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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15화 (315/650)

315화 많이 준비해 놓았다

한진영은 옆자리에 앉아있는 이성우를 슬쩍 쳐다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회장님께서 연락하셨다.”

“어? 아버지가?”

조지훈과 신나게 이야기하던 이성우는 회장님이라는 소리에 깜짝 놀라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향해 계속 이야기했다.

“연락하셔서 그러시더라. 너하고 함께 뭐 진행하고 있는 게 있느냐고 말이야.”

“그래서? 그래서 뭐라고 그랬어?”

“너 설마 내 이름 팔아먹고 뉴욕으로 가는 거냐?”

한진영이 한심하다는 듯이 말하자 이성우가 자리에 널브러지며 대답했다.

“내가 살 수가 있어야지. 양쪽에서 서라운드로 잔소리하는 바람에 내가 숨을 쉴 수가 없다. 아니. 내가 본사 가기 전에만 해도 잘해야 일주일에 한 번 오실까 마실까 하던 양반이 뭘 그렇게 회사에 자주 찾아온 다냐? 그리고 맨날 보고하라고 하는데 보고 할 이야기가 있어야지. 오늘이 어제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다르지 않은 날일 텐데 색다른 게 뭐가 있겠어?”

이성우는 반쯤 누워서 발버둥을 쳤다.

“내가 그것만이라면 말을 안 해. 난데없이 결혼하는 것도 억울해 죽겠는데 내가 왜 기분까지 맞춰줘야 하냐고? 날씨가 좋으면 좋다고 성질, 날씨가 안 좋으면 안 좋다고 성질, 예쁜 옷 찾았다고 화내고, 그 옷을 다른 사람이 샀다고 화내고…… 내가 아주 살 수가 없다. 살 수가 없어.”

“그래서 도망치는 거냐?”

“조 비서한테 연락했더니 너 뉴욕 간다고 하더라? 그래서 냅다 아버지한테 너랑 뉴욕 출장 간다고 이야기하고 여기 온 거지.”

이성우는 그래도 이렇게 도망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은 건지 누운 채로 발을 동동거리며 즐거워했다.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사실에 아주 기분이 날아갈 듯하다. 가서 푹 쉬어야지.”

한진영은 이성우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너 나중은 생각하지 않냐?”

“나중? 무슨 나중?”

“다녀와서 회장님이 진행 상황 보고하라고 하면 뭐라고 할 생각인데?”

“글쎄 뭐 놀러 가는데 그런 것까지 신경 써야겠냐? 갔다 와서 생각해보지. 뭐.”

한진영의 말에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한 이성우는 승무원을 부른 뒤 한진영에게 말했다.

“그리고 네가 그랬잖아. 나한테 결혼 선물로 뭘 해주겠다고. 그거 이야기하지 뭐.”

“그게 뭔 줄이나 알고서 그걸 이야기하겠다고 하는 거야?”

“뭔 줄 모르지만 네가 기대하라고 하지 않았냐? 그럼 좋은 거겠지.”

“그러니까 뭔 줄도 모르고 회장님께는 뭐라고 하려고?”

“기다리시라고…… 결혼식 올리기 전에 너하고 준비하던 게 마무리될 거라고 이야기하면 되지. 뭘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해? 다 잘 될 거야. 걱정하지 마. 아버지는 너 믿고 있어서 너하고 뭐 한다고 하면 다 오케이야.”

한진영은 막힘 없이 술술 나오는 이성우의 말에 할 말을 잃었다.

이성우는 다가온 승무원에게 와인을 주문하고 한진영을 향해 웃었다.

“여기 항공사 와인이 괜찮아. 이번에 세계 최고 소믈리에로 선정된 파을로 어쩌고 저쩌고가 기내 와인하고 샴페인 리스트를 짰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반 비행기에서 먹는 와인치고 맛이 좋아.”

말을 마친 이성우는 승무원에게 와인 잔을 건네받고 맛을 봤다.

“구름 위에서 먹는 맛이 아주 죽인다.”

“아직 이륙 안 했다.”

“죽일 거라는 이야기지. 구름 위에서 먹으면 죽이겠다. 어? 뭐 이런 의미로…….”

이성우는 능글능글 웃으며 와인 잔에 담긴 향을 음미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공항에 내린 한진영 일행은 옷을 여미며 차를 기다렸다.

“으아~ 춥다. 여긴 아직도 한 겨울이네.”

이성우는 유독 추위를 많이 타는지 제자리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들어오는 차를 확인했다.

“저기 옵니다.”

조지훈이 이야기한 고급 세단이 들어오자 이성우가 먼저 기다렸다는 듯이 차에 올라탔다.

한진영은 자기보다 먼저 자리에 오른 이성우를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쳐다본 뒤 뒤를 이어 들어갔다.

“어서 와.”

“누가 보면 네 차에 내가 얻어 탄 줄 알겠다.”

“네 차가 내 차, 내 차가 네 차 아니겠냐?”

“그런 걸 왜 너 혼자 정해?”

“정서적으로 너와 나 사이를 잘 따져 본 뒤에 내린 결론이야. 어쨌든 시끄럽고 빨리 가자. 춥다. 조 비서야. 빨리 가자고 말해.”

조수석에 앉은 조 비서에게 이성우가 이야기하자 한진영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이성우에게 말했다.

“조 비서는 내 비서야. 네 비서는 어디에다 두고 와서 내 비서에게 이래라저래라해.”

“거참. 네 비서도 내 비서, 내 비서도 네 비서.”

“누가 그러냐?”

“정서적으로…….”

“됐다. 알았으니까 그만하자.”

이성우하고 더 이상 이야기해봤자 소용없다고 생각한 한진영이 손을 휘저으며 자리에 똑바로 앉았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을 보고 맨해튼가 센트럴파크 근처에 위치한 호텔로 갈 것을 운전사에게 주문했다.

한진영은 차가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이성우를 돌아보고 물었다.

“그런데 너 진짜 수행원 한 명 안 데리고 온 거야?”

“그렇다니까. 왜 자꾸 물어봐.”

“너 혼자서 뭘 할 수 있다고 비서도 없이 혼자 왔어? 이 먼 타국 땅에 말이야.”

“너하고 지훈이 있잖아.”

“우리 놀러 온 거 아니다.”

“알아. 알아. 그냥 너 볼일 볼 때 주변에다 떨궈줘. 그러면 조용히 잘 놀고 있을게. 그러다 볼 일 다 보면 나 데리고 돌아가면 되고…… 어? 그렇게 하자.”

이성우가 한진영이 싫다고 할까 봐 걱정됐던지 한진영의 팔까지 붙들며 애원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질색하며 이성우를 밀어냈다.

“징그러. 붙지 마.”

“좋아. 이렇게까지는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브로드웨이 뮤지컬 VIP 박스석 티켓. 그리고 공연 뒤 멤버들과 함께 파티를 즐길 수 있는 초대권. 어때? 이 정도면 되겠어?”

이성우는 품에서 티켓을 꺼내 한진영 앞에서 흔들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보면서 티켓이 나온 이성우의 가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뭘 많이 준비했다. 이렇게 된 거 낱개로 그때그때 꺼내지 말고 다 꺼내 봐. 또 뭐가 있냐?”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웃으며 품에서 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꺼냈다.

“주변 유명 레스토랑 예약한 것들하고 갈만한 전시회장 혹은 이맘때쯤 열리는 사교모임 같은 것들. 뭐 그런 것들 정리한 거야.”

“너 무지하게 뉴욕 오고 싶었구나.”

“뉴욕에 오고 싶었다기보다는…… 친한 친구와 어? 함께. 어? 이렇게…… 노는…… 어? 그런 걸 그리워한 거지.”

한진영은 이성우의 손에 들린 티켓과 리스트가 적힌 종이를 다시 이성우의 품으로 돌려줬다.

그리고 앞 좌석을 손으로 두드리며 조지훈에게 말했다.

“조 비서. 아까 비행기 안에서 이 녀석에게 받은 농구 티켓 좀 줘봐.”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단번에 대답하고 티켓을 꺼내 한진영에게 내밀었다.

그러나 눈은 티켓에서 떠나지 못하는 것이 한진영에게 건네면서도 못내 아쉬워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성우는 그런 조지훈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봐라. 조 비서가 아쉬워하잖아. 그런데 그거 왜 뺏어? 넣어 둬? 같이 가서 즐기자고.”

“즐기는 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될 거야.”

“어? 그게 무슨 소리야?”

이야기를 하는 사이 어느새 차는 맨해튼 거리로 들어섰다.

맨해튼가 57번지에 자리한 호텔이 점차 눈에 들어오자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건네받은 농구 티켓까지 조지훈의 품에 넣고는 내릴 준비를 마쳤다.

이성우는 얼렁뚱땅 표를 다 돌려받았다.

그리고 한진영의 뒤를 이어 차에서 내릴 준비를 마치며 이야기했다.

“야. 이거 표 다 어렵게 구한 거야. 내 비서들이 이 표 구하느라고 얼마나…….”

이성우는 왜 돌려주냐는 듯이 말을 하며 멈춰진 차에서 내렸다.

한진영의 뒷모습을 보며 내린 이성우는 몸이 반쯤 차에서 빠져나왔을 때 누군가가 목덜미를 잡는 느낌을 받게 됐다.

“어?”

목을 통해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 왔다.

“누구…….”

몸을 완전히 빼낸 이성우는 자기 목덜미를 쥐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려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점차 보이는 발과 다리 그리고 가슴까지…….

이성우는 안 좋은 예감이 강하게 머리를 울리는 것을 느꼈다.

“시간 맞춰 잘 도착했네요.”

“어? 어…… 서영 씨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

이성우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문서영과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한진영의 표정에서 자기와 같이 놀라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것을 확인한 이성우는 한진영이 문서영을 불렀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바라보고 웃었다.

“맞아. 내가 제수씨 불렀어.”

“네가? 왜?”

이성우는 잔뜩 소리 높여 물으려다 문서영이 곁에 있는 것을 떠올리고 급히 목을 어깨 사이로 집어넣었다.

하지만 목소리를 대신해서 눈빛으로 도대체 왜 불렀냐는 이야기를 이성우는 한진영에게 따갑게 건네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던 문서영이 코웃음을 치며 이야기했다.

“진영 씨가 그러더라고요. 혹시 성우 씨와 함께 뉴욕에 오는 거냐고요. 성우 씨가 진영 씨에게 숙소와 항공편을 부탁했는데 항공편을 잡으려면 제 여권이 필요하다면서 알려주면 항공편을 잡아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야 이…….”

이성우는 한진영을 향해 소리를 지르려다 참았다.

목덜미를 잡고 있는 손의 주인인 문서영이 눈을 부릅뜨고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자리를 티켓을 끊고 오게 됐죠.”

문서영은 짐을 내리는 조지훈을 살피고는 다시 한번 코웃음을 쳤다.

“수행원도 데리고 오지 않고 아주 소박하게 오셨네요. 아버님에게는 진영 씨와 무슨 사업차 왔다고 하는데…… 진짜 사업 때문에 온 거 맞아요? 혹시 여자 만나러 온 거 아니에요? 사업 때문에 왔는데 어째서 수행원이 없는 거죠? 당연히 당신을 도와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서영 씨. 제가…….”

이성우는 문서영에게 변명하려 머리를 최대한 빠르게 굴렸다.

그러나 너무 당황스러운 상황이 펼쳐져서 그런 건지 오늘따라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이성우가 떠듬떠듬 말을 하려 했지만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자 한진영이 이성우를 대신해서 문서영을 향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서영 씨. 성우가 서프라이즈 선물을 준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너무 놀라서 그런 건지 말을 제대로 못 하네요.”

“서프라이즈 선물이요?”

도끼눈을 치켜뜨고 있던 문서영은 한진영의 말에 손에 힘이 슬며시 빠졌다.

그 틈을 탄 이성우는 목을 한번 털어내고 한진영을 향해 무슨 소리를 하냐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문서영을 향해 이야기했다.

“성우 품을 한번 뒤져보세요. 서영 씨와 함께 가려고 준비 많이 했답니다.”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가 기겁하고는 손을 위로 올려 막으려 했다.

그러나 그런 이성우의 손보다 문서영이 먼저였다.

그녀는 한진영의 말대로 품에 손을 집어넣어 잡히는 것을 꺼냈다.

한진영은 문서영이 손에 잡히는 것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 어렵다는 뉴욕 닉스 홈티켓에 브로드웨이 뮤지컬 VIP박스 티켓 그리고 전시회와 뉴욕에 있는 레스토랑 예약들…… 모두 서영 씨를 위해 준비한 거랍니다.”

“정말이요?”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목소리의 문서영이었다.

그녀는 한진영의 말을 듣고 손에 잡힌 티켓들과 이성우를 감동한 눈빛으로 번갈아 바라봤다.

이성우는 그런 문서영의 눈빛에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제가…… 준비한 겁니다.”

“뭘 이런 걸 다…… 성우 씨. 제가 오해했나 봐요.”

주변에 사람이 없다면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은 포즈의 문서영이었다.

그러나 이성우는 부담스러울 정도로 큰 문서영이기에 자기도 모르게 뒤로 한걸음 물러났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등을 손으로 막아 똑바로 서게 해주며 문서영을 향해 이야기했다.

“제가 실수했습니다. 서영 씨에게 묻는 게 아니었는데 제가 눈치도 없이 서영 씨에게 말한 것 같습니다. 아마 성우는 먼저 와서 준비를 다 마친 뒤에 서영 씨를 초대하려고 한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그렇지?”

“어? 어…… 어.”

이성우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자 한진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계속 이야기했다.

“실수했다고 느꼈을 때만이라도 서영 씨에게 언질을 줬다면 오해하지 않았을 텐데 제가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한진영이 한쪽에 조심스럽게 서 있던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성우 방으로 잡아놓은 거 스위트로 업그레이드시켜주고 침대도 더블 침대 하나만 남기고 나머지 다 정리해달라고 해. 신혼부부 느낌으로 데코레이션하는 것 잊지 말고.”

“야!”

이성우가 깜짝 놀라 한진영을 향해 손을 내밀고 불렀다.

그러나 곁에 있던 문서영이 이성우의 팔을 끌어안으며 쳐다보자 이성우는 하고 싶은 말을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저 떠듬거리는 말로 한진영을 향해 말할 뿐이었다.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더블 침대는…… 아직 우리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이성우가 문서영의 눈치를 살피며 말하자 한진영이 실수했다는 듯이 문서영을 향해 물었다.

“이런. 제가 먼저 여쭙지도 않고 지시했네요. 제가 너무 무례했나요?”

“아니요. 딱 좋아요. 침대는 하나. 이거 중요하죠. 그리고 지금 올라간 뒤로 내일 저녁때까지 방해하지 말라는 말도 꼭 전해주세요. 진영 씨도…….”

“네. 걱정하지 마세요. 일절 연락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뉴욕에서 즐기시는 동안 조금 더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차도 내어드리겠습니다. 지금 저희가 타고 온 차 그냥 사용하시면 됩니다.”

“한 대표님. 고마워요.”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이거로 제가 실수한 걸 만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충분해요. 그럼…… 가요.”

문서영이 이성우의 팔을 끌고 호텔로 이성우를 끌고 들어갔다.

한진영은 조지훈에게 어서 먼저 들어가 처리하라는 뜻으로 턱짓했다.

조지훈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한진영이 조금 전 지시했던 내용을 처리하기 위해 호텔로 급히 달려들어 갔다.

이성우는 한진영에게 무슨 할 말이 많은 것인지 몸을 돌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문서영에게 잡힌 팔을 빼내지 못한 채 그대로 문서영의 손에 이끌려 호텔로 들어가고 말았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호텔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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