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53화 (253/650)

253화 모두 이성우 거다.

이정훈 회장이 한진영의 말에 진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지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이성우와 권수형은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이정훈 회장의 양옆을 지켰으며 이성우의 어머니는 이유정을 여전히 꼭 끌어안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주변의 모습에 개의치 않은 채 이정훈 회장에게 말을 건넸다.

“회장님. 지금은 잘잘못을 따지기보다 ‘2,000억이라는 돈을 어떻게 할까’ 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셔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이건 어떻게 숨긴 채로 얼렁뚱땅 넘어갈 숫자가 아니니까요.”

“이런…….”

한진영의 말에 울화가 치밀어 오른 이정훈 회장은 이유정 본부장을 훽하고 돌아봤다.

이성우의 어머니는 그런 이정훈 회장의 모습에 놀라 이유정을 더욱 강하게 끌어안았다.

이정훈 회장은 그런 꼴도 보기 싫었던지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별수 없지. 저 녀석을 내쫓은 뒤에 알아서 갚으라고 해야지.”

“그래요. 우리 두 모녀 나가서 살 테니 당신이나 잘살아 봐요.”

“그래. 좋아. 당신이 그 녀석을 그렇게 지키겠다면 별수 있나? 둘이 알아서 살아봐. 허 기사. 여기 앞에 있는 두 여자 짐 싸서 내보내. 더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무턱대고 딸만 감싸고 도는 어머니와 그런 모습이 꼴 보기 싫은 이정훈 회장이 다시 한차례 맞붙었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어머니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성우는 말도 안 되는 일을 벌였음에도 어머니가 감싸는 모습을 씁쓸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성우가 후계 구도에서 계속 밀리는 이유를 알겠네.’

이성우와 알고 지내는 동안 이성우가 듣던 것과 다르게 패악질을 부리는 망나니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리고 무능하지도 않았다.

물론 주식에 한해서는 감이 완전 반대로 발달한 게 맞지만, 건드리는 것마다 손해를 보는 마이너스의 손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일방적으로 앞서나가는 이유정 본부장을 보면서 한진영은 자기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에야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됐다.

‘저렇게 어머니가 딸을 품에 안고 있으니 성우가 힘을 받을 수가 없지.’

한진영은 일방적인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이유정 본부장을 보면서 이성우가 기풍에서 힘을 받지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됐다.

감싸는 것에도 정도가 있었다.

이번 일은 이정훈 회장과 날을 세우며 감정싸움을 벌일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이유정 본부장을 대신하여 이정훈 회장과 맞서는 어머니를 보며 한진영은 결심했다.

‘이번 일로 확실하게 성우를 밀어 올려줘야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어머니라는 사람이 성우의 발목을 잡을지 몰라.’

기회가 왔을 때 잡는다.

어물쩍거리다가 뒤를 잡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이유정과 그녀의 어머니를 보고 떠오른 한진영이었다.

그는 다시 이정훈 회장을 불렀다.

“회장님. 지금은 우선순위를 정해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지금 당장 중요한 걸 말씀하시면 그것부터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이유정 본부장을 내보내는 게 제일 중요한 일인가요?”

한진영은 지금 중요한 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완곡하게 돌려 이정훈 회장에게 말했다.

이정훈 회장은 흥분한 상태였지만, 한진영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못 알아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 우선은 급한 것부터 처리하도록 하자.”

이정훈 회장은 지시받고 어쩔 줄 몰라 하는 허 기사를 향해 우선은 물러나 있으라는 말을 전한 후 한진영을 향해 다시 돌아앉았다.

“자네 말대로 2,000억을 숨길 수는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우선 그 전에 그리니치 펀드부터 살펴보도록 하죠.”

한진영이 이유정 본부장을 슬쩍 돌아보고 말했다.

“혹시 그리니치 펀드에서 약속받은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이유정 본부장은 한진영의 말에 슬쩍 올려 본 후 고개를 돌렸다.

가족도 아닌 남에게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기 싫었기 때문이다.

이정훈 회장은 지금에 와서도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이유정 본부장을 향해 다시 한번 소리치려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 회장을 향해 손을 들어 막았다.

괜히 또 시간이 무의미하게 흐르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됐습니다. 뭐 대충 이유정 본부장의 표정만 봐도 알 것 같습니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터무니없다고 느껴질 만한 제안을 받았을 것 같네요. 그럼 됐습니다.”

“그게 중요한가?”

“중요하지요. 상대방이 속이려고 작정하고 덤벼들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우선은 외부에 알려져도 기풍에 대한 잘못을 최소화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진영은 잠시 말을 끊고 주변을 둘러봤다.

소란이 벌어지며 몰려온 사람들이 불편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정훈 회장은 그런 한진영의 표정에 알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세. 서재에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지.”

한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이정훈 회장은 권수형과 이성우를 번갈아 바라본 뒤 말했다.

“권 팀장만 들어오고 성우 너는 남아서 여기 정리 좀 해라.”

이성우는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를 제외한 것에 섭섭함마저 느껴진 이성우였다.

그러나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이성우는 알겠다는 대답을 한 후 직원들을 불러 모았다.

이정훈 회장은 순순히 자기의 뜻을 따르는 이성우에게서 여전히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이유정 본부장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쯧쯧.”

한심함이 묻어 나오는 혀를 찬 이정훈 회장이 몸을 돌려 나가자 권수형이 한진영에게 서재를 안내하며 셋은 자리를 떠났다.

***

1층 가장 안쪽에 자리한 서재에 한진영과 이정훈 회장. 그리고 권수형 부사장이 자리하고 앉아 있었다.

침묵 속에 시선을 교환하던 세 사람 중 이정훈 회장이 먼저 입을 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까 한 이야기를 마저 해봐. 우리 잘못이 최소화되는 게 중요한가?”

“중요하지요. 자칫 잘못하다 이 문제가 배임이나 횡령으로 번질 수도 있으니까요.”

“배임…… 횡령…….”

이정훈 회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배임과 횡령은 2,000억이 아니라 천만 원만 해도 문제가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수천억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문제에 걸려버리면 이건 단순하게 지탄을 받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은 2,000억이라는 돈을 구하지는 못했을 테고 자세히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돈을 구한 경로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권수형이 이정훈 회장을 대신하여 이유정 본부장이 돈을 구한 방법을 설명했다.

한진영은 권수형에게 이야기 듣지 않아도 어떤 방법으로 이유정이 돈을 구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어쩌면 두 사람보다 더 세세하게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자기의 잘못을 숨기는 것이 보통 사람의 행동 패턴이었기에 이유정도 모든 것을 사실대로 두 사람 앞에 이야기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진영은 처음 듣는 이야기인 것처럼 가만히 권수형의 설명을 들었다.

지금은 중요한 게 어떤 방법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잘 알겠습니다. 어쨌든 이유정 본부장이 회삿돈을 건드린 건 아니네요.”

“그래.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지. 자네 말 대로 회삿돈까지 건드렸다면 이건…… 빼도 박도 못해. 무조건 들어가야 해.”

“그렇지요. 그것도 이유정 본부장 혼자 들어가는 게 아니라 회장님까지 함께 들어가야 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정훈 회장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는지 다시 한번 눈을 질끈 감았다.

기업을 운영하며 많은 대기업의 오너들이 법의 심판대 위에 올라서고는 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했다고 하더라도 나만큼은 하고 싶지 않은 게 이정훈 회장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한진영은 눈을 감고 있는 이정훈 회장을 향해 한편으로 다행이라는 말로 이야기했다.

“뭐 그럼 문제는 2,000억만 어디서 만들면 된다는 것이겠군요. 그리고 그 돈을 어떻게 메우냐. 이게 핵심일 것 같고요.”

“허허. 2,000억만 만들면 된다? 간단하구먼.”

“네. 간단합니다.”

이정훈 회장은 농담 식으로 건넨 말이었는데, 한진영은 정말로 간단하다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권수형 부사장 또한 이정훈 회장만큼이나 당황한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2,000억만 만들면 된다고 이야기하셨는데 혹시 그리니치 펀드에서 돈을 회수할 길이 있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이정훈 회장도 같은 생각을 했다.

그리니치 펀드에서 돈을 다시 받을 방도가 있기에 한진영이 간단하게 2,000억을 구하면 된다고 이야기한 게 아니냐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기대와 달리 한진영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그리니치 펀드에서 돈을 돌려받을 길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미 작정하고 돈을 받아 파산하고 말았는데 말입니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주머니에 돈으로 볼만한 것이 남아있는 게 얼마 없을 겁니다. 있어도 이유정 본부장님에게까지 돌아올 리가 없고요.”

“2,000억인데? 순서에서 밀린다고?”

“회장님. 그리니치 펀드입니다. 거기 설정된 금액만 800억 달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800억이 아니라 800억 달러 말입니다. 전 세계의 유명 은행들조차 투자를 한 곳인데 2,000억에 우선순위가 밀리는 건 특이한 게 아닙니다.”

이정훈 회장은 한 가닥 기대가 사라져서 그런 것인지 침울한 표정을 짓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말았다.

권수형도 마찬가지였다.

사기를 당했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이 사기를 친 사람에게 돈을 돌려받는 것인데, 그 방법이 막힌 것에 더는 다른 방법을 생각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기운이 빠져 있는 두 사람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2,000억을 마련할 길은 있습니다.”

“그게 정말인가?”

희망이 보이는 듯한 한진영의 말에 어깨를 늘어뜨렸던 이정훈 회장이 반색하며 한진영에게 물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정훈 회장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길이 있습니다. 그래서 간단하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돈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 그건 자네 말이 맞아.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가장 간단한 일이기는 해. 그런데 문제는 그 해결해야 할 돈이 2,000억이라는 건데…… 정말 구할 수 있어?”

“그럼요. 2,000억. 가능합니다 다만…….”

이정훈 회장은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이 사태를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것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운 이정훈 회장이었다.

한진영은 자기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이정훈 회장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돈을 마련해줄 상대의 의중을 먼저 물어봐야 합니다.”

“상대? 의중? 설마 개인을 통해 돈을 빌려 사채를 메우자 이말 인가? 그건 사채를 사채로 막는 것밖에 되지 못하는데?”

“보통은 회장님의 말씀이 맞는데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다르다고? 어떻게?”

“돈을 메워줄 사람이…… 성우니까요.”

“성우? 이성우? 내 아들 이성우? 그 녀석이 2,000억을 메워준다고?”

“우선은 성우를 부른 다음에 이야기를 나누시는 게 어떻습니까?”

“정말 성우가 2,000억이 있다는 이야기야?”

이정훈 회장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한진영을 향해 되묻자 한진영은 그저 웃기만 했다.

한진영의 웃음 속에서 이성우가 오지 않으면 이야기하지 않겠다는 한진영의 모습을 본 이정훈 회장은 이성우에게 서재로 올 것을 지시했다.

“찾으셨습니까?”

이성우가 조심스럽게 서재로 들어오자 한진영이 이성우를 불렀다.

“와서 앉아라. 너의 결정이 필요한 일이야.”

“내 결정?”

이성우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정훈 회장을 돌아봤다.

이정훈 회장이 허락한 일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들어와서 앉아라. 네가 앉아야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을 것 같으니 말이다.”

“네.”

이정훈 회장이 허락하자 이성우는 조심스럽게 한진영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이정훈 회장은 자리에 앉은 이성우를 확인하고 한진영에게 말했다.

“성우까지 왔으니 이야기해 봐라. 성우가 2,000억이 있는 게 맞아?”

이정훈 회장의 말에 이성우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자기를 불렀는지 몰랐던 이성우가 깜짝 놀란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괜찮아. 내가 말씀드릴게.”

“어? 어.”

눈치가 빠른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가만히 입을 닫았다.

평생을 이정훈 회장의 밑에서 눈치 보며 살았던 덕분에 한진영의 행동이 무얼 말하는지 단번에 알아챈 이성우였다.

이정훈 회장은 한진영과 이성우의 모습을 보면서 한진영이 괜한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정말로 2,000억 있다는 거냐?”

“2,000억. 있습니다. 그리고 있는 게 중요한 건 아니죠. 가지고 있는 2,000억으로 어떻게 메우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어떻게…… 어떻게 네가 2,000억이 있는 거지?”

이정훈 회장은 이성우가 2,000억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온통 머릿속이 그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한진영은 믿기지 않는다는 이정훈 회장을 향해 살며시 웃으며 말했다.

“혹시 지난 유가 폭락 사태로 인해 저희가 실버만삭스를 통해 수천억의 수익을 봤다는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들었지. 얼마? 7천억? 뭐 그 정도 벌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실제로 실버만삭스에 수수료를 제하고 저희 쪽으로 넘어온 금액이 약 4억 달러 정도입니다.”

“5천억이 살짝 안 되는 돈이구먼.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하지? 지금은 성우 이야기를 하는 중 아니었나?”

한진영이 어떤 이유에서 지난 실버만삭스와의 거래 이야기를 꺼내는지 이해하지 못한 이정훈 회장이었다.

그는 이 이야기와 이성우 이야기가 무슨 상관인지 알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이성우를 바라보는 시각이 남보다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수형은 달랐다.

“설마 그 말씀은…… 그 돈에 이 사장님 지분이 들어있다는 이야기이십니까?”

“뭐? 성우 지분이 거기에 들어있다고?”

“그게 아니면 이런 말씀을 하실 이유가 없어 보이셔서요. 제 생각이 맞는 겁니까?”

이정훈 회장은 그게 정말이냐는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권수형을 향해 한번 웃고는 이정훈 회장을 향해 대답했다.

“지분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럼?”

“그게 모두 성우 돈입니다.”

“어?”

“뭐라고요? 4억 달러가 모두 이 사장님 돈이라는 말씀입니까?”

놀란 두 사람을 한진영이 번갈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돈을 번 것 자체가 성우가 저희에게 맡긴 돈을 가지고 번 돈입니다.”

“그게…….”

권수형은 너무 놀라 반쯤 소파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반대로 이정훈 회장은 소파에 몸을 묻고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지만 놀랐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모두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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