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78화 (278/650)

278화 내가 이상한 사람이었다

금요일 장이 열리기 전 시장은 고요하기만 했다.

전날 7거래일 만에 반등하여 1,840이 끝이 아니냐는 분위기를 보여주었던 코스피도 전날과는 다른 분위기로 장이 열릴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루 만에 반등 분위기에서 창백하게 질린 표정으로 시장이 바뀐 이유는 결국 그리스 때문이었다.

피치가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하향하며 뉴욕증시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 여파가 아시아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 것이었다.

거기에 더해 3차 양적완화에 대한 이야기가 시장의 뜨거운 감자가 되어 뉴욕증시를 휘몰아치고 말았다.

미국에서 발표한 실업 관련 지표가 엇갈리며 3차 양적완화가 시행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견이 나온 것이었다.

신규실업수당 청구 건수는 매번 시장 예측치를 넘어서며 실업 상태가 나쁘다는 뜻을 보여줬다.

이렇게 실업 상태가 나쁜 만큼 3차 양적완화를 시행하자는 측에서는 이 지표를 들이밀며 어서 3차 양적완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후 발표된 실업률이 이런 주장의 입을 다물게 했다.

시장 예측치인 8.4%의 실업률을 하회하는 8.2%의 실업률이 나오고 만 것이었다.

엇갈린 지표에 의해 시장은 결국 3차 양적완화를 못 하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실망감에 나스닥이 3%가 넘게 하락하며 뉴욕증시를 싸늘하게 만들고 말았다.

전날 반등의 기미를 보여주며 지금의 하락은 비합리적 공포가 널리 퍼진 바람에 나온 하락이라며 신나게 떠들던 전문가들도 입을 다물고 말았다.

오늘 정말로 끔찍한 하락이 나올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통상 시간외 거래가 이루어지던 코스피와 코스닥에서도 오늘만큼은 장전 시간외 거래가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팔겠다는 사람만 있지 사겠다는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매물은 계속 쌓여갔으며 매수 주문자들은 다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장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시장에는 충격이 여러 갈래로 뻗어나간 모습이었다.

“시초가 어디에 잡히고 있습니까?”

오랜만에 대표실에서 나온 한진영은 뒷짐을 진 채로 시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홍대민을 향해 물었다.

홍대민은 바로 확인하고 한진영에게 대답했다.

“1,820쯤에서 공방전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1,820. 역시 그렇군요.”

숫자까지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한진영의 머릿속에 있던 기억과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시초가에서는 1,800을 지키기 위한 안간힘을 쓰겠지만 장이 열리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쉽게 1,800라인이 깨질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시장은 파랗게 질리고 말겠지.’

지금이야 어제의 반등 덕분에 혹시 모른다는 심정으로 접근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그것도 장이 열리고 거래가 되면 사라질 게 불 보듯 뻔했다.

우리나라가 아무리 날고 기어도 해외시장과 동떨어진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모니터링 화면을 팔짱을 낀 채로 바라봤다.

그리고 시선을 여전히 전광판에 둔 채로 홍대민에게 말했다.

“홍 팀장님.”

“네?”

“오늘은 한번 잡아보도록 하시죠.”

“오늘이요?”

홍대민은 갑작스러운 한진영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 잡히고 있는 시초 예상가를 보고 어떻게 잡자는 말이 나오는 것인지 홍대민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의 다음 말을 들은 뒤 오히려 오늘 매수하자는 말이 굉장히 논리적인 이야기였음을 홍대민은 알게 됐다.

한진영의 다음 말은 너무나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네? 1,730에서 잡자고요?”

너무 놀라 소리친 말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홍대민이 있는 곳으로 쏠렸다.

홍대민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은 뒤에야 자기가 목소리가 컸음을 깨닫고 급히 입을 손으로 가렸다.

그러나 가린 손 사이로 한진영을 향해 질문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만큼 한진영의 지시는 예상을 까마득히 벗어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대표님. 1,730에서 잡자는 말을 제가 제대로 들은 게 맞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1,730쯤에 잡아서 다음 주에 1,850쯤까지 나올 반등을 한번 먹고 나와보도록 하죠? 너무 짧게 가지고 가는 것이지만 뭐 그냥 놀기도 뭐하니 가볍게 소액으로만 진행해보도록 하세요. 감을 놓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말입니다.”

“대표님. 지금 시초가가…… 1,820입니다.”

“알고 있습니다. 1,730쯤 가려면 사이드카가 터져야겠지요? 그때를 기점으로 장 막판까지 물량 받아 가도록 합시다.”

한진영이 지시를 마쳤지만, 홍대민은 어떤 반응도 하지 못했다.

한진영이 지금 건넨 말이 농담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홍대민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사이 장은 시작됐다.

코스피 지수는 시초가 예상대로 1,820에서 시작됐다.

전날에 비하여 1%가 조금 넘게 하락 출발한 것으로 나스닥이 3% 이상 빠졌던 것에 비하면 준수한 의미의 하락 시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인지 장 초반부터 개인들의 물량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정도 하락이라면 거의 끝까지 왔다는 분위기에 편승한 매수세로 보이는 것들이었다.

5분 만에 1,500억에 달하는 매수세에 시장은 잠시 반등하려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었다.

1,820에서 시작된 지수가 1,825까지 반등이라고 부르기도 부끄러운 상승 움직임을 보인 후 외국인의 매도물량에 꼬꾸라져 버린 것이었다.

“1,810대에 돌입했습니다.”

홍대민은 들어온 보고에 정신을 차리고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이제 시작됐으니 팀장님 잘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바쁜 하루가 될 테니 말입니다.”

웃으며 건넨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은 정신을 차리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뭐가 됐건 한진영이 1,730이라고 말을 했다면 1,730까지 떨어져 내려올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홍대민이 돌아간 뒤 1,800라인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졌다.

마구잡이로 물량을 집어 던지는 외국인들과 최소한 이곳 라인은 지켜야 한다는 개인들의 싸움이 1,800을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런 줄다리기는 언제나 그렇듯이 기관의 태도에 의해 결정되고 말았다.

1,800을 지킬 것처럼 보이던 지수가 전기전자 섹터와 자동차 섹터를 집어 던지는 기관에 의해 무너져 내린 것이었다.

1,800라인은 고점 대비 10% 이상이 빠진 곳으로 1년 전 그리스 사태의 폭락 지점과 맞물려 있는 곳이었다.

이곳이 깨지면 1,700 초반을 보러 간다는 뜻이었기에 필사적으로 지키려 한 것이었는데 결국 기관의 배신에 의해 시장이 주저앉아 버린 것이었다.

선물지수가 먼저 바닥을 향해 내달렸다.

-1.5%에서 잠시 멈춰있던 선물지수는 -2%, -3% 하늘에서 빗방울 떨어지듯이 후드득 떨어져 내려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떨어져 내리는 선물지수에 의해 프로그램 물량도 터져 나왔다.

장이 시작하고 나서 1시간 만에 2,000억에 가까운 물량이 쏟아져 나오며 지수의 하락에 힘을 보탠 것이었다.

결국,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인 1시경 선물시장이 멈추는 사이드카가 발동되고 말았다.

선물은 거래가 멈췄으며 멈춰진 거래로 인해 쏟아져 나오던 프로그램 물량들도 잠시 멈추어진 채로 시장은 참혹한 참상만을 남기고 말았다.

“자 집중하고 준비해.”

홍대민은 팀원들을 향해 하나하나 지시를 내렸다.

“전기전자 섹터부터 담는 거야. 그다음은 자동차 섹터를 담을 테고 은행과 증권 섹터까지 차례대로 담아나갈 계획이니 집중해.”

홍대민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팀원들을 향해 소리치고 전광판을 확인했다.

사이드카가 터지며 지수는 1,750대에 돌입한 상태였다.

“1,730이라면 여기서 1% 이상이 더 빠져 내려와야 하는데…….”

홍대민은 고개를 갸웃하며 한진영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최석영과 전광판을 바라본 채로 무언가를 이야기 나누는 중이었다.

한진영이 일방적으로 말하고 최석영이 가만히 귀를 기울이고 이야기를 듣는 모습.

최석영은 장이 끝난 뒤 오늘 저녁에 있을 방송에서 최석영이 할 말을 한진영이 미리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긴 방송 준비를 위해서라면 조금 뒤에는 출발해야 할 테니까.’

최석영은 시계를 돌아봤다.

시계는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방송은 8시에 시작하는 방송이지만 이곳에서 방송국까지 가는 시간과 사전 준비를 위해서는 늦어도 회사에서 2시에는 출발해야 했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장 마무리까지 보지 못하고 회사를 떠난다는 뜻으로, 이미 지금 한진영은 시장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는 상태에서 최석영에게 이야기할 것을 알려주고 있다는 뜻이었다.

최석영은 이 말도 안 되는 광경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 것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한진영이 최석영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최석영만이 아니었다.

‘뭐야? 오늘 어떻게 마무리되는 것까지 알고 있는 거야?’

이진경도 자리에 앉은 채로 한진영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진경은 지금 세이지 자산운용의 그 누구보다 가장 크게 놀란 상태였다.

한진영을 향해 의심까지는 아니지만 의아함 정도를 품고 있었기에 그녀가 받은 충격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걸 넘어 오늘 장이 마무리되지 않았는데도 미리 오늘 장이 어떻게 될지 알려주고 있는 모습에 이진경은 정신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진경이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팀원의 보고가 들어왔다.

“팀장님. 주식운용 팀에서 매수를 준비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저희 쪽에서 모니터링 준비를 요청했습니다.”

이진경은 보고를 한 팀원을 돌아보고 물었다.

“뭐요? 매수한다고요?”

“네. 1,730대부터 약 1,000억 가량의 자금을 집행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지금 1,000억을요? 그것도 1,730대에서요?”

장 마감까지는 2시간도 남지 않은 시간이었다.

게다가 사이드카까지도 터진 상태에서는 오히려 반등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거기서 더 떨어진 곳에서 잡겠다고 하니 이진경은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이진경은 자기의 결정을 기다리는 팀원이 빤히 자기를 바라보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작동시키세요.”

이진경의 허락이 떨어지자 모니터링 프로그램이 작동하며 운용팀의 매매 준비가 끝이 났다.

1시 40분.

사이드카가 풀렸음에도 시장은 반등하지 못한 채로 -6%까지 그대로 밀려 내려오고 말았다.

-1%대에서 시작했던 것을 생각한다면 장중 내내 지수가 미끄럼틀을 탔다는 뜻이었고, 만들어낸 음봉은 장대 음봉이 되었다는 뜻이었다.

여기까지 오자 개인들이 결국 참지 못하고 물량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강심장이라고 하더라도 서킷이 눈앞에 보이는 순간 위험을 회피하지 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730대 돌입했습니다.”

“시작해.”

홍대민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세이지 자산운용의 매매프로그램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프로그램상에 미리 세팅되어 있던 값대로 주식들이 체결되어 세이지 자산운용의 계좌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오전에만 해도 오지 않을 것만 같던 자리였다.

열흘 전에 1,730까지 지수가 떨어진다고 누군가가 이야기했다면 그 사람은 쌍욕을 먹을 각오를 해야만 했다.

단, 2주 만에 고점 대비 15%가 빠져 내려온다고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는 일들이 세이지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드는 사람이 팔짱을 낀 채로 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진경은 모니터링 프로그램으로 매수되어 세이지 자산운용의 계좌로 들어오는 주식을 가만히 바라보고 생각했다.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내가 이곳에서 이상한 사람이었나 보구나.’

이진경은 한진영을 지금까지와는 다른 눈으로 바라보게 됐다.

***

빨갛게 얼굴이 상기된 아나운서는 감탄한 눈빛으로 최석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차장님. 차장님의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좋은 일이었으면 같이 웃으며 즐거워했을 텐데 아쉽습니다. 좋은 일이 아니니까요.-

슬픈 눈을 한 최석영은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나운서는 그런 최석영의 모습에 함께 슬퍼하며 이야기했다.

-오늘 지수가 -5.5%, 1,732포인트로 마감했습니다. 차장님이 나오셨던 지난 방송에 비하면 약 300포인트, -15%에 가까운 하락을 하고 말았는데요. 차장님. 어떻습니까? 혹시 차장님께서는 여기까지 예측하신 겁니까? 모두가 궁금해합니다.

최석영은 아나운서의 노골적인 질문에 놀란 기색 없이 한진영에게 들은 그대로 아나운서를 향해 대답했다.

-지수의 숫자까지 맞추는 것은 신이 아닌 이상 할 수 없는 일이지요. 물론 저는 신이 아니니까 맞추지 못했습니다. 아니. 예측하지도 않았습니다.

-예측조차 하지 않았는데 지금 상황을 예상하신 겁니까?

-저희 세이지 자산운용이 자랑하는 것이 바로 정보의 분석입니다. 사실 지금 세상은 나만이 아는 정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을 가지고 어떻게 분석하느냐의 차이일 뿐이지요. 저희 세이지 자산운용은 모두가 아는 정보를 분석하여 지금의 상황을 예상한 것이고 그게 그대로 맞아떨어진 것뿐입니다.

최석영의 말에 아나운서가 놀란 눈을 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차장님 말씀은 3차 양적완화 이야기도…….

-저희가 자랑하는 분석을 통해 알아낸 것입니다.

-그게 분석을 통해 나올 수 있는 겁니까?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저희가 증명하지 않았습니까? 이번만이 아니고 지난번에도 그리고 그전에도 저희는 계속 증명해왔습니다.

최석영의 자신 있는 말에 아나운서는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 정말 세이지 자산운용은 이런 것조차 분석하여 알아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지 않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

화면을 한진영과 같이 바라보던 조지훈은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돌아봤다.

“저렇게 말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지 않냐? 저렇게 이유를 만들어주는 편이 믿기 더 편하니 말이야. 역시 차장님 잘하네. 내가 들어도 아주 그럴듯하게 들려. 하하하.”

믿을 이유를 만들어주기 위해 저렇게 이야기하게 했다는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