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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05화 (305/650)

305화 과거의 망령에 현재의 무서움을 알려준다

박도하가 이렇게 한진영과 단독으로 마주하는 일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IT 부서의 경우 운용하는 측과 함께 이루어지는 업무가 많았기에 대부분 다른 팀과 조인하여 한진영과 업무 이야기를 하고는 했다.

그래서 박도하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박도하의 머리는 복잡해져 갔다.

‘내가 뭐 잘못한 게 있나?’

박도하는 지금의 자리가 업무와 관련된 자리가 아닌 개인적인 자리라고 생각하여 바짝 긴장한 모습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굳어있는 박도하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긴장을 풀어줬다.

“박 팀장님. 별거 아닙니다. 그러니 그렇게 긴장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저는 괜찮습니다. 대표님. 말씀하십시오.”

말을 하면서도 딱딱함이 묻어 나오는 박도하의 목소리에 한진영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박 팀장님께 업무와 관련된 일을 상의드리기 위해 뵙자고 했습니다.”

“업무와 관련된 일이요?”

예상하지 못한 한진영의 말에 굳었던 박도하의 어깨가 조금은 풀어졌다.

업무와 관련된 일이라면 이렇게 긴장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무라는 말에 다른 방향으로 궁금증이 생겨난 박도하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저희는 어떤 부서와 함께 작업을 하는 건가요? 자리에 오지 않아서…….”

“이번에는 다른 부서와 협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협업은 저와 하면 됩니다.”

“대표님과요? 대표님과 무슨 협업을…… 대표님께서는 실무를 많이 넘기시지 않으셨습니까?”

“맞습니다. 실무를 넘기기는 했죠. 하지만 이번에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듯해서 거기에 동참코자 이렇게 박 팀장님과 함께 일하자 하는 겁니다.”

“재미있는 일이요?”

한진영은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의 박도하를 향해 질문했다.

“그 전에 우선 확인부터 하겠습니다. 들어보시고 가능한지 불가능하지만 이야기해주셨으면 합니다. 가능하다는 박 팀장님의 판단이 내려졌을 때만 진행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박도하는 혼란스러운 정신을 우선 뒤로하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한진영의 말을 경청하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다.

“선물시장에서 큰 수량의 계약이 들어왔을 때 그와 반대로 매매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습니까?”

“큰 수량의 계약이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아 조금 더 자세히 말씀드려야겠군요. 예를 들어서 평소보다 더 많은 수량의 주문이 들어오는 것을 말하는 겁니다.”

“기준이 있나요? 예를 들어 한 번에 100계약이라든지 아니면 초당 10계약 이상이라든지 같은 것 말입니다.”

“기준이라면 당연히 있습니다.”

한진영은 박도하의 질문에 슬며시 미소 지었다.

“3, 6, 9계약이 2번에 걸쳐 사이클을 돈 뒤 대규모 주문이 시장에 들어가는 패턴입니다.”

“3, 6, 9계약이 2번의 사이클이요?”

박도하는 한진영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기준이 있다는 말에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식으로든 기준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어렵지 않습니다. 기준에 맞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은 이미 해봤던 일이니까요.”

지난 프로그램을 만들며 이미 관련 노하우들을 쌓아 놓은 박도하였다.

그런 그에게 한진영이 말한 식의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다.

“혹시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서너 가지의 패턴이 교차하여 움직이는 것이라면 한 달 정도 걸릴 것 같습니다.”

“서너 가지까지 없습니다. 단 하나의 패턴으로만 움직일 겁니다.”

“한 가지라면…… 당장 내일이라도 만들 수는 있습니다. 프로그램이 작동만 하는 것이라면 말입니다. 그러고 나서 좀 더 그럴듯하게 인터페이스 등을 덧붙이려면…….”

“그럴 필요 없습니다. 제가 사용하려 하는 것이니 돌아가기만 하면 됩니다.”

뼈대만 있으면 된다는 한진영은 박도하를 향해 웃음을 머금은 채로 이야기했다.

“지난번과 같이 속도를 빨리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패턴이 나오는 것을 캐치하여 정확히 반대 방향으로 물량을 던지게만 해주면 됩니다. 그러니…… 사흘. 어떻습니까? 그 정도면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만드실 수 있으시나요?”

한진영의 말에 박도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넉넉합니다. 그 정도면 테스트까지도 마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주시지요.”

박도하는 한진영의 지시에 알겠다는 대답을 한 후 사무실을 떠났다.

조지훈은 그때까지 가만히 한진영과 박도하의 이야기를 듣다 박도하가 나간 것을 확인하고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대표님. 그 프로그램은 어디다 쓰실 생각이십니까?”

“과거의 망령에 현재의 무서움을 알려주는 데 쓸 생각이야.”

“네?”

조지훈은 한진영이 하는 말을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저 한진영이 말을 하고 웃는 것과 조금 전 놀아보자는 말을 한 것을 떠올리며 지금 일이 안 좋은 방향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뿐이었다.

***

정확히 사흘 뒤 박도하는 한진영 앞에 시연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지고 왔다.

“이렇게…… 3계약, 6계약, 그리고 9계약의 매수 주문이 5초 사이에 연속으로 두 번의 사이클을 통해 들어오면 프로그램이 활성화가 됩니다. 그리고 활성화가 된 프로그램은…….”

박도하는 자동으로 매도 주문이 들어가는 프로그램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대량의 매수 주문이 들어오는 것까지 확인한 뒤 매도 주문이 들어가게 했습니다. 반대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로 움직이고요. 혹시 모를 패턴의 겹침을 예방하기 위한 보안 시스템도 내장되어 있습니다. 패턴의 학습도 시간이 지날수록 덧붙이게 되어 있고요. 그래서 처음보다 두 번째가 그리고 시간이 흐를수록 정확도는 더욱 올라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한진영은 테스트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본 뒤 만족스러운 모습으로 박도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짧은 시간 내에 제가 원하는 프로그램을 정확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닙니다. 별로 어려운 것도 없는 방법이라서요. 그런데…… 이것만으로 충분한가요? 다른 기능을 넣지 않아도 정말 괜찮은 건가요?”

박도하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너무나 간단한 프로그램에 정말 이것으로 된 것인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박도하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좋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오히려 더 좋은 모습이라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워하는 한진영의 모습에 오히려 박도하가 머쓱해질 지경이었다.

한진영은 다시 한번 박도하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건넨 후 프로그램을 요리조리 살폈다.

실행방법과 움직이는 메커니즘 자체가 어렵지 않은 모습에 한진영은 손뼉을 치고 조지훈을 찾았다.

“조 비서.”

“네.”

멀지 않은 곳에 서 있었던 조지훈은 한진영의 부름에 단번에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달려왔다.

한진영은 여전히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조지훈을 향해 지시했다.

“100억? 아니. 200억쯤으로 할까? 200억짜리 선물 계좌 하나 터서 가져와.”

“선물 계좌요?”

“어. 그거 가지고 바로 나한테 오도록 해. 내가 쓸 거니까.”

조지훈은 박도하가 만든 프로그램과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본 뒤 한진영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

한진영은 조지훈이 나간 뒤에도 프로그램을 요리조리 뜯어보며 작동법을 익혔다.

그렇게 약 30여 분의 시간이 흐른 뒤 조지훈은 계좌번호가 적힌 종이 하나를 가지고 한진영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대표님. 여기 있습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이 가지고 온 계좌를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그리고 가만히 선물 호가창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내뱉었다.

“슬슬 시작할 때가 됐으니까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나?”

조지훈은 한진영의 모습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질문을 던졌다.

“대표님. 죄송하지만…… 도대체 뭐가 시작된다는 말씀이신가요?”

프로그램에 계좌를 넣은 뒤 실행을 시킨 한진영은 열심히 패턴이 나올 때를 모니터링하는 프로그램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제야 조지훈이 보인다는 모습으로 큰 소리로 웃었다.

“아~ 내가 조 비서에게 제대로 설명하지를 않았나?”

“네.”

조지훈은 이제야 깨달은 한진영을 보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답답해하는 조지훈을 보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게 뭔지 궁금하지?”

“네. 그것도 궁금하고 지금 무슨 일을 하시려고 하는지도 궁금합니다.”

“그럴 거야.”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한진영은 열심히 호가창을 모니터링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슬쩍 돌아본 뒤 이야기했다.

“이게 뭐냐면 안산문어를 낚기 위한 통발이라고 보면 돼.”

“통발이요?”

“그래. 통발.”

한진영은 재미있다는 듯이 모니터를 두드리며 이야기했다.

“안 의원 측에서 연락해 왔었던 거 기억해?”

“네.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에 연락해 왔을 때 약 500억을 손해 보고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대표님 말씀대로 과거에 매매를 잘했던 사람이 지금도 잘하지는 못할 거라는 이야기가 맞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한진영이 조지훈의 말에 모니터에 손을 올린 채로 웃었다.

“안산문어의 주 종목이 뭔지 기억해?”

“주 종목이야 주식…… 아니구나. 선물이었죠?”

“그래. 선물시장이 개장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에 삼선전자를 묶어놓고 선물로 엄청난 돈을 벌었었잖아.”

“네. 들은 기억이 납니다. 그땐 삼선전자와 지수의 상관관계가 지금보다도 높던 시절이라 삼선전자를 컨트롤하는 것만으로 선물도 조종할 수 있었다고요.”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지. 지금은 반대로 선물로 프로그램 매매를 터트려 삼선전자의 주가를 조종하는 시기니까. 하여튼…….”

한진영은 모니터에 올렸던 손을 내리고 다시 프로그램을 지그시 바라봤다.

프로그램은 연신 선물시장에서 나오는 매수와 매도 물량을 빠르게 모니터링해 나갔다.

지난 프로그램과 지금까지 쌓아 올린 박도하를 비롯한 세이지 자산운용의 IT 부서의 기술력이 발휘되는 중이었다.

한진영은 바쁘게 움직이는 프로그램을 바라보고 말했다.

“500억을 손해를 봤으니 몸이 달아올랐을 거야. 그래서 자기의 주 종목이 생각이 날 수밖에 없을 테고…….”

“그래서 대표님께서는 안산문어가 선물시장에 발을 들일 거로 생각하시고 거기에 맞춰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지시하신 건가요? 하지만 왜 안산문어와는 반대로 매매하게 만드셨습니까?”

“왜냐하면…… 안산문어가 얻어터질 테니까.”

“얻어터진다고요?”

“그래. 시작됐다.”

한진영과 조지훈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한진영이 이야기했던 패턴의 매매가 프로그램의 눈에 포착이 됐다.

3, 6, 9 순서로 매도 주문이 출회가 된 뒤 또 한 번 같은 수량의 물량이 시장에 주문이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한진영의 예상대로 갑작스럽게 매도 주문 쪽으로 주문이 출회되기 시작했다.

“정말이네요.”

조지훈은 가만히 매도 주문 쪽으로 물량이 쏟아지는 화면을 바라봤다.

사람이 보기에도 확연히 느껴질 만큼의 물량으로 대략 보이는 것만 해도 순식간에 1,000계약 이상의 물량이 나온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나온 물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계속하여 물량을 쏟아내며 시장을 내리누르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선물지수가 1포인트 이상 빠져 내려갔다.

시장의 매도 물량 출회에 매수세가 급격히 기운을 잃어갔다.

혹시 무슨 일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조심스러운 모습으로 시장을 주시하며 매수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모습까지 보인 것이었다.

이렇듯이 매수세가 힘을 잃자 선물지수는 이곳에서 다시 1포인트가 빠져 내려갔다.

2차 하락의 경우에는 큰 힘이 들이지 않고 빠져 내려간 모습이었다.

매수세가 보수적인 스탠스를 취하자 대량 물량을 따라 나온 매도세만으로도 지수를 1포인트 이상 내리찍을 수 있었던 것이었다.

도합 2포인트 이상의 선물지수가 빠져 내려가는 데 채 5분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차 하락의 경우 30초 만에 보여준 하락이었으며, 2차 하락의 경우에도 1~2분 만에 이루어진 하락이었다.

1차와 2차 사이의 시간까지 더한다고 하더라도 화장실 다녀온 시간조차도 걸리지 않은 하락에 지수가 크게 흔들렸다.

한진영은 예상된 모든 상황이 나왔음에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기만 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고 물었다.

“대표님. 분명 이런 패턴이 나오면 들어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왜 프로그램을 시작하지 않으시는 건가요?”

“아직은 아니야. 시장이 안산문어의 복귀를 알아챌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리고 알아챈 순간 안산문어를 잡아먹기 위해 다들 움직일 거야. 그때를 위해 준비한 프로그램이야.”

한진영이 지난 시절 경험했던 것을 떠올리는 사이 2포인트가 넘게 하락했던 시장이 더는 하락하지 않은 채 멈추었다.

짧은 시간에 2번에 걸친 하락이 나오자 혹시 모른다는 생각으로 매도세가 출회가 되었고, 그 매도세를 누군가가 받아내며 지수를 막아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매도세를 받아내는 존재가 누구인지 알았다.

바로 안산문어가 청산하며 뒤늦게 나오는 매도세를 받아내는 것이었다.

“하여튼 스타일 참 올드해.”

지금은 사장되어 더는 쓰지 않는 매매 스타일이었다.

호가창으로 지시를 내리고, 거기에 맞춰 동시에 움직이는 스타일.

그리고 동시에 물량을 던지고 일정 자리가 나오면 청산하는 방법.

가두리장에서 많이 쓰이는 것으로 안산문어가 이 방법을 통해 3,000억이라는 돈을 벌어들인 기술이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옛날 옛적 고리짝 시절에나 쓰던 방법으로 지금은 쓰는 방법조차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사장된 기술이었다.

그걸 안산문어가 들고나와 사용한 것이었다.

“사람은 과거에 자기의 전성기를 그리워하지. 그리고 그때 잘 먹혔던 것은 시대가 바뀌어도 잘 먹힌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마찬가지야. 이런 패턴은 더는 먹히지 않아. 오히려 좋은 먹잇감이 되어 버릴 뿐이지.”

한진영은 어느새 매도세가 사라지며 조금씩 지수가 본래의 자리로 복귀하는 선물지수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대로 몇 번 더 움직임이 나오면 다른 사람들도 다 알게 될 거야. 그리고 과거의 망령을 잡아먹기 위해 다들 달려들 테지. 우리는 그때 합세해서 안산문어를 낚아 올리면 돼.”

한진영은 지수가 원상 복귀되자 다시 한번 펼쳐지는 패턴에 크게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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