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수류탄 하나만 까고 싶다
조지훈은 도착한 건물 앞에 서서 건물을 올려다봤다.
20층에 가까운 건물이 모조리 로펌 사무실이라는 사실에 조지훈은 얼이 빠진 듯한 표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 직원 수가 얼마나 되나요?”
“그건 네가 알아보고 나한테 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한진영이 웃으며 어깨를 두드리자 조지훈이 놀란 입을 급히 다물고 정신을 차렸다.
“죄송합니다. 저는 여기에 올 줄 몰랐습니다. 그저 건네받기로는 종로에 위치한 건물 이름하고 주소만 건네받아서요.”
“그렇겠지. 건물에는 법률사무소라는 간판도 걸리지 않을 테니까.”
“네. 대표님의 이야기를 듣고 알았습니다. 그런데 여기 정말…….”
이곳이 그 말로만 듣던 동우 법률사무소라는 질문을 하려던 조지훈은 급히 입을 다물었다.
문을 열고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한진영 등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세이지 자산운용에서 오셨습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면 경호원과 조폭 사이를 오갈 것 같은 사람의 질문에 조지훈이 슬쩍 한진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맞습니다.”
“따라오시지요.”
검은색 양복을 입고 있던 사람이 날카로운 말을 던지자 나머지 사람들은 일제히 한진영과 조지훈의 좌우에 나뉘어 섰다.
마치 포위라도 하는 듯한 모습에 조지훈이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괜찮아. 뭘 그렇게 긴장해?”
한진영은 조지훈의 어깨를 두드리고 앞서 걸어갔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런 모습에 바짝 긴장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표님께서는 호랑이 간이라도 삶아 드셨나? 도대체 매사에 놀라는 법이 없으니 참 대단하시네. 그건 그렇고 이럴 줄 알았으면 직원들이라도 데리고 올걸. 잠시만요.”
조지훈은 혼잣말을 내뱉다 뒤처지는 것을 걱정해 급히 한진영의 곁으로 달려갔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곁에 바짝 붙어 동우 법률사무소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의 눈에는 희한한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대표님. 저기 좀 보세요.”
로비에서 서성이던 사람 중 하나가 무언가 작심이라도 한 듯이 게이트를 향해 돌진했다.
“막아!”
게이트 주변에 서 있던 보안요원들이 급히 돌진해오던 사람을 잡아 땅에 패대기쳤다.
그리고 뒤를 이어 직원들이 엎어져 있던 사람의 몸을 수색하자 위험해 보이는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러 종류의 칼과 둔기 등이 옷에서 나온 것이었다.
조지훈이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보자 한진영이 앞과 좌우에 서 있는 보안요원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제 알겠지?”
조용하기만 한 다른 로펌과 달리 동우에서는 이런 모습이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는 했다.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동우 법률사무소로 침입하는 일이 종종 일어났던 것이었다.
땅을 빼앗긴 사람 혹은 멀쩡히 다니던 회사가 망한 사람.
평범하던 가장이 난데없이 부인에게 이혼소송을 당한 것도 모자라 불륜으로 몰려 위자료까지 지급해야 했던 사연은 뉴스에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 남편이 억울하다며 동우 법률사무소에 불을 지르겠다고 석유통을 들고 난입했었기 때문이다.
이렇듯이 동우 법률사무소에서의 소동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보안요원들도 다른 곳의 보안요원들보다 조금은 더 현장에 어울리는 사람들이 맡을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경찰의 출동도 그 어디보다 빨랐다.
“벌써 경찰이 왔어요.”
조지훈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의 옷깃을 잡았다.
한 사람이 게이트를 향해 돌진하고 붙잡혀 땅바닥에 뒹굴며 옷에서 흉기들이 쏟아졌을 때 경찰이 건물에 도착했다.
이 모든 게 한진영 등이 건물에 들어왔을 때부터 게이트까지 걸어가는 동안 일어난 일이었다.
조지훈은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게이트를 지나면서도 로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동우 이 악마들아! 죽은 내 동생 살려내라! 내 동생 살려내!”
바닥에 잡혀 있는 사람은 필사적으로 울부짖었지만 도와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이 넘겨받은 사람을 도와줄 사람은 동우 법률사무소 안에는 아무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동생이라면…….”
조지훈은 최근 뉴스에 자주 언급되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생산직 직원이 일하는 도중 사고를 당했는데도 불구하고 본인 실수로 인해 벌어진 사고로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판결이 최근에 나왔던 것이 생각 난 것이었다.
이 사건이 특이했던 이유는 근래에 벌어진 판결에 이와 같은 일방적인 직원의 귀책 사유를 인정한 경우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업의 편에 서 있던 동우가 힘을 써서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니냐는 확신에 가까운 의심을 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직원의 가족이 동우에 찾아와 난동을 부리는 모습까지 보자 조지훈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은 모르는 사연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 않으면 사고 난 기업도 아니고 기업의 의뢰로 변호를 한 로펌에 와서 이럴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서 가자.”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한진영과 조지훈을 태운 엘리베이터는 건물의 가장 꼭대기 층에 해당한 20층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남자가 한진영과 조지훈을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한진영이 익숙하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세이지 자산운용의 한진영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동우의 서주한이라고 합니다. 한 대표님과 제 이름에 모두 ‘한’이라는 글자가 쓰이는 것을 보니 한 대표님과는 인연이 깊은 것 같습니다.”
“저도 그러길 바라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시시껄렁하게 느껴지는 농담에도 싫은 기색 하나 내보이지 않고 잘 받아주었다.
서주한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흥미가 느껴졌는지 손을 잡은 채로 웃었다.
“그런데 이분은…….”
“아 제 수행비서입니다.”
“여기 비서는 들어오기 곤란합니다.”
웃고 있던 서주한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한진영과 함께 온 이가 수행비서라는 사실에 기분이 언짢아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진영은 슬며시 서주한의 잡았던 손을 놓으며 말했다.
“저는 모든 일을 여기 있는 이 친구와 함께합니다. 제가 유일하게 우리 회사에서 의견을 구하는 친구니까요. 포지션은 수행비서이지만 제 분신이나 다름없는 친구입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살짝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자기를 예뻐한다거나 아낀다는 생각은 많이 했지만 이렇게까지 생각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이 친구와 같이 들어가지 못한다면 저도 함께 들어갈 이유가 없습니다.”
“대표님.”
조지훈은 아래서 기다리겠다는 말하려 했다.
괜히 자기가 들어가려 하는 것으로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던 조지훈이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말을 하려던 조지훈의 팔을 가만히 잡았다.
여기서 그런 말을 했다가는 지금까지 자기가 말한 모든 것이 우스워질 수도 있다는 한진영의 뜻이 잡은 팔을 통해 조지훈에게 전해졌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손길에 하려던 말을 멈췄고 서주한은 그런 모습을 빠짐없이 모두 다 지켜봤다.
“사이가 조금 더 특별하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진영이 서주한의 배려에 인사하고 가만히 조지훈의 손을 놓았다.
한진영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우선 제일 먼저 앞으로 있을 자리에서 흥분을 가라앉히고 냉철한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사람이 하나라도 더 필요했기 때문에 조지훈이 필요했다.
조금 뒤 만날 사람들은 지난 시절에 한진영에게 큰 영향을 미쳤던 사람들이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그들을 만난 것에 한진영이 자칫 이성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한진영은 그걸 염려하여 조지훈을 데리고 감으로써 이성의 끈을 단단히 잡으려 한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조지훈에게 돌리는 효과를 기대할 수도 있었다.
앞으로 갈 곳은 한진영은 이미 경험했던 곳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놀란 척을 한다고 하더라도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생각지도 못한 곳에 와서 놀랐다는 모습이 필요했고, 그걸 조지훈이 보여주게 하여 익숙한 듯한 한진영의 모습을 희석하려 했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조지훈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한진영과 끝까지 그의 곁을 지켰던 조지훈을 나락으로 보냈던 인물들의 얼굴을 조지훈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한진영이었다.
“안에 들어가면 자리에 있는 사람들 잘 살펴봐. 그리고 똑똑히 기억해야 해. 나중에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의미가 있는 사람들이 될 테니까.”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서주한과 나란히 섰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한진영의 뜻을 가슴에 품은 채 조용히 뒤를 따랐다.
“로비에서 소란이 있었다는데 괜찮으셨습니까?”
“잠시 소란이 있었지만 괜찮았습니다. 동우의 보안요원들이 잘 막아준 덕분에 큰일이 일어나기 전에 잘 진압된 모습이었습니다.”
“부끄러운 모습 보여드려 죄송합니다.”
서주한은 살짝 고개 숙여 사과를 건넨 후 계속 이야기했다.
“판결을 우리가 낸 것도 아니고 우리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진 것도 아닌데 왜 우리에게 와서 이 난리들인지 모르겠습니다. 상대편 변호인에게 잘못을 묻는 이 어지러운 세태는 언제쯤 끝이 날지 모르겠습니다.”
서주한은 참담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서주한의 모습이 우습기만 했다.
‘왜 너희들에게 따지겠냐? 너희들이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아슬아슬 걸친 상태로 상대를 쥐어짜듯이 일을 하니 너희에게 악감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지.’
동우 법률사무소는 악마의 법률사무소로 유명한 곳이었다.
돈이 되는 일이라면 무엇이라도 가리지 않았으며 이기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서슴지 않는다는 말이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렇게 동우는 대한민국 최고 최대의 로펌으로 성장했고, 스스로 사람들에게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을 기분 나빠하지 않으며 오히려 즐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기준으로 동우 법률사무소는 로펌 그 이상의 위상을 가지고 있는 곳이 되어 있었다.
“들어오시지요. 다들 기다리고 계십니다.”
서주한이 기다랗게 나 있는 복도 끝에서 문을 열며 한진영을 안으로 안내했다.
조지훈은 열린 문 안을 들여다보고 감탄이 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열린 문 안의 공간은 고급 바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로펌.
법률사무소의 맨 꼭대기 층에 이런 분위기가 연출되는 곳이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조지훈은 놀란 마음을 겨우겨우 진정시켰다.
서주한은 놀란 표정의 조지훈을 보고 만족한 듯이 웃었다.
“처음 이곳에 온 분들은 다들 놀라고는 하죠. 법률사무소에 무슨 술집이 있느냐면서 말입니다.”
안에 놓여 있는 탁자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좋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앉아 술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바의 테이블과 테이블 뒤에 놓여 있는 술병들, 그리고 나비 모양의 넥타이를 매고 칵테일을 만들고 있는 바텐더까지 모든 것이 법률사무소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조지훈은 서주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이곳에 술집이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우를 처음 세운 대표님께서 유럽과 미국의 고급 술집을 인테리어하는 회사를 직접 한국으로 초대하셔서 만든 바입니다. 대표님께서 이곳을 오픈하고 말씀하셨지요. 우리는 외부에 나가 사람을 만나는 것이 어려우니 이곳에서 일 이야기를 하도록 하라고요. 대신 외부에서는 절대 고객을 따로 만나는 일은 금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로펌의 변호사들이나 직원들이 밖에 나가서 사고를 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주한은 한진영을 향해 은근슬쩍 웃으며 말했다.
“말이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는 일도 없게 됐고요. 보십시오. 이곳에는 창문이 없습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우리 건물에 우리가 관리하는 곳이기에 도청당할 걱정도 없습니다. 여기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러니 편하게 계시다 가시면 됩니다.”
서주한의 말에 한진영도 마주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서주한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크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서주한이 바 안으로 들어가자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이 하나둘 일어나 서주한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서주한의 뒤에 서서 시니어급 이상들만 들어갈 수 있는 안쪽에 마련된 룸으로 향하는 한진영과 조지훈을 살피기 바빴다.
동우 법률사무소에 다니는 주니어급 혹은 이제 막 인턴 생활을 시작하려는 나이의 젊은이들이 어떻게 안에 자리한 룸으로 들어가는 것인지 궁금해하는 표정이었다.
조지훈은 이런 시선에 살짝 부담스러움을 느꼈다.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의 눈빛이 누구 하나 범상치 않은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지성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인물들.
그들이 보내오는 시선에 조지훈은 얼굴이 따갑게 느껴졌다.
얼굴을 살짝 숙였지만 그의 어깨에서는 여전히 놀랐다는 기운이 스며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조지훈의 모습에 어색해 보이는 한진영의 모습이 많이 희석될 수 있었다.
서주한은 이런 조지훈과 한진영의 모습을 보고 그러면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이런 모습을 보이고는 했기 때문이다.
“자 여기입니다.”
서주한이 문 앞에 서서 문을 열자 밝은 조명 아래 앉아 있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섞여 앉아 있던 이들은 열린 문을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오오~ 드디어 오신 겁니까?”
자리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서주한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뒤를 이어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서주한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들은 서주한이 아닌 서주한의 뒤에 서 있는 한진영과 조지훈을 향해 일제히 시선을 주고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보며 반갑다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미소 뒤편에 숨겨져 있는 기분은 다른 것이었다.
‘여기에 수류탄 하나만 깠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만 있다면 쓸어버리고 싶은 사람을 모두 쓸어버릴 수 있어 일이 한결 편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 한진영이었다.
한진영이 수류탄을 던지는 상상을 하자 얼굴에는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