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1화 잘 정리가 된 사고
화면에는 세올컴퍼니의 지분구조에 관한 그림이 떠 있었다.
조지훈은 포인터를 이용하여 화면에 그려진 그림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세올컴퍼니라는 이름이 생소한 분들이 있을 겁니다. 세올컴퍼니는 얼마 전까지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던 QOP가 사명을 바꾼 겁니다.”
“아~ QOP. QOP는 알지.”
“QOP 거래정지 아닌가?”
“맞아. 감사거부 당해서 거래정지 상태야.”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세올컴퍼니라는 이름보다는 QOP라는 이름에 더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QOP가 거래정지에 들어간 이후 사명을 바꿨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멈추기를 기다린 후에 다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세올컴퍼니에 현재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 거래정지 말고 다른 문제가 생겼다고?”
“네. 자 여기 그림을 보시지요.”
조지훈은 화면에 그림을 띄웠다.
세올컴퍼니-세올홀딩스-세올바이오-랜드론-세올씨앤씨로 이어지는 하나의 줄기와 세올컴퍼니에서 QOP바이오로 이루어진 새로운 줄기가 이어진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세올컴퍼니가 거래정지에 들어간 사이 QOP바이오와 세올홀딩스라는 회사로 인적분할에 들어갔습니다.”
“거래정지 상태에서 인적분할을? 이게 되는 거야?”
조지훈의 첫 이야기부터 최석영은 혼란스러웠든지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고 물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모르기는 마찬가지인 듯했다.
최석영과 비슷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조지훈이 보여준 그림만 뚫어지게 바라볼 뿐이었다.
“가능해요.”
새롭게 세이지 자산운용에 합류한 이진경이 고개를 끄덕이며 최석영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거래정지가 주식을 거래하는 것을 잠시 멈춰놓은 것뿐이지 그 외의 사업행위까지 막는 것은 아니니까요.”
“인적분할인데요?”
“네. 인적분할도 마찬가지예요. 거래정지 상황에서 사명도 바꿨는데 인적분할이라고 못 하겠어요?”
이진경이 세올컴퍼니의 전 회사명인 QOP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제야 사람들은 이진경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사명을 바꿔도 되는데 인적분할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해한 것을 확인하고 다음 이야기로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나누어진 두 회사 중 세올홀딩스가 세올바이오를 100% 종속 회사로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기존 세올컴퍼니의 자회사였던 세올바이오는 세올컴퍼니 밑 세올홀딩스의 자회사가 되었지요.”
조지훈은 세올컴커니부터 세올씨앤씨까지 이어진 큰 줄기를 포인터로 가리키며 말했다.
“세올컴퍼니 밑에 세올홀딩스 그리고 그 밑에 손자회사로 세올바이오. 증손자회사로 랜드론이 있으며, 마지막에 고손자회사로 세올씨앤씨가 자리 잡고 있는 형태입니다. QOP바이오는 이렇게 곁가지로 따로 나와 있는 모습이고요. 수직계열화가 잘 되어 있는 모습이지만 한편으로 맨 위에 있는 세올컴퍼니부터 세올씨앤씨까지 너무 많은 과정을 거쳐 내려가는 모습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조지훈이 다음화면으로 넘기자 증손자회사인 랜드론에 X표가 쳐졌다.
“계열사 정리를 결정했습니다. 우선 랜드론이라는 증손자 회사를 정리하기로 한 것이지요. 모회사인 세올바이오에서 랜드론을 흡수합병하기로 한 겁니다. 여기서부터가 이제 본격적인 문제의 상황이 연출이 되기 시작합니다.”
조지훈은 화면을 바라보던 것을 멈추고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로 시선을 돌린 후 설명했다.
“세올컴퍼니는 코스닥에 그리고 기존 자회사였던 세올바이오는 장외주식시장에 상장된 상태였습니다. 그 사이에 세올홀딩스가 새롭게 세올컴퍼니에서 인적분할 되어 끼어 있던 것이지요. 이런 상태에서 세올바이오는 랜드론을 흡수합병하며 세올씨인씨를 자회사로 얻게 되었습니다. 기존에는 손자회사였는데 이제는 바로 밑에 자회사가 된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조지훈은 QOP바이오에 포인터를 가져다 댔다.
“QOP바이오가 생뚱맞게 세올씨앤씨에 현물출자형식으로 난소암 치료제를 넘기게 되었습니다.”
“잠깐.”
홍대민 주식운용 팀장은 조지훈이 X표가 쳐진 랜드론과 그 위에 자리한 세올바이오 그리고 그 밑에 자리한 세올씨앤씨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난소암 치료제를 현물로 출자했다고? 세올씨앤씨에?”
“네.”
“세올바이오는 장외주식시장에 상장되어 있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지금 어떻게 됐지?”
홍대민은 깜짝 놀란 얼굴로 자리에 있던 팀장들을 돌아봤다.
그러나 자리에는 장외주식시장을 맡은 사람이 없었다.
세이지는 아직 장외주식시장까지 진출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장외주식시장을 모니터링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었다.
“500배 상승했지요.”
그래서 한진영이 대신하여 대답했다.
“500배요?”
“네. 500배가 올랐습니다.”
홍대민은 폭등할 거로 예상하기는 했지만, 예상보다 크게 오른 것에 놀라고 말았다.
홍대민뿐만이 아니었다.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500배 상승이라는 말에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어서 다음 이야기를 하라고 손짓했다.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끝이 아니라고?”
“네. 500배 상승은 지금 하는 이야기의 도입부에 불과합니다.”
조지훈은 다시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한진영의 지시를 받아 세 시간 만에 급히 정리한 내용이었다.
처음 지시를 받았을 때는 어떻게 세 시간 만에 자료를 정리할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리하면 할수록 세 시간조차 한진영이 많이 배려하여 시간을 준 것임을 알게 됐다.
세올컴퍼니 이야기는 자료를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이 너무나 명확하게 잘 정리된 사고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가 앞으로 할 이야기를 설명하기 위한 도입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조지훈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건지 감도 잡지 못하는 팀장들이었다.
조지훈은 화면에 떠 있는 포인터를 이번에는 세올홀딩스로 옮겼다.
“랜드론을 흡수합병한 세올바이오는 500배의 주식이 상승한 채로 다시 세올홀딩스와 합병하게 되었습니다.”
“뭐?”
“특이하게도 세올바이오가 존속법인으로 남고 모회사인 세올홀딩스가 소멸하는 형태입니다.”
조지훈의 말에 갑자기 사람들은 웅성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면 500배가 오른 장외주식은?”
“세올홀딩스가 세올컴퍼니에 인적분할 되어 나온 거 아니야? 그런데 그게 세올바이오와 합병이 된다고?”
“뭐가 어떻게 된다는 거야?”
“자회사가 모회사를 먹은 거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사이 홍대민이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해 소리쳤다.
“잠깐만. 잠깐만 조용히 해주세요.”
홍대민은 자리에서 일어난 상태로 조지훈을 바라보고 물었다.
“인적분할을 했으니 세올컴퍼니가 그대로 세올바이오로 복사가 되는 거 아닌가?”
“맞습니다.”
“그럼 혹시…… 세올컴퍼니를 공매도 친 사람이 있던가?”
“역시 홍 팀장님께서는 문제의 핵심을 바로 찾으셨군요. 네. 지금 이 사고라 부를만한 사건의 핵심은 바로 공매도입니다.”
“아이고.”
홍대민은 자리에 주저앉으며 머리에 손을 얹었다.
“현재 세올컴퍼니의 공매도 금액은 약 100억으로 집계되고 있습니다.”
“그럼 5조를 갚아야 한다는 거야?”
“네. 맞습니다. 공매도 100억에 대한 청산 요구 금액은 5조가 넘습니다.”
조지훈은 다들 입을 벌린 채 안타까운 표정을 짓고 있는 팀장들을 향해 이야기했다.
“공매도 계좌는 총 20계좌 정도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균 5억의 공매도 잔고가 쌓여 있으며 제일 적게 공매도 친 계좌는 2,000만 원입니다. 제일 많이 친 공매도 계좌는 약 30억이 넘는 공매도를 친 상태고요.”
“2,000만 원만 해도 청산 금액은 100억이라는 거 아냐? 30억짜리는 1조가 넘는 돈을 물어내야 하고…… 돌았네. 돌았어.”
최석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혼잣말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복잡해 보이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하나였다.
거래정지 전에 공매도 친 사람은 500배로 오른 가격으로 세올바이오의 주식을 사서 청산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홍대민은 손을 머리에 얹은 채로 고개를 저었다.
“손도 못 쓰고 얻어맞는 걸 다 지켜보고 있어야 한다니 고통이 상상이 안 된다. 상상이 안 돼.”
거래가 정지된 상태였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500배를 얻어맞고 만 것이었다.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가 철철 흘러넘칠 것 같은 상황에 홍대민은 자기도 모르게 탄식을 내뱉었다.
한진영은 차갑게 분위기가 가라앉은 회의실을 둘러보고 말했다.
“오늘 이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자세히 설명한 이유는 다름이 아닙니다. 바로 공매도친 사람이 우리에게 의뢰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의뢰한 겁니까?”
“간단합니다.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 그 방법을 의뢰해왔습니다.”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지훈 쪽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화면을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말했다.
“아직 시간은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거래정지가 아직 풀리지 않아 당장 공매도를 어찌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거래정지 때문에 공매도를 청산하지 못해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은 거래정지 덕분에 공매도를 아직 청산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는 어떤 방법으로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을지 방법을 생각하면 됩니다. 그걸 생각하셔서 좋은 방법이 떠오른다면 저를 찾아 주십시오. 그럼 좋은 주말 보내시고 다음 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은 짧은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자리에 남아있던 사람들은 조지훈이 남기고 간 세올의 회사구조를 멍한 눈으로 바라봤다.
***
“대표님.”
조지훈이 회의실에서 나와 사무실에 들어간 한진영을 찾아왔다.
한진영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다 들어온 조지훈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어? 왜?”
조지훈은 조심스럽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고개만 돌리고 있는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혹시 대표님께서는 방법을 알고 계신 거 아니신가요?”
조지훈의 말에 한진영이 살며시 미소 지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게 확실하지는 않지만…….”
조지훈은 뒷머리를 슬쩍 손으로 만지며 말했다.
“회의실에서 발표하면서 대표님의 표정을 보니 모든 것을 알고 계신듯해서요. 놀라는 모습도 없으시고, 어느 정도 시간이면 정보를 구해올지도 정확하게 아셨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처음 저에게 지시를 내렸을 때 대표님께서 그 이상의 정보는 필요 없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서요. 혹시 이 사건을 미리 알고 있었던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조지훈은 조심스럽게 물으며 한진영의 안색을 살폈다.
자기가 혹시라도 선을 넘는 게 아니냐는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걱정하는 표정을 짓고 있는 조지훈을 향해 웃으며 소파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앉아봐.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조심스럽게 소파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았다.
한진영은 여전히 책상 의자에 앉은 채로 소파에 앉아있는 조지훈을 향해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나는 해결책을 알고 있어.”
“그런데 어째서 팀장들을 소집하신 건가요? 아니. 혹시 그럼 그 정 회장님과 만났을 때도…….”
“그래. 그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이미 알고 있었어. 그런데 왜 그 자리에서 대답하지 않았는지가 궁금하지?”
“네.”
한진영은 손을 맞잡고 잠시 고개를 등받이에 기댔다.
그리고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가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거든.”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더욱 궁금증이 솟아났다.
그러나 조지훈의 궁금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로 한진영이 그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내어놓았기 때문이다.
“방법을 알고 있다는 것보다 방법을 찾았다는 식으로 알려주고 싶었어. 그래야 안혁규에게 신뢰를 쌓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있지.”
한진영은 등받이에 댔던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의자를 끌고 조지훈이 앉아있는 곳 쪽으로 다가간 한진영은 조지훈의 눈앞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 새끼는 쥐새끼거든.”
“네?”
“시궁창에 사는 쥐. 썩은 내를 맡고 다니면서 살아남은 놈이야. 그런 놈들의 특징은 기가 막히게 위험을 감지해낸다는 거지. 내가 미리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그놈은 혹시나 내가 이번 일에 어떤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할 게 뻔해.”
“대표님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 아닌가요?”
조지훈의 말에 한진영은 손을 모아 조지훈 앞에 들이밀며 말했다.
“쥐새끼한테는 사실이 중요하지 않아.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 들면 바로 움직이는 게 쥐새끼들의 습성이야. 그래서 꼬리를 감추고 머리를 땅에 박아 넣은 뒤 숨소리까지 감출 게 분명해.”
한진영의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비릿한 웃음을 지은 한진영은 당장 눈앞에 쥐새끼라고 부르는 존재가 있기라도 하다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눈빛으로 마지막 말을 조지훈에게 건넸다.
“쥐새끼가 숨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어렵다는 것과 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알려준 거야. 그리고 그것으로 쥐새끼에게 신뢰를 얻고…… 쥐새끼가 온몸을 드러내게 만들어야지.”
“대표님.”
조지훈은 말을 하면서 점점 흥분하는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봤다.
평소에 보지 못하던 한진영의 모습에 조지훈은 한진영이 괜찮은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대표님. 안 의원을 잘 알고 계신 건가요?”
“잘 알고 있냐고? 하하하.”
조지훈은 한참을 웃는 한진영을 향해 다시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말씀하시는데 적의가 느껴져서요. 혹시 안 의원에게 묵은 감정이라도 있으신 거예요?”
“묵은 감정?”
한진영은 웃고 있던 것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봤다.
한여름이라 그런지 여섯 시가 넘었는데도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바깥 풍경을 한진영은 말없이 바라봤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한진영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묵은 감정 정도로 표현하기에는 그 사람과 관계를 표현하기에는 부족해. 그 사람은 날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난 똑똑히 기억하고 있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철저히 무너뜨려 줄 거야. 그가 나한테 했던 짓에 이자까지 더해서 말이야.”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조지훈을 바라봤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시선을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한진영의 눈을 통해 전해져 오는 분노의 감정에 조지훈은 살갗이 따갑게 느껴질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