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79화 (279/650)

279화 손해를 만회할 방법

조지훈이 한진영을 바라보는 중에도 화면에서 최석영과 아나운서의 대화는 계속됐다.

-최 차장님.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요? 많은 분께서 궁금해하십니다. 그 분석에 의해 나온 값. 예언이나 예측이 아닌 계산에 의해 나온 값. 그게 궁금합니다.

아나운서의 말에 한진영이 손뼉을 쳤다.

“좋아.”

아나운서의 발언이 마음에 들었던지 한진영은 크게 박수 세 번을 치고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그리고 여전히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조지훈을 돌아본 채로 말했다.

“저거 내가 알려준 거야. 차장님에게 대경TV에 가서 이렇게 말해달라고 부탁하라고 했어. 그런데 딱 좋은 타이밍에 딱 좋게 이야기했네. 역시 이 발언은 아나운서의 또렷한 음성으로 듣는 게 제격이야.”

조지훈은 아나운서가 하는 말까지도 한진영의 지시에 의한 것임을 알게 됐다.

대화의 모든 것을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핵심을 꿰뚫는 이야기는 결국 한진영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어디까지 생각하고 어디까지 행동하는 것인지 순수한 마음에 궁금해졌다.

어쩌면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한진영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 조지훈이었다.

조지훈이 한진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사이에도 화면 속에서는 대화를 계속 이어갔다.

화면 속의 최석영은 아나운서의 말에 가만히 생각하더니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사실 저희는 오늘 회사의 자금을 집행하여 일부 물량을 담은 상태입니다.

-아~ 그럼 오늘이 바닥이라는 말씀이신가요?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최석영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져 갔다.

아나운서는 물론이고 화면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최석영의 변한 표정을 느낄 정도였다.

최석영은 어두운 표정이 안타까움까지 담아 이야기했다.

-단기적 바닥을 이야기한다면…… 맞습니다. 저희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오늘이 단기적 바닥이라고 생각하여 들어간 겁니다. 하지만 진짜 이곳을 찍고 턴하여 오르는 거냐고 물으신다면 대답은…… 모른다입니다. 저희는 먼 미래까지 분석할 능력이 없으니까요. 단지 나온 데이터 값을 기준으로 하여 움직이는 것뿐입니다.

-그렇다면 더 떨어질 수도 있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기 조심스러운 겁니다.

최석영은 고개를 들어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말했다.

-주식시장은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다고 말합니다. 예측이 아니라 대응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귀가 따갑게 들어보셨을 이야기일 겁니다. 이 말의 뜻은 시장이 그때그때 변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무 자르듯이 시장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시청자 여러분께서는 제 말이 답답하게 여겨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입니다.

아나운서는 최석영의 말을 듣고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아마 대부분의 시청자는 아나운서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분명했다.

다이렉트로 지수가 15%가 떨어졌다면 개별주식은 30% 혹은 그 이상의 하락을 맞은 것들도 있다는 뜻이었다.

자기 주식이 반토막이 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의 사람들의 한숨이 아나운서를 통해 들릴 것만 같았다.

아나운서는 그래도 최석영의 조금 전 말에 한 가닥 희망을 찾았다.

-최 차장님. 조금 전에 분석해보니 단기적으로 오늘이 바닥인 것 같아 들어가셨다고 말씀하셨지요?

-네. 단기적 바닥. 맞습니다.

-그렇다면 어쨌든 반등을 한다는 거네요?

-저희 분석에 의하면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반등의 목표치는…….

최석영은 아나운서의 말에 고개를 흔들었다.

-저희 분석은 시장과 마찬가지로 매번 변합니다. 제가 이곳에서 단기적 목표치 1,850을 이야기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회사에서 분석한 값이 바뀔 수도 있는 겁니다.

-차장님. 그래도 답답해하실 시청자분들을 위해서 한 말씀만 해주십시오. 많은 분이 차장님의 입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최석영은 아나운서의 애원에도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화면을 통해 저를 오랫동안 보셨던 분들께서는 아실 겁니다. 저는 단순히 인기를 팔아먹기 위해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가입을 유도하기 위해 방송을 이용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맞으면 좋고 아니면 얼버무리며 대충 때우는 그런 사짜들과는 다릅니다.

잠시 말을 멈춘 최석영은 입술에 침을 바르고 말했다.

-방향을 알려드리는 것조차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나와 아무것도 알려드리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 아쉬워 알려드리는 겁니다. 그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제 양심상 할 수 없습니다.

-차장님께서 신중하고 아무 의미 없는 말을 내뱉는 걸 싫어하신다는 것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예측이라는 것이 맞을 때보다 틀릴 때가 더 많다는 것도 잘 알고 있고요. 하지만 이렇게 시장이 무너진 상황에서 할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일반 투자자들은 답답한 심정을…….

다시 한번 애원하던 아나운서는 무언가를 떠올리고 무릎을 쳤다.

-아~ 그렇지요. 그게 있었군요.

조금 전까지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던 아나운서의 표정이 갑자기 활짝 펴졌다.

그는 자기를 찍고 있는 카메라에까지 전해질 정도로 밝은 표정으로 최석영에게 말했다.

-세이지 자산운용의 펀드에 가입한다면 세이지 자산운용과 함께 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하하. 뭐…… 그렇지요.

최석영은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바로 실시간으로 움직임을 따라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우리는 돈을 넣어 놓은 뒤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고요.

-저희를 믿으신다면 그러셔도 되지요.

-게다가 손해를 보더라도…….

-저희는 수수료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아나운서는 마치 짜기라도 한 듯이 맞장구치는 최석영의 말에 활짝 웃었다.

그리고 몸까지 최석영 쪽으로 기울이고 물었다.

-도대체 그 펀드 언제 출시하는 겁니까?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으니 조만간 만나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 조만 간이 언제입니까? 저희 국장님이 아주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이야기한 것 들었지요? 시청자 여러분들께서 저희 대경TV로 문의를 하시는 바람에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이 자리에서 시원하게 말씀해주십시오. 그래야 저희 대경TV도 다른 볼일을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나운서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최석영은 졌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몸을 살짝 돌린 최석영은 카메라를 향해 똑바로 앉은 채 말했다.

-사실 너무 광고처럼 느껴질 것 같아 그냥 조만간 혹은 금방이라고만 말씀드린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저는 광고를 하러 나온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궁금해하시니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부터 두리은행 각 지점을 통해 판매됩니다. 가입 조건과 내용은…….

방송조정실에서 화면을 지켜보던 편성국 부국장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국장을 돌아봤다.

“국장님. 괜찮을까요? 이거 너무…….”

“내가 허락한 거야.”

“네? 국장님께서 허락하셨다고요?”

부국장은 놀란 눈으로 국장을 바라봤다.

국장은 그런 부국장을 놔둔 채로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했다.

“그래. 아니.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내가 저렇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국장님께서…… 부탁을…… 하셨다고요? 저건 광고인데요?”

“그래. 광고를 다른 곳에 가서 하지 말고 우리 방송에서 해달라고 한 거야.”

부국장은 국장의 의도를 알지 못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국장은 그런 부국장을 향해 방송조정실 한쪽에 자리한 모니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봐봐.”

국장이 가리킨 것은 실시간 시청률 집계가 나오는 화면이었다.

“실시간 시청률이 2%야. 2%. 하하. 우리 같은 증권방송은 0.5%만 나와도 대박이라고 이야기하는데 2%가 나왔어.”

“국장님.”

국장이 즐거워하는 사이 직원이 국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왔다.

그리고 부국장을 향해 가볍게 고개로 인사를 하고 국장에게 이곳에 온 이유를 이야기했다.

“사장님께서 방송이 끝난 뒤 올라오라고 하십니다.”

“혹시 이유를 말씀해주시던가?”

“시청률 때문이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목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매우 좋으신 것 같으셨습니다.”

국장은 알겠다는 말을 건넨 후 부국장을 향해 말했다.

“봤지? 광고고 나발이고 시청률만 잘 나오면 돼. 그런데 지금 우리는 대박을 터트렸단 말이야. 우리 방송국이 개국한 이래 최고 시청률이야. 최고 시청률.”

국장은 양손을 들어 올리고 기쁨을 만끽했다.

부국장은 그런 국장의 어깨 너머에 보이는 시청률 집계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했다.

2%를 기록하던 시청률이 지금은 어느새 3%대까지 치솟아 올랐다.

이 정도 시청률이라면 케이블이 아니라 공중파와도 어깨를 맞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드라마나 예능을 방송하는 방송국도 아닌 증권 방송에서 나올 수 없는 시청률에 대경TV는 축포를 쏘아 올리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

주말에도 그리스발 악재는 계속 시장에 쏟아져 나왔다.

스페인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이 9%에 육박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며 시장을 압박하는 모습이었다.

또한 EU의 무역통상사무관이 EU와 유럽중앙은행(ECB)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경우를 대비한 비상 대책을 마련 중이라는 것을 밝히며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이야기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

시장은 점점 커져가는 그리스 이야기에 바짝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런 악재 속에서도 언제나 호재는 존재해 왔었다.

게다가 지금은 그 어떤 악재보다 강력한 호재가 슬슬 고개를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과대 낙폭에 의한 저가 매수.

코스피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8배에 불과하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1배를 살짝 넘는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 것이었다.

PER 8배와 PBR 1.1배는 과거 역사적 사례를 고려했을 때 최악의 상황에서나 나오는 것으로 지금은 악재가 산처럼 쌓여도 매수해볼 만한 자리라는 것이 시장 참여자들의 공통된 생각이 되어 갔다.

주말 동안에도 아무런 호재 거리가 없었으며 스페인의 뱅크런 이야기까지 나왔음에도 시장은 월요일 상승을 준비하기 시작했다.이 모든 게 과대 낙폭에 의한 저가 매수세의 유입 덕분이었다.

1,730대에서 끝난 지수가 시초가부터 1% 이상 상승하여 출발했다.

금요일 저녁 뉴욕증시가 하락 출발한 것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상승 출발은 시장의 분위기가 마냥 나쁘지는 않다는 뜻을 잘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수가 상승하자 다시 한번 세이지 자산운용이 주목받았다.

“대표님.”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인 조지훈이 한진영이 있는 사무실로 찾아왔다.

“JH은행에서 자기들에게도 펀드를 팔 수 있게 해주면 안 되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하여튼 돈 냄새는 귀신같이 맞는구나. 그리고?”

“두리은행에서는 다시 한번 계약을 확인하는 연락이 왔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되신다면 오셔서 판매하는 것을 확인해보셔도 좋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와서 확인해달라? 속내는 다른 뜻이 있겠지?”

웃으며 말하는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아무래도 대표님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서 그러는 것 같습니다. 이번만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다음과 그다음까지도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은연중에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다음과 또 그다음?”

“자기들과 독점해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를 슬쩍 꺼내는 것이 진심처럼 느껴졌습니다.”

“독점이라…….”

한진영이 잠시 팔짱을 끼고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판매처를 한 곳 잡고 일을 진행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지난 시절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생각을 마치고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싫다고 하지 말고 생각해보겠다고 말해. 그리고 JH은행하고도 계속 이야기 나눠봐. 이번 건은 바로 내일모레 판매라 어떻게 할 수 없지만 2차는 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 아니냐고 말이야. 그리고 연락이 오는 곳이 있으면 다 만나도록 해.”

“다요?”

“어. 다 만나. 그리고 만나는 것도 숨기지 말고 공개적으로 만나. 다른 곳에서 알 수 있도록 말이야.”

한진영의 말을 들은 조지훈은 한진영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경쟁을 붙이려고 하시는 거군요.”

“바로 그거야. 경쟁. 내가 경쟁자가 되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지만 나와 함께 일하려는 사람을 경쟁시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 수수료를 한 푼이라도 아껴도 좋고 혹은 우리에게 진심으로 다가오는 곳과 일을 해도 좋고…… 뭐가 됐건 키는 우리가 쥐고 있으니 말이야.”

한진영의 자신 있는 말이 틀린 말이 아니라는 것을 시장이 증명해줬다.

월요일 1% 남짓 올랐던 코스피 지수가 화요일에도 또다시 올랐기 때문이다.

전날 뉴욕증시가 중국의 경기 부양 확대 가능성과 유럽연합 특별 정상회의에 대한 기대감에 7거래일 만에 큰 폭의 상승세를 보였다.

그에 맞춰 코스피도 큰 폭의 반등을 보여줬다.

2% 가까운 상승을 보이며 월요일과 화요일 이틀간의 반등으로 1,800이 코앞인 1,790대에 올라선 것이었다.

사람들은 지난 금요일 폭락 자리가 단기 저점이라고 이야기한 최석영의 말에 홀려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최석영이 있는 세이지 자산운용에서 처음으로 개인들에게 판매를 시작한다는 펀드에 폭발적인 관심을 보였다.

출시를 이야기했을 때부터 대경TV 업무가 마비될 정도로 연락이 쏟아졌던 펀드였다.

당시 시장의 폭락을 먼저 이야기 했기에 시장 참여자들의 관심이 쏠렸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단기 저점을 또 맞춘 것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너도나도 수요일 두리은행이 열리면 무조건 펀드부터 가입해야 한다는 분위기까지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 이야기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시장 폭락으로 인해 손해 본 계좌를 세이지 자산운용의 펀드가 모두 만회해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까지 쏠리고 말았다.

“완판되겠지?”

“완판을 왜 걱정해요?”

“그럼 뭘 걱정해야 하는데?”

“몇 분 만에 완판되느냐를 따져야 하지 않겠어요?”

김준하의 말에 최석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완판은 될 거야. 분위기가 좋다니까.”

세이지 자산운용의 팀장급들은 옹기종기 모여 두리은행에서 올 연락을 기다렸다.

아무래도 오픈하여 고객을 모집하는 펀드는 처음이었기에 그들도 긴장한 듯한 모습이었다.

“왔다.”

김석현의 말에 모여있던 팀장들은 다가오는 조지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데? 분위기 좋대?”

조지훈은 손가락을 다섯 개 피고는 소리쳤다.

“5분이요. 5분 만에 완판됐대요.”

조지훈의 말에 자리에 있던 팀장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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