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27화 (327/650)

327화 같은 편이어서 다행인 사람

보합을 넘어 0.2%대의 상승까지 올라섰던 지수가 돌아내려 가기 시작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갈 때의 속도는 더 빠르고 날카로웠다.

외국인과 기관이 쌍끌이 매도를 하며 지수를 찍어 누른 것이었다.

그런 외국인과 기관에 반하여 지수의 상승을 지켜만 보던 개인들은 오히려 물량을 집어넣기 시작했다.

눌림목을 기대하던 개인들에게는 하락이 눌림목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개인들 자금이 증시로 몰려들자 하락 속도가 더욱 가팔라져만 갔다.

마치 시장은 이런 상황을 기다렸다는 듯이 속도를 높여만 간 것이었다.

“하락 속도가 빨라지고 있습니다.”

“프로그램 속도 더 높여. 명심해. 우리가 시장보다 더 빨라야 해.”

“네. 1.7배수까지 속도 올리겠습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에 홍대민이 그때마다 맞춤 전략을 내보냈다.

그리고 그 지시를 받은 최수찬이 각 팀에 홍대민의 지시를 내려보내며 일사불란하게 움직임을 조종했다.

“저기…….”

현황판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홍대민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인상을 쓰고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바쁠 때 누가 자기를 부르냐는 홍대민의 표정이었다.

“어쩐 일입니까?”

동우에서 파견 나온 김 과장이라는 사람이 홍대민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곁에는 박 과장도 함께하고 있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꼼짝하지 않던 자리에서 일어나 처음으로 중앙에 서서 지시를 내리고 있는 홍대민에게 찾아온 것이었다.

김 과장과 박 과장은 잠시 서로를 쳐다보더니 홍대민에게 물었다.

“저희 쪽 계좌와 세이지 간에 동기화가 풀린 것 같습니다.”

“동기화가 풀려요? 그럴 리가요?”

홍대민은 마치 처음 듣는 얘기처럼 질문을 한 김 과장에게 되물었다.

김 과장은 홍대민의 말에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가 몇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조금 전에도 나우지주 주식 5,000주를 매도하지 않으셨습니까?”

“네. 그랬죠.”

홍대민은 현황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엔 조금 전 체결된 주식들이 보여지고 있었고 그곳에는 나우지주 주식 5,000주 매도가 크게 적혀 있었다.

김 과장과 박 과장도 홍대민과 마찬가지로 화면을 바라본 채 이야기했다.

“그런데 저희 쪽에서는 매도가 안 됐습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매도가 안 됐다니요? 주문이 분명 들어갔을 텐데요? 주문이 들어갔는데도 매도가 되지 않았다고요?”

홍대민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하자 김 과장이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정말입니다. 와서 보십시오.”

홍대민은 최수찬은 불렀다.

“최 부실장. 잠깐 동우 분들과 함께 확인 좀 해봐. 지금 우리와 경기증권 사이의 동기화가 풀렸다고 말씀하시니까.”

홍대민은 김 과장과 박 과장을 돌아보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별일은 아닐 겁니다. 최 부실장이 가서 확인해보고 말씀드릴 테니 함께 가서 보시겠습니까?”

김 과장과 박 과장은 알겠다는 말을 남기고 최수찬을 따라 자리로 돌아갔다.

홍대민은 그런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 변동성과 더미 데이터 두 가지가 맞물리며 그들과 세이지 간의 동기화가 풀려버린 것이었다.

홍대민은 점점 속도가 빨라져 가는 지수를 바라보며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동우 직원들이 자리하고 있는 곳을 바라봤다.

한참을 함께 화면을 바라보던 최수찬이 고개를 들고 큰 소리로 홍대민을 향해 말했다.

“실장님. 정말입니다. 동기화가 깨졌습니다.”

최수찬의 말에 홍대민은 깜짝 놀란 표정과 목소리로 급히 지시했다.

“뭐? 그게 정말이야? 어서 IT부서에 연락해서 박 팀장님 빨리 오시라고 해.”

“알겠습니다.”

홍대민은 예상했던 일이지만 마치 큰일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최수찬도 홍대민의 호들갑에 맞장구를 쳐줬다.

동우의 직원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얼굴이 거멓게 죽어가기 시작했다.

큰일이 아닐 거로 생각했던 것과 달리 일이 커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박도하를 비롯하여 IT 부서의 직원들이 도착했지만 풀려버린 동기화를 다시 살릴 수는 없었다.

물리적으로 연결된 세이지와 경기증권이 풀려버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소식을 들은 한진영까지 트레이딩 센터에 내려와 동우 직원들이 머무는 곳에 서서 박도하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니까 연동된 계좌가 풀려버린 것이 아니라 우리 주문을 경기증권이 못 따라간다는 이야기입니까?”

“주문을 못 따라가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가긴 따라갑니다. 다만…….”

박도하는 동우 직원들이 설명을 잘 이해하는지 확인한 후 계속 이야기했다.

“우리 포지션의 반대쪽 사람들이 부족하여 벌어지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물량을 다 던지고 끝이 났는데 뒤에 이어 들어온 경기증권은 매도체결이 되지 못하고 호가에 매도주문으로 남아있게 되어 버린 것인 겁니다. 이건…… 물량을 받아주는 쪽이 없으면 해결되지 않는 문제입니다.”

“동시에 주문이 들어가는데 우리는 체결이 되고 저쪽은 체결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까?”

“맞습니다. 바로 그겁니다. 프로그램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연동이 깨진 건 아닙니다.”

박도하가 대답하며 다시 한번 프로그램을 살폈다.

이상이 없는 모습에 자기가 더는 해줄 것이 없다는 듯한 제스쳐를 취하고는 손을 놓아버린 박도하였다.

거멓게 변했던 동우 직원들의 표정이 지금은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라는 말은 해결책 또한 없다는 말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서 연락하세요. 지금도 프로그램은 계속 돌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동우 직원들은 급히 모니터링 프로그램을 확인했다.

한진영의 말대로 LZ전자 주식 20,000주가 정리가 안 된 채 매도호가 위에 얹어져 있었다.

미세하다고 부를만한 딜레이로 인해 세이지의 물량은 정리가 됐고 경기증권의 물량은 정리가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지고 만 것이었다.

동우 직원들은 사색이 되어 본사로 연락을 넣기 시작했다.

한진영은 그런 동우 직원들의 모습에 슬며시 자리를 비켜줬다.

그리고 홍대민을 불러들여 지금 상황을 확인했다.

“어떻습니까?”

“이상 없이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능한 오늘 정리할 수 있을 만큼 정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홍대민이 대답하고 떠나자 한진영은 조지훈을 불렀다.

“채권팀은 어떻지?”

“평소라면 정리해야 할 자리가 왔다고 하더라도 이번만큼은 자리에 연연하지 말고 더 들고 가라는 대표님의 말씀 전했습니다.”

“조 팀장이 투덜거리지는 않던가?”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말씀대로 조수아 팀장님께서 투덜거리기는 하셨습니다. 이럴 거면 직접 와서 하시지 뭐 하러 자기를 앉혔냐고 투덜대기는 했습니다.”

“흐흐흐. 그러면서도 잘할 거야.”

“맞습니다. 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바로 대표님의 말씀대로 일을 진행하는 것까지 확인하고 올라왔습니다.”

“잘했어.”

한진영은 -2%까지 빠져 내려간 지수를 확인하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 그럼 저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확인해볼까?”

한진영은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동우 직원들을 바라보고 웃었다.

***

점심때까지만 해도 전날 미국에서 벌어진 이벤트와는 무관하게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코스피였다.

오히려 버냉키의 출구전략 언급보다 그 이후에 나온 전문가들의 해석에 힘을 받는 듯한 모습이 뉴욕 지수의 모습은 호들갑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강하게 움직였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지난 이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졌다.

보합에 머물던 지수가 단숨에 40포인트가 넘는 하락을 보여준 것이었다.

2,100 탈환을 목전에 두었던 지수가 그대로 미끄러져 내려가 2,000대 중반을 깨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2,100보다 2,000이 더 가까운 자리까지 빠져 내려간 것에 시장은 버냉키의 출구전략이 마냥 웃어넘길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게 됐다.

시초가를 넘어 -2%가 빠져 내려갔음에도 하락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코스피는 속도를 유지한 채로 -3%까지 하락했다.

이제 지수는 2,000 초반대까지 떨어져 버리고 만 것이었다.

이렇게 증시가 빠르게 빠져나가자 세이지와 경기증권의 동기화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져 버리고 말았다.

세이지는 물량을 정리하고 있건만 경기증권은 세이지의 뒤에 물량이 나와 그냥 매도호가에 얹어지는 상황이 계속 펼쳐지고 있었다.

하락 추세가 시작된 이후로 경기증권은 세이지가 정리한 물량의 1/10도 채 정리하지 못한 채 모든 주문이 호가에 걸려있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어찌 된 일입니까?”

경기증권의 담당자가 부리나케 달려와 동우 직원들을 닦달했다.

“우리도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프로그램은요? 이상이 없는 겁니까?”

“이상 없습니다. 세이지에서도 확인했고요.”

“저리 비켜보세요.”

경기증권 담당자는 자기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겠다며 동우 직원을 밀치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함께 온 직원에게 분석하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한동안 동기화 프로그램을 확인하던 경기증권 직원은 담당자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프로그램에는 이상이 없음을 알렸다.

담당자는 인상을 찌푸리고는 동우 직원들을 향해 말했다.

“그동안은 이런 일이 없지 않았습니까?”

“저희도 그러니 모를 일이라는 겁니다. 그저…….”

동우의 김 과장은 한걸음 떨어져 자기들을 지켜보고 있는 세이지의 직원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세이지에서 말하기에는 딜레이로 인해 주문이 동시에 나가지 못해 벌어진 일이라고…….”

경기증권 담당자는 함께 온 직원에게 동우 김 과장이 한 말이 맞는 것인지 눈으로 물었다.

경기증권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저도 그 부분을 지금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것 외에는 지금 다른 문제 되는 것이 없는 상태입니다.”

“주문이 동시에 못 나가서 그렇다고? 아니 딜레이라고 해 봤자 얼마나 된다고 그래? 딜레이가 얼마였습니까?”

“80ms였습니다.”

동우의 박 과장이 김 과장을 대신해서 대답했다.

경기증권 담당자는 대답을 듣고 함께 온 직원에게 물었다.

“80ms인데도 문제가 되는 건가?”

“평상시라면 문제가 안 될 겁니다. 평상시라면 주문이 거의 동시에 나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의 차이입니다.”

“평상시라면 문제가 안 되는데…… 그럼 지금은 문제가 된다는 소린가?”

“네. 지금은 문제가 됩니다. 지금은…… 초당 수천 건의 주문이 들어가고 있어서 이론적으로 1ms에 하나의 주문이 들어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서요.”

“그게…… 저것 때문에 그렇고?”

경기증권 담당자가 벽에 커다랗게 보이는 현황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함께 온 직원은 담당자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 지수가 하락하며 거래량이 터지는 바람에 딜레이가 실제 거래를 따라가지 못해 벌어진 일입니다.”

“그럼 그 딜레이인가 뭔가를 줄일 방법은 없어?”

“지금 상황으로는 물리적으로 거리를 줄이는 방법 외에는 없습니다.”

“물리적이라면…… 세이지와 우리의 거리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네. 정확히 말하자면 세이지에서 주문이 들어가는 컴퓨터와 그 신호를 받아와 주문을 넣는 저희 컴퓨터의 거리를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론적으로는 그렇게 하면 되기는 하는데…….”

“뭐가 또 문제야?”

경기증권 담당자는 답답한 듯이 소리를 질렀다.

이미 시장은 마감 동시호가에 들어가고 있었다.

문제가 생겼다는 이야기에 부리나케 달려왔지만, 오늘은 결국 어떤 해결책도 찾아내지 못한 채 하루를 넘겨야만 했던 것이었다.

현황판에 보인 오늘 하루 세이지의 청산 물량은 약 5,000억 원에 달했다.

세이지가 보유하고 있는 펀드의 물량을 생각하자면 1/4도 안 되는 수준이었지만 경기증권의 상황을 생각한다면 그 차이는 심각하게 벌어졌다고 볼 수 있었다.

어떤 식으로든 여기서 차이를 더 벌어지지 않게 만들어야만 했다.

화가 난 듯한 담당자의 외침에 함께 온 직원은 잔뜩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거리를 아무리 줄인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변동성에 따른 차이를 좁힐 가능성이 없어 보입니다.”

불가능하다는 답이 나오자 담당자는 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돌아가자. 돌아가서 사장님과 부사장님하고 함께 의논해보자. 이건…… 여기 있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담당자는 빠른 결정을 내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진영을 비롯한 세이지 직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세이지를 떠났다.

한진영은 떠난 경기증권의 직원과 남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하는 동우의 직원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대표님.”

“어?”

그런 한진영을 향해 홍대민이 다가왔다.

“마무리됐습니다.”

“끝났나요? 어떻게 됐습니까?”

“동시호가에 1,200억을 추가로 정리하여 오늘 총정리한 금액이 6,100억입니다.”

“원래 우리가 정리하기로 한 금액이 1조 2,000억이었던가요?”

“네. 맞습니다. 목표 금액의 절반을 겨우 넘겼습니다.”

홍대민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이 다 알려주고 준비를 마쳤음에도 불구하고 절반밖에 정리하지 못한 것이 못내 부끄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지금도 손해를 본 상태가 아니었기에 수익이 축소되는 수준에서는 절반보다 못한 성적을 가지고 왔다고 하더라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애초에 홍대민과 이야기한 것이 오늘 목표는 절반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한진영은 홍대민의 보고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히려 한진영은 얼마나 정리했는지가 궁금하기보다 경기증권의 직원들이 돌아가 어떤 대화를 나눌지 그게 더 궁금했다.

홍대민도 한진영이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는 한진영을 따라 어쩔 줄 몰라 하는 동우 직원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경기증권이 어떤 결정을 할까요?”

“어떤 결정을 하든지 간에 결과는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한진영은 홍대민을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내일도 정리하지 못한 채 그대로 지켜보기만 할 테니까요.”

한진영은 홍대민을 향해 환하게 웃었지만, 홍대민은 한진영의 미소에서 서늘함을 느꼈다.

같은 편이어서 다행인 사람.

조지훈이 한진영을 표현할 때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홍대민도 이제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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