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따서 갚겠다는 마인드의 회사
이성우는 돌아가는 길에 한진영의 차에 올라탔다.
다른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느니 차라리 차 안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더 편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너 돌았냐? 머리가 어떻게 됐어? 날 더워지니까 정신 못 차리겠어?”
조지훈은 이성우의 모습에 룸미러로 슬쩍 뒷좌석을 살폈다.
이성우가 갑자기 흥분하여 이상한 짓이라도 벌이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담긴 조지훈의 눈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향해 손짓하며 말했다.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운전해.”
“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의 관계를 가까이서 봐왔던 조지훈이었기에 한진영의 괜찮다는 말에 경계심을 풀었다.
한진영의 태도에 이성우의 이런 행동을 마치 예상하였다는 듯한 느낌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차가 움직이자 한진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이성우를 향해 말했다.
“왜 또 갑자기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러는데? 내가 돌은 게 아니라 네가 돈 거 같은데? 뭐 잘못 먹었냐? 왜 그래?”
“야 인마 정신 차려.”
“정신 차리긴 뭘 정신 차려?”
“아니. 내가 네 말 대로 해주기는 했는데…… 테라라는 그 회사 말이야. 거기 정상이 아닌 곳 아니냐?”
“아~ 그 이야기야?”
한진영은 이제야 알겠다는 모습으로 몸을 돌려 앉았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을 향해 핏대를 세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난 잘 몰랐는데 네 말 들으니 뭐? 한 달에 100대 판매? 미친…… 우리 동네에 있는 자전거 가게도 그것보다는 많이 팔겠다. 지금 한 달에 100대를 팔고 있었던 거야? 테라라는 회사가?”
“몰랐냐?”
“몰랐지.”
이성우는 당당하게 이야기하고는 잠시 한진영의 눈치를 살폈다.
“혹시 알아야 하는 거냐?”
조금 전까지 미쳤냐고 소리를 치던 기세등등하던 모습은 더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한진영은 이성우를 향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후우~ 내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곳 몇 군데 집어줄 테니까 그곳들은 꼭 머릿속에 집어넣어라.”
“어. 알았어.”
이성우는 말 잘 듣는 아이처럼 한진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숙제를 잊지 않으려는 학생처럼 테라라는 회사를 머릿속에 깊이 각인시켰다.
“잠깐. 그건 나중 문제고…….”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려고 하자 이성우가 급히 이야기를 다시 본래의 자리로 돌려놨다.
“테라에 뭐 하러 1,500억이나 태워? 거기다 네 개인적인 투자까지 더한다는 건 또 뭐야?”
조지훈은 이성우의 말에 깜짝 놀라 룸미러로 뒷좌석을 바라봤다.
이성우는 조지훈이 쳐다본다는 것을 느끼자 조지훈을 향해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말했다.
“야! 네 대표님이 글쎄 한 달에 차 100대도 팔지 못하는 회사에 1,500억을 투자하시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게 끝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투자까지도 하시겠다고 그런다.”
“얼마나요?”
“그래. 얼마나 개인적으로 투자할 생각이냐?”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이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가지고 있는 돈 모두 쓸어 넣고 싶거든. 그런데 그건 어려울 것 같아. 우리 회사 지분에 내 지분까지 더해서 경영권을 위협하려 하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남들이 보면 일부러 10%가 안 되게 지분을 확보하여 테라를 안심시키고 개인적인 지분을 확보한 뒤 뒤통수를 치려 한다는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까.”
“에? 마음 같아서는 올인을 하려고 했다고?”
이성우의 귀에 뒷이야기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올인을 하고 싶다는 말만 귓속에 맴돌 뿐이었다.
“어. 그쪽에서 받아만 준다면…… 내 명의로 되어 있는 집하고 통장에 들어있는 현금하고 세이지 자산운용 지분까지 다 더해서 밀어 넣고 싶은데…….”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너…… 진심이구나.”
“당연히 진심이지.”
이성우는 한진영이 괜한 호기로 테라에 투자하려고 했다는 것이 아님을 알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혹시 그럼 한 달에 차 100대도 팔지 못하고 있다는 게 거짓말이었냐?”
“거짓말일 수가 없지. 걔네 상장을 준비하고 있는 회사야. 아무리 나스닥에는 적자기업도 상장을 할 수 있다지만 매출을 비롯한 재무제표를 거짓으로 올릴 수는 없어. 게다가 다른 곳도 아니라 미국에서 그랬다가는 상폐로 끝나지 않고 회사가 공중분해 될 텐데 감히 그럴 수 있겠냐?”
한진영의 말에 머리가 더욱 복잡해진 이성우였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보아도 테라라는 회사는 100원을 투자하는 것조차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투자를 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한진영이었다.
그것도 개인 돈까지 집어넣겠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포켓머니 수준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모든 재산이라도 밀어 넣고 싶다는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는 테라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한진영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성우를 향해 말했다.
“지금은 적자를 면치 못하는 곳이야. 그리고 앞으로도 몇 년 동안은 적자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게 분명해.”
“그런 걸 알면서도 거기에 투자하겠다고?”
“어느 시대든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곳은 사업 초반에 어려움을 겪는 게 이상하지 않아.”
“하지만 테라는 어려움 수준이 아니지 않아? 사업 자체를 빚을 내서 한다는 거 아냐? 따서 갚겠다는 마인드로 도박판에 앉아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언제까지 버티겠어?”
“하하하. 그래 맞아. 따서 갚겠다. 딱 테라와 어울리는 말이기는 하다.”
한진영은 차 안에서 큰 소리로 웃었다.
이성우의 말이 테라를 잘 표현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먼저 선금을 걸고 대기를 하면 그 모은 돈으로 공장도 세우고 차도 만들겠다는 것이 테라의 정책이었다.
선금을 낸 고객들은 수백만 원을 내고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 것이었다.
그야말로 도박판에서 따서 갚을 테니 먼저 돈을 빌려달라는 것과 같은 마인드가 테라의 사업 방법이었다.
이런 방법이 10년 뒤에는 익숙하겠지만 어쨌든 지금은 사기꾼처럼 보일 만한 시점이었다.
아이디어만으로 상품을 먼저 출시한다는 것 자체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때였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한참 동안 웃음을 터트린 뒤 이성우를 향해 말했다.
“지금 미국에서 팔리는 테라의 차가 얼마인 줄 알아?”
“글쎄? 얼마인데?”
“10만 달러. 그것도 정부 보조금을 받았을 때 10만 달러야.”
“10만 달러? 그걸 누가 사? 그 돈이면…… 독일 3사 차량을 사고 말지.”
“그래. 그래서 지금은 찾는 사람이 많지가 않아. 그런데…….”
한진영은 먼 미래가 아닌 앞으로 몇 년 뒤에 벌어질 일을 떠올리고 말했다.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어떨까? 앞으로 친환경이라는 말이 대중들 사이의 화두가 될 거야. 특히 정부가 많은 관심을 보일 게 분명해.”
“친환경?”
“그래. 게다가 위아래로 미친 듯이 흔들리는 유가를 보며 사람들은 안정적인 차를 요구하게 될 거야. 그런 상황에서…… 5만 달러짜리 차가 나온다면 사람들은 그 차를 어떤 눈으로 볼까?”
“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잠시 생각에 빠졌다.
처음부터 5만 달러짜리 차가 나왔다면 사람들의 관심이 덜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처음 나온 차가 10만 달러에 차기작이 5만 달러로 나온다면 갑자기 싸 보이는 효과를 노릴 수가 있었다.
이성우는 처음과는 많이 달라진 표정으로 대답했다.
“싸 보이는데?”
“그렇지? 거기다 정부에서 요구하는 친환경이라는 주제와 전기차가 잘 어울리다 보니 파격적인 보조금 정책이 시행될 가능성도 높아. 그렇게 된다면…….”
한진영은 손으로 머리 위를 가리키며 말했다.
“테라는 수직으로 상승하는 거지. 나는 그 기대에 투자하는 거야.”
“기대에 1,000억이 넘는 돈을 태운다고?”
여전히 1,500억이라는 돈이 아깝게 느껴지는 이성우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우리가 번 돈이 얼마인지를 떠올려봐라. 여기에서 1,500억쯤 없어진다고 우리가 어떻게 되지는 않아. 그리고 안정적인 것만 찾다가는 언제 너한테 기풍홀딩스를 매수할 수 있는 수준의 돈을 안겨다 주겠냐? 너는 그냥 나만 믿고 따라와.”
“그럼 테라가…….”
“테라가 너에게 기풍홀딩스를 안겨줄 거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당장 내일이라도 망할 것 같은 테라가 기풍홀딩스를 안겨다 줄 거라는 말에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은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바라보고 살며시 웃었다.
그리고 앞으로 테라가 보일 행보를 떠올리고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
테라의 CFO인 데이비드 칼슨은 본국으로 돌아가지도 않은 채 바로 한진영의 세이지 자산운용과 투자계약을 맺었다.
테라의 지분 9.8%를 넘기는 조건으로 1억 3,000만 달러의 투자를 유치한 데이비드 칼슨은 밝은 표정으로 한진영과 악수를 했다.
“덕분에 한시름 덜었습니다.”
이미 계약을 마친 상황에서 데이비드 칼슨은 솔직한 심정을 한진영 앞에 털어놓았다.
“사실 협상 자리에서 상장 때까지 버틸 수 있겠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었습니다.”
“그럼 이걸로 버틸 수 있게 된 건가요?”
“버틸 수 있는 정도가 아닙니다. 상하이 공장 부지 매입에 필요한 계약금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그것만 해결이 된다면 중국 정부의 지원으로 공장 건립이 가능하게 될 거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 투자를 받는 것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고요.”
데이비드 칼슨은 밝은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모든 게 세이지 자산운용의 한 대표님의 투자 덕분입니다.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은혜라니요? 좋은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저의 일인데요.”
데이비드 칼슨은 한진영을 빤히 바라봤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저희를 정말 믿으십니까?”
“하하.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노아 스미스 CEO님은 자신감이 넘치지 않습니까?”
“너무 넘쳐서 문제지요.”
“데이비드 칼슨 씨도 노아 스미스 CEO를 따라 자신감을 가지십시오. 저는 전기차를 좋게 보고 있습니다. 가능성이 무궁무진해 보여요.”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쳐다도 보지 않는 시장이었다.
가지고 있던 기술조차 폐기하거나 돈을 받고 넘기는 상황 속에서 누구도 테라가 전기차 시장에서 성공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롱거리로 여기며 그게 되겠냐는 비아냥거리는 소리만 듣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래서 거액의 투자와 믿으라는 말을 하는 한진영이 오히려 이상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데이비드 칼슨 CFO는 세이지 자산운용을 떠나기 전까지 한진영을 향해 괜찮냐는 말을 몇 번이나 되묻고는 했다.
한진영은 그때마다 웃으며 괜찮다는 말을 건넸고, 오히려 데이비드 칼슨에게 CEO인 노아 스미스를 믿으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누가 테라의 직원이고 누가 투자자인지 모를 상황이 펼쳐진 것이었다.
그만큼 지금 테라의 내부 사정까지 좋지 못한 상황이라는 것을 데이비드 칼슨을 통해 알 수 있는 모습이었다.
한진영과 조지훈은 떠나는 테라의 직원들을 건물 밖에까지 나와 배웅했다.
조지훈은 떠나는 테라의 직원들을 바라보고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저렇게까지 하니 오히려 걱정되는데요.”
“아니. 오히려 저런 상황이라서 내가 싸게 테라의 지분을 확보할 수 있었던 거야.”
한진영은 테라의 직원들이 시선에서 모두 사라지자 몸을 돌렸다.
그리고 건물 안으로 들어가며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저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테라의 지분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았을 거야. 돈이 문제가 아니라 대량으로 지분을 확보할 기회는 지금이 유일했으니까. 자금난을 겪고 있는 지금이 아니면 불가능했어.”
한진영은 눈만 끔벅거리고 있는 조지훈의 등을 살며시 두드렸다.
“너 돈 얼마나 모았냐?”
“돈이요?”
갑작스럽게 자기의 자산 상태를 묻는 한진영을 향해 조지훈은 주춤주춤 대답했다.
“그게 많이는 못 모으고…… 대략 2,000만 원 정도 모았어요.”
“2,000…… 흐음…… 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겠다. 테라 상장하면 그 2,000만 원 다 박아 넣어.”
“네?”
세이지 자산운용에 이어 개인적인 투자로 20억에 가까운 돈을 집어넣은 한진영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지훈에게도 돈을 집어넣으라고 하고 있었다.
조지훈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저도 넣어요?”
“너도 내 곁에 있는데 주식으로 돈을 벌어야지 않겠어? 다른 건 좀 그렇고…… 저건 넣어볼 만해. 그러니까 날 믿고 넣어.”
“그 정도예요?”
“대신 대출 받아서까지는 하지 마. 주식을 비롯한 투자는 여유자금 내에서 하는 거니까. 그리고 푹 익히면 재미있을 만큼 돈이 불어나 있을 거다. 그때 빼서 집을 사든 건물을 사든 그건 알아서 해.”
“집을 사든…… 건물을 사든…… 이요?”
놀란 표정의 조지훈을 향해 한진영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보이고는 사무실로 향했다.
그렇게 테라의 일을 마무리하고 이제는 느긋한 시간을 보낼 때쯤이었다.
똑똑.
당황했던 조지훈이 지금은 평온한 안색을 유지한 채로 한진영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어?”
한진영은 하던 것을 멈추고 들어온 조지훈을 올려다봤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을 향해 조금 전 연락해 온 것을 보고했다.
“프라임리츠의 정 회장님께서 두 시간 뒤에 방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정 회장님이 너에게 연락했다고?”
“제가 아니라 회사 전화로 연락해서 대표님 스케줄을 확인하고 방문 의사를 전해왔습니다.”
“정 회장님이 회사로?”
한진영은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팔짱을 끼었다.
개인적으로 전화해서 이야기하는 사이인 정병선 회장이 조 비서도 아니라 회사 전화로 연락을 해왔다는 것에 이상함이 느껴진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은 정병선 회장이 어떤 이유에서 회사를 통해 연락해온 것인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