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296화 (296/650)

296화 잘 어울리는 한 쌍

“어서 오세요.”

생글생글 웃는 백화점 직원의 안내를 따라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올라간 한진영과 이성우는 야외 테라스로 향했다.

평소에는 고객들의 휴식 장소로 이용되는 야외 테라스는 오늘은 특별히 VIP들을 위해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꽃장식을 비롯하여 길게 뻗은 런웨이 그리고 주변을 밝혀주는 밝은 조명까지 밤의 모습이 낮에 보여주는 백화점의 화려함 이상이었다.

“여기요.”

모여있는 사람들 속에서 이제 막 테라스에 도착한 한진영과 이성우를 향해 누군가가 손을 들어 올렸다.

손을 들어 올린 여자는 다른 두 명의 여자보다 머리가 하나쯤은 커 보였다.

이성우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저기 있네.”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눈을 붉히고는 손을 든 사람이 있는 곳을 향해 걸어갔다.

보통 여자보다 10cm는 더 커 보이는 여자는 덩치까지도 웬만한 남자 못지않게 장대했다.

그리고 얼굴 또한 사각형으로 힘이 넘치게 생긴 것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위압감이 들게 만드는 외모였다.

그녀는 이제야 도착한 이성우를 바라보고 큰소리로 나무랐다.

“왜 이제 와요?”

여자의 말에 이성우는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친구랑 같이 오느라고요.”

“친구요?”

서준일보의 둘째이자 맏딸인 문서영은 이성우 곁에 있는 한진영을 위아래로 살폈다.

한진영은 그런 여자를 향해 먼저 자기소개를 건넸다.

“처음 뵙겠습니다. 한진영이라고 합니다.”

“한진영 씨요?”

문서영은 눈썹을 찌푸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저한테 유일한 친구가 있다고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잠시만요. 그거 말고요. 그거 말고도 들은 기억이 있는 것 같아요.”

문서영은 이성우의 말을 가로막은 문서영은 그렇게 잠시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무언가를 떠올렸는지 손바닥을 치고 한진영을 다시 살폈다.

“세이지 자산운용의 한진영?”

“네. 제가 그 한진영입니다.”

“아~ 당신이 그 유명한 한진영이었군요.”

문서영은 한진영을 다시 한번 위아래로 살피며 말했다.

“개천에서 용 났다는 사람이 당신이군요?”

“서영 씨.”

이성우는 문서영의 말에 깜짝 놀라 한진영을 살폈다.

누가 들어도 기분 나빠할 만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문서영의 말에도 눈썹 하나 까딱이지 않았다.

“네. 맞습니다. 제가 개천에서 난 용입니다. 그래도 저를 용이라고 불러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생각보다 더 능글맞으시네요.”

“제가 하는 일이 그런 일이니까요.”

한진영의 말에 문서영은 코웃음을 치더니 이성우를 잡아끌었다.

“성우 씨가 친구를 소개했으니 저도 제 친구를 소개할게요.”

“친구요? 저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그러게 누가 먼저 친구 소개하래요? 어서 와요.”

친구를 소개하는 것조차 싸움으로 생각하는 것인지 문서영은 자기가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성우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성우는 문서영의 손길을 피하지 못하고 끌려가며 한진영을 향해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한진영은 이성우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주변을 살피며 이곳에 온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살폈다.

테라스에 자리한 사람들은 숫자가 많지 않았다.

오십 명을 채 넘지 않는 숫자로 테라스에 준비한 여러 가지 것들을 생각했을 때 여기 있는 사람을 위해 이렇게까지 준비하는 것이 맞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한진영은 여기 있는 사람 하나하나의 소비수준이 웬만한 고객들 100명을 합친 것보다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백화점은 특별대우를 하기 위해 오늘과 같은 자리를 마련한 것으로 보였고, 사람들은 이렇게 특별하게 마련된 자리에서 특별한 소비를 할 준비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진영은 사람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다 한쪽 끝에 자리한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을 터트렸다.

‘여기서도 만나는 걸 보면 운명이라고 해야 하나? 어이가 없네.’

김교철이 부인과 함께 한쪽 끝에 자리 잡고 앉아 런웨이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김교철도 한진영의 눈빛을 느꼈는지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진영을 발견하고는 재미있다는 듯이 눈웃음을 지은 김교철은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리고 번거롭게 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을 전하며 편하게 놀다 가라고 손짓으로 한진영에게 알렸다.

한진영은 김교철의 배려에 감사의 인사를 다시 한번 하고는 몸을 돌려 이성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문서영이 한창 이성우를 자기 친구들에게 인사시키고 있었다.

이성우는 지루한 듯 혹은 불편한 듯 자리를 지키고 있다가 자기에게 다가오는 한진영을 발견하고는 활짝 웃었다.

“제 친구 만나보지 못하셨죠? 진영아. 여기. 빨리 와.”

한진영을 애타게 찾은 이성우는 한진영에게 다가가 팔목을 잡아당기고는 문서영의 친구들을 향해 한진영을 소개했다.

“제 친구입니다. 이 친구로 말할 것 같으면…….”

이성우가 문서영의 친구들 앞에서 한진영을 장황하게 소개했다.

자기에게 쏠린 관심을 한진영에게 돌리겠다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그녀들의 관심은 한진영이라는 이름이 나온 순간 차게 식어버리고 말았다.

문서영과 마찬가지로 그녀들도 한진영이라는 존재가 개천에서 난 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생적으로 다른 피를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그녀들에게 한진영은 급이 맞지 않는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남자로서 관심이 없는 것이지, 한진영이 하는 일까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북양증권이 뱅크런이 나온 덕분에 많이 이득 좀 보셨겠어요?”

“하긴. 거기서 뱅크런으로 나온 물량만 10조라고 그랬나? 북양증권 CMA에 들어있던 돈에 MMF 그리고 북양증권 계좌로 담겨있던 주식과 증거금까지 모조리 다 튀어나왔잖아. 그거 진정시킨다고 정부에서 문제없다고 발표했는데도 사람들은 돈 빼기 바빴고…….”

“나도 뺐어. 아무리 괜찮다고 정부에서 말하면 뭐 하냐? 당장 북양그룹이 무너지게 생겼는데 북양증권이라고 괜찮겠어?”

이성우는 서슴없이 한진영이 하는 일을 읊어대는 그녀들을 보고 놀라운 듯 바라봤다.

하지만 한진영은 이런 그녀들의 모습 또한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집안에서 내놓은 자식의 경우를 제외하고 어린 나이 때부터 차근차근 교육받아 이 자리까지 올라온 사람에게는 이런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들에게 시장의 흐름은 드라마를 보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도움은 받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지요.”

한진영은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들의 이야기를 받았다.

“뱅크런을 통해 북양증권에서 튀어나온 돈은 10조였지만 저희가 거둬들인 돈은 1조니까요. 그리고 북양증권의 뱅크런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1조 물량을 받아내는 것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하긴 그렇겠네요. 마침 북양그룹주를 공매도 쳤다는 소문이 돌면서 세이지 자산운용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올라갔으니까요.”

“맞아요. 원래도 관심을 많이 받았었는데 그 이야기와 함께 ‘핫’하게 떠오르기는 했죠.”

한진영은 맞장구치는 그녀들을 살피고 가볍게 웃었다.

“뭐 덕분에 수월하게 고객을 유치할 수는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1조라는 돈이 적은 돈은 아니니까요.”

“저도 들어갔어요.”

“영광입니다.”

한진영이 가볍게 몸까지 수그리며 감사의 인사를 올리자 그녀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트렸다.

“호호호.”

순식간에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남자로서 한진영에게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말이 통하는 상대로서는 한진영이 괜찮다고 느껴진 그녀들이었다.

“이제 곧 시작할 것 같으니까 앉을까요?”

문서영은 직원들이 런웨이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며 일행들을 향해 앉을 것을 권했다.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일 출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잠이 든 시간에 자기들만이 즐기는 쇼를 기다렸다.

런웨이 좌우로 사람들이 자리하자 쇼가 시작됐다.

보통의 패션쇼와는 다른 모습의 쇼였다.

런웨이 끝까지 걸어간 모델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고객들 사이로 다가간 것이었다.

관심을 보이는 이들에게 입고 있는 것을 보여주며 바로 눈앞에서 입었을 때의 모습을 연출했다.

그리고 이어서 쇼의 진행을 맡은 이가 상품을 소개했다.

“크리스찬 디올에서 가을 시즌 한정으로 내놓은 코트입니다. 가격은 1,800만 원으로 현재 국내에 3점만 들어와 있는 상태입니다.”

방송에 자주 나오는 모델이 지금은 고객 앞에서 상품을 걸쳐보는 마네킹이 되어 있었다.

고객들 또한 이런 일이 익숙했던지 오히려 모델에게 포즈를 이리저리 요구하며 옷 상태를 확인했다.

그리고 이어진 낙찰.

“3벌 다 주세요.”

3벌을 다 입겠다는 뜻은 아니었을 게 분명했다.

그저 다른 사람도 이 옷을 입는 게 싫어서 국내에 들어온 옷을 다 산 것처럼 보였다.

이런 일이 흔한 것인지 누구도 3벌 모두 사는 것을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는 것이 맞는다는 표정으로 다음 쇼가 시작될 것을 기다릴 뿐이었다.

“이번에 소개해드릴 상품은 남성용 구두입니다.”

코트를 입고 나왔던 모델이 안으로 사라지자 진행자는 다음 쇼를 설명했다.

“이태리 수제 구두로 유명한 실바노 라탄지는 내피까지 악어가죽을 사용하는 높은 퀄리티의 구두입니다. 가격은 1,200만 원부터 시작하며 원하는 모양에 따라 옵션이 붙는다는 점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여성용 남성용 할 것 없이 고객들의 입맞춤에 맞을 만한 것들이 올라왔다.

그리고 그걸 본 사람들은 구매하기를 꺼리지 않았다.

“이건 내가 사지.”

모델이 런웨이 중간까지 오지도 않았는데 노년의 신사가 주문을 넣었다.

미리 마음을 먹고 이곳에 온 것으로 보일 정도로 주문은 거침이 없었다.

지금의 모습 또한 모델과 진행자에게는 특이한 일이 아니었던지 모델은 바로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고 진행자는 다음 쇼를 준비했다.

보석류 같은 경우에는 모델이 하고 나온 것 그대로 고객에게 넘어가기도 했다.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장신구들은 수억을 호가함에도 불구하고 구매자는 거리낌 없이 받아 걸쳤다.

그리고 함께 온 이들과 새로 산 물건을 살피며 오늘 있는 쇼를 즐기는 것이 그들에게는 이런 돈이 아무렇지 않은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이런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다 이성우와 나란히 앉아있는 문서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두 분의 결혼을 축하하는 의미로 제가 선물 하나 하도록 하겠습니다.”

“선물이요?”

문서영은 한진영의 말에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다음에 나올 것을 선물로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에 나올 게 무엇인데요?”

“글쎄요? 저도 모르지만 두 분의 결혼 축하 선물로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한진영의 말이 마쳤을 때 쇼 진행자는 다음 물건을 소개했다.

“다음은 오늘 있을 쇼의 메인이벤트라고 할 수 있는 상품입니다. 에르메르스 수석 디자이너로 유명한 장 폴 고티에 에르메스 컬렉션입니다. 드레스와 구두 그리고 가방까지 한 세트로 이루어진 컬렉션은 오직 한 세트만이 만들어져 들어왔습니다. 가격은 세트 기준으로 9,000만 원입니다. 개별 판매는 하지 않으며 오직 세트로만 판매한다는 것을 이해해주십시오.”

소개가 나오자 한진영은 문서영에게 눈으로 괜찮으냐는 뜻을 전했다.

문서영은 마음에 든다는 표정을 지었고 한진영은 저게 곧 당신 것이 된다는 뜻을 손짓으로 알렸다.

한진영이 문서영에게 선물을 하는 이유는 그녀가 이성우의 짝으로 만족스러워 보였기 때문이다.

소문대로 까다롭고 자기중심적인 성격으로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그 정도는 그녀가 가진 배경을 생각했을 때 오히려 평범하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서준일보의 맏딸로 부족한 것 없이 태어나 살아온 그녀에게 일반인과 같은 수수함을 강요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이 정도면 어울려.’

이성우가 꼼짝하지 못하고 문서영은 그런 이성우를 잡고 있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았다.

천생연분까지는 아니더라도 잘 어울리는 한 쌍처럼 보이는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이렇게 잘 어울리는 한 쌍을 축복하는 의미에서 선물을 하려 했다.

그리고 이 선물을 통해 이성우를 잘 부탁한다는 마음을 전달하려 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고맙다는 눈빛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이성우의 등을 손으로 두드리고 손을 들어 구매 의사를 표했다.

“이번 것은 제가 구매하겠습니다.”

그때 한진영과 마찬가지로 한쪽에 앉아있던 중년의 여인이 손을 들었다.

“그거 내가 살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게 느껴질 만한 외모의 여자였다.

화장은 얼마나 두껍고 빨갛게 했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천박함이 느껴졌다.

그런 여자가 한진영과 함께 손을 든 채로 서로를 마주 봤다.

한진영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옷을 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한 태도로 중년 여인을 향해 부탁했다.

“제 친구가 이번에 결혼하게 됐습니다. 친구인 제가 선물을 하려 하니 너그러운 마음에서 양보를 해주셨으면 합니다.”

“너 뭐야?”

외모에서 보여주는 천박함만큼이나 싸 보이는 말이 대뜸 여자의 입을 통해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런 천박함은 계속 이어졌다.

“어린 놈의 새끼가 여기 와서 뭐 하는 짓이야? 감히 내가 사려는 물건을 낚아채려 해?”

양해를 구하기 위해 반쯤 허리를 숙였던 한진영은 그 모습 그대로 멈춘 채 고개만 들어 올렸다.

한진영의 표정에서 불쾌감이 스쳐 지나갔지만, 최대한 참아냈다.

이곳에는 그녀만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한진영의 모습과 달리 중년 여인의 분노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대단해졌다.

“사장 불러와! 이 새끼들아! 내가 누군 줄 몰라? 어디서 애새끼가 내 물건을 훔쳐 가려는 데 지켜만 보고 있어? 사장 불러와!”

중년 여인은 앉은 채로 발을 동동 구르고 손을 휘둘렀다.

한진영은 허리를 편 채로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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