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화 상징적인 행위
끊임없이 오를 것만 같던 북양그룹의 주가가 하나둘 꺾여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북양그룹의 주가를 맨 앞에 서서 이끌었던 북양시멘트조차 상승세를 멈춘 채 고개를 조금씩 수그렸다.
이런 변화의 이유는 북양그룹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북양증권이 주장하는 북양그룹의 기업지배구조도 먹히지 않기 시작했다.
또한, 북양그룹의 부채 규모가 1,700%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불안감이 더욱 커졌다.
북양그룹은 회사채와 CP를 발행하기 전까지 사업 부문 매각과 구조조정을 진행했다고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적자 수준이 확대되었고 오너의 결정에 따라 구조조정이 중단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사람들은 교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적자의 확대와 구조조정 중단 그리고 부채 규모까지 모든 것을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의 불안에 결정타를 날리는 발표가 시장을 뒤흔들었다.
북양시멘트 신용등급 강등.
건전하다고 알려졌으며 북양그룹의 핵심 기업이라는 북양시멘트의 신용등급이 갑작스럽게 투기 등급까지 하향되어 발표된 것이었다.
이유는 모든 사람의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유동성 위기 때문으로 밝혀졌다.
1조 7,000억이라는 자금이 흘러 들어갔지만 북양그룹의 기운 사세를 다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며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두워지고 말았다.
심지어 회사채와 CP 발행 전에 이미 법정관리의 수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는 사실까지 밝혀지며 투자자들을 패닉으로 몰아갔다.
“어떻게 됐어?”
홍대민이 시세 현황판을 응시한 채로 물었다.
홍대민과 함께 여러 운용팀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수행한 조정실의 부실장을 맡고 있는 최수찬이 홍대민의 질문에 대답했다.
“현재 북양시멘트와 북양제과는 하한가에 잠겼습니다. 북양건설과 북양레저 등도 하한가에서 두세 호가 위에 자리하고 있을 뿐 시간이 흐르면 하한가에 들어갈 것으로 보입니다.”
“한 방에 무너졌네.”
“네. 한 방이었습니다.”
최수찬도 홍대민과 마찬가지로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현황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재차 상승세를 노리던 북양그룹주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곤두박질친 것도 모자라 한순간에 상장폐지를 걱정해야 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상폐까지 갈까요?”
최수찬이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홍대민에게 물었다.
홍대민은 시세판을 확인하던 것을 멈추고 최수찬을 돌아본 채로 대답했다.
“가지 않겠어?”
“그럼 어떻게 할까요? 골치 아파지기 전에 하한가에서 물량을 정리할까요?”
“아니야. 살아날 일이 없는 놈이니 그냥 포지션 잡고 더 지켜보자고 하셨어.”
“대표님께서요?”
“그래.”
홍대민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최근 전략실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보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놀라고 있거든. 역시 사람은 기계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말이야. 그런데 지금처럼 대표님의 모습을 보면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이걸 누가 생각할 수 있었겠어?”
“그러게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프로그램에서도 잡아내지 못하던 거잖아요. 아무리 데이터가 오염되어 제대로 된 결과를 뽑아내지 못했다고 하지만 그래도 최악의 파라미터를 넣었을 때는 엇비슷하게 나와야 하는 거 아니었나요? 그런데 최악의 상황에서도 프로그램은 북양그룹에 상태를 중립으로 보기만 했잖아요.”
“그래. 이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게 모두의 생각이었지. 한 사람만 빼고…….”
홍대민은 슬쩍 문 쪽을 돌아봤다.
한진영 이야기를 해서 그런 것인지 꼭 한진영이 등장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대민에게 신기라도 내려온 것인지 정말로 한진영이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홍대민은 한진영이 눈에 들어오자 급히 한진영을 향해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곁에 있는 최수찬까지 인사하자 한진영은 웃으며 손을 들어 두 사람을 향해 반갑게 인사한 후 물었다.
“어떻습니까?”
“오늘 하한가 걸려있는 모습으로 보아 내일과 모레까지도 연속하한가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겠지요. 법정관리가 거의 기정사실로 되어가고 있으니까요.”
“확정된 겁니까?”
최수찬이 놀란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그러자 조지훈이 한진영을 대신하여 대답했다.
“조금 전 법정관리 검토에 들어갔다는 공식 이야기를 전달받고 오는 길입니다. 검토 후에 지정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가 않으니까요. 빨리빨리 진행하는 것이 피해를 최소화하는 길이라고 판단할 겁니다.”
“정말…… 법정관리에 들어가는군요.”
최수찬이 놀란 얼굴 그대로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최후까지 남아 발악을 하던 북양그룹 관련주들이 모두 하한가에 돌입한 모습이 들어왔다.
최수찬은 이제 북양그룹이란 이름이 세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무너진 뒤에 다시 살아난 경우가 손에 꼽혔기 때문이다.
최수찬이 생각에 잠긴 사이 한진영은 홍대민을 향해 물었다.
“우리가 북양그룹주들 매도 때린 게 얼마나 되죠?”
한진영의 질문에 홍대민은 미리 준비하고 있던 대답을 하기 시작했다.
“북양시멘트 30만 주를 비롯하여 북양그룹 관련주에 총 200억 치의 공매도가 들어가 있는 상태입니다.”
“조건이 까다로웠나 봅니다? 200억 치밖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보니 말입니다.”
“네. 아무래도 공매도를 칠 때의 규제가 빡빡한 상태라서요. 그래서 대차거래 등을 이용하기도 했지만, 만족스러울 만큼의 물량을 싣지는 못했습니다.”
“괜찮습니다. 북양그룹을 때리는 게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었으니까요.”
“그럼…….”
홍대민이 돈 때문이 아니라는 한진영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홍대민에서 시선을 돌려 현황판을 바라보고 말했다.
“상징적인 행위였으니까요.”
“상징적이요? 어떤 의미의 상징적인 행위라는 말씀이십니까?”
“2차 펀드 판매를 위한 공매도였습니다.”
한진영은 웃는 얼굴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주식 운용 팀의 자리도 넉넉히 마련됐고, 트레이딩에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도 대부분 확보가 된 상태이니 이제 본격적으로 움직여야죠.”
“그럼 바로 펀드 판매를 시작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래야겠죠? 지금이 들어가기 딱 알맞은 타이밍이니까요.”
한진영이 시세 현황판을 향해 턱짓했다.
“북양그룹으로 인해 연약해진 시장이 한번 크게 출렁일 겁니다. 하지만 3차 양적완화는 우리와는 상관없이 시행될 테니 오히려 시장이 깊게 빠질수록 우리에게는 기회가 아니겠습니까? 이런 때에 한 푼이라도 움직일 돈이 많다면 도움이 될 테니까요.”
“아~”
홍대민은 그제야 한진영의 의도를 알게 됐다.
볼륨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굳이 공매도와 대차거래를 들어가는 이유가 궁금했던 홍대민이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2차 펀드 판매의 홍보 효과를 노리고 들어갔다는 사실에 홍대민과 곁에 있던 최수찬 모두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한진영은 홍보를 노리는 순간에도 돈을 벌고 있던 것이었다.
“200억. 크지 않은 돈이니 법정관리 확정되고 정리매매 들어갈 때 청산하도록 하죠. 묶여 있어도 상관이 없으니 말입니다.”
“네. 알겠습니다.”
“우리는 그것보다 이제 슬슬 물량 채우는 속도를 높여가도록 하죠. 그래야 2차 펀드 투자금이 들어왔을 때 2차 펀드 금액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테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한진영은 지시를 내리고 다시 몸을 돌렸다.
충분히 홍대민이 알아들을 만큼 이야기를 했으니 나머지는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기. 대표님.”
짧게 인사를 건네고 돌아가려는 한진영을 홍대민이 잡았다.
“왜 그러십니까?”
“이번에는 얼마나 모집하려고 하시나요? 지난번과 같게 하실 생각입니까?”
“아니요.”
“그럼…….”
한진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10조까지 증액하여 출시하고 싶지만…….”
“10조요?”
홍대민이 화들짝 놀라자 한진영이 손을 흔들며 홍대민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농담입니다. 농담.”
농담이라는 말에 겨우 진정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홍대민을 보고는 한진영은 웃으며 이야기했다.
“제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렇게 확장했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운용 능력이 거기까지 올라오지 못했다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먹지도 못하는 거 먹겠다고 입 벌리고 덤비는 놈은 아니니까요.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우리가 품을 수 있는 수준은…… 1조쯤? 그 정도만 해볼 생각입니다.”
“대표님. 1조도 적은 돈이 아닌데 괜찮을까요?”
홍대민은 말을 하고 깜짝 놀라 변명했다.
한진영의 결정에 괜한 의심을 보이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아. 물론 지난번 5,000억이 마감되는 속도로 봤을 때 1조도 마감하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는 거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걱정을 하는 건…….”
“알고 있습니다.”
한진영이 홍대민의 이야기를 전부 듣지 않고도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홍 실장님이 무얼 걱정하시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투자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이미 5,000억이나 투자를 한 상태이고 아직 그 펀드의 성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1조라는 돈을 이렇게 빨리 유치하는 게 가능할까 걱정이 되는 것이죠? 1조라는 돈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니까요.”
“네. 그렇습니다.”
“그래서 공매도를 친 겁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앞서 나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요?”
“그렇지요. 그리고 시장에서 1조를 모으는 것쯤은 지금은 걱정할 단계가 아닙니다.”
마치 무언가를 알고 있는 듯한 한진영의 모습에 궁금증이 솟아난 홍대민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홍대민 너머에 보이는 현황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10조쯤을 시장에 뱉어낼 존재가 있지 않습니까? 시장에 10조가 쏟아져 나오는데 1조쯤이야 무슨 대수겠습니까?”
“10조를 뱉어낼 존재가 있다고요?”
홍대민이 고개를 돌려 현황판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조금 전까지 확인하느라 띄워놓은 북양그룹 관련주들이 현황판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홍대민은 돈이 없어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는 회사들이 무슨 10조를 뱉어낸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진영이 말한 이상 그렇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살폈다.
그렇게 다시 살핀 홍대민의 눈에 북양증권이 눈에 들어왔다.
***
법정관리 검토 소식이 전해지며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져들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부리나케 북양증권을 찾은 사람들은 북양시멘트에 투자한 상품을 해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허탈해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정부에서는 지금의 사태를 심각하게 인지했다.
피해 인원과 피해 금액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도와줄 방법은 없었다.
그들을 위해 망할 회사를 살려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자금을 투입해서라도 회사를 살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감자를 비롯하여 채무 조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기에 투자자들을 살려줄 방법이 존재하지는 않았다.
있다면 예금자보호법에 명시되어 있는 5,000만 원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것도 신청한 뒤 언제 나온다는 보장이 없었기 때문에 투자자들은 가진 돈을 모두 날리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다.
북양그룹 투자자들은 이미 회사채와 CP 발행 전에 법정관리를 피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알았던 오너 및 책임자들의 강력한 처벌을 원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을 파악하여 투자자들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탄원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렇게 억울함을 풀더라도 투자금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1조 7,000억이라는 돈이 몇 년이나 몇 달에 걸쳐 사라지는 것도 아니라 순식간에 사라진 것에 투자자를 비롯하여 모든 사람은 황당하게 지금의 사태를 바라봤다.
북양그룹 사태는 주식시장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북양그룹주들이 줄줄이 하한가를 기록한 것은 물론이고 관련 기업들조차 큰 폭의 하락을 보였기 때문이다.
북양시멘트에서 자재를 공급받는 건설회사들은 물론이고 북양그룹의 오너 일가와 친인척 관계에 놓여있는 기업 그리고 같은 업종에서 사업을 영위하는 기업까지 폭넓은 기업들이 타격을 받고 하락을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가뜩이나 시장은 지속된 하락세에 허약한 체력을 보여주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하방 압력을 크게 받을만한 일이 벌어졌으니 너도나도 물량을 던져대며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오길 바랐다.
소나기는 우선 피하고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시장이 여러 가지로 안 좋은 분위기로 흘러가는 와중에서도 세이지는 언제나 돋보였다.
북양그룹을 말로만 안 좋게 본 것이 아니라 직접 공매도와 대차거래를 통해 하방에 힘을 실었다는 사실이 전해진 것이었다.
사람들은 앞뒤가 모두 똑같은 세이지의 모습에 감탄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몰래 숨어서 매도를 친 것이 아니라 앞에 나서서 직접 이야기를 하고 포지션을 잡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더욱 세이지의 평가를 높게 했다.
맹목적으로 북양그룹을 옹호하던 이들조차 세이지의 말을 듣지 않은 자신을 탓하기에 이르렀다.
“최 차장님.”
“네.”
아나운서는 감격한 표정으로 최석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왜 그러시죠?”
아나운서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최석영을 향해 말했다.
“지난 방송에서 콕 집어 사기라고 말씀해주신 덕분에…….”
“덕분이라고 말씀하시는 것 보니 다행으로 여길만한 일이 있었나 봅니다.”
최석영의 말에 아나운서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덕분에 제가 살았습니다.”
“아나운서님이요? 어떻게 사셨다는 말씀이시죠?”
“이런 말씀을 방송에서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저도 그 상품에 가입했었습니다. 그러다 최 차장님의 말씀을 듣고 방송이 끝나자마자 북양증권에 달려가 해지했습니다.”
“아~ 다행입니다. 제 말이 도움이 되었군요.”
“정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난 방송을 보고 저처럼 해지하신 많은 시청자분이 감사의 인사를 방송국에 전해오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정확하게 말씀해주셔서 얼마나 많은 분을 구하셨는지 모르실 겁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아나운서는 감동한 눈으로 최석영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