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두 번째를 준비하여 세 번째에 승부를 본다
코스피를 비롯하여 전 세계 주식시장은 하락이란 것을 잊어버린 듯이 움직였다.
버냉키 FRB 의장의 발표 이후 시장은 환호를 지르며 상승을 계속 이어갔다.
물론 하루하루를 잘라 보자면 하락하는 날이 나올 때도 있었다.
그러나 오를 때 1%, 떨어질 때는 0.1% 혹은 0.2%씩 빠지며 상승 각도를 꺾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시장은 양적완화를 발표한 날부터 45도 각도로 날아갔다.
기어코 1,800을 넘긴 지수는 1,900대를 향해 달려갔다.
전고점과 매물대 등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듯이 보였다.
주춤하거나 조정을 보일 만한 곳도 단숨에 뚫어내며 힘차게 상승하는 모습 속에서 힘이 살아있음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이렇게 힘차게 상승할수록 세이지의 수익은 높아져만 갔다.
“현재 총수익률은 27%를 기록했습니다. 세부적인 수익률은 다음과 같습니다. 1호 펀드는 32%를 기록했습니다. 2호 펀드의 경우에는 평균 수익률이 미치지 못하는 24%의 수익률이지만 볼륨을 따져봤을 때 2호 볼륨이 1호 볼륨에 2배이기 때문에 수익은 1호 펀드를 넘기는 상태입니다. 기존에 보유한 자금으로 운용하는 것의 경우에는 26%로 평균 수익률에 근접하는 성적을 보였습니다.”
“역시 해외 쪽이 짭짤하지?”
“네. 양적완화의 주된 시장이라서 그런 것인지 개별주식의 상승률이 상당합니다.”
한진영에게 보고하고 있던 조지훈이 가지고 온 태블릿 속에 적혀있는 숫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특히 기술주들의 성적이 눈에 띕니다. 이대로 간다면 몇몇 종목의 경우에는 100% 이상의 수익을 올린 종목들도 나올 것 같습니다.”
“그럴 거야.”
한진영은 만족한 표정으로 조지훈의 보고를 들었다.
생각보다 더 좋은 가격대에 물량을 잡은 덕분에 지금 상당한 성적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상승세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 유력했다.
“매매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유지를 목표로 운용하라고 지시해. 지금은 잡고 내리지 않는 게 중요하니까.”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지시사항을 태블릿에 적어 놓았다.
그리고 주의해야 할 사항까지 모두 정리한 뒤 태블릿을 내렸다.
“대표님.”
“왜?”
“개인적인 질문을 드려도 괜찮을까요?”
조지훈이 업무 외의 질문을 던지는 것이 죄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에 괜찮다며 웃어 보였다.
“우리 사이에 그게 뭐 대수라고 그래? 괜찮아. 이야기해 봐.”
“그럼…… 혹시 대표님은 어디까지 보고 계신 지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조지훈은 매매를 최소화하라는 한진영의 지시에 갑작스럽게 고점이 궁금해졌다.
매매를 줄이라는 것으로 보아 1,900이 보이는 지금도 고점이 아니라는 뜻이 한진영의 말속에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질문에 똑바로 바라보고 말했다.
“그렇게 좋은 질문을 할 거면서 뭘 새삼스럽게 개인적인 질문을 해도 되냐고 물었어?”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멋쩍게 웃었다.
한진영은 웃고 있는 조지훈에게서 사무실 벽면에 떠 있는 그래프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말했다.
“우선 일차적으로 2,000까지는 갈 거야.”
“2,000이요? 조정 없이 1,600부터 2,000까지 가는 겁니까? 그러기에는 피로감이…… 죄송합니다. 제가 괜히 아는 척을 했습니다.”
“괜찮아. 그리고 그런 의견은 좋아. 바로 그런 의견들이 시장 참여자들이 대부분 보여줄 만한 이야기니 나에게 들려주는 건 나쁜 게 아니야.”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머쓱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대부분의 시장 참여자들이 흔히들 말하는 개미를 지칭한다는 것을 조지훈은 알았다.
그러나 그런 한진영의 말이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한진영 앞에는 자기를 비롯한 세이지에 있는 모든 사람조차 한낱 개미투자자와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1,600까지 떨어진 힘을 봤으니 사람들은 조정이 올 것을 기다릴 거야. 대부분 들어간다면 그 조정 자리에서 들어가려 할 테고…….”
한진영은 오늘도 상승을 멈추지 않고 플러스권에서 놀고 있는 코스피 지수를 바라본 채 말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는 조정이 오지 않아.”
“왜 그런 겁니까?”
“힘이 다르니까.”
“힘이요?”
“그래. 힘.”
한진영은 주먹을 움켜쥐어 보였다.
“시장을 끌어 올린 힘. 양적완화가 뭐야? 돈을 풀겠다는 뜻 아니야? 이렇게 돈으로 끌어올리는 시장은 저항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아. 저항이 없으면 조정도 없는 것이고…… 이런 때는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과거와 빗대어 지금을 바라봐서는 안 돼. 무조건 따라붙어서 함께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야지. 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지?”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다.
주식시장에 발을 담근 지 얼마 되지 않았으며 실질적으로 조지훈의 역할은 매매와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한진영의 곁에서 오래 있다 보니 한진영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수는 있었다.
한진영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은 조지훈에게 말했다.
“그냥 이런 건 외우면 돼.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앞으로 다시는 나오지 않을 일도 아니니까. 돈으로 밀어 올리는 시장은 무조건 따라붙어야 한다. 조정을 기다리다가는 놓치고 만다. 알았지? 수학 공식 외우듯이 외워. 우리들 학교 다닐 때 무작정 외우기만 했던 수학 공식처럼 말이야.”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그냥 외우라는 한진영의 말에 이해하는 것을 포기했다.
한진영은 조금은 편안해진 조지훈을 보고 웃었다.
지난 서브프라임 사태 때 미국이 무진장 돈을 뿌리며 시장의 붕괴를 막았을 때.
양적완화를 시행하며 더블딥의 공포에서 벗어나려 했을 때.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인위적으로 돈을 풀어 경기침체를 막았을 때.
모두 미국발 돈 폭탄이 터진 경우였다.
그리고 이렇게 돈 폭탄이 터진 다음 금융시장의 변화에 대해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두 번째를 준비하여 세 번째에 승부를 봐야지.’
첫 번째는 이미 지나가 버린 날이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두 번째 상황 속에 자리하고 있으며 세 번째를 노릴 수가 있었다.
한진영이 노리고 있는 것은 바로 세 번째 돈 폭탄이었다.
지금부터 따지자면 먼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진정한 기회는 그때 온다는 것을 한진영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얼마만큼의 자본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상황이 바뀐다는 것을 알기에 지금부터 착실히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진영에게 지금 순간은 세 번째 찾아오는 돈 폭탄의 순간을 위한 준비기간이나 마찬가지였다.
한진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충분히 생각한 후 조지훈이 던진 조금 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계속 이었다.
“지수는 최소 2,000까지 올라갈 거야. 그리고 2,100도 뭐 시도해볼 수 있어. 처음이 어렵지 한번 터치했던 곳은 다시 오르는 데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까.”
“그럼 그때까진 우린 무조건 ‘GO’군요.”
“그래. 한번 물면 놓지 말아야지. 괜히 어쭙잖게 깨작깨작 샀다 팔았다 하다가는 이런 장에서는 놓치기에 십상이니까.”
한번 놓치면 다시 타지 못하는 시장이 바로 지금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을 따라 벌써 1,800대 중반에 올라선 지수를 바라봤다.
한진영의 말대로 15%가 넘게 지수가 올라오는 중간에 쉼터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을 수가 없었다.
급등이라도 했다면 조정이 나올 수도 있었겠지만, 지그시 오르는 시장의 힘에 쉼터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지수를 바라보고 있는 조지훈의 귀로 한진영의 말이 계속 들렸다.
“우리는 올라탔으니 계속 뽑아먹으면 돼. 그렇게 연말 1등 수익률의 자리를 차지하자. 물론 2등도 우리 것이 되어야 할 거야.”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한진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네. 그건 문제없어 보입니다. 현재 3등을 유지하고 있는 펀드의 경우 수익률이 15%를 살짝 넘는 수준입니다. 1등은 거의 확정적이고 2등인 우리 1호 펀드하고도 격차를 보이는 만큼 안정권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좋아.”
한진영이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코스피 지수를 바라봤다.
코스피 지수는 오늘도 상승하여 1,880대에 돌입했다.
이제 1,900이 사정권에 들어왔다.
***
양적완화 발표 이후 불안했던 모습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증시는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1,600대와 1,700대에서 미친 듯이 따라붙었던 기관 투자자들에 이어 개인들도 1,800대부터는 시장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 빠르게 진입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저점 대비 10%가 넘게 상승한 상황이었음에도 개인들의 시장진입은 늦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1,800에 들어온 사람들조차 1,900에 다가서며 수익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시장에 진입한 사람들까지 모두 이득을 보자 초조해진 사람이 생겨났다.
바로 조정이 오면 들어가려 했던 사람 혹은 조금만 더 지켜보자며 시장을 관망하던 사람들이 바로 이렇게 초조해지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초조해진 사람 중에는 안혁규 의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안혁규 의원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하지?”
한진영은 이제는 보고받지 않아도 안다는 듯이 먼저 이야기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말에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네. 이번에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한진영은 웃으며 손을 맞잡았다.
그리고 앞에 서서 보고하는 조지훈을 올려다보고 웃으며 물었다.
“그래서 뭐라고 해?”
“상승에 대한 피로감이 상당한 만큼 지금 잡으면 고점에서 물릴 가능성이 높다고 조정이 오면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래. 당연히 그렇게 말했겠지. 그게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한진영은 지금 전해온 말이 안혁규가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안혁규는 한진영과의 만남 이후 가만히 한진영의 말을 곱씹었다.
한진영의 지시를 따라 매매를 따라 한다는 것이 일견 그럴듯해 보여도 꼭 한진영의 지시를 듣는 것과 같은 기분에 찜찜함을 지울 수 없었던 안혁규였다.
그렇다고 한진영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마땅한 방법이 안혁규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가지 방법을 안혁규는 생각해냈다.
한진영의 말을 무조건 듣는 것이 아니라 한진영이 타점을 알려주면 그걸 검토하는 중간막을 하나 덧대기로 한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꼭두각시처럼 한진영의 말에 따라 움직이는 형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더더욱 좋은 것은 한진영의 지시가 맞는지 틀리는지 검증을 중간단계에서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안혁규는 자기의 생각이 기막히다고 스스로 평가했다.
한진영에게 이야기하기도 좋으며 찝찝한 마음을 지울 수도 있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이런 안혁규의 제안을 막지 않았다.
이런 방법은 오히려 한진영이 안혁규에게 제안하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그리고 한진영이 오히려 안혁규에게 제안하려 했던 이유가 되는 상황이 지금 펼쳐졌다.
1,900이 뚫리려는 자리에까지 왔건만 안혁규는 지금도 매수를 못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대표님. 안 의원이 여기서까지 왜 미적댈까요? 대표님이 자리를 준 곳에서만 잡았어도 10%는 수익을 올렸을 텐데 말입니다.”
“조 비서도 나한테 와서 이야기했었잖아. 이대로 계속 올라가겠냐고 말이야. 조정 없이 어떻게 2,000까지 가겠냐고…… 기억 안 나?”
“어떻게 기억을 못 하겠습니까? 그 생각이 정말 무지했음을 매일 떠올리고 있는데 말입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살짝 얼굴을 붉혔다.
1,900 돌파를 시도하는 오늘 모습을 보니 자기가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을 했는지 알았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붉혔던 얼굴을 급히 가라앉히고 물었다.
“그럼 안 의원도 조정을 기다리고 있는 건가요?”
“그렇겠지. 그러니 지금도 들어가지 못하는 거 아니겠어?”
“그렇지만 중간에서 대표님의 말을 듣고 걸러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도 과거에 유명한 사람이었고요.”
“그래. 유명한 사람이었지. 문제는 유명했었다는 거야. 지금이 아니라 과거에…….”
“그게 중요한가요?”
“많이 중요해. 시장은 시시각각 바뀌고 어제와 오늘이 다른 곳이야. 아무리 과거에 잘나가고 유명했다고 하기로서니 매매 패턴이 과거와 같다면 살아남을 수가 없어.”
한진영은 안혁규가 데리고 왔다는 사람을 떠올렸다.
과거 주식시장 초창기에 안산 문어라는 별칭으로 불렸던 유명한 개인투자자였다.
특히 선물시장이 외국인에게 전면 개방되기 전에 선물 매매를 통해 약 3,000억의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가 돌았을 만큼 그의 명성은 대단했다.
그가 움직이는 곳이 지수가 가는 곳이었으며 그가 매매하는 종목이 시장의 중심에 서 있을 때가 있었다.
그는 한 시대를 호령했던 시장의 마법사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그런 그가 시장을 호령했을 때는 15년 전의 시장에서였다.
게다가 당시에는 외국인 투자자도 제한적으로만 투자를 할 수 있었던 시장이었다.
그런 그가 안혁규를 통해 다시 시장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래도 안산 문어의 명성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다.
워낙 과거에 강렬한 인상을 시장에 주었었고 지금도 인수한 컨설팅 업체를 통해 시장에 가끔 소식을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산 문어.
그런 그가 안혁규의 제안에 의해 한진영과의 사이에 중간막으로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