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90화 (290/650)

290화 거짓말이 아니라 사기이다

홍대민은 조금은 걱정된 목소리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이번 상승이 이벤트 형식이라서 걱정이 덜 되기는 하지만 대표님. 혹시 이대로 날아가 버린다면 우리 손실도 만만치 않을 수 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1조 7,000억이라는 자금이 북양그룹으로 쏟아져 들어가며 북양그룹을 잠식해갔던 유동성 위기가 사라지게 된다면 상승 랠리가 나올 테니까요. 하지만…….”

한진영은 살짝 고개를 틀어 홍대민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요? 뭐가 말씀입니까?”

“사람들이 제정신을 찾는데 말입니다.”

“제정신을…… 찾는데?”

홍대민이 한진영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해 가만히 한진영을 바라봤지만, 한진영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나 홍대민이 한진영의 말을 이해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연이어 나오는 회사채의 이율과 CP의 이율에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북양그룹으로 촉발된 회사채와 CP 시장의 인기에 올라타 한몫 잡아보겠다는 기업들이 많다지만 이렇게까지 차이 나는 상품이 연달아 나올 수 있냐는 느낌을 받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현재가 아닌 과거의 상품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현재의 기업들이 북양그룹의 인기에 한몫을 챙기려 한 것이 아니라 북양그룹의 케이스가 특별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북양그룹 전에는 이율이 모두 3%대를 유지했었다.

몇몇 기업들이 5%대 이상의 이율을 보장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들의 경우에는 모두 신용등급이 낮은 것들로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기업들의 회사채였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에 하나둘 정신을 차렸다.

“혹시 뭔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야?”

“아니면 북양그룹이 문제가 있나?”

“그런데 상품을 판 증권사에서는 아무런 말이 없었잖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왜 다른 곳은 북양그룹만큼의 이율을 보장하지 않느냐며 화를 내던 사람들이 지금은 걱정하는 말을 하기 바빴다.

“그런데 너는 어디서 가입했냐?”

“나는…… 북양증권. 너는?”

“나도 북양증권.”

“북양증권은…… 북양그룹 계열사잖아. 설마 한통속으로…….”

“에이 설마…….”

아닐 거라고 고개를 젓던 이도, 혹시 모르지 않냐며 묻는 이도, 옆에서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이도 모두 같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혹시?”

불안은 점점 커졌다.

그러나 어쨌든 다른 곳도 아니라 북양그룹이라는 것에 사람들은 그래도 희망을 품은 채 시장을 바라봤다.

이런 분위기의 변화에 북양그룹 그중에서도 북양증권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들은 보도자료를 통해 북양그룹은 지배 구조상 한 곳이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지는 시스템이라며 이번 회사채와 CP의 발행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편 것이었다.

즉, 1조 7,000억이라는 돈이 큰돈이기는 하지만 그 돈으로 인해 그룹 전체가 날아갈 수준은 안 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그들은 방송사에 끊임없이 로비하여 일각에서 불거지고 있는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 속에서도 몇몇 곳은 현실을 직시하는 이야기를 하는 곳이 나타났다.

“최 차장님. 최근에 북양그룹 이야기가 시장에서 많이 거론되고 있는데요. 최 차장님의 판단은 어떻습니까? 많은 시청자 여러분들이 최 차장님의 판단을 많이 궁금해하고 계십니다.”

화면 속의 아나운서는 앞에 앉아있는 최석영을 향해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북양그룹 이야기를 꺼냈다.

최석영은 아나운서의 질문에 차분한 표정으로 잠시 앞에 놓인 서류들을 내려다본 후 침울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회사채 이율 12%. 참……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많이 안 좋은 겁니까?”

최석영의 표정에서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아나운서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물었다.

최석영은 고개를 들어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도 이 정도의 회사채 이율은 보지 못했습니다. 과거에는 그랬었다는 이야기를 전설처럼 선배님들께 듣기는 했지만…… 물론, 당장 내일모레 망할지도 모르는 회사가 아니라 일반적인 회사에서의 10%가 넘는 이율을 말씀드린 겁니다.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일반적이지 않은 정도가 아닙니다. 이런 회사채는 평범한 상황에서는 나올 수가 없는 것들입니다.”

최석영의 강도 높은 말에 아나운서는 잠시 카메라 뒤편에 서 있는 PD의 눈치를 살폈다.

자기가 산 물건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들은 5만 명의 북양그룹 투자자들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걱정하는 아나운서와 달리 PD는 지금 최석영의 발언에 기쁨을 숨기지 못했다.

“역시 최 차장님이네. 좋아. 클로즈업해서 화난 듯한 최 차장님의 얼굴을 잘 찍어.”

PD는 카메라에 지시를 내린 후 아나운서에게 손짓하여 어서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라는 신호를 줬다.

아나운서는 PD의 지시에 걱정한 모습 그대로 최석영에게 다음 멘트를 건넸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북양그룹의 이번 회사채와 CP는 문제가 많은 상품이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단호하게 말한 최석영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며 말했다.

“회사채는 일반적으로 개인 투자자들에게 잘 나오지 않는 상품입니다. 대부분 기관과 일부 대형투자자들에게만 쇼케이스를 열어 팔고는 하는 상품이지요. 아나운서님. 북양그룹 전에 회사채 상품을 본 적이 있으십니까?”

“아니요. 저도 간접적으로 회사채에 투자하는 상품을 본 적은 있어도 지금처럼 직접적으로 회사채를 사는 경우는 처음입니다.”

“맞습니다. 회사채도 그런데 어음은 어떻습니까? 기업 간 거래가 아닌 개인들에게 기업의 어음이 상품으로 나온 경우를 본 적이 있으십니까?”

“없습니다. 일반인에게 상품으로 나온다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최석영은 아나운서에게 잘 대답했다는 눈짓을 건네고는 다시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괜찮은 것들이라면 개인 투자자가 아니라 기관에서 다 쓸어갔을 겁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이게 왜 개인 투자자들에게까지 흘러 내려왔는지를 잘 살펴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북양증권에서는 북양그룹의 지배구조 현황을 이야기하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주장하던데요?”

“그러겠지요. 이상이 있다고 그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북양증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거짓말?”

최석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표현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아나운서는 최석영의 말에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PD를 다시 돌아봤다.

여기서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엄청난 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왜 나를 봐? 어서. 어서 물어봐. 빨리.”

PD는 왜 멈추고 자기를 바라보고 있냐면서 연신 손짓해댔다.

그리고 카메라 감독에게 다시 지시했다.

“화면에 꽉 차게 잡아. 최 차장님의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말고…….”

아나운서는 신나 하는 PD를 보고 살짝 눈을 감았다 뜬 뒤 최석영에게 물었다.

“거짓말이 아니라면 무엇이죠?”

최석영은 아나운서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자기를 더욱 잘 찍도록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사기입니다.”

“사기요?”

“네. 사기 말입니다. 지금 북양그룹은 개인 투자자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겁니다. 12%의 이율? 이건 금방이라도 망하는 회사가 아니면 내놓지 못하는 이율입니다. 그리고 괜찮은 회사라면 기관들과 외국인 들이 먼저 쓸어갔을 겁니다. 12%가 아니라 반 토막인 6%만 돼도 수천억의 자금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갔을 겁니다.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원하는 만큼 몇 번이고 들어갔을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들어온 자금은 회사채를 발행한 곳에서도 관리하기가 더 편합니다. 혹시 있을지 모르는 만기 연장과 같은 문제를 이야기하기에 여러 사람이 있는 것보다 소수의 사람이 있는 편이 이야기하기 좋으니까요. 하지만…….”

최석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카메라를 노려봤다.

PD는 그렇게 잡힌 최석영의 모습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캬~ 죽인다. 이번에도 대박 치겠어. 완전 배우 뺨치네 뺨쳐. 하하하.”

PD의 감탄사가 들리기라도 한 듯이 최석영은 강렬한 시선으로 카메라를 보는 것을 멈추지 않은 채 마무리 말을 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대박은 없습니다. 지금 북양그룹의 일로 회사채 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랐는데 생각해보십시오. 왜 개인들만 뜨겁게 달아올랐는지, 왜 개인들만 회사채를 매입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지, 왜 저들은 괜찮다고 이야기하기만 할 뿐 회사의 실적발표에 소극적인지 말입니다. 지금은 냉정하게 생각할 때입니다.”

최석영의 마무리 말이 끝난 뒤 아나운서와 짧은 대화를 나누고 방송은 막을 내렸다.

PD는 기쁨에 겨운 표정을 짓고 즐거워했다.

“오늘 방송도 죽이게 나왔다.”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대경TV에 메인PD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PD는 방송이 나간 뒤 일어날 이슈에 벌써 즐거운 모습이었다.

그런 PD에게 최석영과 인사를 나눈 아나운서가 찾아왔다.

“PD님. 괜찮을까요?”

“어? 뭐가?”

“발언이 너무 쎄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좋아하지. 뭐가 걱정이야?”

어서 편집실에 돌아가 더욱 임팩트 있는 모습을 따내려던 PD는 이상한 소리를 한다며 아나운서를 쳐다봤다.

그러나 아나운서의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이런 분위기에서 조금 전 방송이 나간다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특히 투자를 한 사람들은 더더욱 뭐라고 하겠어요?”

“그건 개인 의견이라고 밑에 자막 넣어주면 돼. 이 정도 의견도 내지 못해? 그리고 언제는 이 정도 의견을 안 낸 적이 있었어? 왜 오늘따라 유난이야?”

“그게 아니라…… 만약 이상이 없는 거라면요? 북양그룹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면…….”

“하다 하다 별 쓸데없는 고민을 다 하고 있다.”

PD는 더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몸을 돌리며 말했다.

“최 차장님이 이야기한 일 중에 안 일어난 일이 있었어?”

“그건 맞는 말이지만…….”

“맞는 말이고 아니고를 떠나서 회사가 왜 북양증권이 제시한 제안을 거절하고 최 차장님에게 이번 일을 거침없이 이야기해달라고 했겠어? 회사도 그만큼 최 차장님을 믿고 있다는 뜻이야. 두고 봐. 분명 최 차장님의 말대로 뭔가 사고가 크게 제대로 터질 테니까. 그렇게 되면 지난번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방송이 예언하는 방송이 되는 거야. 우리는 더 큰 인기를 얻게 될 거라고.”

PD는 그날을 떠올리자 기쁨이 몰아친 것인지 천장을 바라보고 크게 웃었다.

그런 PD를 곁에서 본 아나운서는 발을 동동 굴렀다.

‘역시 잘못된 거였어.’

최석영의 이야기를 듣고 PD의 설명을 듣자 무언가 잘못됐음이 빠르게 아나운서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나운서는 내일 당장 북양증권으로 달려가 수수료를 물더라도 계좌를 해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처음 최석영의 말이 전파를 타고 송출되었을 때는 대경TV에 쏟아질 듯이 불만 전화가 들어왔다.

북양그룹 상품에 5만 명이 넘는 투자자들이 몰렸던 만큼 최석영의 말에 반발하는 사람들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세이지 자산운용으로도 불만의 목소리가 폭주했다.

그리고 그런 불만의 목소리 중에는 무시하고 넘어가지 못할 사람도 끼어 있었다.

“어떻게 할까요?”

조지훈은 곤란한 모습으로 한진영 앞에 전화기를 들고 서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전화 못 받는다고 해.”

“정말이십니까?”

“그래. 그렇게 말해도 돼.”

“정말요?”

“얘가 왜 이래? 괜찮아.”

조지훈은 한진영의 괜찮다는 말에도 우물쭈물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조지훈이 이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전화를 걸어 한진영을 찾는 사람이 다름 아닌 안혁규였기 때문이다.

안혁규는 며칠 전부터 하루가 멀다고 한진영이 있는 세이지 자산운용에 연락을 해왔다.

어떤 날은 하루에 두 번이나 전화하여 한진영을 찾고는 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때마다 없다는 말로 안혁규의 전화를 피했었다.

조지훈은 오늘마저 피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전화기를 들어 올리고는 한진영에게 말했다.

“대표님. 오늘도 받지 않으시면 안 의원이 이곳으로 찾아오겠답니다.”

“그러시라고 해. 그럼 난 자리를 피하면 되니까. 우리 건물은 게이트에 차 들어오면 그 차가 어디 차인지 다 알 수 있잖아. 맞지?”

“네. 맞습니다. 방문 이력이 남아있으면 알 수 있습니다.”

“그래. 그럼 차가 안으로 들어오면 위층이나 다른 층으로 도망가면 되지. 괜찮아. 신경 쓰지 마.”

“대표님. 그렇게까지 하시느니 차라리 연락받으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한진영이 조지훈을 향해 고개를 흔들었다.

“아직 뭘 모르네. 조 비서.”

“네.”

“내가 안 의원 전화를 받고 뭐라고 할까? 북양그룹은 위험하니 투자금을 빼라고 할까? 아니면 괜찮다고 거짓말을 해야 할까?”

“이미 방송을 통해 우리 의견은 다 나간 상태 아닙니까?”

“그렇지. 우리가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만천하에 드러난 상태지. 그런데 왜 안 의원이 계속 전화를 하는 걸까? 그냥 우리를 믿는다면 투자금을 빼면 될 일인데. 만약 우리를 믿지 않는다면 전화할 이유가 없고…….”

한진영은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조지훈에게 그 이유를 이야기했다.

“확인받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그리고 잘못됐을 때 핑계를 댈 사람이 필요하기도 하고…….”

“그럼 안 의원은 투자금을 빼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그래야 대표님의 계획대로 진행되는 걸 텐데 말입니다.”

“안 빼지.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한 죽어도 안 빼. 그리고 뺄 사람이었으면 아까 말한 대로 묻기도 전에 진작에 뺐을 거야. 걱정하지 마.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까 그때까지만 참아.”

“뭐가 오래 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이런 식으로 나한테 연락해 오는 거 말이야. 조만간 나한테 연락할 정신도 없을 만큼 바쁘게 될 테니까.”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들고 있던 전화기를 들어 올렸다.

“네. 대표님께서 지금 자리에 안 계시네요. 조금 전까지는 계셨는데 집안에 급한 일이 있다고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대표님의 어머님께서…….”

조지훈은 능숙하게 거짓말을 하며 한진영의 사무실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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