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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17화 (317/650)

317화 해보고 싶다기보다는 해 먹고 싶다

한진영의 뒤를 따라 들어온 조지훈은 카운터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예약된 것을 확인한 뒤 한진영에게 인사했다.

“대표님. 그럼 저도 밖에 나가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래. 나가서 성우하고 잘 놀아주고 있어. 금방 나갈 테니까.”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여 알겠다는 말을 전한 후 자리를 안내하는 웨이터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레스토랑 안쪽의 조명은 밖에서 보던 것보다 더 어두운 느낌을 전해줬다.

그리고 이렇게 어두운 조명과 함께 잘 나뉘어 있는 자리는 이야기를 나누기에 이곳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한국에서 이렇게 좋은 레스토랑을 찾아낸 조지훈에게 돌아가거든 상을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레스토랑의 제일 안쪽으로 들어갔다.

“여기입니다. 그럼 좋은 시간 보내십시오.”

웨이터가 인사하고 나자 먼저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한진영에게 인사를 건넸다.

“한 대표님?”

평범해 보이는 인상의 남자가 한진영을 향해 한국말을 내뱉었다.

한진영은 상대를 바라보고 한눈에 알아봤다.

“반갑습니다. 세이지의 한진영입니다. 고딕브라운의 최종필 헤드 매니저님 맞으시죠?”

“맞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너무나 흔한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진영과 악수를 한 후 자기가 앉아있던 자리의 맞은편을 손으로 가리키며 앉을 것을 권했다.

“앉으시지요.”

“네.”

한진영이 자리에 앉자 최종필이 뒤이어 앉은 뒤 손을 들었다.

그리고 웨이터에게 준비된 음식을 내어 올 것을 주문했다.

“오시기 전에 제가 먼저 음식을 정했습니다.”

“아~”

“저도 여기 즐겨 오는 곳이라 이곳에서 잘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아마 드시고 나서 후회하지는 않으실 겁니다.”

“아~ 네.”

한진영은 슬며시 미소를 머금었다.

첫 만남의 첫인상에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진영이 잡은 예약이었다.

그리고 돈도 한진영이 낼 것이며 하다못해 한진영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이곳까지 날아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먹겠냐고 말도 없이 자기가 잘 안다고 먼저 음식을 시키는 그의 모습에서 그가 굉장히 독선적인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의 모습에 개의치 않아 했다.

어차피 그를 영입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와 협상을 진행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저 보여주기식의 협상 자리 때문에 이곳에 온 것이었다.

“그럼 먼저 식사하기 전에 일 이야기부터 할까요?”

“그러시지요.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저도 싫어하는 일이라서요.”

한진영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지고 온 서류 판을 내놓았다.

“열어보시지요. 안에 계약 조건이 들어있습니다.”

최종필은 한진영의 말에 서류 판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 뒤 접혀있던 것을 열었다.

그곳에는 당장에라도 사인만 하면 될 만큼 완벽한 계약서가 들어있었다.

한진영은 계약서를 읽어 내리는 최종필을 가만히 기다렸다.

최종필은 쓸데없는 내용은 빠르게 넘어간 뒤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분한 목소리로 읽어 내렸다.

“연봉은 200만 달러. 확실히 처음 제안보다는 나아진 계약입니다.”

최종필은 연봉 부분을 읽은 뒤 한진영을 올려다봤다.

“저희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가지고 온 계약서입니다. 이렇게 직접 이곳까지 왔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으니까요.”

“좋습니다.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늘 자리가 좋게 마무리될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최종필은 200만 달러라는 연봉이 마음에 들었던지 웃으며 다시 계약서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이내 적혀있는 내용에 눈살을 찌푸렸다.

“인센티브는 수익의 0.05%?”

“연봉에 보장된 금액을 올리면서 인센티브 부분을 조금 손봤습니다.”

“0.05%요?”

“너무 적은 것 같아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우리가 움직이는 펀드 하나당 돈의 규모가 1,000억 단위를 훌쩍 넘깁니다. 0.05%라도 큰 수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 봤자 100억에 500만 원이라는 것 아닙니까?”

“5,000억이면 2억 5,000만 원이고요.”

“장난하러 오신 겁니까?”

최종필의 표정은 험악하게 바뀌었다.

“5,000억에 2억 5,000만이요?”

“5,000억이 어려울 것 같아 그러시는 겁니까?”

“그럼 쉬울 것 같아 보입니까? 제가 이런 말장난에 놀아날 만큼 어수룩해 보였습니까?”

발끈하여 소리를 지르는 최종필에 비해 한진영의 모습은 차분하기만 했다.

한진영은 서류판을 다시 최종필 쪽으로 밀어내며 말했다.

“뒷내용도 마저 보시지요.”

최종필은 한진영의 말에 잠시만 화를 참고 다시 서류 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인센티브가 적혀 있는 곳의 뒷부분을 읽어 내렸다.

“인센티브의 기준이 되는 수익 부분은 회사 수익이 될 것이다?”

“개인이 5,000억의 수익을 올리는 것은 어렵지만 회사가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겠지요. 세이지가 올리는 수익이 인센티브의 기준이 될 겁니다.”

“회사의 수익이…… 흐음…….”

조금 전까지 화를 잔뜩 내던 최종필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바뀌었다.

한진영은 단숨에 바뀌는 최종필의 표정에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했다.

“이제 조금 이야기가 되겠지요?”

“크흠. 제가 세이지에 대해 좀 알아봤습니다. 수익이 꽤 높더군요.”

“더 좋아져야지요. 부사장님이 합류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몇 배 더 성장할 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하하. 아직 결정이 내려진 게 아닙니다. 부사장이라니요. 그러지 마십시오.”

최종필이 한진영에게 그러지 말라며 손을 저었지만 싫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마치 최종필은 반쯤은 한진영에게 넘어간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 뒤에는 뭐 큰 이야기들은 없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단순한 이야기들뿐이지요. 상품 개발에 있어 채권 류는 당분간 배제할 생각이니 동의해달라는 이야기와…….”

“잠시만요.”

최종필이 한진영의 말을 막아섰다.

“채권 투자를 보류한다는 말씀입니까?”

“모든 채권 투자를 보류하는 것은 아닙니다. 더블 A 이상 국채를 비롯하여 트리플 A급 혹은 그에 준하는 기업의 회사채까지는 거래할 생각입니다.”

“전환사채는요?”

“CB 말씀이십니까? 그건…… 곤란합니다.”

“곤란하다니요?”

최종필이 집요하게 물어오자 한진영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그리고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이야기했다.

“지금 우리 세이지의 사이즈로는 CB까지 관리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조 단위의 펀드를 운용하면서 CB를 관리하지 못하다니요.”

“거기까지가 한계입니다. 그래서 계속 사람을 영입하고 외형을 확장하고 있는 겁니다. 외형을 확장하고 내실을 다진 뒤 그다음에 노려볼 생각입니다. 그런데 최 헤드 매니저님께서는 CB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관심이라기보다는…….”

최종필은 한진영의 말에 잔뜩 실망한 모습을 보였다.

“제가 관심이 있는 분야는 바로 파생상품 관련된 쪽입니다.”

“주전공은 그쪽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지금 앉아있는 자리도 그렇고 제가 그동안 쌓아온 경력들도 파생상품과는 거리가 멀지요. 하지만 제가 해보고 싶은 곳은 그곳입니다.”

‘해보고 싶다기보다는 해 먹고 싶다는 표현이 맞겠지’

한진영은 속에 말을 하며 코웃음을 쳤다.

최종필.

한진영이 겪었던 지난 시절 그는 자산운용사에 들어가 전환사채를 이용한 사기행각을 벌였었다.

그리고 그 사기행각으로 2조에 가까운 손실을 입히며 당시 자산운용사 순위 1위의 회사를 날려버리는 크나큰 업적을 쌓은 인물이었다.

한진영은 바로 그 사건의 핵심 인물에 먼저 손을 내밀어 그를 경기증권으로 던지려 한 것이었다.

최종필이 좋아하는 정부 여당의 실세들과 손을 잡고 해 먹는 짓을 지난 시절 때보다 시간을 당겨 이번 정권에서 일으키게 만들려는 것이 한진영의 계획이었다.

한진영은 최종필을 바라보며 그가 전환사채를 이용한 사기를 칠 준비를 벌써 하고 있었음을 확인했다.

‘사기꾼 놈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아니지.’

몇 년에 걸쳐 자기 딴에는 치밀하게 준비한다고 했을 게 분명했다.

그래서 최종필에게 접근한 것이었고 생각대로 그는 전환사채를 이용한 사기를 지금부터 준비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

한진영은 아쉽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제 구상과는 조금 차이가 있네요.”

“대표님. 저를 한번 믿고 맡겨주시는 건 어떻습니까?”

“그건…… 저에게도 시간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시간이요?”

한진영의 말에 최종필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여기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와서 시간을 달라는 말을 한진영이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최소한 사흘. 사흘은 주셨으면 합니다.”

“그때까지 여기에 계실 생각이십니까?”

“일주일을 생각하고 왔으니까요. 그리고 제가 봤을 때 파생상품 관련된 부분에서만 의견이 갈리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제 생각만 정리하면 되는 일 아닙니까? 사흘만 시간을 주시면 제가 바로 대답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 외에는…….”

최종필은 다시 서류를 살폈다.

혹시라도 자기가 놓치는 것이 있을까 해서 조건을 다시 살핀 것이었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나머지는 복지와 관련된 것으로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최종필은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 판을 다시 한진영에게로 내밀었다.

“그럼 제가 숙고한 뒤 연락하는 것으로 하고…… 식사하도록 하실까요?”

마침 들어오는 음식을 보고 한진영이 말하자 최종필이 즐거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에 대한 인상을 좋게 받은 최종필이었다.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식사 자리를 이어갔다.

식사를 하며 두 사람은 간단하게 서로 간에 시장을 보는 시각과 전망 그리고 앞으로 흘러갈 분위기 등을 이야기했다.

서로 이견을 보이는 것도 없었으며 대부분 한진영이 최종필의 의견에 동조하며 그의 기분을 맞춰주었다.

최종필은 밥을 먹으면서 점점 열과 성을 다해 이야기를 이어갔고, 나중에 가서는 식사 자리가 마무리된 것을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제가 뉴욕을 가이드 해드릴까요?”

후식으로 간단한 아이스크림까지 먹은 최종필은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지 한진영에게 나서서 가이드를 해주겠다는 제안까지 하게 됐다.

한진영은 그런 최종필의 제안에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저도 일행과 함께 와서요.”

“일행이요?”

한진영이 레스토랑 창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친구들과 함께 왔습니다. 거기에 친구 약혼녀까지 같이 왔고요. 호의는 감사히 받겠습니다.”

“친구분들과 같이 오셨군요.”

최종필은 투명한 레스토랑 유리창을 통해 보이는 남자들을 보고 살며시 미소 지었다.

“겸사겸사 오셨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재미있게 즐기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사흘 뒤.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깊이 생각하고 꼭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럼…….”

한진영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손을 내밀자 최종필도 마주 일어나 한진영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짧게 악수하고 다음에 또 만날 것을 기약했다.

***

레스토랑에서 한진영이 나오자 이성우와 조지훈이 빠르게 한진영의 좌우로 달려들었다.

“이야기 잘 나누셨습니까?”

“뭐 먹었어?”

한진영은 좌우에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문들이 나오는 걸 보고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먼저 이성우를 향해 대답했다.

“몰라. 뭐라고 하던데 그 사람이 알아서 시킨 거라서 이름이 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맛은…… 없었어. 비싸기만 하고 삼겹살에 소주만 못하더라.”

“야. 삼겹살에 소주 이기는 게 몇 개가 없어. 족발이나 보쌈, 곱창 정도가 뭐 비슷한 레벨이지.”

“너도 참…… 입맛 싸구려다. 누가 널 재벌이라고 생각하겠냐?”

“나 재벌 아니야. 아버지가 재벌이지. 나는 재벌이 되고 싶은 사람…… 딱 그 정도다. 알잖아. 우리 신성증권 시흥지점에 같이 다닐 때 일 끝나고 소주에 곱창 구워 먹던 거. 난 그게 좋아. 그리고 그게 나한테 어울려.”

“알았어. 한국 돌아가면 곱창에 소주 한잔 꺾자.”

한진영의 말에 벌써 이성우는 군침을 흘렸다.

미국에 건너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한국의 빨간 고춧가루가 그리워지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등을 쓰다듬으며 조지훈에게 지시했다.

“사흘 뒤. 오후에 내가 허락했다고 연락하면 돼.”

“역시 전환사채 이야기를 꺼내던가요?”

“맞아.”

한진영은 최종필에게 제안하기 위해 들고 왔던 서류 판을 조지훈에게 다시 건넸다.

조지훈은 한진영에게 서류 판을 건네받은 뒤 가방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경기증권이 하려는 건 클론매매이지 않습니까? 그들이 전환사채에 관한 조건을 받아줄까요?”

“받아줄 거야. 그들은 어떤 식으로든 나의 뒤를 따라가려는 놈들이니까 내가 받아들이기로 한 걸 안 이상 그들도 받아들일 거야. 그리고 클론매매라는 게 얼마나 쉬워? 그냥 시스템만 동기화해놓으면 돼. 나머지는 건드릴 게 없으니 나머지는 최종필이 하고 싶어 하는 거 하도록 놔둘 거야. 그리고…….”

한진영은 슬쩍 뒤를 돌아 최종필이 아직 남아있는 레스토랑 쪽을 돌아봤다.

한진영이 나온 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문을 통해 나오는 최종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진영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최종훈이 남아있는 레스토랑을 바라보고 말했다.

“알게 되겠지. 클론매매에도 약점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최종필의 CB 상품이 눈에 들어올 거야. 그렇게 되면 지난날의 반복이 되겠지.”

“네?”

“아니야. 가자. 서영 씨 기다리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한참 신나 하던 이성우는 문서영의 이름이 나오자 화들짝 놀랐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앞서 걸어 나갔다.

이성우는 조금 전과는 다르게 핼쑥해진 얼굴로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한진영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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