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화 군식구들을 내보낼 때가 됐다
한진영은 서준일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대표님. 서준일보에 기사까지 낼 필요가 있었습니까? 서준일보가 기사를 내보낸다고 달라질 것은 없을 텐데 말입니다.”
“달라지는 건 없지. 하지만 달라지는 곳은 있지.”
“달라지는 곳이요?”
한진영은 서준일보의 기사 헤드라인을 손으로 짚은 채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조지훈을 올려다본 채로 말했다.
“서준일보가 달라지겠지.”
조지훈은 한진영이 짚고 있는 기사 헤드라인을 내려다봤다.
[미국 출구전략 가능성 제기]
지난 방송에서 최석영이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신문 지면상에 적어 보인 서준일보였다.
최석영은 한진영의 지시에 따라 방송에 나가 미국의 출구전략을 이야기했다.
이대로 미국은 양적완화 상태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으며 3차 양적완화가 마무리된 시기가 다가온 만큼 마무리 시기에 맞물려 양적완화를 축소하는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이야기를 방송에 나와 한 것이었다.
3차 양적완화를 공개된 자리에서 처음 이야기했을 때도 논란이 있었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시장은 논란에 휩싸이고 말았다.
아직 미국에서 나오지도 않은 이야기를 먼저 이야기한 것은 오만한 태도라는 것이 대부분의 생각이었다.
경쟁사는 잘됐다며 최석영과 나아가 세이지를 물어뜯기 바빴다.
조금 잘나간다고 미국에서 이야기 나오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먼저 이야기할 수 있냐며 세이지에 대한 불신을 이야기했다.
언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에 다들 기사로 세이지의 신중하지 못한 태도를 질타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만큼 신중하고 조심해야 함에도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공개된 자리에 나와 이야기한 것에 심한 비난을 보이기까지 했다.
오직 서준일보만이 세이지의 의견에 동의하는 내용을 기사로 쓸 뿐이었다.
“지금이야 서준일보까지 싸잡아 욕을 먹고 있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 걸리지 않아 사그라질 거야. 그리고 서준일보는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겠지. 원래 비난받다가 찬사를 받았을 때의 그 뽕 맛이 최고거든.”
한진영은 기사를 손가락으로 튕기며 계속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번 뽕 맛을 보게 된다면 다음 뽕 맛을 구하기 위해 나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노력할 거야. 지금의 대경TV처럼 말이지. 그렇게 된다면 우리에게는 카드가 하나 더 생기게 되는 것이니 얼마나 좋은 일이겠어?”
“이 실장님과 문서영 씨가 들으면 섭섭하지 않을까요?”
“섭섭하기는…… 오히려 좋아할 거야. 특히 문서영은 야심이 대단해서 이득이 되는 일이라면 도전도 서슴지 않아. 위험을 감수하는 것쯤은 웃으면서 할 여자야. 그러니 이번에도 내 제안을 받아들인 거지.”
“아무래도 이 실장님과 문서영 씨의 결혼이 대표님께는 큰 이득이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걸 이제야 알았어?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문서영과의 만남을 밀어준 건 아니지.”
한진영이 웃자 조지훈도 한진영과 마찬가지로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가만히 한진영이 조금 전까지 바라보던 서준일보를 내려다봤다.
한진영의 말대로 지금은 서준일보까지 싸잡아 욕을 먹고 있기는 했다.
어떻게 이렇게도 경제에 관해 무식할 수 있냐며 놀림감이 되기까지 했다.
서준일보는 졸지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보는 어린이신문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는 중이었다.
이런 상황이 뒤집힌다면 한진영의 말대로 뽕 맛에 취할 건 안 봐도 훤할 정도였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 뽕 맛에 취할 정도로 상황이 뒤집히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과연 서준일보가 기다릴 수 있을지 조지훈은 궁금하기만 했다.
문서영이 아무리 도전정신이 강하고 야심이 크다고 해도 시간이라는 것을 기다릴 인내심까지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조지훈이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조지훈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채권팀은 어때?”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금 전에 보고 받은 내용을 한진영에게 이야기했다.
“말씀하신 대로 미국 채권을 중심으로 매집하고 있습니다. 나스닥과 S&P의 선물은 매도 포지션을 조금씩 구축해나가고 있으며 VIX는 매수하고 있습니다.”
채권을 물었지만, 파생까지 조지훈은 한진영에게 모두 대답했다.
한진영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너무 일방적인 포지션이라 의문을 가질만한데 잘 따라와 주고 있네.”
“안 그래도 일부 직원들이 의문을 품기는 했지만 대부분 대표님이 보여 준 능력을 알기에 이번에도 잘 따라오는 모습이었습니다. 다만…….”
“다만?”
조지훈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한진영이 앉은 채로 손을 맞잡았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을 잠시 살피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다만 주식운용 파트에서 강하게 의문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주식운용 파트…… 그럴만해.”
한진영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자.”
“지금 말씀이십니까?”
“지금 가야지. 의문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외면하다가는 나중에 일할 때 불편해질 수 있어. 최소한 어떤 의문을 가지고 있는지 정도만이라도 들어줘야지. 그러니 가자.”
한진영이 말을 하고 먼저 문을 향해 걸어가지 조지훈이 급히 먼저 달려가 문을 열었다.
그렇게 두 사람은 주식운용 파트가 자리 잡고 있는 곳을 향해 내려갔다.
홍대민은 현황판을 바라본 채로 고개를 갸웃했다.
최수찬도 이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두 사람이 모두 이상한 듯이 현황판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들 뒤로 한진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가 잘 안됩니까?”
홍대민과 최수찬은 스프링 튀어 오르듯이 자리에서 튀어 올라 한진영을 향해 인사했다.
“오셨습니까?”
“네.”
한진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홍대민과 최수찬이 앉아있던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조금 전 두 사람이 바라보던 모습 그대로 현황판을 바라보고 말했다.
“뭐가 잘 안되는 모습입니다. 생각보다 일이 잘 안 풀립니까?”
“아닙니다.”
“그럼요?”
“생각보다 너무 아무것도 안 해서…… 그게 이상해서 그런 겁니다.”
홍대민의 말에 한진영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비어있는 의자들을 손으로 가리켰다.
“앉으세요. 앉아서 말씀해보세요.”
한진영의 말에 홍대민과 최수찬은 서로를 돌아봤다.
안 그래도 조만간 한진영을 찾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고 생각했던 두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직접 한진영이 찾아온 것이었다.
두 사람은 한진영이 온 김에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뒤 자리에 앉았다.
홍대민과 최수찬은 자리에 앉은 후 시선을 교환한 뒤 홍대민부터 입을 열었다.
“대표님. 출구전략을 예상한 상태라면 물량을 정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출구전략이 일어난다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곳은 바로 우리나라같이 수출 의존도가 큰 나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대기하라고만 하시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홍대민이 말을 마치자 최수찬이 뒤를 이어 이야기했다.
“채권을 매수하고 선물 파트가 하방 포지션을 잡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계속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습입니다. 공매도까지는 아니더라도 보유분을 줄여가며 위험에 대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최수찬도 같은 말을 하자 홍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본 후 현황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지금 보유하고 있는 물량이 어느 정도나 되죠?”
“현재 기준으로 계좌의 80%가 물량이 담겨 있는 상황입니다.”
“많이 담겨 있기는 하네요. 그럼 저쪽도 마찬가지로 80%가 담겨 있는 건가요?”
한진영은 한쪽에 자리 잡고 있는 동우 측 사람들을 턱짓으로 가리켰다.
홍대민은 슬쩍 그쪽을 바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계좌를 복사하여 움직이는 상황이라 비율도 우리와 똑같습니다.”
“그렇군요.”
한진영은 여전히 동우 측 사람들을 바라본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시선을 거두지 않은 모습으로 천천히 이야기했다.
“저들이 있어서 물량을 정리하지 않은 겁니다.”
“저들이 있어서 정리하지 않았다고요? 그건 도대체 무슨 말씀인지…….”
홍대민이 한진영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최수찬을 돌아봤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하기는 최수찬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두 사람은 모두 같은 모습으로 한진영을 바라보기만 했다.
한진영은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을 받은 채로 여전히 동우 쪽 사람을 바라보고 이야기했다.
“우리가 위험을 회피한다면 저들도 위험을 회피하기는 마찬가지일 겁니다. 그렇게 되면 한 달이고 일 년이고 계속 저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지 않겠습니까?”
“어…… 혹시 저들을 내보내실 생각이신 겁니까? 그래서 위험을 회피하지 못하게 매도를 멈춘 상태이고요?”
홍대만인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진영은 고개를 돌려 홍대민을 바라보고 얇게 미소 지었다.
“맞습니다. 언제까지 군식구를 들여놓은 채로 일을 할 수는 없는 법 아닙니까?”
“맞는 말씀이십니다. 저들이 있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저들을 어떻게 내보내실 생각이신 겁니까? 저는 도저히 매도하지 않는 것과 저들이 나가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홍대민이 의아한 듯이 고개를 젓자 한진영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홍 실장님. 우리가 저들 사이에 설치한 것을 잊어버리신 듯합니다.”
“더미 데이터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게…… 아~”
홍대민은 그제야 깨달은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동우가 있는 쪽으로 몸을 훽하고 돌렸다.
동우에서 파견 나온 사람들은 갑자기 왜 홍대민이 자기를 바라보는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무슨 이유인지 알기 위해 홍대민에게 말하려 할 때 최수찬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동우 사람들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실장님께서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시느라 그런 겁니다. 여러분께 할 말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닙니다.”
최수찬은 손을 들어 동우 사람들에게 미안하다는 뜻을 전한 후 홍대민을 자리에 도로 앉혔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홍대민은 얼굴을 붉히고는 한진영을 향해 사과했다.
“대표님. 죄송합니다. 제가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고 추태를 보였습니다.”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아셨다니 저는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진영이 괜찮다는 말을 건네자 홍대민이 얼굴을 상기시켰다.
그리고 자리에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도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변동성이 터지게 된다면 지금은 아무 쓸모 없어 보이는 더미 데이터도 유의미해질 게 분명합니다. 그리고 변동성은 바로 출구전략 발표로 터져 나오게 될 테고요.”
“바로 그겁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지금 정리해서는 안 되지요.”
“맞습니다. 지금 포트폴리오를 정리했다가는 저들도 변동성이 터지는 구간을 회피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변동성이 터지게 된다면 더미 데이터로 인해 클론매매가 무의미해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그런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면 저들은 큰 손해를 볼 게 불 보듯 뻔했다.
홍대민은 앓던 이 같던 동우 사람들을 한 방에 날려 버릴 수도 있게 된 것에 기쁜 마음을 숨기지 못했다.
한진영은 그런 홍대민을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썩은 살을 도려낸다고 칼을 들이댔다가 멀쩡한 살까지 잘라내서는 안 됩니다. 집중하시고 변동성이 터질 때 잘 피해서 물량을 던져주시기 바랍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미 데이터의 효과를 확실하게 하기 위해 잘게 잘라서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매매 횟수를 증가시킨다. 좋은 작전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들이 따라오기는 더 어려울 테니까요.”
한진영은 홍대민의 만족스러운 대답에 크게 웃었고 홍대민도 한진영을 따라 크게 웃었다.
멀리서 앉아있던 동우 직원들만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지루하게 흘러가는 시장을 여전히 바라볼 뿐이었다.
***
세이지가 질타받은 지 열흘 만에 미국에서 세이지와 같은 생각을 가진 기사가 하나 등장했다.
WSJ의 기자가 인터넷판을 통해 출구전략에 대한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야기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미 양적완화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출구전략은 갑작스러운 이야기나 마찬가지였다.
금융위기 이후 연준은 끊임없이 시장에 돈을 공급해왔고, 시장은 그 공급된 돈을 먹으면서 무럭무럭 커져만 갔었다.
더블딥에 대한 공포가 찾아오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연준은 기다렸다는 듯이 시장에 돈을 쏟아내며 침체에 가장 정확한 해답은 돈이라는 것을 매번 보여줬다.
이런 상태가 이어진 지 벌써 햇수로만 5년이 지나고 있었다.
사람들은 긴축재정을 잊어버렸으며, 돈을 푸는 일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상이 익숙해져 버린 것이었다.
긴축 없는 팽창.
사람들은 경제 관념은 양적완화에 익숙해져 버린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출구전략 이야기는 시장을 당황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잊어버린 개념을 일깨웠으며 그럴 일은 없지 않겠냐는 부정이 온몸을 감쌌다.
그러나 부정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람들은 발작하듯이 금융시장에 반응했다.
장중 나스닥은 -2%가 넘는 하락을 보였으며, 채권 가격은 30bp가 오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 것이었다.
혹시 모를 일을 회피해야 한다는 생각에 위험자산을 빠르게 처분하고 안전자산으로 도피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쇼크는 오래가지 못했다.
‘설마’라는 생각이 5년 동안 ‘긴축’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사람들에게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장중 2%가 넘게 빠져 내려가던 지수가 장 후반에 들어서며 급반등을 보여줬다.
아직 양적완화 프로그램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 출구전략을 논하기에는 빠르다는 것이 대다수 시장참여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저명한 투자자들이 힘을 보태주며 시장을 빠르게 진정시켰다.
WSJ 또한 기사는 기자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어느 곳에서도 정보를 받지 않은 순수하게 창작된 기사임을 확인시켜줬다.
시장에 아직 긴축이라는 단어는 먼 이야기라며 시그널을 강하게 주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모두 정작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아니었다.
출구전략을 선택하는 사람들은 지금 상황을 다르게 바라보고 있었다.
5년 동안 3번에 걸쳐 이루어진 일.
이제 끝낼 때가 되었다는 것이 미 연준, FRB 의원들의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