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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83화 (283/650)

283화 절대 발 담그려 하지 말아라

한진영의 맞은편에는 프라임리츠의 정병선이 앉아있었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자기가 들었던 이야기에 관해 묻기 시작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한진영은 다짜고짜 정말이라고 묻는 정병선의 모습에 웃으며 대답했다.

“뭐가 정말인지 묻고 계시는지 모르겠지만 뭐 대충 맞는다고 대답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진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정병선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양손으로 책상을 짚고 서서 한진영을 향해 몸을 앞으로 쭉 내밀었다.

“정말 안 의원의 제안을 거절하신 겁니까? 2,000억 말입니다.”

“역시 그 이야기를 하시는 거였군요. 네. 거절했습니다.”

“그걸…… 왜? 왜?”

정병선은 너무 아까워 그런 것인지 왜 그걸 거절했냐는 말을 끝까지 내뱉지도 못했다.

하지만 너무나 태연한 한진영의 표정에 정병선은 거칠어졌던 숨을 고르고 한진영에게 다시 물었다.

“이유가 있으셔서 그런 겁니까? 도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이유라면…… 많지요.”

“많다고요?”

“네. 많습니다. 오히려 받아서 진행하려는 이유를 찾기 어려울 지경이지요. 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산더미입니다.”

정병선은 한진영의 말에 일어섰던 몸을 의자에 도로 앉혔다.

그리고 조금은 기운이 빠진 모습으로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설마 지난번에 말씀하신 그 이야기의 연장선인가요?”

자기가 이야기할 때 안혁규와 인연을 끊으라는 한진영의 말이 퍼뜩 떠오른 정병선이었다.

한진영은 자기 말을 기억하는 정병선의 모습에 기쁜 듯이 웃었다.

“용케 기억하고 계셨군요. 제가 그동안 상기시켜드리지 않아 잊어버리신 줄 알았습니다. 아니면 제 말을 흘려듣고 계셨거나 말입니다.”

“어떻게 흘려들을 수 있겠습니까? 안혁규 의원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 중에 한 대표님과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한 대표님이 유일한데 말입니다.”

정병선은 처음과 달리 많이 가라앉은 듯한 모습을 보였다.

어쨌든 한진영이 아무 이유 없이 거절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정병선은 잠시 심호흡을 내뱉고는 한진영을 불렀다.

“한 대표님.”

“네. 말씀하세요.”

“먼저 이유부터 말씀해주십시오. 누구나 원해 마지않는 일을 거절한 이유 말입니다. 이유를 듣고 난 뒤에야 나머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진영은 답답해하는 정병선을 향해 차분히 자기가 거절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진영에게 이유를 듣고 있던 정병선의 얼굴은 시시각각 변해갔다.

그리고 조금 전과 달리 당황한 말투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대표님의 말씀은 그 제안은 뒤에 있을 제안을 위해 시험하는 형식으로 건넨 거라는 말씀인 건가요?”

“그렇죠.”

“그럼 제안은 허상이었다는 말인가요?”

“그건 아닙니다. 제안은 아마 진짜였을 겁니다. 다만 앞에 제안을 받아 들이면 뒤에 제안은 이야기도 듣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뒤에 있는 게 뭐길래 2,000억이라는 돈이 그저 시험하는 용도로 쓰였다는 말입니까? 아니. 돈이 중요한 게 아니죠. 대표님도 얼마 전에 2,000억보다 더 큰 투자금을 유치했으니 돈에 연연하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하지만 그 2,000억을 투자한 사람들의 면면이…….”

정병선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계속 이야기했다.

“안 의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 하시는 것은 알겠습니다. 제가 이유까지는 뭐 알지 못하지만 그건 제가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머지는…… 설마 나머지도 다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건 아니시죠? 모두 집권 여당의 거대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현 차관이나 채 수석이야 맡은바 직분이 미미해 보일지 몰라도 현 정권의 실세라고 봐도 무방한 인물들입니다. 거기에 이의경 전 민정수석은 어떻습니까? 지난 정권의 독보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주기문 장관은 뭐 말할 것도 없고 말입니다.”

하나하나 지난 동우 법률사무소에서 한진영이 만났던 사람들을 읊어낸 정병선은 이야기할수록 답답함을 느끼는 듯했다.

그는 당장에라도 새까맣게 그을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앉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한 대표님. 정말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한 대표님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한진영은 정병선이 쏟아내는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렇게 혼자 말하다 기운이 모두 빠져 버린 모습을 정병선이 보이자 그제야 한진영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정 회장님. 지금부터 제 말을 잘 들으십시오.”

당장에라도 답답한 가슴을 두드리려던 정병선은 드디어 한진영이 입을 열자 숙였던 고개를 들어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정병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지금부터 드릴 말씀은 정 회장님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저와요?”

“네. 아마 저들이 저를 찾은 뒤에는 정 회장님을 찾으려 할 테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저를 왜 찾는다는 말입니까?”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돈을 벌기 위해서죠.”

“그렇죠. 저에게 돈을 맡기려고 한 이유가 돈을 벌기 위해서겠죠. 그런데 저에게 거절당하면 그들이 누구를 찾겠습니까? 저 외에 돈을 벌어다 줄 상대를 찾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아무래도 회장님을 찾아오지 않겠습니까?”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은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요. 그러니까 한 대표님의 말씀은 2,000억을 가지고…….”

“아니요. 제가 그 2,000억은 시험을 하기 위한 자금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진짜는 뒤에 나올 것들입니다.”

“뒤에요? 도대체 뒤에 있다는 게 무엇입니까?”

정병선은 자기의 성격이 급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진영과 지금 이야기를 나누며 자기의 성격이 어쩌면 급하고 화가 많은 성격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지금 정병선의 마음은 온통 화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새까맣게 그을어 가던 표정의 정병선이 지금은 빨갛게 변하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한눈에 보기에도 답답해하는 모습이 전해지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이 이렇게 정병선을 달아오르게 만든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였다.

앞으로 들을 이야기와 앞으로 그에게 다가올 것들에 대한 대비 차원에서였다.

예방주사처럼 답답함과 화나는 마음이 번갈아 그를 두들겨 놓아야만 다음에 나올 것들을 그가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차분한 목소리로 정병선에게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년에 우리나라에는 빅 이벤트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아시죠?”

“대선 말씀하시는 겁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게 지금 이야기와 연관이 있습니까?”

“네. 연관이 있습니다.”

한진영은 이야기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마주하고 앉아있는 회의실을 서성이며 이야기했다.

“대선 치를 때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조직 아닙니까?”

“맞습니다. 조직이지요. 그 조직을 움직이는 게 무엇입니까?”

“돈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돈이 조직을 움직입니다.”

한진영은 잠시 창문 근처로 가서 섰다.

그리고 창문에 내리 쐬는 햇살을 등에 받으며 말했다.

“그들이 그 조직을 움직일 돈을 만들기 위해 부탁할 겁니다. 다른 돈도 아니라 비자금을 이용하여 말이지요.”

“비자금이요?”

“네. 공식적이지 못한 조직을 위해 쓸 돈을 그들은 만들어야 하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그런 돈을 만들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공식적이지 않은 돈을 이용해야만 하는 상황이고요. 그래야 나중에 무슨 일이 터지더라도 상황을 무마할 구멍이 생기니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은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런 식의 이유가 있을 줄은 정병선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정병선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며 말했다.

“절대 발 담그지 마십시오. 그게 회장님을 위하고 프라임리츠를 위하는 길입니다.”

한진영은 경고의 의미가 담긴 조언을 정병선에게 건넸다.

***

대경TV는 마음 같아서는 축포라도 쏘아 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코스피 지수가 정확하게 1,850까지 올라온 것에 기쁨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그런 대경TV에 또다시 귀인이 찾아오자 대경TV 전체가 들썩였다.

최석영은 그런 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조금 뒤에 있을 방송을 위해 스튜디오에 앉아 있었다.

“국장님 아니십니까?”

마이크를 차고 있던 최석영은 스튜디오에 찾아온 사람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편성국 국장은 손을 저으며 최석영에게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반쯤 일어난 최석영을 잡아 다시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

“일어나지 않으셔도 됩니다.”

국장은 최석영의 손을 잡은 채 위아래로 훑어봤다.

국장의 눈에는 마음에 차지 않았던지 주변을 둘러보고 소리쳤다.

“우리 최 차장님 메이크업하고 머리 손질 다 한 거야? 조금 더 손 봐야 할 거 같은데?”

국장의 말에 아나운서를 만지고 있던 스태프들이 하던 것을 멈추고 최석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그리고 부지런히 머리와 얼굴 그리고 옷 등을 손보기 시작했다.

국장은 최석영을 신경 쓰는 모습에 만족하는 미소를 짓고는 최석영에게 함께 온 이를 소개했다.

“최 차장님 인사하시죠. 저희 대경TV의 사장님이십니다.”

“아~ 사장님이시군요. 죄송합니다. 일어나서 인사를 해야 하는데 모습이 이런 상태라서요.”

최석영은 자기를 에워싸고 있는 이들을 가리키고 웃었다.

대경TV 사장은 최석영을 향해 괜찮다는 뜻으로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조금 뒤에 방송에 나가셔야 하니 당연히 괜찮지요. 그저 인사를 드리기 위해 찾아온 거니 부담 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누가 봐도 최석영이 아니라 대경TV 사장이 부담을 가진 듯한 모습이었다.

최석영도 그걸 느꼈는지 대경TV 사장을 향해 편안한 자세로 앉아 대화를 나누었다.

몇 마디 대화가 오간 뒤 대경TV 사장은 시계를 확인하고 국장을 향해 슬쩍 눈치를 줬다.

국장은 그런 사장의 눈짓에 급히 최석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최 차장님. 혹시 괜찮으시다면 오늘 저녁 어떻습니까? 저희가 좋은 곳에 자리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저녁이요? 좋지요.”

최석영이 단번에 허락하자 국장이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다.

“잘됐습니다. 이번에 새로 올라온 참치를 들여놨다고 연락이 온 마구로 집이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참치 괜찮으십니까?”

“참치 좋지요. 안 그래도 요즈음 참치가 매우 궁금했었는데 잘 됐습니다. 덕분에 배에 기름칠 좀 하겠습니다.”

“하하하. 잘 됐습니다. 잘 됐어요.”

한참을 즐거워하는 국장을 향해 사장이 다시 눈치를 줬다.

그러자 국장이 웃는 것을 멈추고 최석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저 차장님.”

“네?”

머리와 화장을 하던 스태프가 모두 빠져나가자 최석영은 다시 한번 앞섶에 꽂혀있는 마이크를 만지며 국장을 올려다봤다.

국장은 그런 최석영을 향해 비굴해 보이기까지 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최석영은 언뜻 보면 간신처럼 보이는 국장을 향해 마주 웃으며 물었다.

“뭐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최석영이 먼저 묻자 국장은 웃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로 사장이 지금까지 눈치 줬던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다.

“예전에는 세이지 자산운용의 대표님께서 참 우리 방송국에 자주 놀러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네. 두어 번 놀러 왔지요. 아시죠? 기풍의 성우. 이성우와 한 대표 그리고 저까지 아주 막역한 사이라서 제가 나오는 이곳에 함께 자주 오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그건 어쩐 일로 물으십니까?”

“저기 괜찮으시면…… 한번 뵙고 싶어서 말입니다. 그때는 제가 바빠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지 못해서요. 그래서 마침 오늘 이렇게 저희 사장님도 자리를 빛내주시기 위해 시간을 내어주셨으니 한 대표님께서도…….”

최석영은 그제야 대경TV의 속내를 알게 됐다.

세이지와 대경TV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이미 업계에서 유명인이 된 인물이었다.

게다가 이번 펀드의 성공으로 업계에서 위치한 자리도 한 단계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대경TV는 그런 한진영과의 관계도 끈적하게 만들기를 바랐다.

그래서 앞으로도 대경TV에서만 세이지의 관계자 특히 최석영이 방송한다는 확답은 한진영을 통해 듣고 싶었던 것이었다.

최석영은 뻔히 보이는 대경TV의 속내를 보면서도 모르는 척 내심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런 어쩌죠?”

“네? 왜 그러십니까?”

안타까워하는 최석영의 모습에 국장과 사장은 바짝 긴장한 얼굴로 최석영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최석영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올려다보며 말했다.

“미리 말씀해주시지 그러셨습니까? 오늘 대표님은 약속이 있어서 다른 곳에 가셨습니다.”

“다른 약속이 있으시다고요?”

국장은 다른 약속이 있다는 말에 울상이 된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답답함을 느낀 사장이 국장을 한 손으로 밀어내고 대신 나섰다.

“저희는 좀 늦어도 괜찮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마무리하려면 앞으로도 시간이 꽤 지나야 할 테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도 꽤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니 괜찮으시다면 볼일을 보고 오셔도 괜찮습니다.”

마치 애원하는 듯한 사장의 모습에 최석영은 더욱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 만나기로 약속한 자리가 자리인 만큼 자리를 뜨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어디를 가셨는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저희도 아는 곳이라면 그곳으로 자리를 옮길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최석영이 괜한 핑계를 대는 게 아닌가 싶어 건넨 말이었다.

최석영은 그런 대경TV의 사장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동우 법률사무소의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혹시 동우 법률사무소의 김교철 대표 변호사님과 아는 사이시라면 그쪽으로 합석을 이야기해보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도 동우의 초대를 한번 받고 싶어서 말입니다.”

최석영의 말에 국장과 사장은 마치 멈춤 버튼을 누른 것처럼 제자리에 서서 미동도 하지 못했다.

최석영은 그런 두 사람을 향해 그러면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몸을 돌렸다.

동우 법률 사무소는 대경TV가 합석을 이야기할만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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