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08화 (308/650)

308화 지금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다

돈도 문제지만 지금은 사람들에게 자기의 정체와 돈의 출처가 밝혀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안혁규는 머리에서 피가 말라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된다면 최악 중에도 최악의 상황이 초래될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안혁규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고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사람들이 저와 돈에 대해 알아냈다는 것이요?”

“지금 당장은 아닙니다. 만약 알았다면…….”

한진영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TV 화면에서는 뉴스가 나오는 중이었다.

한진영은 소소한 이야기들로 채워지고 있는 화면을 리모컨을 든 손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알았다면 지금 화면에 의원님 이야기가 가득할 텐데 지금은 조용하지 않습니까? 아직은 모른다는 뜻이겠지요.”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알려지게 되면 저는 물론이고 우리 후보님께도…… 큰 영향을 미칠지 모릅니다.”

“그러니 말입니다.”

한진영은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TV 화면을 껐다.

“지금 한창 경선 중에 계시지 않습니까? 상대측에서는 뭐 하나라도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고요.”

한진영의 말에 안혁규가 대답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상상하기도 싫은 생각에 말할 기운조차도 잃어버린 안혁규였다.

한진영은 그런 안혁규를 향해 낮게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지금은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제 말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이해합니다. 백 번이고 이해합니다.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잠재워야지요.”

안혁규를 향해 바짝 다가가서 말을 하던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다시 몸을 뒤로 물렸다.

그리고 안혁규를 향해 자기가 말하지 않아도 알지 않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안혁규는 그런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보다 허탈한 표정과 함께 어깨를 늘어뜨렸다.

“결국 그분에게 도움을 청해야겠군요.”

한진영은 안혁규가 이야기를 알아들은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번에 일도 잘 처리해주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이번에도 잘 처리해주실 겁니다. 다시 한번 부탁해 보시죠?”

한진영의 말에 안혁규가 씁쓸하게 표정을 짓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진영은 그런 안혁규를 향해 다시 설득하는 말을 건넸다.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가 아닙니다. 언론은 물론이고 이 바닥에서 돈을 벌어먹는 사람들까지 모두 떡밥에 관심을 보인다는 게 문제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의원님뿐만 아니라 후보님께서도…….”

“알고 있습니다.”

안혁규는 손을 들어 한진영이 말하는 것을 막아 세웠다.

더는 듣기 싫고 불쾌하다는 빛이 안혁규의 손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한진영은 안혁규에게는 선택이 하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더 크고 중요한지 모를 정도로 안혁규가 바보는 아니지.’

한진영은 선택하는 것이 괴로워 시간을 멈춰놓고 있는 것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만히 안혁규의 선택을 기다렸고, 그렇게 몇 분간의 시간이 흐른 뒤 결국 안혁규는 선택을 끝낸 뒤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금은 돈이 급한 게 아니겠지요?”

“경선이 한창 진행 중입니다. 이 상황에서 방법이 있을까요?”

“그렇지요. 경선 그리고 다음에는 대선까지…… 차곡차곡 스케줄이 이어져 있지요. 이 상황에서 제가 후보님의 발목을 잡을 일은 벌어지면 안 됩니다.”

다짐과도 같은 말을 내뱉은 안혁규였다.

한진영은 그런 안혁규의 말에 잘 선택했다는 뜻으로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안혁규는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항상 돈이 급해 대표님을 찾을 때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기분입니다.”

“그때마다 돈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까요. 저도 안 의원님과의 관계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였다면 돈 이야기만을 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지금은 돈이 중요한 게 아니지요. 지금도 그랬고 그전에도 그랬고…….”

안혁규는 알겠다는 뜻으로 입술을 꾹 다물었다.

돈이 급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경선을 마칠 때까지는 어떻게든 시간을 지연시킬 정도는 됐다.

하지만 안혁규와 안산문어가 일으킨 파문은 벌써 거대한 파도가 되어 당장에라도 덮쳐올 것만 같은 상황이었다.

빨리 진정시켜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파도를 눌러줘야만 했다.

“김 대표님이시라면 하실 수 있을 겁니다.”

한진영은 걱정하는 표정의 안혁규를 안심시키기 위한 말을 건넸다.

안혁규도 한진영의 말에 동의한 것인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잠시 마무리 대화를 나눈 뒤 안혁규는 동우 법률사무소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김 대표님께서 나머지 걱정거리도 해결해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씁쓸한 표정으로 악수하던 안혁규는 한진영의 말에 잠시 놀란 표정으로 손을 잡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손아귀를 통해 안혁규가 놀랐다는 사실이 전해오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만약 돈 보다 더 화급히 해결해야 할 일이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제가 도와드릴 수는 없었습니다. 베이스로 깔고 가는 돈 자체가 너무 적었으니까요. 경선까지 진행하는 비용을 제외하게 되면…… 저도 원금의 4배, 5배를 단시간 만에 튀기는 일은 할 수 없습니다.”

“역시 그랬군요. 말씀해주시지 않았다면 돌아가면서도 가슴속에 아쉬움이 남을 뻔했는데…… 이렇게라도 이야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돈에 나머지 경선 비용까지 제하고 난다면 2,000억이 채 남지 않게 될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본전을 찾기 위해서는 4배 이상을 튀겨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더해 만약 기대했던 수익까지를 더 올린다면 수익률은 하늘을 뚫고 올라가야 가능한 상황이 펼쳐져야만 했다.

한진영은 이런 사실을 솔직히 이야기한 것이었고 안혁규는 이런 한진영의 대답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기대를 완전히 접은 안혁규는 잡았던 손을 풀고 가슴을 한번 쓸어내리며 조금 전 이야기를 물었다.

“그런데 그 돈을 김 대표님께서 어떻게 해결해주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돈이란 게 꼭 투자해서 얻는 방법만이 있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저보다 안 의원님께서 그런 쪽으로는 더 잘 아실 것 같은데 말입니다. 투자자로서 저는 안 의원님의 가치를 5,000억 이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진영의 말이 의미한 바를 깨달은 안혁규는 한진영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대표님께서는 흔히 말하는 주식쟁이가 아니시군요. 어이쿠 죄송합니다. 흥분하다 보니 말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저도 저를 표현할 때 스스로 주식쟁이라고 이야기하고는 하니 잘못 말씀을 하신 건 아닙니다.”

미안해하는 안혁규를 향해 웃음으로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그리고 그는 지난날 주식쟁이로만 남아있던 그를 처참하게 만들었던 당사자를 향해 똑바로 이야기했다.

“저는 살아남기 위해 주식쟁이 이상이 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치공학에도 관심이 많은 것이고요.”

한진영의 말에 안혁규는 이해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를 아셔야지요. 그런 면에서 한 대표님께서는 더 높은 곳에 올라서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바라는 바입니다.”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가볍게 안혁규를 밖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의원님의 어려움이 어쩌면 가까운 곳에서 간단하게 해결될지 모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앞으로 의원님께서는 경선 이후에도 많은 일을 하셔야 하는 분 아니십니까?”

한진영은 안혁규를 달래고 떠나는 그를 향해 친절히 손까지 흔들어줬다.

그런 한진영을 향해 안혁규는 밝게 웃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다.

그러나 한진영의 눈에는 밝게 웃고 있는 안혁규의 등 뒤로 검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보였다.

***

세이지 자산운용의 펀드는 횡보장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했다.

다른 펀드들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시장 수익률보다 낮은 성적을 보일 때도 세이지의 펀드만큼은 꾸준한 우상향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런 세이지 자산운용의 펀드는 세간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남들보다 뛰어난 상품 특히 돈과 관련된 것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높은 관심을 가지기 마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관심에는 대경TV의 도움도 있었다.

-오늘도 세이지 자산운용의 펀드를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가 없는데요. 여전히 성적이 매우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두 여러분들의 뜨거운 관심 덕분입니다.

-그럼 도움을 드렸으니 여기서 살짝 세이지 자산운용의 포트폴리오 좀 공개해주실 수 없으십니까?

아나운서가 기대에 찬 목소리로 최석영을 향해 부탁했다.

최석영은 그런 아나운서의 부탁에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큰 비밀이지만 여기에 와서 아무것도 내놓지 않고 돌아갈 수 없다는 심적인 갈등을 얼굴로 표현한 것이었다.

-최 차장님.

-좋습니다.

최석영은 결심을 한 듯이 얼굴을 굳히더니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분간 정유주들에 관심을 가지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정유주요?

-네. 몇 년 전부터 이어진 유가의 급등락 속에서 정유주들이 갈피를 잡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증시를 비롯한 외부 시장이 안정기에 들어간 만큼 그동안 가지 못했던 정유주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럼 세이지에서도…….

은근한 어조로 물어보는 아나운서의 말에 최석영은 이길 수 없다는 듯이 손을 들어 아나운서를 향해 흔들었다.

-네. 저희도 정유주를 주력으로 가지고 가는 중입니다.

최석영은 카메라 쪽으로 시선을 돌린 채 계속 이야기했다.

-정유주의 강점은 안정적인 배당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장기투자자들에게는 정기예금과 같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중기나 단기 투자자들에게도 기회를 주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연말 배당락으로 인해 떨어진 주식을 저렴한 가격으로 보유할 수 있게 되니까요.

말을 마친 최석영은 다시 아나운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장은 내년 상반기까지 횡보를 보일 것으로 예상하는 만큼 성장주를 비롯하여 기술주 등과 같이 지수의 등락에 영향을 받는 주식보다는 정유주와 같이 안정적인 주식을 추천하는 바입니다.

최석영의 말에 아나운서는 고맙다는 말을 연신 내뱉었다.

마치 개인적인 추천을 받은 것처럼 아나운서는 정유주를 몇 번이나 앞에 놓인 대본에 적는 모습까지도 보였다.

이런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더욱 최석영의 말에 매력을 느끼게 했다.

화면으로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이성우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너는 저런 걸 왜 다 알려주냐?”

한진영은 나란히 앉아있던 이성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계속 이야기했다.

“저렇게 정보를 공개하면 좋을 게 하나도 없잖아. 이리저리 파리만 꼬여서 주가에도 악영향을 끼칠 테고…….”

한진영은 이성우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너는 적절한 타이밍에 기풍증권 사장 자리에서 내려온 것 같다.”

“어? 그게 무슨 소리야?”

“네가 계속 사장 자리에 앉아있었다면 회사가 힘들어졌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리고 그 영향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날 가능성도 있었고……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한진영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하게는 이성우는 화면에서 한진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까지 이성우를 바라보던 한진영은 차분히 화면 속의 최석영이 정유주를 추천한 이유를 설명했다.

“주가가 어떻게 해야지 오른다고 생각하냐?”

“사는 사람이 파는 사람보다 많을 때 오르는 게 아닐까?”

“그래. 그러려면 세일즈를 잘해야겠지?”

“주식을 살만한 놈이라고 잘 포장하는 게 중요하기는 하지.”

“이미 우리는 정유주를 들고 있는 상태에서 누구한테 세일즈할까? 같은 업종의 다른 기관 놈들에게? 아니면 약아빠진 코쟁이에게?”

“그럼 저게 세일즈라는 거야?”

이성우가 열심히 아나운서와 주거니 받거니 이야기를 이어가는 최석영이 보이는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한진영은 이성우의 손가락을 따라 화면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우리가 방송에 나가서 이런저런 이야기하는 값은 뽑아야지. 저기 나가봤자 출연료라고 해서 10만 원쯤 받는데 그건 최 차장님 왔다 갔다 택시비 값밖에 안 되잖아. 그렇다고 지난번처럼 펀드를 출시해서 가입자를 끌어모으는 상황도 아니고…….”

“이런 사실을 네 팬이 알게 되면 실망하겠는데?”

“팬?”

“그래. 너와 세이지의 팬들. 벌써 팬덤이 모이고 있더라. 카페도 있고 모임도 있고…… 거기서 너는 뭐 거의 신처럼 추앙받던데? 하긴 나라도 그럴 거야. 돈을 그렇게 잘 벌어다 주는데 그게 신이 아니고 뭐겠냐? 그런 면에서는 나도 네 팬이다.”

이성우가 말을 하고 한진영의 어깨를 두드리자 한진영은 코웃음을 쳤다.

“실없는 소리 그만하고…… 어쨌든 따라 들어오는 사람들에게도 나쁘지는 않아. 돈을 벌게 될 테니까. 최 차장님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거든.”

“그래?”

“그래. 네가 아까 뭐라고 했어? 주식을 사려는 사람이 많아야지 주가가 오른다고 했지? 여러 사람이 들어와 주가를 부양시킬 테니 모두가 해피한 결말을 맞을 수가 있는 거다. 주식은 모두가 승자가 될 수 있는 곳이야. 누가 더 많이 벌고 더 적게 벌고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돈을 벌 수 있는 행복한 시장이다.”

한진영은 말에 이성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천천히 한진영을 바라본 채로 말했다.

“그래. 모두가 해피해진다는 네 말 이해가 된다. 그리고 그중에서 누가 제일 해피해질지도 알 것 같다.”

이성우는 말을 하고 한진영을 가만히 바라봤고 한진영을 이성우의 시선에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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