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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59화 (259/650)

259화 과거의 사람에게서 과거의 이름을 듣다

조지훈에게 방문 의사를 전한 지 정확하게 두 시간 뒤에 정병선은 세이지 자산운용으로 찾아왔다.

“오랜만이네.”

정병선은 마중 나온 조지훈을 향해 인사했다.

“오랜만에 회장님께서 오신다고 해서 대표님이 진작부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올라가시죠.”

“한 대표님께서 기다리고 계셨어? 그러면 일찍 올 걸 그랬네. 어서 가세. 한 대표님이 기다리지 않게 말이야.”

정병선이 조지훈의 말에 어깨동무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조지훈은 정병선에 어깨가 둘러진 채 뒤를 따르는 두 사람을 바라봤다.

정병선의 뒤로 익숙한 얼굴의 비서인 김영철과 처음 보는 사람 하나가 두어 걸음 뒤처진 채 함께 사무실로 올라왔다.

조지훈은 정병선에게 함께 온 이를 자세히 살폈다.

처음 본 건 분명한데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구라고 딱 떠오르지도 않던 조지훈은 함께 온 이에 관해 정병선에게 직접 물었다.

“김 비서님 곁에 함께 오시는 분께서는 누구신가요?”

“그건 올라가서 한 대표님하고 이야기하도록 하겠네.”

조지훈은 일행 이야기에 얼굴을 굳히는 정병선을 보며 오늘 이곳에 온 이유가 일행 때문임을 알게 됐다.

사무실이 있는 층에 도착하자 앞에까지 나온 한진영이 찾아온 정병선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세요.”

“잘 계셨습니까?”

“그럼요. 회장님 덕분에 아주 잘 지내고 있죠. 이렇게 좋은 곳에서 일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곳을 잘 쓰고 계시다니 제가 다 마음이 좋네요.”

가볍게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눈 한진영은 뒤에 서 있는 비서인 김영철과 눈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한진영은 잊고 있던 사람의 얼굴을 발견할 수 있게 됐다.

정병선은 한진영에게 함께 온 사람을 소개했다.

“인사하세요. 여기는 안 의원님입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안혁규라고 합니다.”

한진영을 향해 손을 내민 안혁규라는 사람은 땅딸막하다는 게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160이 살짝 넘을 듯한 키에 퉁퉁한 외모는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그를 더 어리게 만들었다.

잘 바른 기름으로 머리를 쓸어 올린 안혁규는 잔뜩 굳은 얼굴을 한 채로 한진영을 향해 인사했다.

한진영은 그런 안혁규를 잠시 바라보다 내민 손을 잡아 인사를 받았다.

“화면을 통해 뵈었었는데 이렇게 직접 뵙게 되는군요. 안녕하십니까? 한진영이라고 합니다.”

정병선은 두 사람이 인사를 한 것을 확인하고 먼저 사무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자 이제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하실까요?”

밖에서 이야기 나누기 어려운 대화를 앞으로 할 거라는 것을 정병선이 몸짓을 통해 알려주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정병선의 모습에 가볍게 조지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미리 준비된 곳으로 사람들을 안내하라는 뜻이었다.

“그럼 저를 따라 들어가시지요.”

조지훈이 먼저 앞서 나가자 뒤를 따라 정병선과 김영철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안혁규까지 안으로 들어가자 한진영이 가장 뒤에서 안혁규의 등을 바라보고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조지훈은 정병선 일행을 미리 준비해 놓은 회의실로 안내한 후 정병선 등에 물었다.

“혹시 원하시는 차가 있으신가요?”

“아니. 차는 아무거나 내오면 되고…… 앞으로 이곳에서 사람이 나오기 전까지 아무도 오지 않게 했으면 좋겠는데…… 괜찮으시죠?”

정병선이 먼저 나서서 주변을 차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진영은 정병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조 비서. 누구도 이 주변에 다가오지 못하게 해.”

정병선은 한진영이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자기의 요구를 들어준 것을 보고 안심했다.

그리고 혹시 모르는 일을 대비하기 위해서 김영철에게 지시했다.

“김 비서도 나가서 조 비서와 함께 밖을 지키도록 해.”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자기가 미덥지 않아 김영철까지 붙이는 정병선을 잠시 바라봤다.

그리고 억울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이해한다는 듯한 표정을 지은 채 정병선과 안혁규가 안심할 만한 말을 조지훈을 향해서 했다.

“전쟁이 났다고 해도 들어오지 마.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를 앞으로 나눌 테니까 말이야.”

조지훈은 평소의 한진영이라면 자기를 위로하는 말이나 혹은 두둔하는 말을 건넸을 거로 생각했다.

그러나 오히려 정병선 등이 안심할 만한 말을 건네는 모습에 조지훈의 표정에서는 억울함이 사라졌다.

정말로 중요한 말을 앞으로 나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의 말이 끝난 뒤 조지훈과 김영철은 회의실을 나갔다.

***

한진영은 두 사람이 나간 뒤 문이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 정병선과 안혁규에게 자리를 권했다.

“앉으시지요. 앉아서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시지요.”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이 웃으며 대답했다.

“이해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정 회장님을 잘 아는데 정 회장님이 이렇게 하시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저도 거기에 맞게 움직여야지요.”

“하하하. 역시 세이지에 오기를 잘했습니다. 그렇게 느끼지 않으십니까? 의원님?”

자리에 앉으며 정병선이 안혁규에게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안혁규는 그런 정병선의 모습에 굳었던 얼굴이 조금씩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한진영은 풀려가는 안혁규의 표정에서 걱정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가 있어서 온 거야?’

안혁규는 한진영을 잘 모르지만, 한진영은 안혁규를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돈을 열심히 벌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눈앞에 있는 안혁규라는 사람 때문이었다.

‘이렇게 만나다니 사람 운명이라는 게 참…….’

한진영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언제고 어떻게든 만날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이렇게 만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기 때문이다.

정병선은 그런 한진영의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왜 그러십니까? 혹시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아니요. 재미있다기보다는 제가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성공이요?”

“네.”

한진영은 안혁규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안 의원님은 TV에서만 뵈었었는데 이렇게 만나다니 저도 성공한 게 아닌가 해서 말입니다.”

“아~”

정병선은 한진영의 말에 웃으며 안혁규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괜찮은 친구라고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요즘 친구들 같지 않고 굉장히 사리 분별이 뛰어난 친구입니다. 그러니 지금 이렇게 높은 자리까지 올라온 것이겠지요.”

“그래도…… 정 회장님.”

자기 인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 굳게 닫혀있던 안혁규의 입이 처음으로 열렸다.

그의 목소리는 깊게 잠겨 있었다.

한진영의 기억 속에 남아있던 안혁규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모습에 한진영은 흥미로운 눈길로 안혁규를 바라봤다.

그는 잠시 한진영을 돌아본 뒤 정병선에게 말했다.

“그래도 정식 회사를 가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의원님. 여기도 정식 회사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말은…….”

“증권사로 가보는 게 어떠냐는 말씀이시지요?”

정병선의 말에 안혁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여기는…… 믿음이 잘 가지 않습니다.”

“의원님. 그럼 이렇게 생각하시면 편하실 겁니다. 여러 군데를 다녀볼 예정인데 그중에 한 곳에 왔다고 생각하십시오. 마치 몸이 심하게 아파 수술을 받기 전에 여기저기 병원에서 상담받아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정병선의 말에 한진영의 눈이 반짝였다.

‘내 생각대로 문제가 있어서 온 거구나.’

그렇지 않다면 굳이 병원을 여기저기 다니는 것처럼 이곳에 온 거로 생각하는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

분명 문제가 있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여기저기 다니는 상황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말을 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했다.

‘안혁규가 지금쯤에 어떤 곤란한 일을 겪고 있는 걸까?’

한진영의 기억 속에 있던 안혁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고 흔들던 인물이었다.

그가 곤란한 일을 당할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한진영은 머릿속으로 떠올려 봤다.

그러나 지금 떠오르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특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를 찾았다면 주식과 관련된 일일 텐데, 최근에 벌어진 일 중에서 그와 관련된 일로 보일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이 생각을 하는 사이 안혁규와 정병선이 잠시 의견교환이 있었다.

그리고 결국 안혁규는 정병선 회장의 말에 수긍하고 말았다.

정병선은 안혁규를 설득한 것에 만족감을 느꼈는지 밝은 표적으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한 대표님. 한 대표님께서 적극적으로 나와주시니 바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편이 저도 편합니다. 무슨 일입니까?”

한진영이 궁금하다는 표정을 짓자 정병선이 바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우리 안 의원님께서 지금 심하게 곤란한 상황에 처하셨습니다.”

“곤란한 상황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 거죠?”

“대표님. 공매도 아시죠?”

“알죠. 공매도라는 단어는 우리 쪽에서 사용하는 단어이니 모를 수가 없지요. 오히려 회장님께서 저에게 공매도를 아냐고 물으신 게 더 놀랄 일입니다.”

판사에게 법에 관해 묻고 야구 선수에게 야구 룰을 묻는 것과 마찬가지의 질문이었다.

주식쟁이에게 공매도를 묻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자기에게 공매도를 아냐고 묻는 정병선의 말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한진영은 미간을 좁힌 채로 정병선을 향해 물었다.

“제가 모를 거로 생각하여 물어보신 건 아니실 테고…… 혹 앞으로 나눌 대화에 공매도가 주요 내용이라서 먼저 꺼내신 건가요?”

“역시 한 대표님께서는 눈치가 빠르시군요. 맞습니다. 앞으로 나눌 대화의 주제가 공매도라서 먼저 이야기를 꺼낸 겁니다.”

한진영은 좁힌 미간 그대로 고개를 돌려 안혁규를 돌아봤다.

그리고 그가 공매도로 인해 곤란해할 일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그러나 여전히 떠오르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안혁규는 평생 정치판에서 놀던 사람으로 공매도로 곤란을 겪는다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고개를 한번 갸웃하고는 정병선에게 물었다.

“공매도라니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저는 도저히 모르겠네요.”

한진영의 모습에 정병선이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실 줄 알았습니다. 이 일은 외부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일입니다. 저조차도 의원님께서 저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알지 못했던 일이니까요.”

한진영은 정병선의 말에 안혁규를 슬쩍 쳐다봤다.

안혁규는 착잡한 표정을 지은 채 책상만 내려보고 있었다.

한진영이 알던 안혁규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가 정말로 곤란함을 겪고 있다는 것을 겉모습만으로도 알 수 있을 지경이었다.

정병선도 안혁규에게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리고 안혁규를 바라본 채 한진영을 향해 이곳에 온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안 의원님께서 공매도를 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공매도를…… 치셨다고요?”

한진영은 놀란 눈으로 정병선에게 되물었다.

일반인이 대차거래도 아니라 공매도를 쳤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의 이런 반응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이 정병선은 차분한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뒷이야기도 계속 들려줬다.

“문제는 그 공매도한 종목이 500배가 넘게 올랐다고 합니다.”

“…….”

한진영은 너무 놀라 아무런 말도 내뱉지 못했다.

그리고 안혁규가 한 것이 공매도가 맞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차거래였다면 -100% 이상의 손해가 나올 수 없었다.

자기가 담보로 가지고 있는 것 이상의 손해가 나올 수 없게 시스템적으로 막아놓은 것이 대차거래였기 때문이다.

오직 공매도 만이 자기 자본 이상의 손해를 볼 수 있으며 공매도만이 -50,000%라는 터무니없는 숫자를 기록할 수 있었다.

한진영은 놀람과 동시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안혁규를 바라봤다.

정병선은 한진영의 얼굴에 드러나 있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이해했다.

자기도 안혁규에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와 같은 표정을 지었기 때문이다.

“20억을 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게 500배가 올라 1조로 돌아왔으니…… 그래서 문제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한진영은 정병선의 말에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지금은 놀라는 것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먼저라고 빠르게 판단 내린 한진영이었다.

그래서 한진영은 안혁규를 바라본 채 물었다.

“세올컴퍼니입니까?”

한진영의 말에 안혁규가 책상을 내려보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한진영을 바라봤다.

정병선도 한진영의 말에 놀란 모습으로 말했다.

“알고 계셨군요.”

“그저 관심 있게 보고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종목을 공매도 치신 분께서 계셨군요.”

“그게…….”

정병선은 안혁규를 대신하여 대답하던 것을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자기도 잘 모르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안혁규는 씁쓸한 표정을 짓고 한진영의 말에 대답했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정보가 있었습니까?”

“흐음~”

“솔직하게 이야기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제가 도울 수 있을지 없을지 아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안혁규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에 정병선이 답답했던지 안혁규를 향해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의원님. 한 대표가 도울 수 있다는 듯이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여기까지 와서 숨길 게 뭐 있겠습니까?”

안혁규를 향해 애원하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한 정병선이었다.

안혁규는 그런 정병선의 모습에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정 회장님의 말씀대로 여기까지 왔는데 숨길 게 뭐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사실대로 다 이야기하겠습니다.”

잠시 마른침을 삼킨 정병선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정보가 있었고 해보라며 계좌까지도 열어줬습니다. 세올컴퍼니는 회계감사가 거부당해 상폐에 들어갈 테니 해보라고 했습니다.”

“누가 그렇게 이야기하던가요?”

“블랙문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블랙문이요?”

예상하지 못한 과거의 사람에게서 과거의 이름을 듣게 됐다.

과거 한진영을 나락으로 몰아갔던 이름.

블랙문이라는 이름이 그를 괴롭혔던 존재였던 정병선의 입을 통해 나오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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