유만으로 안심해서는 안 돼. 우리가 만약 의심받을 만한 무언가가 있었다면 우리나라 정부에 요청해서 우리를 소환하고도 남았을 테니까 아무것도 남겨 놓아서는 안 됐어.”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동감했다.

“그래서 먼저 빠져나온 거고 완전히 손을 턴 상태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었던 거야. 그래도 혹시 몰라 괘씸죄에 엮일지도 모르니 협력할 수 있는 선에서 무조건적인 협력을 하라는 거야. 미국 놈들은 죄가 없어도 기분이 나쁘다면 우선 때리고 죄를 만들고도 남을 놈들이니까.”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알았다는 대답하고 사무실을 떠났다.

***

세이지 자산운용은 한진영의 지시 아래 모든 정보를 한국거래소와 미 증권거래위원회에 제공했다.

HFT 프로그램의 알고리즘까지 숨기지 않고 제공하는 것에 미 증권거래위원회는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세이지 덕분에 톨슨 테크놀로지 등의 위반행위를 파악하기 쉬웠다는 뜻에서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미국에서는 뉴스로 이번 사태를 야기한 회사들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특히 HFT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과도한 매매를 진행한 톨슨 테크놀로지는 이번 사태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그리고 그들의 매매 형태도 하나 빠짐없이 공개됐다.

폭락 사태가 벌어지기 일주일 전부터 미국에서 거래되는 거래대금의 60%까지가 초단타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 밝혀지고 말았다.

1초에도 적게는 몇 번 많게는 수백, 수천 번을 거래하는 프로그램에 의해 시장이 왜곡이 발생했다는 것이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발표였다.

이런 프로그램은 정당한 방법을 까마득히 넘어선 것으로 판단하여 증권거래위원회에서는 사용을 금지하는 카드까지 만지작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사용을 금지하는 것은 너무하다는 의견과 금지해서라도 공정한 시장을 구축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게 맞서며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다만, 그 사이 나스닥거래소의 킬스위치 강제 탑재라든지 상품선물거래위원회의 알고리즘 규제 등이 시행되며 어쨌든 그냥 시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식의 분위기가 형성되어 가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이런 서슬 퍼런 미국의 반응과는 달리 대한민국에서는 이번 일로 인해 각광을 받는 곳이 있었다.

바로 한진영의 세이지 자산운용이 세간의 주목받게 된 것이었다.

***

한진영과 조지훈은 자리에 앉아 최석영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최 차장님은 아니라고 하는데 미용실 다녀온 거 맞지? 조금 전까지 회사에 있던 머리하고 전혀 다르잖아.”

한진영은 멋들어진 머리 모양을 하는 최석영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곁에 앉아 있는 조지훈에게 물었다.

조지훈도 어이가 없었던지 한진영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저한테도 아니라고 그러셨는데…… 저 머리는 그냥 일반인이 만진다고 나오는 머리 같지 않은데요?”

“그래. 나만 이상하게 느낀 건 아니었지? 어쩐지…… 방송 있다고 일찍 나간다고 했을 때부터 이상하기는 했다. 뭐 그래도 제법 어울리네. 근데 저 어깨 좀 내리면 안 되나? 보는 내가 다 창피하다.”

한진영은 보기 부끄러웠던지 눈까지 손으로 가렸다.

한진영이 부끄러워할 정도로 화면 속의 최석영의 어깨는 하늘 높이 솟아 있었다.

그리고 이런 최석영의 어깨를 더욱 높이 솟아오르도록 아나운서의 감탄은 쉬지 않고 최석영을 향하는 중이었다.

-이번 미국에서 있었던 일의 주범으로 찍힌 HFT 프로그램. 그걸 세이지 자산운용이 만들었다는 데 그게 사실입니까? 저는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HFT 프로그램 자체를 만든 것은 아닙니다. HFT 프로그램은 10여 년 전부터 이미 많은 곳에서 사용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럼 무얼 만들었다는 것인가요?

아나운서의 질문에 최석영이 미소를 참기 어려운 얼굴로 말했다.

-그저 다른 것들보다 조금 더 성능이 좋은 것을 만든 것뿐이었습니다. 그걸 저희에게서 사간 업체들이 자제를 하지 못하고 마구 돌리는 바람이 이번 사태가 벌어진 것이고요. 사람의 욕심이 바로 이번 일을 만들었다는 편이 맞을 겁니다.

최석영의 설명에 아나운서는 당장에라도 손뼉을 칠 것 같은 모습으로 말했다.

-조금 좋은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월등하다는 말로도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던 것 아닙니까?

-뭐…… 그렇게 받아들이셔도 틀린 것은 아닙니다. 저희 프로그램이 시장을 패닉으로 만들 정도로 잘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이번 일로 증명됐으니까요.

-다른 곳도 아니라 미국 시장을 패닉 상태로 빠뜨린 것이지요?

-하하하. 이렇게 웃으면 안 되는 일이지만 사실이 그러니 어쩔 수가 없군요. 맞습니다. 미국 시장을 패닉으로 이끌었을 만큼 저희 프로그램이 잘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직접 최 차장님께 이야기를 듣는데도 믿기지 않는 일입니다. 전 세계 금융시장의 메카이자 선두 시장인 미국을 침몰시킬 정도였다니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프로그램인지 예상하기도 어려운데요. 괜찮으시다면 최석영 차장님께서 간단하게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습니다.

최석영은 지난 미국의 사태를 설명하는 프로그램에 초대되어 앉아 있었다.

폭락의 이유와 앞으로의 상황을 진단하는 자리로 최석영이 중심이 되어 교수 몇 명이 초대된 자리였다.

그곳에서 최석영은 주인공이었다.

이번 일을 바다 건너의 나라에서 짐작하는 정도로 이야기하는 다른 교수들과 달리 최석영의 세이지 자산운용은 이번 일의 중심에 있는 곳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최석영이 이야기한 것이 진실이었으며, 그가 이야기하는 내용이 비하인드가 되어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최석영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며 그의 말에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최석영이 어떤 말을 내뱉을지 모두 관심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었다.

조지훈은 최석영의 말을 가만히 듣다 걱정하는 얼굴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저렇게 말해도 괜찮은 건가요?”

“뭐가?”

재미있는 드라마를 보듯이 바라보던 한진영은 웃던 것을 멈추고 조지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지훈은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농담조로 이야기하는 최석영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도 미국에서는 이번 일을 사고로 생각하여 크게 다루고 있는데 우리가 그 일을 농담 식으로 이야기하는 게…….”

“뭐 어때서 그래?”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바다 건너에 있는 나라에서 그 일을 희화화한다고 미국 놈들이 기분 나빠하면 좀 어때? 그렇다고 우리를 뭐 어쩔 거야? 그리고 그놈들이 잘못한 게 맞는 데 뭐가 문제야?”

“그래도…… 알게 되면 기분이…….”

“누가 기분 나빠할 건데?”

“아무리 거래가 취소됐다고 하더라도 거래가 승인된 종목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곳에 물려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는 지금 일이 가슴 아픈 일일 수 있으니까요.”

한진영이 조지훈의 말에 가볍게 웃으며 조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 사람들에게는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신경 쓸…… 아~”

조지훈이 무언가를 떠올리고 감탄에 가까운 말을 내뱉을 때 사무실 문이 벌컥 열렸다.

“야!”

한진영과 조지훈은 자리에 앉은 채로 사무실에 들어온 사람을 올려다봤다.

그때 보안요원이 급히 들어와 한진영에게 사과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연락하고 올라가시라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막무가내로…….”

한진영은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하는 보안요원을 안심시켰다.

“괜찮습니다. 무슨 급한 일이 있어 찾아온 것 같으니 이번에는 제가 잘 타이르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잘 조치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될 일입니다. 그러니 이만 내려가 보셔도 괜찮습니다.”

보안요원이 너그럽게 한진영이 용서하는 모습을 보이자 안심하고 인사한 뒤 자리를 떠났다.

한진영은 다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성우를 올려다본 채로 말했다.

“우리 시스템을 모르지 않을 놈이 왜 그래? 무슨 일이야?”

한진영의 사무실에 일주일에 몇 번이고 찾은 이성우였다.

그래서 이곳에 오기 전에는 항상 로비에서 먼저 연락을 넣어 방문 허락을 받은 뒤에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복잡한 짓을 한다고 반발했던 이성우였다.

그러나 점차 이런 시스템에 익숙해진 뒤부터는 밑에서 한진영이 허락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렸다 올라오기를 한두 번 해본 이성우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성우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밀고 올라온 것에 한진영은 이상함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한진영의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것이 이성우의 다음 말을 통해 드러났다.

“야! 너 뭔 짓을 한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그렇게 서서 이야기하지 말고 앉아. 앉아서 이야기해.”

“지금 앉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야.”

이성우가 한진영에게 다가가 한진영의 손목을 잡아챘다.

“나랑 가자.”

“갑자기 그건 또 무슨 소리야? 가기는 어디를 가?”

“집에 빨리 가자.”

“집에? 집이야 퇴근하면 갈 텐데 뭘 벌써 가자고 그래? 퇴근이 얼마 남지도 않았구먼. 거기 앉아서 조금만 기다려. 그리고 퇴근할 때 같이 가자.”

“아니.”

이성우가 답답한지 얼굴을 찌푸리고는 앉아 있는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우리 집에 가자고.”

“그래 너희 집…….”

한진영은 말을 하다 말고 말을 멈췄다.

집에 가자는 이성우의 표정이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가만히 이성우를 바라보다 이성우가 집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다른 곳을 떠올렸다.

“설마 성수동에 있는 우리 아파트 말고 한남동에 있는 너희 본가에 가자고 말하는 거냐?”

“어. 맞아. 한남동. 거기로 가자. 빨리. 빨리 가자.”

“왜?”

한진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무슨 일이 있다면 당연히 기풍그룹이 자리한 본사로 가자고 하는 게 맞았다.

그런데 생뚱맞게 본가로 가자는 것에 한진영은 한가지 이유가 떠올랐다.

“사고 터졌냐?”

“사고? 그래. 사고 터졌다. 그것도 대형 사고로…… 어서 가자. 아버지가 빨리 너 좀 보자고 해.”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성우가 본가로 가자는 이유가 이해가 된 한진영이었다.

회사에서도 이야기하기 어려운 일.

그리니치 펀드의 사고가 터진 것이었다.

***

기풍철강을 세운 이성우의 할아버지 때부터 자리 잡고 있는 이성우의 본가는 한남동 그중에서도 알짜배기인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성우는 한진영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이준환 회장이 부른 이유를 설명했다.

“유정이가 사고를 제대로 쳤다. 얘가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을 구했는지 돈을 모조리 그리니치인가 하는 곳에 집어넣었던데…… 네가 관여한 건 아니지?”

“내가?”

한진영은 걱정 가득한 이성우를 보고 웃었다.

“내가 네 동생을 어떻게 알아서 이유정 본부장에게 그리니치 펀드에 돈을 집어넣으라고 했겠냐?”

“그치? 아까는 내가 미안했다. 혹시나 네가 이번 일과 관련이 있나 싶어서 그런 거야.”

“알아. 이유정 본부장과 너와의 일은 나도 관심 있게 보고 있는 일이니까. 내가 이유정 본부장에게 손을 쓴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겠지. 이해한다. 그런데 알잖아. 난 이유정 본부장 얼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안 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뭔 수로 사고를 터트렸겠냐?”

‘사고가 터질 곳에 이유정 본부장이 들어가도록 하기는 했지만…….’

한진영은 뒷말을 마음속으로만 내뱉었다.

뒷말을 듣지 못한 이성우는 한진영의 대답에 다행이라는 듯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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