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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24화 (324/650)

324화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확인한다

지수의 변동성 축소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한 달 전까지만 해도 변동 폭이 월간 기준으로 100포인트는 됐던 지수가 지금은 50포인트까지 축소되어 버린 것이었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니었다.

미국 또한 변동성 축소는 끝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로 줄어들어 갔다.

변동성 지표의 하나인 VIX 지표가 13~14포인트 수준에서 노는 것이 근래에 다시 없을 정도로 시장이 경직되어 있다는 뜻을 잘 나타냈다.

시장은 참여자들에게 인내를 강요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진영은 각 팀의 팀장들을 모아 지금 상황을 정리하는 자리를 가졌다.

“어떻습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홍대민이 주식운용 팀을 대신하여 대답했다.

“마른오징어에 물 짜듯이 안간힘을 다하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기대만큼 수익률이 높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상황인지라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해합니다. 이런 모습은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대표님께서 미리부터 주의를 주셔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기는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마치 시장이 더는 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것만 같습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큰 한숨을 내쉬며 안타까워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런 홍대민의 반응을 이해했다.

어쩌면 홍대민이었기에 이 정도 선에서 이야기를 마무리하지 않았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시장은 매몰차기만 한 상황이었다.

한진영이 이번에는 고개를 돌려 채권팀과 파생팀에게 각각 상황을 물었다.

“채권시장은 어떻습니까?”

“채권시장도 주식시장과 다르지 않습니다. 거래량 자체가 마른 데다 가격 변동도 없는 상태라 시장참여자들이 흥미를 잃은 모습입니다.”

“파생시장은요?”

“파생시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원자재부터 시작해서 환율 등도 안정권에 속속 들어가 주저앉은 모습입니다. 시장은…… 한산하기만 합니다.”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모습에 조수아가 다른 팀장들을 둘러본 뒤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그…… 경기증권과 진행하고 있는 거 말입니다. 그건 언제까지 하는 겁니까?”

조수아가 경기증권 이야기를 꺼내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긴장한 얼굴로 조수아와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모두 궁금해하는 이야기였지만 이야기 꺼내기가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한진영의 입을 주시했다.

한진영이 어떤 말을 꺼낼지 모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한진영은 조수아의 질문에 빙그레 웃고는 물었다.

“불편하십니까?”

“불편할 뿐이겠어요? 아주 성가셔서 죽겠어요. 처음에는 그래도 모니터링 자리에서 꼼짝달싹 않고 앉아있어서 크게 불편한 건 없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얼마나 싸돌아다니는지 모르겠어요. 심심하면 여직원들에게 껄렁대기나 하고요.”

조수아의 말에 최석영이 발끈하여 말했다.

“여직원들에게 껄렁대? 아니 이것들이…….”

“최 차장님만큼은 아니니까 진정하세요.”

“나만큼은 아니야?”

최석영은 당장에라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였다가 조수아의 말에 다시 의자에 기댔다.

조수아는 최석영을 향해 눈을 흘기고는 한진영에게 계속 이야기했다.

“직원들이 얼마나 불편한지 몰라요. 마치 자기들이 갑이라도 되는 것처럼 하고 다니는 것도 얼마나 눈꼴 시린지 몰라요. 대표님. 언제까지 그 사람들하고 같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조만간 돌아갈 겁니다.”

“네?”

이야기를 듣던 조수아가 놀란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다시 물었다.

“조만간 돌아가요?”

“네. 돌아갈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십시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조수아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 조수아를 대신하여 고제상이 물었다.

“아무 성과도 올리지 못했는데 돌아가나요?”

“아무 성과도 올리지 못했으니 돌아가는 것이지요.”

조수아를 대신해서 질문을 던진 고제상도 생각지 못한 한진영의 대답에 눈만 끔벅거릴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한진영이 하는 말의 뜻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렇게 자리를 향해 눈만 끔벅거리는 조수아와 고제상을 번갈아 바라본 후 홍대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VIX 지수가 어디까지 빠져 내려왔지요?”

“일주일 전에 13라인을 깨고 12까지 떨어져 내렸습니다. 역대 최저 라인에 근접했습니다.”

“그렇군요.”

홍대민에게 확인한 한진영은 얇게 미소 지으며 김준하를 돌아봤다.

이제 밑바탕은 다 깔렸으니 본격적으로 움직일 때라는 생각이 들었던 한진영이었다.

그는 김준하에게 미리 준비시킨 것을 묻기 시작했다.

“시장 분석에 대한 값이 나왔습니까?”

“양적완화에 대한 분석 말씀이십니까?”

“네. 제가 지지난 주에 분석하라고 지시한 것 말입니다. 어떻습니까? 결과가 나왔나요?”

자리에 있던 팀장들은 왜 여기서 갑자기 양적완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최석영이 김준하가 자료를 준비하는 사이 다른 팀장들을 대신해서 궁금해하는 것을 먼저 물었다.

“설마 4차 양적완화가 시행되는 겁니까?”

최석영의 질문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촉각을 곤두세우고 한진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이렇게 지지부진한 시장을 움직이게 하기에는 양적완화라는 카드보다 더 좋은 게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요. 양적완화는 이제 없다고 버냉키 의장이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긴 한데…… 그러면 왜 양적완화에 대한 자료를 분석하라고 지시한 건가요?”

“3차 양적완화가 종료되는 시점이 다가오지 않았습니까?”

“네. 그렇기는 하죠. 6개월만 시행한다고 했으니까요.”

“그럼 이제 3차 양적완화를 끝내고 그다음이 나와야 할 타이밍이니까요.”

“그러니까 그다음이 4차가 아닌가요?”

“양적완화의 끝은 다른 양적완화가 아닙니다. 자. 준비됐습니까?”

“네. 준비됐습니다.”

한진영이 말을 하자 김준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준비한 자료들을 자리에 있는 팀장들에게 나눠준 후 가지고 온 노트북을 통해 화면을 띄웠다.

“저희 퀀트 프로그램이 분석한 바에 따르면 올해 안으로 미국이 출구전략을 시행할 가능성을 90% 이상으로 분석했습니다.”

“네?”

“뭐요?”

“출구전략이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김준하가 건넨 자료를 보다 말고 일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모두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에 놀란 얼굴을 감추지 못한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진정시켰다.

“우선 김준하 팀장이 분석해온 것을 보고 이야기 나누도록 합시다. 최 차장님. 이야기 잘 들어주세요.”

“어? 어…… 네.”

약간은 기울어진 자세로 앉아있던 최석영은 의자를 끌어와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았다.

한진영이 이야기를 잘 들으라고 말한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최석영은 자세를 고쳐 앉고 귀를 세워 김준하가 하는 말을 빠짐없이 머릿속에 주워 담았다.

***

한진영과 이성우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진영 씨. 이렇게 큰 집에 혼자 살면 외롭지 않아요?”

부엌 쪽에 있던 문서영이 한진영과 이성우가 앉아있는 쪽을 향해 소리 지르자 집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보다 못한 이성우가 문서영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고 목소리를 좀 줄이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왜요? 뭐 어때요? 여기 우리밖에 없는데 여기서도 조용히 이야기해야 해요?”

“그게 아니라…… 여기 남의 집이잖아요.”

“진영 씨가 왜 남이에요? 성우 씨하고 형제나 마찬가지 아니에요?”

“아니. 그렇기는 한데…….”

이성우가 한진영을 슬쩍 쳐다보며 눈치를 살폈다.

둘만 있을 때야 문서영을 향해 한 말을 당사자 앞에서 하자니 민망한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을 보고 웃으며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형제나 마찬가지이니 제수씨. 편하게 계세요.”

“그래요. 남의 집도 아니라 형제 집에까지 와서 눈치를 왜 봐요?”

문서영은 냉장고에 들어있던 과일을 가지고 와 내놓았다.

“생각보다 냉장고에 먹을 게 많네요. 저는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먹을 게 없을 줄 알았어요. 냄새도 나고 지저분하고…….”

문서영이 의외라는 듯이 한진영이 사는 집을 둘러보고는 편한 자세로 자리에 앉았다.

이런 모습에 오히려 이성우가 안절부절못했다.

“서영 씨. 혹시 집에 가셔야 하지 않아요?”

“집이요? 집에 왜요?”

“밥도 다 먹었고 놀 것도 다 놀았고…….”

“아직 우리 할 이야기가 남았잖아요.”

“할 이야기요? 할 이야기 뭐요?”

이성우가 난감하다는 듯이 묻자 문서영은 이성우를 손으로 밀었다.

괜히 한진영과 사이에 끼어서 귀찮게 하지 말라는 손짓이었다.

“진영 씨. 어땠어요?”

“뭐가 어떻다는 말이에요?”

“아이참. 내가 자기한테 물어본 거 아니잖아. 자기는 좀 조용히 있어. 쉿!”

문서영의 얼굴에 짜증이 몰려오자 이성우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여기서 더 이야기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것을 여러 경험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의 모습에 가만히 웃고는 문서영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까 만난 그 아가씨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가씨라니 무슨 아저씨 같은 말투예요? 제 친구 어땠어요?”

문서영은 한진영을 향해 은근한 눈초리로 이야기했다.

“괜찮지 않아요? 동춘학원 딸이에요. 동춘 고등학교 아시죠? 동춘 중학교도 있고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걔네 집에 학교만 한 7개라던가 그래요.”

문서영은 한진영을 향해 나지막이 웃으며 말했다.

“기업가 딸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거 같아서 교육계 쪽으로 찾아봤어요. 어때요? 저만큼 크지는 않지만 그 친구도 키도 크고 늘씬하잖아요. 대학교는 미국에서…….”

“아까 밥 먹으면서 들었습니다.”

“맞다. 맞아. 내 정신 좀 봐. 다 이야기했죠?”

문서영은 이성우의 허벅지를 때리며 과도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이번에는 이성우를 바라보고 말했다.

“자기는 어땠어?”

“나? 나야 뭐…… 괜찮더라.”

“괜찮더라?”

“아니. 당신만은 못하지. 아무렴 당신만 하려나. 그런데 진영이 짝으로는 괜찮았다 이 말이지. 오해하지 마.”

“그렇지? 나보다는 못하지?”

“그럼. 누가 당신하고 비교해.”

“잘했어. 잘했어.”

문서영은 만족한 듯이 웃으며 이성우의 뒷머리를 쓰다듬었다.

이성우는 이런 행동이 이제 익숙해졌는지 기분 좋게 눈까지 감고 문서영의 손길을 즐겼다.

문서영은 그렇게 이성우에게 칭찬을 건넨 후 다시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진영 씨. 어때요? 마음에 안 들면 다른 친구도 많아요. 지금 친구들이 진영 씨 소개시켜달라고 난리예요.”

“왜요?”

“왜긴 왜겠어요? 지금 또래 중에 제일 잘나가는 사람이 진영 씨잖아요.”

“그건 여기 있는 성우 아닙니까? 이번에 안탐광산으로 홈런 한 방 크게 쳐서 차기 그룹 중에서 가장 앞서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던데 말입니다.”

“그거 진영 씨가 우리한테 주는 결혼 축하 선물이었다면서요. 성우 씨한테 다 들었어요.”

문서영은 한진영을 향해 활짝 웃으며 살며시 고개 숙였다.

“늦었지만 감사해요.”

“천만에요. 이 정도는 해줘야 친구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앞으로 더 좋은 것을 더 많이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말씀만 들어도 감사해요. 그래서…… 저도 마음이 급해요. 진영 씨한테 좋은 짝을 소개해줘야겠다는 뭐랄까? 책임감까지 생긴다니까요.”

책임감을 이야기하는 문서영의 뒤편으로 화면에는 최석영이 나오고 있었다.

한진영은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지만 문서영은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한진영을 바라본 채로 이야기했다.

“오늘 밥만 먹고 들어오지 말고 술이라도 한잔하지 그랬어요?”

“진짜로 할 일이 있어서 집에 들어온 겁니다.”

“할 일이 없어 보이는데요? 아니면 그 친구도 같이 부르지 그랬어요? 그 친구는 진영 씨 마음에 들어 하는 눈치던데…….”

“정말로 저는 오늘 할 일이 있습니다. 그리고 할 일이 남아있는데 오늘 처음 본 사람을 집에 들일 수는 없지요. 그랬다가는 정신이 다른 곳으로 쏠릴 테니까요.”

“자꾸 할 일이 있다고 그러시는데 도대체 할 일이 뭔데요?”

문서영이 말하자 한진영은 손가락으로 문서영 뒤편에 나오는 화면을 가리켰다.

문서영은 한진영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이제 막 최석영과 함께하는 시황분석 프로그램이 시작하려 하고 있었다.

“저게…… 뭔데요?”

“당분간 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 이야기입니다.”

“그걸 보는 게 지금 일이라고요? 방송 모니터링을 하는 게요?”

문서영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저런 것쯤은 다른 직원을 시켜도 되고 나중에 보고받아도 될 일이었다.

그런데 그걸 대표라는 사람이 직접하고 앉아있으니 문서영으로서는 한진영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만도 했다.

한진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의 문서영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저기 나오는 저 최 차장님이 할 이야기는 모두 제가 알려준 이야기니까요.”

“네? 앞으로 저분이 할 이야기를 모두 진영 씨가 알려줬다고요?”

“맞습니다. 제가 알려준 겁니다. 그리고 반대편에 앉아있는 아나운서의 이야기 또한 저와 방송국이 맞춰놓은 대본입니다.”

“그럼 지금 특별 생방송으로 시황분석을 하겠다는 저 프로그램 자체가…….”

“제가 만든 것이지요. 그러니 확인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제작자 입장으로 말입니다.”

문서영은 한진영의 말에 놀란 눈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대본이 대충 나와 있고, 미리 질문과 대답이 맞추어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기는 했지만 모든 것이 한진영에 의해 꿰맞추어져 있을 거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보이는 것은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연극무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문서영의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그럼 저는 왜 오라고 하셨어요? 일해야 하신다면서요? 저는 방해가 되지 않으세요?”

“서영 씨가 집에 온 것도 일의 연장입니다.”

“일의 연장이요? 그럼…… 저는…….”

한진영은 턱짓으로 화면을 가리킨 뒤 말했다.

“저와 함께 방송을 잘 보시고 제 의견을 담아 기사를 써주십시오. 그 정도는 해주실 수 있으시죠?”

문서영은 바로 며칠 전 오빠였던 문동우의 뒤를 이어 기획본부의 본부장에 올라앉은 뒤였다.

그러나 아직 외부로는 발표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문서영은 한진영이 그것까지 알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 표정을 지울 수가 없었다.

“자 시작합니다.”

한진영은 놀라 석상처럼 굳은 문서영을 향해 한번 웃어 보이고는 화면을 바라봤다.

화면에서는 특집이라는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찍혀 있는 방송이 시작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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