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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13화 (313/650)

313화 사람까지도 따라 할 거다

대선은 점점 더 뜨거워져만 갔다.

각 언론사에서 보여주는 지지율이 격차를 보이고 있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언론에 친화적인 정당에 가산점을 준 지지율 격차라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런 격차를 지워낸다면 두 후보 간의 차이는 매우 미세할 것으로 생각되어 사람들은 이번 대선에 더욱 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누가 될 것 같냐?”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네 처가에 물어보는 게 더 빠르지.”

“아무리 우리 처가라고 하더라도 네 정보망만 하겠냐?”

이성우와 한진영 그리고 오랜만에 찾아온 김준하와 조지훈 등이 나란히 앉아 TV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하나씩 병맥주가 들려 있었으며 테이블에는 땅콩을 비롯하여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안주들이 놓여 있었다.

한진영 들고 있던 병맥주를 들어 한 모금 마시고는 화면에 비친 후보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저기 다음 대통령 지나간다.”

한진영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안혁규가 모시는 후보를 바라봤다.

“그래?”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눈을 반짝이며 후보를 다시 살폈다.

한진영은 들고 있던 병맥주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이성우를 돌아봤다.

“왜 새삼스럽게 처음 이야기 듣는다는 듯이 그래?”

“네 입에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니까.”

이성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유심히 화면을 바라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그럼 지금부터 줄을 대면 좀 낫지 않을까? 어쨌든 지금은 경쟁이 치열해 보여서 저쪽에도 줄 대려는 사람이 많을 것 아냐? 그럼 지금이 경쟁이 좀 덜하겠지? 그래!”

이성우는 몸을 틀어 한진영 쪽으로 돌아앉았다.

“안 의원 좀 소개해줘.”

“안 의원은 왜?”

“안 의원이 핵심 아니냐? 나도 들은 말인데 후보하고 이야기하려면 안 의원이 허락해야만 한다며? 썰에는 후보의 전화기도 안 의원이 가지고 다녀서 후보하고 직접적으로 연락이 닿을 길이 없다고 내부에서 불만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던데…….”

이성우는 말을 하고 한진영을 향해 은근한 눈빛을 보냈다.

“그런 안혁규하고 너하고 각별하잖아. 그러니까 네가 자리 좀 제대로 만들어 봐.”

“만들면 뭐 하려고?”

“5년이야. 당선만 되면 5년 동안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움켜잡고 있을 텐데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냐?”

“그래서 너도 줄 대려고?”

“모르면 줄 댈 생각을 애초에 안 했을 거야. 나 말고도 접근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나한테까지 그 기회가 오겠어?”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럼. 바뀌었지. 안혁규의 베프가 내 옆에 있잖아.”

“베프는 무슨…….”

한진영이 이성우의 말에 피식하고 웃었다.

이성우는 한진영이 웃는 것을 보고 기대에 찬 얼굴로 부탁했다.

“성우야. 자리 한번 마련해줘. 알잖아. 5년이면 천지개벽도 가능하다는 걸 말이야. 친구 좋다는 게 뭐냐? 한번 도와줘.”

이성우가 한진영의 옆구리를 찌르며 웃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손을 슬며시 잡으며 말했다.

“딴생각하지 마.”

“어?”

이성우는 한진영의 굳은 얼굴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진영의 표정에서 심상치가 않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왜 그래?”

“줄을 댄다든지 아니면 정권에 도움이 되겠다며 나서는 짓 하지 말라는 이야기야.”

“나서지 말라고?”

“그래.”

한진영은 이성우의 손을 잡고 화면 속에 나오는 각 후보 간의 지지율 추이 그래프를 바라봤다.

역전이라곤 일어나지 않았지만, 점점 좁혀지는 격차.

한진영은 화면을 바라본 채 이야기했다.

“지금 나선다면 분명 쌍수를 들고 고마워할 거야. 그리고 정권이 시작되면 공신록에도 이름을 올릴지 몰라.”

“그래. 난 그걸 기대하고 나서려는 거였는데…… 그러면 안 된다고?”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정권에 도움이 되는 일은 하지 마. 뭐 그렇다고 원수가 되라는 뜻은 아니야. 사업하는 사람이 원수를 만드는 일은 바보 같은 일이니까. 단순히 저들이 시키는 일만 하고 나서서 저들과 가까이하지 말라는 뜻이니까 그렇게만 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한진영의 거리를 두라는 말을 이성우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제 막 정권을 움켜쥐려는 그들과 가까워지지는 못할망정 거리를 두라는 말이 이성우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한진영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의 이성우의 등을 두드리고 말했다.

“차츰차츰 알게 될 테니까 내 말대로 해. 이번 정권. 네 생각만큼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5년의 정권이 어째서 생각만큼 오래가지 못하다는 건지 이성우를 비롯하여 자리에 있던 이들은 궁금한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

“이번 대선은 별 재미가 없네.”

“따지고 보면 일반 사람들에게는 다른 때보다 재미가 있는 대선이지. 지난번처럼 한쪽이 압도적으로 차이를 내는 게 아니라 서로 엇비슷하게 진행되고 있으니 박진감은 지금이 더 있으니까. 그저 우리에게만 재미없는 대선인 거야.”

“내 말이 그 말이야. 우리 입장에서 재미가 없다고…….”

증권사 직원들은 큰 장이 열릴 걸 기대했었다.

원체 지난 대선이 화려했기 때문에 그 당시를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이번에도 한차례 테마주가 시장을 휘몰아치지는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었다.

지난 대선에서는 소형 건설주들이 날랜 모습을 보였었다.

건설 붐이 올지 모른다는 희망과 공약들이 합쳐져 소형 건설사들에 엄청난 자금이 몰렸던 것이었다.

주도주로 평가되던 종목은 대선에서 승리한 이가 경선 후보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때부터 시작하여 100배가 넘는 상승을 보여주기도 했다.

2등 주와 3등 주도 10배 이상의 성적을 보이며 시장을 이끌어 갔다.

건설주들만 움직였던 것은 아니었다.

자전거 활성화를 부르짖는 바람에 자전거 주도 날뛰었으며, 후보가 잠시 몸담았던 회사와 비슷한 이름을 쓴다는 이유만으로도 심심하면 상한가에 도달하는 폭발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업가 출신의 후보이기에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며 80년대 초반의 호황기를 다시 불어올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증시로 돈이 쏟아져 들어왔던 것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도 증권사 직원들은 큰 기대를 하고 대선을 지켜봤다.

당시처럼 증시가 미쳐 날뛰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테마주 열풍이 몇 번은 불어오지 않겠냐는 기대하며 시장을 바라봤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시장은 잠잠하기만 했다.

오르지도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는 모습의 횡보장 속에서 테마주는 힘을 전혀 쓰지 못하는 이번 대선 기간이었다.

“이제 투표도 며칠 앞으로 다가왔는데…… 끝났다고 봐야겠지?”

“그래야지. 에이. 지난 대선처럼 미친 장이 열리나 했더니 말짱 황이야.”

“그러게…….”

증권사 직원들은 테마주 시장이 열리며 고객들이 시장에 들어와 마구 거래하기를 꿈꿨었다.

고객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거래하며 쏟아내는 수수료가 그들의 주머니에 들어오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기대와 달리 허무하게 끝이 나는 대선 기간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 대선은 주식시장에서만큼은 지난번에 비해 흥행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런데 지금 장에서도 세이지는 돈을 벌고 있다며?”

이렇게 식어버린 장에서도 돈을 버는 곳은 있었다.

바로 세이지 자산운용이 바로 그곳이었다.

동료의 말에 이야기를 들은 증권사 직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세이지 이야기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기 때문이다.

“가짜는 아니겠지?”

들으면 들을수록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뿐이었다.

횡보장에서도 벌써 한 달 만에 10% 가까운 수익을 올렸다는 발표가 있었다.

펀드 대부분이 기준값을 중심으로 1% 내외의 이득과 손해를 보는 상황에서 세이지의 10%의 수익은 다른 세상 이야기처럼 들릴 뿐이었다.

그래서 혹시 세이지가 수익을 부풀리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10% 수익은 나오기가 어려운 숫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꺼낸 직원은 단번에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이야기했다.

“가짜면 금감원에서 가만히 놔두겠어? 고객들 돈을 유치해서 진행하는 거라서 금감원이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속이겠어? 만약 수익률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걸리면…… 경고나 페널티 정도에서 끝이 나지 않아. 바로 회사는 날아가고 사장은 감옥행이야. 그것도 일이 년짜리가 아니라 10년 이상으로…….”

“하긴 그렇긴 한데…… 믿을 수가 있어야지. 이런 장에서도 그렇게 수익을 올린다는 게 말이야. 차라리 이럴 거면 그냥 세이지 포트폴리오를 따라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야. 안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해. 뭐 하러 힘들게 설계하고 종목 분석하겠어? 그냥 따라 하면 되지. 하지만 그럴 수 없잖아. 그렇게 되면 도의적으로…….”

도의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말을 하려던 직원은 문득 무언가를 떠올렸다.

“우리는 못 하지만 할 수 있는 곳은 있겠네.”

“어디?”

어디냐고 묻던 직원도 한 군데를 떠올렸다.

추종 펀드를 만들어 따라 해도 남들에게 손가락질받지 않는 곳.

그리고 오히려 그런 행동이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로 굳어져 있는 곳.

두 사람은 동시에 경기증권을 떠올렸다.

***

대선 결과는 결국 동우 법률사무소에서 예측한 대로 51대 48의 결과로 끝이 났다.

당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힘을 써서 예상대로 결과가 나온 것인지 아니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해 예상대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동우의 예상대로 결과가 나왔다는 사실에 동우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이 동우 법률사무소 손안에서 움직인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전날 나온 대선 결과에 맞춰 특집방송을 내보내고 있는 화면을 바라본 채 조지훈을 불렀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부름에 한걸음에 달려왔다.

“부르셨습니까?”

“어떻게 됐어?”

“최종필 말씀이십니까?”

“그래. 최종필. 어디까지 진행했어?”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조지훈을 올려다봤다.

조지훈은 평소와 달리 먼저 진행 상황을 물어오는 한진영을 향해 의아함을 숨긴 채 대답했다.

“네. 말씀하신 대로 고딕브라운에서 운용역에 필립 최, 최종필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역시 고딕브라운에 있었어.”

한진영은 자기의 생각이 맞았음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워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을 향해 천천히 진행 상황을 계속 이야기했다.

“어렵게 약속을 잡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다시 만날 것까지 이야기했습니다.”

“그래. 잘 진행되고 있나 보군. 그런데 왜 ‘어렵게’라는 말을 쓴 거지? 최종필이 안 만나주려 했나?”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철저히 저희를 무시하는 통에 이야기 나누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자기는 뉴욕 월가의 사람이고 우리는 저~ 변방에 위치한 이름 없는 자산운용사라 이건가?”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바로 그 이유로 만나주려 하지 않았습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특별지시만 아니었어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최종필과 접촉하려던 것을 포기했을지 몰랐다.

그만큼 최종필이라는 이가 세이지 자산운용을 철저하게 무시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최종필의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점점 얼굴이 일그러지는 조지훈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이요?”

“그래. 조금만 참고 계속 연락 유지하면서 만나. 그리고 내 말대로 영입 제안을 하도록 하고…….”

“연봉 10억 제안은 좀 파격적이지 않나요? 아무리 월가에 있었던 사람이라지만 자기 이름으로 된 펀드를 내놓은 사람은 아니지 않습니까?”

조지훈은 최종필을 영입하려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홍대민이라는 걸출한 운용 마스터가 있는 데다 한진영이라는 자본시장을 꿰뚫어 보는 사람이 세이지의 큰 틀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밑으로 난다긴다하는 사람들이 다 세이지에 모여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김준하와 박도하 등이 만든 프로그램이 성장성이 높은 업종과 종목들을 선별하여 계속 공급해주고 있었다.

세이지 자산운용은 이미 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것이 조지훈은 물론이고 내부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이런 세이지에 난데없이 최종필을 부사장으로 영입하려 한다는 것이 조지훈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조지훈이 알아본 바에 의하면 최종필이 비록 월가에서 활동하기는 하지만 그동안 쌓아온 실적이 세이지의 부사장으로서는 모자랐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한 조지훈의 표정을 보고 웃었다.

“이상해?”

“네. 그냥 이상한 정도가 아닙니다. 평소의 대표님께서 보여주시던 인사와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최종필은…… 부사장감이 못됩니다.”

확신에 찬 조지훈의 모습이었다.

비록 한진영이 지금까지 잘못된 선택을 한 적이 없지만,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 조지훈이었다.

한진영을 향해 직언을 날릴 줄도 알아야 제대로 된 비서라는 생각에서였다.

한진영은 굳게 다문 조지훈의 모습을 보고 결국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비장한 모습으로 서 있던 조지훈은 한진영의 웃음소리에 굳었던 얼굴을 풀었다.

“왜 그러십니까?”

“내가 그렇게 확신에 차서 최종필을 영입하려고 하는 것 같아?”

“아닙니까? 우리를 피하려는 그를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만나라고 지시하셔서 정말 어렵게 만났습니다. 그리고 영입 제안에 관한 뉘앙스까지 전하였습니다. 연봉이며 복지와 같은 사소한 것들까지 모두 고심하여 특급대우로 제안을 넣을 준비까지 마쳤습니다. 그런데…… 영입하려는 게 아니었습니까?”

한진영은 은근한 눈빛으로 조지훈을 올려다봤다.

“조 비서가 그렇게 느낄 정도면 다른 사람도 그렇게 느끼겠네.”

“다른 사람이요? 다른 사람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우리를 따라 하려는 사람. 경기증권의 박지훈 말이야. 그도 조 비서하고 똑같이 생각하겠지?”

“그럼…… 경기증권의 박지훈을 속이기 위해 최종필에게 영입 제안을 넣으라고 하신 겁니까?”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느긋한 표정을 지었다.

“따라 하기로 마음을 먹었으니 어떻게 하겠어? 매매뿐만 아니라 모든 걸 똑같이 하려 하지 않겠어? 그래서 최종필을 찾아서 영입 제안을 하라고 한 거야. 그렇게 되면 그가 경기증권으로 가게 될 테니까.”

한진영은 조지훈마저 깜빡 속았다는 것에 만족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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