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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31화 (331/650)

331화 임팩트있는 멘트

김성진 피디는 한진영과 인사를 나누고 주변을 살폈다.

조지훈과 짧게 눈인사를 나눈 뒤 최석영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토론 잘 부탁…….”

최석영과는 안면이 있던 김성진이었다.

지난 사전미팅 때 잠깐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눈 사이였다.

그런데 그때와 다른 최석영의 모습에 김성진은 인사를 다 건네지 못했다.

“괜찮으십니까?”

땀으로 목욕을 한 최석영의 모습을 보고 김성진은 괜찮냐는 말을 먼저 건넬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최석영의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네. 괜찮…… 아니요. 안 괜찮은 것 같습니다. 우욱.”

괜찮다고 말하려던 최석영은 도저히 괜찮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

오히려 헛구역질까지 하는 것이 당장에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김성진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한진영을 돌아봤다.

“병원에 가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괜찮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요? 지금 이 모습을 보고요?”

김성진은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생방송 시작 시각은 30분 뒤였다.

그런데 지금 최석영의 모습은 30분이 아니라 3분도 못 버틸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대기실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당장 구급차 안에 있어야 할 것만 같은 몰골에 김성진은 생방송이 걱정되고 말았다.

한진영은 김성진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항상 이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항상 이렇다고요?”

한진영은 의아해하는 김성진의 모습에 슬쩍 최석영을 돌아보고 말했다.

“네. 뭐 오늘 유독 심하기는 한데 괜찮습니다. 이 정도는 나가는 데 전혀 이상이 없는 정도입니다.”

“이상이 없다고요? 당장 쓰러질 것 같은데요?”

김성진은 헛구역질하느라 이제는 얼굴이 초록색으로 변해 있는 최석영을 보고 걱정하는 말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아니요.”

최석영이 고개를 저으며 아니라고 말하자 김성진은 한진영을 돌아봤다.

한진영은 그런 김성진을 향해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건넸다.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자리에 앉혀 놓을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흠…….”

김성진은 최석영과 한진영을 번갈아 돌아봤다.

한진영은 김성진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자 그의 걱정을 덜어주는 말을 건넸다.

“정 안 되면 제가 가서 앉을 테니 피디님은 저만 믿으시면 됩니다.”

한진영의 말에 김성진은 고민하던 것을 멈췄다.

“그 말 꼭 지키셔야 합니다.”

“저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 아니니 걱정 붙들어 매셔도 됩니다.”

한진영이 안 되면 자기가 방송에 나가겠다는 말에 피디는 결심을 굳혔다.

“좋습니다. 그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따 뵙겠습니다.”

김성진이 인사를 하고 최석영을 슬쩍 돌아본 뒤 방을 나섰다.

한진영이 약속을 한 이상 더는 최석영을 걱정할 이유가 없었던 김성진이었다.

김성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최석영이 이대로 쓰러져 방송에 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었다.

조지훈은 김성진이 나가자 최석영을 부축한 채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정말 방송에 나가실 생각이십니까?”

“내가 왜 나가?”

한진영이 조지훈의 말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대답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조지훈은 여전히 헛구역질하는 최석영의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조금 전에…… 분명…….”

“그거야 최 차장님이 쓰러지면 나간다는 거지. 지금 쓰러지지 않았잖아. 그러니 최 차장님이 나가야지.”

“진영아. 나 못 나갈…… 우욱”

“차장님. 괜찮으세요? 대표님. 아무래도 구급차를…….”

“괜찮아. 괜찮아.”

한진영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손을 휘젓고는 모니터링용 TV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더는 최석영을 걱정할 생각도 없다는 듯이 한진영은 몸까지 돌아앉았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과 최석영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한진영이 매몰차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앉아 있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사람을 방송에 그것도 생방송에 내보내려 한다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고민이 되기까지 했다.

그러나 조지훈은 생방송이 시작되자마자 자기가 참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 누구예요?”

조지훈은 모니터링 화면을 올려다보고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곁에 앉아 있던 한진영은 거봐라 라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가 그랬잖아. 괜찮다고.”

“아니. 그래도……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가 그렇게 걱정을 많이 했는데…….”

조지훈은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손을 들어 화면을 가리켰다.

화면 속의 최석영은 차분한 모습으로 앉아 이야기하고 있었다.

“출구전략은 충분히 시그널을 주고 있었습니다. 3차 양적완화에 대한 사전 기간도 설정해 놓은 상태이며 매달 발표되는 경제지표도 꾸준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런 최석영의 모습을 어처구니없게 바라보는 이가 조지훈 외에도 또 하나가 있었다.

“피디님. 최 차장님 방송에 못 나올 것 같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주조정실에 앉아 있는 김성진 피디 곁의 직원이 화면 속의 최석영을 바라보고 말했다.

“너무 멀쩡한데요?”

직원은 유려한 말로 좌중을 압도하는 최석영을 바라보고 감탄했다.

“확실히 방송을 많이 해봤다고 하더니 그게 어디 가지 않나 봅니다. 너무 잘하는데요?”

“그러게 잘하긴 너무 잘한다. 그럼 내가 아까 본 최석영은 뭐지?”

김성진 피디는 황당한 표정으로 최석영을 바라봤다.

분명 최석영은 당장에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리에 앉아 끊임없이 이야기를 떠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은 모두 핵심을 파고드는 것들로 상대측을 압도하는 중이었다.

“아닙니다.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최석영은 조금 전 우리나라에 큰 피해가 가지 않을 거로 생각하는 측의 주장을 전면으로 부인했다.

“이런 출구전략은 우리 같은 신흥시장부터 직접적으로 타격을 받게 되는 겁니다. 미국이 돈을 거둬들이는데 외국에 투자된 자금부터 거둬들이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래야 미국의 국내 타격이 상당 부분 완화되니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이 그렇게까지 무지하게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미국은 그렇게 세계 경제에 타격이 갈만한 선택을 하지 않을 겁니다. 이번 출구전략은 그야말로 워딩에만 힘을 쓴 단순한 주의 수준에 불과합니다. 호들갑을 떨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을 너무 맹신하는 것 같으십니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미국에 종속되어 움직이는 입장에서 미국의 선택에 의문을 표할 이유는 없습니다.”

모 대학의 교수라는 사람이 열변을 토했다.

최석영은 잠시 진행자를 돌아봤다.

진행자는 최석영의 시선에 급히 발언권을 최석영에게 건넸다.

“세이지의 최 차장님께서 하실 말씀이 있으면 하셔도 좋습니다.”

“네 그럼 제 생각을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최석영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교수를 바라보고 말했다.

“미국은 자국의 이득을 가장 먼저 생각하는 곳입니다. 세계 경제는 두 번째 문제이고 국내 문제에 모든 촉각을 세우고 대처하는 곳이 미국이라는 말입니다. 출구전략은 시행한다는 발표가 나왔고 이달 말 시행 방법에 관해 구체적인 발표가 있을 거라고 했습니다. 발표 내용이 무엇이 될지 아직은 알 수 없지,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합니다.”

최석영은 자기가 자신 있어 하는 왼쪽 얼굴이 카메라에 잡히도록 슬쩍 고개를 돌렸다.

의식을 했건 아니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행동에 카메라를 통해 전해지는 최석영의 카리스마는 더욱 높아졌다.

그리고 이렇게 높아진 카리스마를 이용하여 앞에 있는 교수에게 말했다.

“자국 보호 전략. 미국에 피해가 가는 일은 최소한으로 하는 것이 그들의 전략이 될 게 확실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이 그럴 리가 없습니다.”

최석영의 말에 단언하듯이 말하는 교수의 모습에 진행자가 교수를 보고 물었다.

“혹시 그렇게 말씀하시는 증거가 있으십니까?”

“증거가 뭐 필요합니까? 우리나라 최고의 우방국인데 당연하지요. 우리나라에 피해를 줄 리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증거가 없다는 말씀이시죠?”

“6.25에서 우리나라를 지켜줬고, 배를 곯던 대한민국 국민들을 잘 살게 해준 게 증거입니다.”

최석영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진행자는 그런 최석영에게 교수에게 했던 질문을 똑같이 했다.

“그럼 최 차장님께서는 증거가 있으십니까?”

“증거는 지난 출구전략 때가 증거가 될 것 같습니다. 70년대 후반 금리상승 시기에 해외에 투자했던 자금들을 흡수하던 모습, 90년대 후반 금리 상승기의 모습, 서브프라임이 터지기 전 급히 외국에 나가 있던 자금을 거둬들이던 모습 등이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70년대 후반 미국의 금리가 오르며 유럽 쪽에 투자되어 있던 자금을 거둬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규모는 약 800억 달러 규모로 현재 규모로 추산했을 때 우리나라 돈으로 200조가 넘는 돈을 거둬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는…….”

진행자는 증거가 있냐는 말에 술술 이야기를 풀어가는 최석영을 예쁘다는 듯이 바라봤다.

진행자가 바라는 토론이 바로 이렇게 증거를 기준으로 한 토론이었기 때문이다.

눈에서는 사랑스럽다는 느낌이 물씬 풍기는 눈빛으로 최석영을 바라봤고 이와 같은 눈빛을 보내는 사람이 하나 더 있었다.

“한 대표가 자신한 이유가 있었네. 이거 물건이야. 물건.”

“장난이 아닌데요. 경험이 있다고 해서 뭐 그래 봤자 얼마나 하겠나 싶었는데…… 사전미팅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어요.”

“우선 준비한 것부터 띄워.”

“아 네.”

피디는 스탭에게 지시했다.

그러자 미리 사전에 세이지에서 전해준 자료들이 참고 영상으로 화면에 송출됐다.

“마침 화면에 제가 이야기한 자료들이 나오는군요. 보다시피 지난 금리 인상 시기에 해외에 퍼져있던 자금이 미국으로 되돌아간 양은 약 300조 달러가 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한 것으로 실제로는 이것보다 더 많을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예상합니다. 이런 자금의 회귀는…….”

김성진 피디는 화면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계속 써도 되겠다.”

“화면발도 잘 받고…… 우선 무엇보다 말발이 끝내줍니다. 피디님. 대박인데요. 시청률도 엄청나게 오르고 있습니다.”

“시청률 얼마까지 올랐어?”

“현재 순간 시청률 13%까지 올라갔습니다. 10%를 넘긴 게 얼마 만인지…….”

“진짜 네 말대로 대박이다. 대박이야. 이거 안 되겠다. 편성 한 번 더 받아야겠는데? 안 그러냐?”

“그러게요. 국장님도 좋다고 하실 거예요.”

김성진 피디는 마치 강연하는 듯이 홀로 이야기를 계속해나가는 최석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무언가 아쉬운 듯이 잠시 입을 실룩댔다.

“여기서 임팩트 있는 거 하나만 딱 나오면 좋겠는데…….”

“임팩트요?”

“그래. 여기까지는 좋았거든. 그런데 이대로 이야기가 끝이 나면 평소와 다를 게 없어. 결론은 내지 않고 그저 두루뭉술하게 끝이 나는 거 말이야.”

김성진 피디는 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여기서 임팩트를 팍하고 주면 다음이 더 편할 텐데 말이야. 그런 게 안 나오려나?”

“피디님. 그런 건 준비해도 적절한 타이밍에 내놓기 어려운 거 아닙니까? 그것도 생방송에서 말입니다.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세요.”

“그렇겠지?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거겠지? 그런데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인상적인 멘트 하나만 더 나오면 딱 좋을 텐데…….”

김성진 피디는 너무나 아쉬웠던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그런 김성진 피디의 바람이 최석영에게 닿은 것인지 김성진 피디가 원하는 멘트가 최석영의 입을 통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 이유로 저는 우리나라 증시가 1,600대까지 빠져 내려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뭐라고요? 1,600대요?”

맞은 편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물론이고 진행자와 관객석까지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1,600대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 숫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석영은 차분한 모습으로 그렇게 생각한 이유를 설명했다.

“지금까지 긴축이 나와 시장이 조정에 들어가게 됐을 때 항상 20% 이상의 하락을 동반했었습니다. 2,100을 지난 고점으로 잡고 20%의 하락이 나온다고 하면 1,600대 후반 혹은 깊게 하락이 나온다면 1,600대 초반까지도 하락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석영의 임팩트 있는 멘트에 김성진은 놓치지 않고 스탭에게 지시했다.

“오케이. 줌으로 최 차장 얼굴을 당겨. 좋아. 바로 그거야.”

꽉 다문 입술로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 최석영이었다.

김성진은 그런 최석영의 얼굴을 보고 신이 난 듯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좋아. 이거 완전 물건이네. 본능적으로 여기서 멘트가 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지른 멘트야. 센스가 아주 장난이 아니야.”

김성진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봤다.

이 정도 임팩트라면 방송이 끝나는 시점부터 시청자게시판이 뜨거워질 게 분명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가지고 당분간 활발하게 의견을 나눌 게 불 보듯 뻔했다.

“오늘 방송 죽인다. 제대로 한 건 했어.”

사실 1,600이라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1,600대가 오건 오지 않건 방송사 입장에서는 아무 상관이 없었다.

그저 시장에 화두를 던져 줬다는 것만으로도 오늘 방송은 성공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김성진은 내일부터 이어질 사람들의 반응이 벌써 궁금해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얼굴 가득 지어 보였다.

최석영이 1,600을 이야기할 때 대기실에서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조지훈이 걱정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공중파에서 너무 우리 타겟 목표를 숨김없이 이야기한 게 아닐까요?”

“종목도 아니고 지수야. 괜찮아. 그리고 이 정도는 해줘야 반응이 오지.”

한진영도 김성진만큼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역시 최 차장님이야. 자기가 할 몫은 다 해.”

한진영이 최석영에게 주문했던 것은 딱 하나였다.

“기회가 됐을 때 우리 목표를 숨김없이 그대로 이야기하세요.”

최석영은 이유도 묻지 않은 채 한진영의 주문을 받아들였고, 주문받은 그대로 방송에서 보여주었다.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잘 뽑혀 나온 화면과 주위의 반응 그리고 효과까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한진영도 벌써 내일 있을 사람들의 반응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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