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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85화 (285/650)

285화 힘이 진리가 되는 곳

한진영은 한 시간 전까지 안혁규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룸에 다시 돌아왔다.

그곳에는 조금 전 한진영과 이야기 나누었던 안혁규 대신 다른 사람이 앉아있었다.

진짜 방의 주인.

이곳의 주인인 김교철이 한진영을 마주하고 앉아 있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자리에 앉으며 모르는 척 물었다.

“저를 부르셨다고요?”

“멀리 가지 않았나 보군.”

“다행히도 막 떠나려던 참에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빨리 다시 올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가?”

“네. 그렇게 된 겁니다.”

태연하게 대답하고 자리에 앉는 한진영을 김교철은 물끄러미 바라봤다.

김교철의 시선에는 아무런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무감정한 시선이 상대를 더욱 부담스럽게 만드는 것이었다.

온몸을 훑어가듯이 쓸어가는 김교철의 눈빛.

한진영 또한 그런 무감정한 시선에 맞서 무표정한 모습으로 자리에 앉아 김교철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렇게 한동안 시선이 오가던 두 사람 중 먼저 입을 연 쪽은 김교철이었다.

그는 한진영을 바라보던 모습 그대로 입만 열어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왜 자네를 불렀는지 아는가?”

“글쎄요. 어떤 이유에서인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지만 아무래도 조금 전 안 의원을 만난 게 이유가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 자네 생각대로 그게 이유가 맞네.”

“저를 설득하기 위해 부르신 겁니까?”

한진영의 말에 김교철이 그제야 얼굴에 표정을 지어 보였다.

풀린 김교철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어려 있었다.

“자네를 불렀을 때만 해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네.”

“지금은 아니라는 듯이 들리네요.”

“맞아. 지금은 아니야.”

김교철은 웃고 있던 것을 멈추고 다시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처음 자네를 부르려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자네가 안 의원의 제안이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해 거절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이렇게 자네를 보고 나니 알겠네. 자네는 안 의원의 제안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어. 그렇지?”

“글쎄요. 저는 그저 정치권에 엮이고 싶지 않아서 거절한 것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김교철이 피식하고 웃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제일 먼저 보이던 게 무엇이던가? 이 방에 들어오기 전, 바로 저 문밖에 있는 것 중에 자네의 눈을 가장 잡아끄는 걸 말해보게.”

김교철의 말에 한진영이 가만히 생각한 후 대답을 내놓았다.

“당구대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맞아.”

단번에 대답을 한 것에 만족한 것인지 김교철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더욱 짙어져 갔다.

“왜 자네의 눈을 당구대가 잡아끌었는지 이유를 이야기해줄 수 있겠나?”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그저 이곳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것이라 눈에 들어온 것뿐이지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계속 질문을 던지는 김교철이었다.

이런 김교철의 모습에도 한진영은 귀찮거나 의문을 품지 않은 채 김교철의 질문에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대답했다.

“다른 곳이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술집에 당구대가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곳은 여타 술집과는 다른 곳이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술집과 다르다? 뭐가 어떻게 다르지?”

“이곳은 재미를 위해 있는 곳이 아니니까요.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아닙니까?”

“맞아. 내 의도가 그것 때문이었지.”

한진영의 말에 김교철이 가볍게 대답했다.

한진영은 그런 김교철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그러니 다르다고 말씀드린 겁니다. 당구대는 재미를 위한 것이지 중요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술과 무엇이 다르지? 술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니요. 술은 이야기를 편하게 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하지만 당구대에서 당구를 치는 것을 분위기가 부드러워져 중요한 이야기를 더 잘 나눌 수 있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김교철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한진영을 향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래. 바로 그게 일반적인 대답이야.”

한진영에게서 무언가 색다른 대답을 듣기를 원했던 것이었는지 김교철은 아쉬운 듯한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김교철의 시선에 고개를 갸웃했다.

“일반적인 대답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고 느껴집니다. 진짜로 이유가 있어서 당구대를 놓은 것입니까?”

한진영이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김교철은 그런 한진영의 질문에 짧은 한숨을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자네를 보면 어쩔 땐 매우 영특하여 반짝이는 듯 보이면서도 또 지금 같을 때는 평범한 다른 사람들과 같다는 느낌을 전해주는구먼.”

김교철은 아쉬운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한진영은 그런 김교철을 보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기만 했다.

하지만 사실 한진영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김교철이 원하는 대답이 무엇인지도 알고 있었다.

바로 지난 시절 같은 질문을 김교철에게 들었고, 당시에는 김교철이 듣고 싶어했던 대답을 건넸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모호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앞으로도 좋기에 이번에는 알고 있으면서도 대답하지 않은 것이었다.

김교철은 그런 한진영을 안타깝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당구대야말로 이곳과 가장 잘 어울리는 물건이야.”

“어째서 그렇습니까?”

“힘이 곧 진리가 된다는 것에 당구대와 이곳은 같은 의미가 있으니까.”

김교철은 말을 하고 앞에 놓인 술잔을 마치 당구공이 된 것처럼 만지며 설명했다.

“당구대는 다른 외부의 요인이 전혀 개입할 수 없는 공간이야. 전달되는 힘의 양과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진리의 공간이 바로 당구대 위인 것이지. 그리고 이런 힘의 방향이 1도만 틀어져도, 힘의 무게가 한 푼만 적어도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곳 또한 당구대 위이지. 바로 이곳과 마찬가지로 말이야.”

김교철은 손가락으로 바닥을 가리켰다.

그리고 한진영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말했다.

“내 말뜻이 무엇인지 알겠나?”

“네. 알 듯합니다. 하지만 이곳과 당구대와는 결정적으로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무슨 차이?”

“당구대 위에서는 주인의 뜻이 공에 전달되지 못하지만, 이곳에서는 주인의 뜻이 공에게 전달되지 않습니까?”

“하하하.”

김교철은 한진영의 말에 큰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고개를 몇 차례나 흔들고는 한진영을 향해 뚫어지게 쳐다봤다.

“자네는 뭔가?”

“뭐가 말입니까?”

“뭐가 자네의 진실한 모습인 건가?”

“지금 보이는 모습이 제 진실된 모습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김교철은 크게 웃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네 같은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구먼. 재미있어. 정말로 재미있어.”

한진영은 재미있다는 말을 연신 내뱉는 김교철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떠나려는 듯이 문을 향해 나아가는 김교철의 뒤를 따랐다.

김교철은 웃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문앞에 서서 손잡이를 잡은 채 몸을 돌렸다.

“나는 어떤 사람처럼 보이나?”

“돈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처럼 보입니다.”

“외부에서 나를 보는 시선 말고 자네가 직접 나를 마주하고 느낀 것 말일세. 그걸 이야기해보게. 자네의 감정을 솔직히 말이야.”

한진영은 김교철의 질문에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김교철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을 말없이 바라봤고, 한진영은 자기를 기다려준 김교철을 향해 솔직하게 느낀 것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돈을 아주 좋아하시는 분처럼 보입니다.”

“하하하.”

김교철은 한진영의 대답에 큰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문을 벌컥 열어젖힌 후 한진영에게 말했다.

“그 8,000억 이야기는 내가 안 의원 측에 잘 이야기해 보겠네. 혹시 나를 통해서 전할 말이 있나?”

“금액이 크니 조심하고 또 조심하라고 전해주십시오. 이 바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니 말입니다.”

“그래. 자네의 진심 어린 조언 잘 전하도록 하겠네. 그리고 자네가 걱정을 많이 하더라는 이야기도 전해주겠네.”

“감사합니다.”

한진영이 허리를 반쯤 숙여 김교철의 호의에 감사를 표했다.

김교철은 숙인 한진영의 뒤통수를 가만해 내려다보며 말했다.

“자네가 투자했다는 그 자동차 회사 있지 않나?”

“테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전기 자동차 회사 말입니다.”

“그래. 거기.”

한진영이 고개를 들어 김교철을 바라보자 김교철은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나도 거기에 돈 좀 넣었다네.”

“아~”

한진영은 짧은 탄식과도 같은 말에 김교철이 더욱 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자네를 조금 더 알고 싶네.”

“그래서 테라에 돈을 넣으셨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자네와 같이 움직여야 자네가 어떤 사람인지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어떤가? 내가 잘못 투자한 것 같은가?”

“아닙니다. 잘하셨습니다. 대표님께서 생각하시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보실 겁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네. 하하하. 그럼 다음에 보세.”

김교철은 짧은 인사를 남긴 후 열린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한진영은 김교철이 연 문이 자연스럽게 닫힐 때까지 허리를 굽힌 채로 서 있었다.

철컥.

김교철이 열고 나간 문이 자연스럽게 닫히며 소리를 냈다.

한진영은 소리가 들리자 그제야 숙였던 허리를 폈다.

그리고 소파로 돌아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늙은이. 하여튼 돈은 무지하게 밝혀.”

김교철이 나가며 테라에 투자했다는 뜻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한진영은 잘 알고 있었다.

한진영이 쓸모가 있는 사람인지 직접 확인해본다는 뜻을 돌려 표현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소파에 머리를 받혔다.

그리고 김교철과 짧은 만남에서 소비한 체력을 충전하며 앞으로의 일을 머릿속으로 그려봤다.

***

세이지 자산운용의 펀드가 판매가 완료되었음에도 관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지수가 횡보를 이어가며 펀드에 관한 관심이 더 높아지기만 했다.

이런 관심의 중심에는 테라가 자리하고 있었다.

상장 초반 급등에 대한 피로감과 지분 일부를 매각하여 투자금으로 사용하겠다는 노아 스미스 테라 CEO의 발표에 의해 순간적으로 15불까지 하락하기도 했던 테라였다.

그러나 새로운 기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프리미엄 모델의 출시가 가시권에 들어오며 테라는 다시 높은 상승을 보이기 시작했다.

“조 비서. 조 비서도 개인적으로 테라에 투자했다면서?”

“네. 뭐…….”

“아니. 그러면 좀 나한테도 알려주지. 그걸 혼자 투자했냐?”

“최 차장님이야말로 매번 방송에 나가서 말씀하셨으면서 누가 누구에게 알려줘요?”

“그래도 나하고 조 비서하고는 같나? 우린 처지가 다르잖아.”

“처지가 어떻게 다른데요?”

조지훈이 이렇게까지 질문할 거로 생각하지 못했던 최석영은 잠시 멈칫하며 허공을 바라봤다.

그렇게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조지훈을 향해 비서실 직원이 다가왔다.

“실장님. 이거…….”

한진영의 지시에 의해 비서실이 확장되어 조지훈이 비서실장의 직함을 얻게 됐다.

그리고 새롭게 비서실에 채용된 직원이 조지훈에게 조금 전에 들어온 연락을 쪽지에 적어 건네준 것이었다.

조지훈은 직원이 건네준 내용을 확인하고 여전히 생각하고 있는 최석영에게 먼저 말했다.

“최 차장님. 저 급한 일이 있어 잠시 먼저 가볼게요.”

“어?”

생각하던 최석영은 대답도 듣지 않고 떠나간 조지훈의 뒷모습을 보고 입맛을 다셨다.

“쩝…… 부럽다.”

조지훈에게 쪽지를 건넨 직원은 최석영의 곁에서 조지훈의 뒷모습을 같이 바라보고 물었다.

“뭐가 부러우세요?”

“어?”

자기의 혼잣말이 다른 사람에게 들렸다는 사실에 최석영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직원은 특유의 사근사근하는 말투로 최석영의 불편을 날려버리고 무엇이 부럽다는 것인지 다시 한번 물었다.

“차~장~님~ 차장님이 실장님 뭐가 부러우신데요? 차장님이 회사에서 더 높은 사람 아니에요? 그런 차장님이 실장님을 부러워하실 이유가 없잖아요.”

젊은 여자 직원이 애교 섞인 말투로 칭찬해주자 최석영의 얼굴이 금방 붉어졌다.

“우리 회사에 누가 더 높고 낮은 건 없어. 그건 김 비서가 회사에 다니게 되면 알게 될 거야. 우리는 모두 평등해.”

“그래도 대표님께서 차장님을 생각하는 게 각별하시잖아요. 그리고 우리 회사에서 차장님이 제일 유명하시고요. 저도 회사 들어오기 전에 세이지라는 이름은 몰랐어도 차장님 성함은 알고 있었다니까요.”

“아~ 그래? 뭐 내가 조금 유명하기는 하지. 흐흐.”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최석영은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김 비서는 그런 최석영을 향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이야기 좀 해주세요. 뭐가 부러우신 건데요?”

최석영은 김 비서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쩝…… 저 친구가 한 대표 말 듣고 투자한 게 있거든. 그것도 가불까지 받아 가면서…….”

“그래서요? 설마 투자받은 게 많이 올라서 그게 부러우신 거예요? 다른 사람도 아니라 최 차장님께서 왜 부러워하세요? 올라봤자 얼마나…….”

“그 얼마나가 5배가 올랐어.”

“네? 5배요?”

끽해봐야 20%에서 30%, 많이 올랐다고 하더라도 100%는 아닐 거라고 생각했던 김 비서였다.

최석영은 이야기를 들은 뒤 놀란 눈으로 최석영의 뒷모습을 쫓는 김 비서를 향해 다시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쩝…… 그러니 안 부러울 수가 있나? 앉은 자리에서 10억을 벌었다고 하던데…… TV에 나와서 테라 이야기를 주야장천 떠든 건 난데 나는 손에 쥔 게 아무것도 없으니 내가 왜 안 부러워하겠어? 아우~ 아까워라. 아까워.”

최석영은 누구보다 테라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떠들었음에도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한 자기를 탓하며 울상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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