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1화 영향을 주는 특별한 경우
한진영이 주문한 딜레이 삽입 작업은 생각과 달리 어려움을 겪었다.
박도하는 이런 어려움을 한진영에게 보고했다.
“동우 로펌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이 상주하고 앉아 모니터링하느라 코드 삽입이 쉽지 않습니다.”
“자리를 뜨지 않는 건가요?”
“네. 식사도 번갈아 하고 화장실도 동시에 가는 법이 없습니다. 회사 문을 닫을 때까지 남아있다 문을 열 때 가장 먼저 회사에 들어온다고 합니다. 아주…… 독합니다.”
박도하가 혀를 내두를 정도로 동우 로펌의 직원들은 철저히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었다.
한시도 프로그램의 모니터링에서 눈을 떼는 법이 없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교대했으며 만약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을 철저히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처음 그들의 그런 모습을 보고 기분이 나쁘기도 했다.
마치 의심을 하는 모습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우려하는 일을 하는 입장이 되고 보니 그런 그들의 모습을 마냥 욕할 수도 없게 됐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박도하의 보고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도 알고 있는 거지요. 문제가 생긴다면 어디서 생기는 건지 말입니다. 아무리 우리를 신뢰한다고 하더라도 돈이 걸린 이상 가족조차도 못 믿는 것이 현실 아닙니까?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그들이 걱정하려는 짓을 하려고 하고 있고요. 그들은 자기들이 무얼 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고 움직이고 있는 겁니다.”
“대표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지난 일주일 정도 지켜봤는데 절대 쉽게 기회를 내어줄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놔두세요.”
“놔두라고요? 그럼 지시하신 내용을 철회하는 건가요?”
“아닙니다. 시간이 해결해줄 겁니다.”
“시간이 흐르면 그들의 긴장이 풀려 빈틈이 생길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긴장한 듯한 박도하의 모습에 한진영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빈틈이 생긴다기보다는…… 다른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질 겁니다.”
“다른 일이요?”
박도하는 도대체 무슨 일로 정신이 없게 되는 거냐며 묻고 싶었다.
지금 봐서는 그들에게는 그런 모습이 보일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장실 가는 것조차 긴장한 채로 신경을 쓰고 있는 그들을 정신없게 만들 일이 무엇일지 상상이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이 말한 일은 모두 이루어졌기에 궁금증을 거두고 한진영의 말대로 우선은 놔두기로 했다.
지키겠다고 눈에 불을 켜고 앉아 있는 이들을 상대로 뚫겠다고 안간힘을 굳이 쓸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약 열흘 정도가 흘렀을 때쯤이었다.
“이거…… 맞나?”
“긴가민가한데 그래도 내 눈에는 맞는 거 같다. 확실해. 그 사람이야.”
“나도 그래. 그런데 아니라고 저렇게 우기니까 긴가민가해.”
“펄펄 날뛰는 게 당연하지. 여기서 어떻게 인정하냐? 그것보다 같이 걸려든 사람이 누구래?”
“우선은 영상에 보이는 사람이 법무부 차관이고 대통령실 비서관하고 다른 정부 부처 사람들도 있었다는 말이 있는데…… 우선 확실하게 확인되는 건 그 차관. 그 사람 하나뿐이야.”
“다 검찰 출신이지?”
“맞아. 검찰 쪽 라인이라는 말이 있어. 특히 듣기로는 이번에 법무부 장관을 한…….”
말을 하던 이가 주변을 잠시 살피더니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이번에 내정된 이의경 장관 라인이라는 이야기가 있어.”
“전 정권에서 민정수석을 지냈던 이의경 장관?”
“그래. 그리고 동우 로펌 라인 말이야.”
“아~ 동우.”
언론에서 어떻게든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막으려 노력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동우라는 이름이 계속 오르내리고 있었다.
특히 내각이 동우 라인으로 싹 갈아엎어진 상황에서 사람들이 동우를 탐탁지 않게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몰랐다.
그런 상황에서 동영상이 유출되며 스캔들이 터지고 만 것이었다.
동영상에는 속옷만 입은 남자가 여자를 끌어안고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영상 속에는 화면에 얼굴이 찍힌 남자 외에도 몇 명의 남자들과 젊은 여자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옷을 벗고 마이크를 잡고 노래하며 춤을 추는 것이 일반적이지 않은 분위기임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영상 속에 보이는 남자 얼굴이 깔끔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실루엣과 유출자의 증언만으로도 새롭게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된 사람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는 신임 검찰총장에 이름이 오르내릴 정도로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다.
라인도 알짜라인으로 잡아 출세 가도를 달렸으며 그 라인의 정체가 신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의경 라인이라는 사실은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의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의경은 동우 로펌 라인이라는 것도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스캔들은 이의경을 지나 동우에게까지 번질 가능성까지 보였다.
정부에서는 우선 법무부 차관으로의 임명을 잠시 중단한 상태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것으로 말을 아꼈다.
언론은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는 있었지만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새롭게 정권을 잡은 정부에 밉보이지 않으려 확정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렸다.
검찰은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며 수사에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영상의 당사자는 영상의 주인공은 자기가 아니라며 극구 부인했다.
누가 봐도 그 사람이건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의심에서 더는 번져나가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누가 뭐래도 동우의 힘이 작용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조지훈은 한진영 앞에서 이번 스캔들에 관한 보고를 했다.
“동우가 모든 라인을 가동해서 이야기를 틀어막고 있습니다.”
“우선은 이야기부터 막고 그다음에 사건의 주인공을 쳐내는 것으로 방향을 잡았겠지?”
“어떻게 아셨습니까? 맞습니다. 바로 주인공을 쳐내다가는 이야기가 엄한 곳으로 튈지 모르니 자기들이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에 몰아넣은 채로 이야기가 사그라들기를 바라는 작전을 짰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만은 않은 모습입니다. 워낙에 당사자의 얼굴이 정확하게 찍혀버린 거라…….”
“막을 거야.”
“네?”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야기한 한진영은 조지훈을 올려다보고 웃으며 말했다.
“화질이 개선되어 그 사람 얼굴이 떡하니 보이더라도 아니라고 우길 거야. 이건 절대 처벌받을 수 없는 이야기거든.”
“처벌받을 수 없다고요?”
“그래. 이의경에 이어 동우까지 이야기가 타고 올라갈 수 있는 일이야. 접대받고 이권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이제 겨우 차관 딱지 단 주제에 처리할 수 있었을 것 같아? 분명 이의경이 가담한 일이지.”
“그렇게 되면 장관 자리에 올려놓은 동우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겠군요.”
“그래. 그러니 동우가 어떤 식으로든 막을 거야. 하지만 막느라 힘을 무지하게 빼겠지.”
조지훈은 감탄하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겨우 동우가 이야기를 틀어막고 있다는 보고를 한 것뿐인데 한진영은 자기가 할 말을 모두 알고 있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놀라움을 표시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찌 아셨습니까? 동우가 잘 막고 있기는 하지만 힘에 겨워하고 있습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라인을 동원하고 분위기를 막아내느라 온 힘을 빼는 모습입니다. 정말 대표님께서는 모르시는 게 없습니다.”
“뭐가 대단하다고 그래? 우리 쪽에도 동우 직원이 파견되어 있잖아. 그것만 봐도 뻔히 보이는 건데 내가 그 정도도 못 알아보는 사람 같아 보여?”
“아~”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의 말대로 동우에서 파견 나와 있는 직원이 반으로 준 것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박 팀장에게 이제 틈이 생겼으니 바늘을 찔러 넣으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홍 팀장에게는 그냥 하던 대로 진행하라고 하면 돼.”
“네. 바로 전하겠습니다.”
한진영은 짧게 대답한 조지훈을 올려다보고 웃었다.
“한숨 돌렸다고 생각할 때 타격을 받으면 어떻게 될까?”
“네?”
“동우 말이야. 이번 일로 발바닥에 땀이 나게 뛰어다녀 겨우 수습했는데 생각도 못 한 곳에서 퍽 하고 뒤통수를 맞았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난 아주 궁금해.”
즐거워하는 한진영을 바라보며 조지훈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더미 데이터를 삽입하는 프로그램을 넣는 것으로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궁금했던 조지훈은 홍대민에게 더미 데이터의 영향에 관해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지금 상태에서는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1초도 아니라 수십 ms 정도의 차이로 어떤 특별한 일이 발생하기는 어렵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더미 데이터가 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고 했다.
변동성이 터졌을 경우.
그 경우를 제외하고는 더미 데이터로 인한 시간 지연 현상으로는 매매에 큰 영향을 미치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변동성이 터질 시기가 아니라고 했는데…….’
2,000과 2,100의 좁은 박스권에서 계속 움직이는 지수였다.
한진영의 말대로 지수는 재미없게 흘러갔으며 지난 큰 변동성을 시간으로 잠재우는 중이었다.
이런 때에는 천재지변과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한 변동성이 터질 일은 없다고 홍대민이 이야기했다.
그래서 조지훈은 더미 데이터를 이용한 시간 지연을 통해 동우에게 클론매매로 타격을 주겠다는 한진영의 말이 이상하기만 했다.
한진영의 머릿속에는 무언가를 그리는 것이 있는 것만 같은데 그게 무엇인지 모르게는 조지훈은 그저 한진영의 질문에 웃을 수밖에 없었다.
‘변동성이 터진다는 이야기인가? 왜? 어떤 거로?’
조지훈은 홀로 생각해봤지만 찾을 수 없는 해답에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한진영이 하는 일에 실패란 없고, 모든 것이 한진영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에 그저 가만히 지켜보면 답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그게 복잡하게 머리를 쓰는 것보다 백배는 낫다고 생각하며 머릿속에서 궁금증을 지워나갔다.
***
한진영은 현황판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동우 직원들을 슬쩍 돌아봤다.
한동안 정신없었던 본사 일로 인해 빠져나갔던 동우의 직원들이 지금은 대부분 복귀하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세이지는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들의 그물망 같은 감시의 눈이 풀어졌을 때 더미 데이터를 프로그램에 삽입할 수 있었다.
성 접대 영상을 무마하기 위해 세이지에 파견 나가 있는 직원 일부를 불러들이며 구명이 생겼기 때문이다.
세이지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일을 마무리하고 다시 복귀한 동우의 직원들은 무언가 바뀐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모니터링 프로그램상에 보이는 숫자가 미세하게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무언가가 바뀌었다고 확신할 수가 없었다.
숫자상의 차이가 있다고 해도 아주 미세한 수준이었다.
게다가 그로 인해 벌어지는 어떠한 변화도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전히 세이지가 매수주문을 넣으면 거의 동시간에 맞춰 주문이 경기증권에도 나갔으며 매도주문도 마찬가지로 나왔다.
모니터링 프로그램상에 보이는 ms 단위의 차이는 광케이블 길이만큼의 차이거나 물리적인 처리 공간이 따로 나뉘어 있기에 나오는 미세한 차이라고 생각했다.
동우 직원들은 복귀 후 며칠 동안 날을 세우고 확인해봤지만, 특이점을 찾지 못해 다시 본래대로 감시의 정도를 바꾸었다.
한진영은 홍대민을 향해 손짓했다.
홍대민은 최수찬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다 한진영의 손짓을 확인하고 다가왔다.
“부르셨습니까?”
“현재 지수 상황은 어떻습니까?”
“여전히 계속 박스권을 그리며 지나고 있습니다. 이러다 주식판에 손님들이 모두 떨어져 나가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될 정도로 지루한 횡보만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펀드의 수익률은 어떻죠?”
한진영의 질문에 홍대민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대답했다.
“안 그래도 조만간 보고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홍대민은 잠시 말을 멈추고 말라오는 입술에 침을 묻힌 후 계속 이야기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시장 수익률을 상회하는 성적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게 어느 정도죠?”
“시장 수익률이 현재 연초 대비 2%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약 7% 수준에 가까운 성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홍대민은 살짝 한진영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전년도 성적에 비하면 매우 보잘것없어 보일지도 모르지만, 시장 수익률 대비 3배가 넘는 수익률은…….”
“알겠습니다.”
한진영은 변명하려는 홍대민을 향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어차피 지금 수익률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으니까요.”
“네?”
작년 수익률은 60%가 넘는 엄청난 성적을 보였었다.
게다가 일 년을 꽉 채운 성적이 아니었기에 그 성적은 더욱 돋보였다.
그래서 지금 보여주고 있는 7%라는 수익률이 한참 모자라게만 느껴졌던 홍대민이었다.
그런데 한진영은 지금 수익률은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니 이게 진심인지 아니면 자기를 위로하는 말인지 알지 못하게는 홍대민이었다.
한진영은 홍대민이 아무런 말을 하지 못하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고 웃었다.
“정말입니다. 지금은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럼 다른 중요한 게 따로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맞습니다. 따로 있습니다.”
한진영은 다시 동우 직원들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그러니 지금은 저들에게 지루함을 안겨주는 게 우선입니다. 매매 횟수를 조금 더 올려주십시오.”
“얼마나 더 올릴까요?”
“최종 목표를 지금의 2배로 설정하고 계단식으로 올려주시면 됩니다.”
“지금보다 2배요?”
“네. 제가 저쪽에는 수익률이 목표보다 저조하여 횟수를 올리겠다고 이야기할 겁니다. 그러니 천천히 계속 올려주시면 됩니다.”
홍대민은 한진영의 의도를 알지 못해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홍대민의 시선을 뒤로한 채 여전히 동우 로펌의 직원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