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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64화 (264/650)

264화 모든 걸 잃었을 때 손을 내밀어라

한진영은 정병선이 생각을 마치기를 가만히 기다렸다.

그렇게 약 5분여간의 시간이 흐른 뒤 정병선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 저는 대표님을 선택하겠습니다.”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은 오히려 홀가분한 표정을 지으며 팔짱을 풀었다.

“오랫동안 고민하던 거에 비해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표님과 함께하며 올린 실적 때문입니다.”

“저와 함께한 실적이요?”

“네. 대표님의 말을 들어 이득을 본 것. 그리고 대표님에 돈을 맡겨 번 수익 등등 지난 몇 년간 대표님과 함께하며 얻은 주머니가 답을 알려주더군요.”

“안 의원 쪽이 아니라고요?”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줬던 사람을 믿고 따르라고요.”

정병선은 마치 지금도 주머니가 가득 채워지는 기분을 느끼는 것인지 손으로 주머니를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제가 하려는 일이 모두 여기에 돈을 쑤셔서 넣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기존에 함께하여 실적을 쌓은 상대를 믿어야지요. 아무리 미래가 장밋빛으로 밝게 빛나고 있다지만 그건 어찌 될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저는 모험보다 안정적인 것을 원하는 사람이니 당연히 대표님을 따를 생각입니다.”

시원스러운 정병선의 말에 한진영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만약 정병선이 안혁규를 따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로 정병선의 태도는 명확했고 확고했다.

정병선은 얼굴에 가득 미소를 띠고 있는 한진영을 바라보며 같이 웃었다.

“저는 돈을 따라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안혁규 의원이 아무리 차기 실세에 가깝다고 하더라도 대표님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사람이 권력을 쥐게 된다고 저에게 뭘 준다는 보장도 없고…….”

마지막에 가서 솔직한 속내를 이야기한 정병선은 한진영을 향해 기대 섞인 투로 말했다.

“하지만 대표님은 다르지 않습니까?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신 걸 보면 저와 함께 가고 싶어 물어보신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는 정 회장님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그럼 됐습니다. 우리는 이제 가족과 같은 사이라고 생각해주세요. 저도 그리 생각할 테니 말입니다.”

정병선의 시원시원한 말에 마치 이런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던 사람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한진영은 정병선의 말을 싫어할 이유가 없었다.

지금은 부동산 시장이 침체기를 겪어 프라임리츠가 힘을 쓰지 못하지만, 앞으로 부동산 시장이 활황기에 돌입했을 때의 무섭도록 성장하는 프라임리츠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쪽에서 해야 할 말을 정병선이 먼저 부탁을 하는 것에 한진영도 호쾌하게 대답했다.

“그러지요. 저도 프라임리츠를 남이 아니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잘됐습니다.”

정병선은 자기 무릎을 손으로 치며 신나 했다.

“안 의원과 신뢰를 쌓는 것보다 오히려 이게 저에게는 더 기분이 좋네요.”

“기왕 기분이 좋으신 김에 안 의원 쪽하고도 신뢰를 쌓으시도록 하시지요.”

“네?”

아쉽지만 오히려 한진영과 더 나은 관계를 맺은 것에 기분 좋아하던 정병선은 한진영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안 의원과도 신뢰를 쌓으라고요?”

“네. 제가 조금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지금 당장 관계를 끊으라는 말이 아니라고요. 지금은 친하게 지내시다가 제가 이야기할 때 나와 달라고 드린 말씀이었습니다.”

“그렇다는 말씀은…….”

정병선은 기대에 찬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정병선이 만족해할 만한 대답을 내놓았다.

“방법을 찾았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정말입니다.”

지금까지 만난 모든 곳이 방법이 없다며 고개를 젓던 것이었다.

그래서 한진영에게도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것인데 방법을 찾았다는 말에 정병선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찾으셨습니까?”

“정 회장님의 모습을 보니 방법을 찾은 제가 신기하게 느껴지시는 듯 보입니다.”

“네. 신기합니다. 솔직히 말씀드려서 대표님을 만난 이후에도 몇 군데를 더 찾아가 봤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답변은 모두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래서 대표님께서 찾지 못하다고 해도 저는 그러려니 생각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방법이 없다고 하는 걸 어떻게…….”

말을 하던 정병선은 화들짝 놀라 한진영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아아. 대표님을 의심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그저…….”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하는데 저만 방법을 찾았다고 하니 신기해서 그런다는 것 이해합니다.”

“네.”

정병선 회장은 한진영이 이해한다는 말에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정병선의 눈에서는 의혹의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한진영은 그런 정병선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회장님. 왜 방법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십니까?”

“네? 그 말씀은 정말로 방법이 없어서 그런 이야기를 들은 게 아닌 것처럼 들립니다.”

“네. 맞습니다. 우리 세이지 자산운용의 사람들만이 생각해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정 회장님이 찾아간 곳에서 모두 생각해 낼 방법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정 회장님과 안 의원님께 방법이 없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습니까?”

“궁금합니다.”

정병선은 이유가 있다는 말에 한진영을 향해 귀를 기울였다.

이런 상황을 생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안혁규 의원님이 처한 상황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럼 누구와 연관이 있다는 말인가요?”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지요. 공매도를 혼자 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정병선은 한진영의 말에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그런 정병선을 향해 차분히 설명했다.

“안 의원님이 공매도를 쳤다면 누군가는 샀다는 이야기일 테니까요. 손뼉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공매도 반대쪽에 자리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

정병선은 한진영의 설명을 듣고 나자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씀은 세올컴퍼니를 매수한 인물이…… 설마 그럼 지금까지 우리가 방법을 묻고 다녔던 그 사람들이라는 말인가요?”

“그럴 수도 있지요. 아닐 수도 있고요. 하지만 자기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같은 업계의 사람이 안 의원님의 반대편에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그들 편에 서서 안 의원님이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지요.”

“같은 업계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 그들 편에 서서 이야기한다고요?”

“회장님. 부동산 업계라고 하여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데요? 지금 당장은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같은 업계의 편을 들어주는 것 말입니다.”

“그건…….”

정병선은 차마 아니라는 말을 할 수 없었다.

이런 일은 부동산 업계에서도 같은 업계 종사자 편을 들어주는 것이 불문율처럼 내려오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호구는 나에게 오기를 바라는 것.

증권 업계나 부동산 업계나 똑같기는 매한가지였다.

한진영은 수긍하는 듯한 정병선의 모습을 보자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니 방법이 없다는 말만 들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방법이 전혀 없는 건 아닙니다. 의외로 쉽게 해결할 수도 있습니다.”

“대표님.”

“네?”

“아까 같은 업계 종사자 편을 드는 게 일종의 업계의 불문율이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셨는데 대표님께서는 그러지 않으셔도 괜찮은 겁니까? 아무리 저와의 관계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해도 사실 이번 건의 당사자는 제가 아니라 안혁규 의원인데 말입니다.”

한진영의 설명을 들은 뒤 오히려 도움을 주겠다는 한진영이 걱정이 된 정병선이었다.

그도 업계에 퍼져있는 불문율을 깼을 때 업계에서 받을 곤란함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를 위해서였다면 불문율까지 깨면서 도움을 주려고 한 한진영의 마음 씀씀이에 감동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정병선을 한 다리 걸치고 들어가 안혁규를 도와주는 일이었다.

아무리 자기가 부탁했다고 하더라도 한진영의 입장에서는 들어주지 않아도 될만한 문제였다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걱정하는 정병선의 모습에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굳이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걸 말입니까?”

“업계의 불문율이라면서 굳이 방법을 숨기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음에는 나에게 호구가 오기를 바라는 것까지…… 그런 요행을 바라지 않아도 저는 충분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그렇지요. 대표님이라면 그런 요행 없이도 충분히 잘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무섭지도 않습니다. 불문율이라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지키지 않는다고 저를 어쩌지 못할 거라는 자신감도 있습니다.”

“역시…… 역시 한 대표님이십니다.”

정병선은 감탄하며 한진영의 말에 손뼉을 쳤다.

그러나 실상 한진영이 이러는 데는 자신감보다 더 큰 이유가 있어서였다.

‘다른 놈들이 했다면 나도 지켜줬을지 모르지만…… 블랙문 놈들이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한진영은 이번 세올컴퍼니 사태를 통해 이득을 보는 곳이 어디인지 알고 있었다.

이미 지난 시절의 경험 덕분이었다.

블랙문이 이번 세올컴퍼니의 사태에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곳이었다.

블랙문이 안혁규에게 정보를 흘리고 공매도를 칠 것을 권한 후 그 공매도 물량을 온전히 블랙문이 받아 낸 것이었다.

물론 당시에는 누가 공매도를 쳤는지 알지는 못했다.

그저 공매도를 친 곳이 있었고 그로 인해 큰 손해를 볼 뻔했다는 정도로만 알려진 사실이었다.

‘안혁규 의원을 엮어서 재미 좀 보려나 본데 그놈들이 잘되는 꼴을 내가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지.’

어떤 이유에서 안혁규를 수렁에 빠뜨리려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바로 정병선 회장과 같은 이유에서 블랙문도 안혁규에게 손을 뻗친 것이었다.

그러나 방법이 달랐다.

정병선은 안혁규와 친해지고 그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방식으로 다가가려 했다.

그러나 블랙문은 우선 안혁규를 수렁에 빠뜨린 뒤에 손을 내미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었다.

‘모든 걸 잃었을 때 손을 내밀어라.’

블랙문이 애용하는 방법으로, 한진영도 블랙문과 유니온을 결성한 뒤 가장 인상 깊게 배우고 가슴 깊이 새겨놓았던 방법이었다.

블랙문은 이번에도 그 방법을 쓰려한 것이었지만 한진영은 그걸 가만두고 보려 하지 않았다.

‘과연 어떻게 나오는지 볼까?’

한진영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정병선에게 말했다.

“정 회장님. 이번 사태를 해결할 방법은…….”

한진영은 정병선에게 수렁에 빠진 안혁규를 일으켜 세울 방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처음 세올컴퍼니에서 소문이 시작된 곳은 인터넷에 자리한 자그마한 언론에서부터였다.

세올컴퍼니와 세올홀딩스 그리고 난소암 치료제까지 더하여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기사로 나온 것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크지 않았다.

세올컴퍼니라는 곳이 무얼 하는 곳인지에 관해서도 관심이 없었으며, 거래 정지된 기업이 한순간에 주가가 500배가 튀어버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도 덤덤히 받아들일 뿐이었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기에는 회사가 너무 작았으며 주가가 500배가 오른다고 해 봤자 남의 얘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이야기가 점차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계기가 생기고 말았다.

[세올컴퍼니의 잔혹사, 누구의 농간인가?]

이번엔 인터넷 매체가 아닌 제대로 된 경제지에서 세올컴퍼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지난 인터넷 매체에서 이야기와 달리 이번에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사건의 본질을 들여다보는 이야기가 실려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어디라는데?”

“어디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이건 좀 이상해.”

여의도에 자리하고 있는 커피숍에서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세올컴퍼니에 관한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처음에 세올컴퍼니 이야기 들었을 때 웃겼거든. 그런데 이게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웃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야.”

“뭐 어차피 장외시장에 올라가 있는 종목이라 500배가 됐건 5,000배가 됐건 어느 순간에는 빠져 내려올 거로 생각했거든. 하루 거래량이라고 해 봤자 끽해봐야 2,000주도 안 된다며?”

“그래. 그래서 나도 그냥 해프닝인 줄 알았어. 그런데…… 좀 이상해. 아니. 많이 이상하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많이 이상하다고…… 그리고 이렇게 이상한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오갈 거 같아서 찝찝해.”

조지훈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세올컴퍼니 이야기와 이상하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맞은 편에 앉아 있는 한진영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생각보다 이야기가 빨리 퍼졌네요.”

“저들과 관련이 있는 이야기니까. 그러니까 빨리 퍼진 거지.”

한진영은 타겟을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로 잡았다.

“괜히 공매도 어쩌고저쩌고 이야기 흘러나오면서 분위기 이상하게 변하면 불편해지는 건 저들이거든.”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그들은 심각한 듯한 표정으로 세올컴퍼니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증권사의 일개 직원들에 불과한 그들이었지만, 쉬러 나온 공간에서까지 세올컴퍼니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증권사 내부에서도 이번 일을 가볍게 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지훈은 주변을 살피는 것을 멈추고 한진영에게 물었다.

“대표님. 그런데 세올컴퍼니와 저들하고 무슨 상관이라서 그런 건가요? 공매도는 저들이 친 것도 아니고 공매도 친 물량을 받은 것도 저들이 받아 낸 것이 아닌데 말입니다.”

“그래서 한 발 빠져서 그러거나 말거나 세올컴퍼니 문제를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 그런데 이 문제가 퍼지면 제일 어떤 이야기부터 퍼질 것 같나?”

“주가가 500배 올랐다는 이야기요?”

“아니. 사람들은 남이 돈 번 이야기는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그럼요?”

한진영의 얼굴에는 가득히 재미있다는 표정이 스며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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