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시장은 손절을 기다렸다
안산문어의 어깨는 하늘을 찌를 듯이 치켜져 올라갔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서 안혁규는 안산문어를 추켜세우기에 바빴다.
“역시 김 사장님이십니다.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해요.”
“뭘 또 이 정도를 가지고 그러십니까?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시작도 하지 않은 정도라고요? 허허. 허허허.”
안혁규는 놀랍다는 얼굴로 수익을 바라봤다.
벌써 수익만 100억을 넘기고 있었다.
하루 만에 올린 수익인데다 모든 계좌를 다 쏟아부어 올린 수익도 아니기에 안혁규는 매우 희망적인 눈으로 안산문어를 바라보게 됐다.
안산문어도 안혁규가 어떤 마음으로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 안혁규에게 더욱 큰소리를 쳤다.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금방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수익 올린 거 보셨지요? 딱 3번 만에 올린 수익입니다. 그것도 연습 삼아 일부만 운용한 상태에서 올린 100억의 수익입니다.”
안산문어는 어깨를 으쓱이며 계속 이야기했다.
“이대로 대충 한달, 20거래일만 매매해도 2,000억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노리는 건 이게 끝이 아니지요? 페이스를 좀 올려보겠습니다. 하루 300억. 어떠십니까?”
“하루 300억이요?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러십니까? 대충 대여섯 번만 매매해도 그 정도 수익은 올릴 수 있습니다. 지켜보세요.”
안산문어는 다시 한번 안혁규를 향해 큰소리를 쳤다.
이런 안산문어의 자신감이 괜한 허풍은 아니었는지 바로 다음 날부터 수익이 300억까지 치솟았다.
“허허. 허허허.”
안혁규는 입이 귀에까지 걸렸다.
셋째 날 다시 또 300억의 수익을 올렸을 때는 통 크게 안산문어를 비롯하여 다른 직원들에게도 금일봉의 회식비를 건네기까지 했다.
안산문어가 선물 매매로 입힌 손해를 모두 만회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 안혁규가 크게 한 번 쏜 것이었다.
넷째 날과 다섯째 날까지 안산문어가 이야기한 대로 300억의 수익을 올리자 안혁규는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됐다.
‘후보님께 돈을 내어드리고도…… 돈이 남겠는데?’
지난 며칠과 같이 수익을 올린다면 한 달에 올리는 수익만 6,000억이었다.
그리고 두 달만 이런 방식으로 운용한다면 순수하게 올릴 수 있는 수익만 1조를 훌쩍 넘길 게 분명했다.
안혁규는 모시고 있는 분께 돈을 내어드리고도 자기 몫으로 3~4,000억의 돈을 가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안혁규의 꿈은 주말이 지나 월요일 아침부터 깨어지고 말았다.
“어?”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안산문어는 잠시 주변을 살피고는 직원들을 향해 소리쳤다.
“집중해. 여기서 삐끗하면 잃어버리는 돈이 너희가 평생 일해도 만지지 못할 돈 수준이야. 바짝 긴장하고 정신 놓지 마. 다시 가자.”
안산문어는 직원들의 긴장 상태를 다시 조이고는 매매하기 시작했다.
3계약 매수.
6계약 매수.
9계약 매수.
선물지수의 움직임이 240틱 차트상에서 잠잠해졌을 때 안산문어가 호가창에 신호를 주기 시작했다.
안산문어의 직원들은 호가창의 신호에 따라 선물 포지션을 잡기 시작했다.
50여 개의 계좌에서 일시적으로 쏟아져 나온 매수 계약 수는 순식간에 4,000계약에 이르게 됐다.
잠잠하던 지수가 크게 출렁였다.
한 방에 나온 4,000계약의 매수세에 지수가 위쪽으로 크게 치솟기 시작한 것이었다.
순식간에 치고 올라간 지수는 틱 차트상으로 모든 매물대를 잡아먹은 장대 양봉을 그려냈다.
5초 만에 1포인트 이상 올라간 지수는 그대로 빨간 양봉을 크게 세워 보였다.
그런데 그게 끝이었다.
“또?”
안산문어는 양봉을 그려낸 차트가 그대로 멈춘 것에 의아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무슨 일입니까?”
“별일 아닙니다.”
안산문어는 질문을 해오는 안혁규를 향해 별것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크게 소리쳤다.
“청산 준비.”
안산문어의 지시에 의해 청산 버튼에 손을 댄 직원들은 이대로 2차 점프를 위해 들어오는 매수세에 물량을 던질 준비를 마쳤다.
그러나 또다시 2차 점프는 나타나지 않았다.
2차 점프가 나오지 않은 지수는 그대로 줄줄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안산문어를 비롯하여 청산 준비를 마친 직원들은 당황한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그동안 지수를 밀어내면 항상 밀어내던 방향으로 좇아 들어오던 물량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물량에 여유 있게 청산하며 짭짤한 수익을 올렸던 안산문어였다.
그런데 지금은 좇아오는 물량은 눈을 씻고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설혹 일부 좇아오는 물량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디선가 나타난 찍어 누르는 힘으로 나오던 물량들도 머리를 숙이고 말았다.
조금씩 흘러내리던 지수가 어느새 지수를 밀어 올렸을 때 자리까지 빠져 내려왔다.
“사장님. 청산을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
안산문어는 뜻밖의 상황에 잠시 정신을 잃었던 듯했다.
직원의 말에 급히 정신을 차린 안산문어는 재빨리 지시를 내렸다.
“우선 빨리 청산부터 하고 포지션을 다시 잡자. 어서 청산해.”
이미 손실구간에 들어간 물량들을 빠르게 손절 처리하기 시작한 안산문어였다.
옆에서 그런 안산문어의 모습을 지켜보던 안혁규가 걱정하는 모습으로 안혁규에게 물었다.
“일이 잘못된 겁니까?”
“아닙니다. 잘못된 거라고 할 것까지는 없고…… 그냥 오늘 장 분위기가 좋지 못하네요.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하루 안 좋은 날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요.”
안산문어는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과 다르게 움직이는 시장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러나 이런 이상함보다 가장 먼저 피부로 다가온 것은 손해가 예상보다 크다는 것이었다.
최대한 빠르게 대처한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몇 번의 매매로 50억 이상의 손실이 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손실은 오늘이 가장 적다는 말이 실감 나게 날이 갈수록 커져만 갔다.
밀어 올리면 1포인트는 오르던 선물지수가 지금은 밀어도 밀려 올라가지 않게 됐다.
그 때문에 손절의 자리는 점차 안 좋아지기만 했다.
마치 패턴을 파악한 것처럼 안산문어 측의 물량이 나오면 반대편에서 그와 비슷한 물량이 나오며 지수가 나아가는 것을 방해한 것이었다.
안산문어는 눈물을 머금고 들어가자마자 청산을 하는 날이 계속 이어졌다.
손실은 계속 누적되어만 갔다.
일간 50억의 손실이 연속해서 2주간이나 계속 이어진 것이었다.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밀어 올리는 것조차 힘이 벅찬 상황이 벌어지며 손실이 눈덩이처럼 굴러가기 시작했다.
***
안산문어는 패닉에 휩싸인 모습으로 지수를 바라보고 어떤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사장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사장님. 지시를 내려주세요.”
“사장님.”
“사장님.”
안산문어를 부르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지만, 안산문어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저 화면만 바라보고 있을 뿐 그는 눈의 초점조차 흐려진 모습으로 서서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볼 뿐이었다.
지난날의 움직임과 비교할 수 없는 모습이 오늘 펼쳐지고 만 것에 안산문어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김 사장!”
안산문어의 귀에 대고 안혁규가 소리를 질렀다.
안혁규는 오늘 펼쳐질 충청도 경선에 참여하는 것까지 포기한 채 안산문어의 곁을 지키는 중이었다.
최근 급격히 올라간 손실에 다른 일을 볼 수 없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오늘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신호를 주고 매도가 들어가던 안산문어 측의 물량을 시장이 단숨에 잡아먹어 버린 것이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치고 올라가 3포인트의 급등을 보여주며 손절할 기회마저 빼앗아 버렸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안산문어는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한 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안혁규는 패닉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안산문어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정신 차려. 정신 차리고 어서 지시해.”
안혁규가 안산문어의 멱살을 잡은 채로 앞뒤로 흔들자 그제야 안산문어는 정신을 차린 듯했다.
그는 힘겹게 입을 열어 직원들을 향해 지시했다.
“어서 정리해.”
“사장님 벌써 4포인트가 올랐습니다.”
“알았으니까 우선 정리해.”
안산문어는 더는 듣기 싫다는 듯이 지시하고 안혁규에게 잡힌 손을 풀어냈다.
“의원님 이번에는 일이 잘못됐지만…… 다음에는…….”
“일이 잘못돼? 지금 손실이 눈에 안 들어와? 지금의 손실만 100억이야. 100억. 누적으로 들어가면 벌써 1,000억을 날려 먹었다는 거 몰라? 그 전에 날려 먹은 돈까지 더하면 당신이 지금까지 날려 먹은 게 1,500억인데 뭔 다음이야? 관둬.”
안혁규는 안산문어를 밀치고는 안산문어가 서 있던 자리로 갔다.
“이젠 내가 할 테니까 당신은 이제 빠져.”
옆에서 안산문어가 하는 것을 지켜보던 안혁규는 차라리 자기가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됐다.
매수나 매도 둘 중의 하나만 맞추면 되는 확률 50%짜리 일에서 연속으로 틀리는 게 오히려 더 어려워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까짓 거 가지고…… 이제부터 내 말대로 합니다. 내 지시를 따르세요.”
직원들은 안산문어가 허락한 것인지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바로 지시하는 안혁규와 반쯤은 정신이 나가 있는 상황에 자기들도 모르게 안혁규의 지시를 따라 매수와 매도를 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매수. 여기서 매수.”
안혁규의 지시에 일괄적으로 매수 주문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호가창으로 지시를 내리던 것도 이제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막무가내로 매수와 매도를 지시했고 그에 따라 직원들은 주문을 넣을 뿐이었다.
“청산. 청산.”
0.5포인트라도 수익을 보는 것 같으면 안혁규는 마구 청산을 주문했다.
그런 안혁규의 지시에 사무실에 있던 직원들이 일제히 시장가로 청산 버튼을 눌러댔다.
안혁규는 모두 비워지는 계좌들을 보며 한시름 놓았다.
계속 줄어들기만 하던 계좌가 지금은 조금이지만 채워져 갔기 때문이다.
“하하하. 뭐 별것도 아니구먼. 어때? 괜찮았지?”
별거 아니라는 생각에 안혁규는 곁에 있는 비서를 향해 웃었다.
진작에 자기가 나섰어야 했다고 생각한 안혁규는 웃던 것을 멈추고 급히 시계를 돌아봤다.
“몇 시야? 분위기 탔을 때 바로 가자. 보자~ 이번엔 매도. 매도로 다들 들어가.”
최대한 손실을 메우겠다는 생각으로 안혁규는 바로 직원들에게 매도 주문을 지시했다.
직원들은 안혁규의 지시를 따라 매도 주문을 넣었고…… 그렇게 남은 시간 안혁규의 지시를 따라 매매를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이틀 동안 안혁규의 지시를 따라 움직인 계좌는 큰 항아리에 눈물 몇 방울 채워 넣은 수준의 회복을 보였다.
금액적으로 큰 이득을 본 것은 아니지만, 이틀 동안의 성과로 안혁규는 그 어느 때보다 큰 자신감을 가지게 됐다.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고수라고 하는 사람도 별거 아니네. 진정한 선수들이 없었을 때 운 좋게 해 먹은 거였어.”
안혁규는 말을 하고 한쪽에 주눅 들어 앉아있는 안산문어를 쳐다봤다.
마음 같아서는 더는 오지 말라고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는 필요도 없고 그가 해먹은 돈을 생각하자니 울화통만 터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안혁규의 지시받아 움직이는 사람들이 모두 안산문어 회사의 직원들이었기에 안혁규는 차마 안산문어에게 오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쪽 자리를 내어준 후 그곳에서만 지켜보게 만든 것이었다.
“자자 오늘부터는 본격적으로 해볼 테니까 다들 호가창 똑바로 보고 들어와.”
안혁규는 지시하고 자리에 앉았다.
안산문어가 호가창으로 신호를 왜 주는지 이해하지 못했던 안혁규였다.
그러나 그는 호가창 신호를 이틀 만에 이해하게 됐다.
이틀 만에 목이 잔뜩 쉬어버렸기 때문이다.
‘매매는 못 하지만 센스는 나름 있었네.’
안혁규는 쭈그러져 있는 안산문어를 힐끔 바라보고는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막 장이 시작된 시장은 빠르게 움직였다.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위아래 양쪽으로 모두 흔들어댔다.
그렇게 약 30여 분간의 장 초반의 흔들림이 끝이 나고 장이 조금은 안정에 들어가자 안혁규가 호가창에 신호를 주기 시작했다.
3계약 매수.
6계약 매수.
9계약 매수.
똑같은 숫자가 다시 한번 돌아가자 사무실 직원들이 지시에 따라 매수 주문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다 때려 박아. 다 집어넣어.”
안혁규는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목을 부여잡고 자리에서 일어나 큰소리로 외쳤다.
갈라진 목소리에서 절실함이 묻어 나왔다.
지난 이틀 동안의 성과에서 안혁규가 가장 아쉬워했던 부분은 혹시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모든 계좌를 움직이지 못한 것이었다.
만약 모든 계좌를 쏟아부었다면 지금보다 더 큰 이득을 얻었을 테고 그렇게만 됐다면 한결 어깨가 가벼워졌을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혁규는 오늘부터 모든 계좌의 돈을 돌리기로 마음먹은 것이었다.
쉰 목을 부여잡고 화면을 바라보던 안혁규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의원님.”
곁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안혁규의 비서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안산문어가 무너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문이 들어가자마자 반대 방향으로 물량이 쏟아져 나온 것이었다.
-0.5%.
-1%.
-1.5%
선물지수는 멈출 기세가 없이 계속 쏟아져 내려갔다.
“의원님. 벌써 -2%입니다.”
보합권이었던 지수가 안혁규의 물량이 들어가자마자 5포인트가 넘는 하락을 보였다.
“의원님.”
단숨에 손해가 200억을 넘어서고 말았다.
모든 계좌의 모든 돈을 풀로 집어넣은 바람에 손해가 평소보다 더욱 커지고 만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손해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의원님 지수가 멈추지 않습니다.”
5포인트가 하락한 지수가 계속 떨어져 내려 벌써 6포인트를 넘기고 있었다.
손절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뜬눈으로 300억에 가까운 손해를 얻어맞고 말았다.
“의원님. 정신 차리십시오.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안혁규는 안산문어를 바라봤다.
안산문어는 눈으로 ‘너도 당했구나’라는 말을 하는 것만 같았다.
오히려 안산문어가 당했을 때보다 손해는 더 컸다.
지수는 -3%마저 돌파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은 마치 안혁규가 들어간 물량의 손절을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이래도 안 나와? 이래도?’라는 말을 하는 것처럼 선물지수는 안혁규를 계속 몰아붙였다.
안혁규가 우물쭈물한 사이 시장은 벌써 7포인트의 하락을 보여주고 있었다.
“정리해.”
안혁규는 힘이 빠진 목소리로 손절을 지시했다.
안혁규에게는 다른 선택이란 있을 수가 없었기에 눈물을 머금고 정리를 지시한 것이었다.
안혁규 측의 물량이 튀어나오자 결국 시장은 무너져 내렸다.
매수세도 실종이 되며 쭉쭉 빠져 내려간 지수는 결국 -5%가 넘는 하락 속에 사이드카를 발동시키고 말았다.
안혁규는 이번 단 한 번의 매매로 500억이 넘는 돈을 허공에 날려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