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5화 사람들이 듣고 재미있어하는 이야기
한진영은 입가에 가득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은 채 이야기했다.
“사람들은 돈을 번 이야기보다 잃은 이야기를 좋아해. 누군가가 공매도를 쳐서 500배를 손해 봤다. 얼마나 꼬시겠나? 특히 개인투자자들의 경우에는 공매도라고 하면 치가 떨릴 텐데 얼마나 잘됐다고 생각하겠어? 그리고 이참에 이 문제를 공론화해서 공매도 자체를 갈아엎고 싶어 할 거야. 이걸 기회로 말이야.”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동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잘 안 되는 모습을 보고 위안받는다는 것을 조지훈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니라 공매도로 손해를 봤다고 하면 사람들의 기쁨은 배가 될 게 분명했다.
그만큼 공매도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공공의 적이나 마찬가지였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의도를 대충 알 수 있었다.
공매도를 부각해 이제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만들겠다는 것이 한진영의 생각이었던 것이었다.
각 증권사에서는 강 건너의 불구경이 아니라 자기 집에 불이 옮겨붙을지도 모르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대표님께서 어떻게 나서실까 궁금했는데 이런 방법이 있었네요.”
“이 방법의 제일 좋은 게 뭔지 알아? 내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는 거야. 저들이 알아서 전환사채(CB) 문제를 들고 나서 줄 테니까 우리는 뒤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돼.”
한진영은 오랜만에 밖에 나와서 마시는 커피 맛이 유독 맛있다고 생각하며 빨대에 입을 가져다 댔다.
한진영의 생각대로 분위기는 한진영이 나서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어 갔다.
세올컴퍼니의 문제가 부각되면 부각될수록 공매도 이야기가 함께 회자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결국 방송에서까지 이어져갔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에는 최석영이 화면에 나와 공매도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공매도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공매도로 인해 얻는 이득까지 폄하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럼 최 차장님께서는 공매도가 존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최석영과 함께 화면에 나온 패널이 잘됐다는 식으로 최석영을 향해 날 선 질문을 던졌다.
최석영은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공매도를 폐지할 수는 없습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진행자는 일당백으로 혼자 공매도 폐지에 맞서는 모습이 예뻐죽겠다는 표정으로 최석영을 바라봤다.
처음 최석영에게 참석 여부를 물었을 때 최석영이 당연히 공매도 폐지 찬성 쪽의 패널로 참석할 줄 알았던 방송사였다.
그러나 의외로 최석영은 공매도 폐지 반대쪽의 패널로 나서겠다고 했다.
대부분이 공매도 폐지 찬성 쪽에 자리한 이상 자기마저 그쪽에 가는 것은 균형에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뜻밖의 말도 직접 건넨 최석영이었다.
방송사에서는 이런 최석영이 그저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토론이라는 것이 균형을 이뤄야 하는데, 언제나 그렇듯이 이렇게 사회적 이슈화가 되어버린 문제에 관해서는 대중과는 반대편에 선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최석영은 그런 진행자의 마음을 안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현재 공매도의 안 좋은 면만 부각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공매도에는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증시를 안정시키는 좋은 기능들도 많이 있습니다. 공매도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시장에 작전 세력들이 날뛸 겁니다. 억지로 주가를 띄운 후 다른 사람들에게 물량을 넘기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겁니다. 또한 과도하게 책정된 주가에 어떤 불만도 제기할 수 없는 세상이 벌어질지도 모릅니다. 공매도가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 말씀에는 동의할 수가 없겠네요.
최석영의 맞은편에 앉아있는 시민단체의 대표가 급히 반대 의사를 내보였다.
그는 최석영을 노려보듯이 쳐다보며 말했다.
-공매도는 건전한 회사를 망치는 행위입니다. 또한 개인투자자를 윽박질러 자그마한 손에 쥔 돈까지 뺏어가는 악독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악독하니 공매도를 제재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맞습니다. 제재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철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조건적인 철폐요?
최석영이 다른 공매도 폐지 찬성자들을 돌아보자 그들 모두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인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최석영은 그런 그들을 돌아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좋습니다. 공매도를 철폐하고 막는다고 칩시다. 그렇게 막아놓은 시장에 과연 투자자들이 몰려올 거로 생각하십니까?
-공매도가 철폐되어 시장이 건전해지면 건전한 투자자들이 몰려올 겁니다.
-아니. 그렇게 추상적인 말씀 말고 현실적인 이야기를 묻는 겁니다. 금융시장은 우리나라 투자자들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특히 가장 큰 투자자들인 외국인의 경우 공매도를 철폐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 거로 생각하시는 겁니까? 이참에 외국인 투자를 금지했던 1980년대로 돌아가자는 건 아니시죠?
최석영의 말에 폐지 찬성론자들이 발끈했다.
-공매도를 폐지했다고 외국인들이 투자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까? 세상에 그런 일이 어디 있습니까?
-어디 있긴요? 여기 있습니다.
최석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민단체 대표들을 둘러보고는 말했다.
-지금까지 꾸준히 외국인 투자자들이 요구한 것은 선진국 시스템에 시장을 맞춰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상하한가를 폐지하고, 공매도를 전면 개방해 달라. 그래야 코스피 시장에 선진국 지수 지위를 부여하겠다. 물론 꼭 상하한가 폐지와 공매도 개방만이 선진국 지수 지위를 받는 데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필수요소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그걸 확대하지는 못할망정 폐지한다면 외국인 투자자들이 우리나라 시장을 어떻게 보겠습니까?
-그건 상관없습니다. 안 그래도 외국인 투자자들에 의해 시장이 혼란스러워지기만 할 뿐인데 이참에 그렇게 시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투자자들은 오지 않는 게 우리나라엔 더욱 도움이 될 테니까요.
시민단체의 말에 화면을 바라보던 조지훈이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대표님의 말씀대로인데요.”
“내가 그랬잖아. 저들은 무조건적인 폐지를 주장할 거라고 말이야.”
한진영은 소파에 느긋한 자세로 앉아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마치 감독이 자기가 연출한 연극을 바라보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처음 최석영에게 토론 패널 제의가 왔을 때 사람들은 다들 공매도 폐지 찬성 쪽의 패널로 최석영이 참가할 거로 생각했다.
여론이 공매도 폐지에 쏠려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최석영에게 공매도 폐지 반대쪽의 패널로 참가할 것을 지시했다.
아무리 최석영이더라도 한진영의 이번 지시에는 부정적으로 반응했다.
그만큼 지금 여론이 심각하게 한쪽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진영은 걱정이 가득한 최석영을 설득했다.
찬성 쪽에서 들고나올 논리를 미리 알려주고 반대쪽에서 어떤 식으로 대처해야 할지 먼저 알려준 것이었다.
미리 해답지를 펴본 채로 나가는 자리에서의 싸움에 두려워할 것이 없다는 말로 한진영은 최석영을 안심시켰다.
그리고 이런 말이 먹혀들어 최석영은 현재 화면 속 공매도 폐지 반대쪽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한진영은 만족한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보고 말했다.
“저기에 최 차장님이 앉아 있지 않았다면 오늘 토론 자리는 성사가 되지 않았겠지?”
“네. 그런 것 같아요. 반대쪽 패널에 최 차장님 말고 제대로 된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까요. 방송사에서도 최 차장님이 수락하지 않았다면 토론을 취소하려고 했다고 해요.”
“그랬을 거야. 지금 분위기가 좋지 못하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이 바닥에서만 그런 거였지. 일반 사람들은 공매도가 뭔지도 잘 몰라. 하지만…….”
한진영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저 방송으로 이제 사람들은 공매도가 뭔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거야. 누군가가 500배로 얻어맞았다는 재미있는 이야기와 함께.”
화면에서는 시민단체 대표가 최석영을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러니까 최석영 차장님께서는 공매도를 쳐서 손해를 본 사람까지 구제해줘야 하신다는 말입니까?
-그런 의미가 아니지요. 오히려 저는 공매도의 순기능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500배를 손해 본 것까지 인정해야 한다는 쪽입니다. 공매도라는 게 없었다면 500배를 손해 보는 경우도 펼쳐지지 않았을 테니까요.
-끄응. 그게 아니라. 지금 공매도는 500배…… 500배를 손해 본 사람이 공매도를 쳐서 500배를 손해를 봤으니 그걸…… 내가 뭐라는 거지?
머릿속이 혼란해진 시민단체 대표는 자기 쪽 사람들을 돌아보고 도움을 청했다.
이런 자리에 익숙한 최석영에 의해 말이 뒤엉켜 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500배와 공매도 그리고 손해라는 말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사람들이 듣고 재미있어하는 이야기가 시민단체 대표 입에서 계속 되풀이되었다.
***
방송사에서는 공매도 폐지를 주제로 토론방송을 준비한 것이었다.
없을 것 같았던 반대쪽 패널까지 구해 앉히며 나름대로 준비를 잘했다고 생각했던 방송사였다.
그리고 최석영 덕분에 방송도 퀄리티 높게 잘 나왔다며 내부에서는 즐거워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 방송사가 원하던 방향이 아닌 다른 쪽으로 이슈가 터져 나왔다.
[500배의 공매도 폭탄이 터졌다]
[조 단위의 반대매매도 불가능한 것은 아냐]
[10억만 공매도 쳤어도 반대매매로 복구해야 하는 금액은 5,000억. 과연 어디에서 터진 것인가?]
[공매도와 반대매매 그리고 세올컴퍼니의 관계]
[500배…… ]
[500배…… ]
공중파 방송사에서 토론으로 이야기를 언급한 것이 시장에 큰 파도로 덮쳐나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듣고 즐거워할 만한 내용이 가득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개인투자자들은 철저히 배제한 채로 운영되던 시스템에서 누군가가 당했다.
그것도 2배, 3배 정도 수준이 아니라 500배였다.
금융사에서는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준인 10억만 물려도 5,000억을 물어줘야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환호했다.
마치 사람들의 눈에는 악당이 쓰러진 것처럼 보였을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좋아하자 후속 보도들 또한 계속 이어졌다.
세올컴퍼니가 어떤 곳이고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분석하는 기사들이 속속 뒤를 이어 나오며 시대의 분위기에 편승하려 한 것이었다.
즐거워하는 대중들과 달리 이런 모습을 불편해하는 쪽도 생겨났다.
“갑자기 공매도에 왜 이렇게들 반응하는 거야?”
한진영의 사무실이 이제는 자연스러운 이성우는 소파에 앉아 가지고 온 과자를 집어 먹으며 말했다.
“최 차장님이 나가서 말 잘해주시긴 하셨어. 그런데 그 시민단체란 놈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저 규제, 폐지, 철폐 뭐 이런 말들을 하고 있으니…….”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냐?”
이성우가 찾아오자 한진영은 하던 것을 멈추고 이성우가 앉아있는 소파 반대쪽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이성우가 가지고 온 과자를 뺏어 먹으며 물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이 자기가 가지고 온 과자를 다 먹을까 싶어 손을 들어 올린 채로 대답했다.
“다들 긴장하고 있지. 가뜩이나 큰 선거 앞두고 있지 않냐? 괜히 이 분위기에 편승해서 어이없는 공약이라도 나올까 봐 다들 긴장한 모습이야. 야야. 다 먹지 마.”
이성우는 말을 하다 말고 한진영의 손에 들려있던 과자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 과자가 얼마나 남은 건지 안을 들여다보고 속상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 이거 좋아한단 말이야.”
“좋아하면 하나 더 사 먹으면 되지.”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도 울상을 지었다.
그러자 한진영이 먹던 것을 멈추고 이성우에게 물었다.
“왜? 아쉬워? 아쉬우면 조 비서한테 하나 더 사 오라고 할게.”
“먹을 때 흐름이 끊기면 안 돼. 사서 오는 동안 흐름 끊겨서 별로란 말이야.”
“너 나이가 몇이냐? 애처럼 왜 그래?”
한진영은 말로는 투덜거렸지만 먹는 것을 멈추고 과자봉지를 이성우에게 건넸다.
어쨌든 이성우가 이곳에 옴으로써 얻게 되는 정보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성우는 조금은 홀쭉해진 과자봉지를 건네받고 신난 듯이 이야기했다.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아~ 다들 긴장하더란 이야기까지 했지. 그랬어. 분위기가…….”
“그래서 어쩌자는 이야기는 했고?”
한진영이 증권사 사장단 회의에 다녀온 이성우에게 오늘 사장단 회의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묻고 있었다.
이성우는 다시 과자를 맛보고 즐거워하며 대답했다.
“대응 방법이야 뭐 뻔하지. 조용히 숨죽이고 이 상황이 지나가길 기다리자 뭐 이런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는데…… 화평증권에서 좀 재미있는 이야기를 내놓았더라.”
“뭔 이야기?”
“세올 측에서 발행한 전환사채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 이거지. 그리고 합병 절차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 이거고…….”
“그래서?”
“그래서 합병 진행 여부를 막고 조사를 해봐야 하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로 모였어.”
이성우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러나 지금 이야기는 한진영이 가장 듣고 싶었던 이야기였다.
“조사를 해야 하려면 세올 측에 나가 있는 자금들도 동결이 되겠네?”
“동결이 아니라 거둬들여야 하는 거 아니냐는 방향으로 흘러가더라. 아무래도 공매도 건으로 미운털이 바짝 박힌 것 같아. 그래서 눈감고 넘어갈 만한 전환사채 건을 물고 늘어지는 거지. 평소 같았으면 이런 건 그냥 넘어가지 않냐? 합병돼서 정리되면 우리 쪽에서도 나쁠 게 없는 일이니까.”
한진영은 이상하다는 듯이 말하는 이성우의 모습에 말없이 미소 지었다.
‘안혁규가 잘 움직였나 보네.’
정병선 회장을 통해 언질을 준 대로 안혁규 의원이 화평증권을 앞세워 전환사채, CB를 물고 늘어진 것으로 보였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미소에 잠시 과자를 먹던 것을 멈추었다.
한진영이 웃는 이유가 있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성우의 손이 멈춘 것을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이는 한진영의 손을 보며 이성우는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과자에 온 신경을 쏟았다.
이성우에게는 지금 손에 들린 과자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그렇게 이성우가 과자 한 봉지를 다 먹을 동안 증권사 사장단 회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해준 뒤 한진영의 사무실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