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화 본격적으로 놀아보자
안혁규는 갑작스럽게 2,000 초반대까지 빠져 내린 지수를 보며 초조해했다.
“어떻게 하실 겁니까?”
안혁규는 5%의 수익을 보이던 계좌가 단숨에 파란 불을 보인 것에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5%로의 수익도 성에 차지 않는데 하루 만에 파란불의 계좌를 보았으니 안혁규가 이러는 모습이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렇게 초조해하는 안혁규에 비해 안산문어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기만 할 뿐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안혁규는 그런 안산문어의 모습이 답답했던지 더욱 그를 세차게 몰아붙였다.
“2,200은커녕 2,100도 뚫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이걸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안 의원님.”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던 안산문어는 낮은 목소리로 안혁규를 불렀다.
안혁규는 겨우 입을 연 안산문어를 똑바로 바라보고 물었다.
“네. 잘 듣고 있으니 말씀 좀 해보세요. 어쩔 생각이에요?”
“안 의원님 바쁘지 않으십니까? 지금 한창 경선으로 정신이 없을 시기로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지금 경선이 눈에 들어옵니까?”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말에 발끈했지만, 화를 내는 모습은 점차 사그라들었다.
안산문어의 말대로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안혁규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안산문어는 화를 내던 안혁규가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고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 정도의 흔들림은 모두 제 예상안에 있었던 일이니까요. 그리고 보세요. 우리가 손해를 뭐 얼마나 봤다고 그렇게 화를 내시는 겁니까? 끽해봐야 2% 정도 손해 아닙니까?”
“그래도 5%가 넘게 수익을 보던 게 있으니…….”
“안 의원님. 설마 안 의원님께서는 10% 정도의 수익을 바라고 저에게 계좌를 맡기신 건 아니시죠?”
“그건 아닙니다. 10%라니요? 그 정도 벌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50% 아니. 최소 더블은 벌어야 하실 것 아닙니까?”
안산문어의 말에 안혁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말대로 더블 이상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산문어는 안혁규가 자기 생각과 같음을 확인하고 웃으며 말했다.
“기다려 보십시오. 2,000이 깨질 일은 없을 테니까요. 여기서 지수는 2,200을 향해 달려갈 겁니다. 그리고 그때 가서 수익 이야기를 하도록 하지요.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순간이니 계속 이야기할 이유가 없습니다.”
안산문어가 호언장담하며 안혁규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이런 안산문어의 말은 바로 다음 날 깨지고 말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2,000마저도 깨지지 않았습니까? 여기서 오른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안혁규가 1,990대까지 빠져 내려간 지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소리쳤다.
안산문어는 큰소리치던 어제와는 다른 모습으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무래도 제 예상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 같네요. 뭐 여기가 끝일 테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수는 이제 반등할 겁니다.”
내일 있을 경선이 중요하기에 더는 안산문어를 닦달할 수는 없었던 안혁규였다.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말에 한 번 더 믿어보기로 하고 내일 저녁 있을 강원도 경선장을 향해 부리나케 달려갔다.
***
경선은 안혁규 의원이 모시는 분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이 났다.
“축하합니다.”
“안 의원님. 축하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강원도 경선에서 승리한 것으로 이제 대충 판세가 정해진 것 같습니다. 이제 이대로 대선까지 쭉 가면 될 것 같으니 큰 짐 더셨습니다.”
안혁규를 향해 동료 의원들과 각 지역의 지부장들이 찾아와 인사를 건넸다.
후보의 좌장이자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안혁규였기에 사람들은 안혁규에게 조금이라도 자기 얼굴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네. 네.”
안혁규는 찾아오는 사람들을 향해 일일이 인사를 받았지만 이미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이런. 니미…….’
안혁규는 오늘 나온 코스피 지수를 확인하고 온전히 경선에 집중할 수 없었다.
1,940.
지수는 오늘도 하락하여 1,900대 중반까지 떨어져 내린 것이었다.
안혁규는 강원도 경선이 끝난 것을 기념하기 위한 회식 자리도 마다한 채 자리를 떴다.
후보에게는 미리 다음 경선을 준비하기 위해 자리를 뜬다는 말을 했지만, 실상은 사무실에 앉아 있는 안산문어를 만나기 위해 경선장을 떠난 것이었다.
“밟아. 빨리.”
안혁규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운전사를 향해 지시했고 차는 서울을 향해 빠르게 돌아왔다.
2시간 거리를 1시간이 약간 넘는 시간 만에 주파한 안혁규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안산문어가 있는 사무실로 뛰어 올라갔다.
“김 사장!”
사무실로 들어간 안혁규는 대뜸 안산문어부터 찾았다.
“김 사장 어디 있어? 어? 김 사장 어디 있냐고?”
회사 직원들 사이에서 안산문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안혁규의 등장을 의외라는 듯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의원님. 일찍 오셨습니다.”
“어떻게 할 거야?”
인사를 하는 안산문어의 멱살을 움켜잡은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얼굴에 침을 잔뜩 튀기며 소리쳤다.
“오른다며? 어떻게 할 거야? 벌써 계좌 총 손해가 10%가 넘어가고 있어.”
“이거 좀 놓고 이야기하시죠.”
“이거 놓으라고? 네가 날려 먹은 금액이 500억이야. 어? 알아? 500억이라고.”
“알았으니까 이거 좀 놓으시라고요.”
안산문어는 안혁규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멱살 잡혔던 목 주위를 어루만졌다.
“지금 그것 때문에 올라온 겁니까?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로 바쁘게도 움직이십니다.”
“지금 이게 별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라고? 500억을 날렸는데?”
“거참. 10% 잃는 일이 뭐 대수라고 그럽니까?”
“대수롭지 않다니? 이게 대수롭지 않다니?”
안혁규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안산문어를 쳐다봤다.
그러나 안산문어는 그런 안혁규의 시선에도 의연한 모습을 잃지 않고 말했다.
“주식시장에서 매매하면서 10%, 20% 손실은 큰일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 정도 손실을 복구하는 것은 하루면 가능한 일이니 걱정하지 마시고 이리 앉으시지요. 차분히 앉아서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해야 하니 말입니다.”
안혁규의 눈은 안산문어의 모습에 심하게 흔들렸다.
얼굴을 마주하면 싸울 줄 알고 이곳에 찾아온 것인데 너무나 태연한 모습에 마치 자기가 괜한 호들갑을 떠는 게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안혁규는 안산문어가 내준 의자에 천천히 앉았다.
앉으면서도 눈은 안산문어에서 떠나지 않았다.
안산문어는 직원에게 가볍게 마실 것을 가져오라고 시킨 뒤 안혁규를 향해 이야기했다.
“안 그래도 오시면 상의드리려고 했던 일이 있었습니다.”
“저와 상의할 게 있었다고요?”
“네. 우리 일과 관련되어 중요한 일입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조금 전까지 길길이 날뛰던 안혁규가 조금은 진정된 모습을 보였다.
안산문어는 그런 안혁규의 모습에 직접 직원이 내온 차를 건네며 말했다.
“그렇게 걱정하시는 손실을 줄일 일입니다.”
“손실을 줄이는 일이라고요?”
“어쩌면 손실을 줄이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돈을 버는 일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남은 두 달의 시간 동안 말입니다.”
안산문어의 말에 안혁규의 표정이 바뀌었다.
화를 내는 듯이 꺾여 있던 눈썹이 점차 아래로 내려간 것이었다.
“의원님.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사실 석 달에 50%, 100%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뭐 그건…… 저도 힘들 거로 생각하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고 김 사장님께서도 동의하신 것 아닙니까?”
“동의했지요. 하지만 장이 힘든 상황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저라고 뭐 어쩔 수가 있어야지요. 지금 상황에서는 힘든 정도가 아니라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게다가 시간은 한 달이 더 줄어들어 버리기도 했고요. 이거 참 난감한 상황에 직면하고 말았습니다.”
“그건 김 사장님이…….”
“누구의 잘못인지 잘잘못을 따지지는 말고 객관적으로 지금 상황을 보도록 하시죠.”
네가 돈을 잃어 그런 것이 아니냐는 말을 하려는 안혁규보다 안산문어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는 안혁규의 말을 잘라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열정적인 말투로 안혁규를 설득했다.
“지금 상황에서 상황을 반전시킬 가장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의원님을 만나려 한 겁니다.”
“제일 좋은 방법이요?”
“네. 남은 두 달 동안 100% 수익이 아니라 1,000%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저의 주 종목을 매매하는 것이지요.”
“주 종목이라면…… 선물옵션 말씀입니까?”
“바로 그겁니다.”
안혁규의 말에 안산문어가 무릎을 쳤다.
그리고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주식은 상승장에서만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어떻습니까? 장이 좋지 못합니다. 이럴 때는 하락에도 돈을 벌 수 있는 선물시장에서 매매하는 것만이 우리가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선물옵션은 위험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위험하죠. 하지만 제가 어디서 돈을 벌었습니까?”
“선물시장에서 돈을 버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저의 놀이터가 바로 그곳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저에게는 주식시장보다 선물시장이 더 안전하고 확실한 곳이란 이야기이지요.”
“더 안전한 곳?”
안혁규는 안산문어의 말을 듣고 이곳에 온 이유를 모두 잊어버리고 말았다.
***
세이지 자산운용은 그 어느 때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1,600부터 2,000이 넘는 자리까지 끌고 온 펀드들의 리밸런싱 작업을 한창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다.
세이지의 펀드들은 리밸런싱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60%가 넘는 수익을 올린 상태였다.
지수 대비하여서도 눈에 띄는 수익은 가입자들은 물론 시장에서도 주목받기에 충분했다.
기존 가입자들은 환호를 질렀으며 시장은 이렇게 높은 수익을 올린 비결을 궁금해했다.
그러나 세이지는 이런 주변의 관심 속에서도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 만큼 세이지 자산운용은 지금의 수익에 만족하지 않고 빠르게 횡보장을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리밸런싱 작업은 단시간 내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애초에 펀드의 규모도 작지 않은 상태에서 60%가 넘는 수익을 보았으니 펀드 규모가 상당한 상태로까지 커졌기 때문이다.
세이지 자산운용이 움직이는 자금의 규모가 4조를 넘어섰다.
국내 지수 추종으로만 3조가 넘었으며 해외 투자의 경우에도 1조에 달하는 금액이 세이지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었다.
이런 규모의 자금을 시장충격 없이 조정하기 위해서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며칠에 걸쳐 미세하게 조정해야 했고, 종목을 갈아탈 때도 혹시 있을지 모르는 일을 대비하며 진행해야 했다.
바로 이런 일들이 홍대민의 지시 아래 세이지의 주식운용 본부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잘 되고 있네.”
한진영이 멀찌감치 서서 홍대민의 지시 아래 이루어진 리밸런싱을 가만히 바라봤다.
홍대민은 현황판을 바라본 채로 최수찬에게 물었다.
“상관관계 지수가 코스피와 얼마까지 나오고 있지?”
“코스피 지수와 0.95까지 붙었습니다.”
“좋아. 이 상태에서 은행주들에 조금 더 힘을 줘. 어차피 은행주들의 경우에는 하락하더라도 배당으로 인해 차액을 보전할 수 있을 테니까.”
“은행주. 알겠습니다.”
최수찬은 홍대민의 지시를 각 팀에 전달했다.
이제 각 팀은 은행주라는 주제 아래 자기들이 좋아하고 잘 다룰만한 종목을 선별하여 포트에 담을 것이 분명했다.
현재 지수는 1,900까지 내려앉은 상태였다.
이곳에서 지수는 하락하기보다 옆으로 횡보하며 2,000과 1,900 사이의 좁은 박스권을 만들 거라는 것이 한진영의 지수 예측이었다.
홍대민은 바로 이런 한진영의 예측을 따라 각 펀드의 리밸런싱을 진행 중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보수적인 리밸런싱에는 홍대민은 누구보다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은행주들 사이에 정유주들도 섞어 넣도록 해.”
“정유주들 말씀입니까?”
“그래. 정유주들도 배당이 좋아. 그런 만큼 하락에 대한 지지 역시 다른 종목들보다 좋지. 그러니까 함께 섞어 넣도록 해. 상관관계 지수는 0.95 밑으로 더 떨어져도 괜찮아. 0.90 이상만 되면 되니까 그렇게 맞추도록 해.”
“알겠습니다.”
한진영은 가만히 이야기를 나누는 홍대민과 최수찬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며 조지훈에게 말했다.
“내가 뭐 끼어들지 않아도 괜찮겠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한진영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이따가 해외파트의 경우에는 IT 관련주들로 계속 밀고 가라는 말을 넌지시 전해.”
“국내 파트와 포지션을 달리해서 가는 건가요?”
“어. 우리나라는 한동안 횡보장에 발이 묶이겠지만 나스닥을 비롯한 뉴욕증시는 그러지 않을 테니까. 돈이 미국 내부에서만 돌게 될 거야.”
한진영은 가볍게 조지훈을 통해 조언이 전해지도록 만들었다.
이 정도 이야기만으로도 홍대민이라면 충분히 자기의 뜻을 알아들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놀아볼까?”
“본격적으로요?”
한진영의 지시를 빠르게 메모한 조지훈은 한진영이 놀아본다는 뜻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대충 회사에서 놀아본다는 이야기를 던졌으니 업무와 관련된 이야기일 텐데 지금 상황에서 한진영이 어떤 일을 진행한다는 것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박도하 IT 팀장을 불러와 봐.”
“박도하 팀장이요?”
“어. 내 사무실로 데리고 와. 지금 바로.”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지시를 내리고 먼저 본인 사무실로 향했다.
한진영이 사무실에 도착한 지 약 10여 분이 흘렀을 때 조지훈과 박도하가 함께 한진영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부르셨습니까?”
“네. 들어와 앉으세요.”
한진영은 응접용 소파에 앉은 채로 박도하를 맞았다.
그리고 본인의 우측 편에 자리한 소파를 가리키고는 박도하에게 앉을 것을 권했다.
박도하는 조심스럽게 한진영의 우측에 비어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