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2화 익숙한 얼굴이 있는 곳이 익숙한 곳이 된다
한진영의 기대 이상으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900대에서 1,600을 이야기한 것에 사람들의 반응은 극과 극으로 나뉘었다.
-미친놈아. 네가 나라가 망하길 바라는구나.
-방송사 놈들은 사이비가 나오는 것도 막지 못하고 뭐 하는 짓이냐?
-1,600이 아니라 1,700만 가도 내가 네 아들이다.
-가뜩이나 분위기가 안 좋아 심란한데 별 거지 같은 게 다 나와서 사람 속을 긁네. 길거리 돌아다니다 나랑 마주치지 말아라. 내가 가만 놔두지 않을 거니까.
악담에 가까운 이야기를 꺼낸 사람들이 있는 반면…….
-세이지를 모르는 사람이라면 황당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세이지를 아는 사람이라면 천상의 계시로 받아들일 이야기다. 1,600. 감사합니다.
-주식 모르겠으면 그냥 최석영이 방송에서 하는 말만 믿고 따라 하면 된다. 지금은 주식 살 타이밍 아니라니까 사지 말고 가지고 있는 사람도 대충 털어라. 손실 중이라고 하더라도 지금 털고 1,600에서 사도 남는 장사다.
-욕하는 사람들은 그냥 그대로 놔두고 우리끼리만 잘해 먹읍시다. 알려줄 필요 없습니다.
-오예! 기회가 또 왔구나. 이런 건 우선 따라붙고 생각하라고 했다. 난 세이지만 믿고 간다.
세이지를 옹호하는 사람들 또한 비난하는 사람 못지않게 많았다.
그만큼 세이지가 쌓아놓은 신뢰의 토대가 높고 단단하다는 뜻이었다.
이렇듯 비난과 옹호는 팽팽히 맞섰다.
팽팽함만큼이나 세이지에 대한 언급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지기만 했다.
그리고 이렇게 언급이 많아질수록 관심을 가지는 곳이 늘어났다.
조지훈은 밀려드는 섭외 요청 서류들을 들고 한진영 앞에 서 있었다.
“서로 나와달라는 말이 끊임없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예능에서까지 섭외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예능?”
“네. 최근 이슈되는 사람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와 같은 예능인데…… 어떻게 할까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 당사자한테 가서 물어봐야지.”
“그게…… 최 차장님은 대표님 말씀을 듣겠다고 하셔서…….”
뒷짐을 지고 있던 한진영은 조지훈을 돌아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하 그 양반 참…… 다 나가고 싶어서 그러는구나? 그렇지?”
조지훈은 어색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느끼기에도 그런 것 같았습니다. 토크쇼는 물론이고 섭외만 있다면 몸 쓰는 프로그램에까지 나가고 싶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으이구. 알아서 하라고 해. 본인이 나가고 싶다는 걸 왜 내가 말리겠어. 괜찮다고 말해. 대신…….”
말을 멈춘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웃던 표정을 멈췄다.
“똑똑히 전해. 어디를 나가던 상관이 없는데 세이지 이름으로 이야기하는 건 내가 정한 곳에서만 해야 한다고 말이야.”
굳었던 표정의 한진영은 말을 멈추고 다시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 현황판으로 고개를 돌리고서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나머지는 뭔 짓을 하든 상관없어. 뭐 예능에 나가서 인지도 올리는 것도 나쁜 것만은 아니니까.”
“정말 허락하시는 겁니까?”
“내가 반대라도 할 줄 알았어?”
“네.”
조지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외라는 듯이 말했다.
“아무래도 우리하고 어울리는 곳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품위를 잃어버리고 괜히 우스갯거리가 될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그런 곳에 나가도 괜찮다고 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너는 참 나이도 어린 게 왜 이렇게 머리가 굳은 거냐? 젊은 꼰대라는 말이 요새 유행한다더니 딱 너를 두고 하는 말 같다. 그렇게 경직된 생각만 하다가는 머리가 굳는다. 유연하게 생각해.”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안타깝다는 듯이 이야기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뭐야? 정확하게 이야기해서 너는 우리가 뭐로 돈을 번다고 생각하고 있어?”
“어…… 주식과 파생상품 등을 적절히 운용해서 돈을 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적절한 운용. 맞는 말이야. 그런데 정답은 아니야.”
한진영은 현황판을 손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저걸 잘해야 돈을 버는 것이기는 해. 하지만 그 전에 아주 중요한 걸 놓치고 있어.”
“중요한 거요?”
“그래. 운용보다 더 중요한 거.”
“운용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까? 운용을 잘못하면…… 회사가 망하기까지 하는데요?”
한진영과 함께 있으며 그런 회사들을 많이 봤다.
욕심을 부리다 회사가 넘어간 곳이 부지기수였으며 지금도 그런 곳이 한 곳 있었다.
한진영에게 달라붙어 떡고물을 얻어먹으려 했던 곳.
바로 경기증권이 운용의 실수를 보여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던 것이었다.
세이지가 무식하리만치 물량을 던진다는 소리에 겉으로 세이지를 욕했던 기관들도 뒤로는 몰래몰래 세이지와 같은 포지션을 잡아갔던 것이 시간이 흐른 뒤 밝혀졌다.
그들도 세이지의 무서우리만치 정확한 포지셔닝에 정면으로 부딪칠 자신이 없었던 것이었다.
가장 극렬히 세이지를 비난했던 퓨처스증권조차 국내선물 매도 포지션만 1,000계약을 넘게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졌다.
퓨처스증권조차 이럴 정도인데 다른 곳은 말할 필요도 없을 정도였다.
세이지가 노골적인 포지션을 잡은 이상 순리에 따라 세이지의 뒤를 따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경기증권만은 달랐다.
클론매매가 실패한 뒤 잡고 있던 포지션을 정리하지 못한 채 그대로 모두 들고 이번 하락을 계속 얻어맞았던 것이었다.
만약 세이지와 같은 종목들을 바구니에 담고 있지 않았다면 어쩌면 이처럼 손해가 크지 않을 수도 있었다.
세이지의 포지션을 뒤늦게라도 따라가며 손해를 감수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경기증권은 세이지와 들고 있던 것이 똑같았다는 것이 정리하는 발목을 잡고 말았다.
정리를 하게 되면 세이지보다 손해를 본다는 것이 쉽사리 정리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세이지가 정리한 자리에서 정리를 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다는 것이 더욱 그들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다른 대형 증권사들과 달리 심리적인 구속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약점 탓에 결국 혹시 나올지도 모르는 반등을 기대하며 이번 하락을 온몸으로 얻어맞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1,900도 한진영이 주장한 하락의 1차 정거장밖에 되지 못했다.
종점은 1,600대에 자리하고 있었으며 그곳까지 경기증권이 모두 얻어맞게 된다면 경기증권의 사활조차 장담할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을 조지훈은 하고 있었다.
그래서 운용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한진영은 가장 중요한 것은 운용이 아니라고 했다.
조지훈이 궁금하다는 듯이 한진영을 바라보자 현황판을 가리킨 손가락이 화면 한쪽으로 이동해 멈춰 섰다.
그곳에는 바로 펀드 가입자 수와 설정 금액, 현재 금액, 수익률 등이 써져 있는 곳이었다.
한진영은 펀드 상세현황이 적혀 있는 곳을 손으로 가리키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이야. 고객이 있어야 우리가 운용을 하든지 말든지 한다는 이야기지. 고객이 없어 봐. 무슨 돈으로 운용하겠어?”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자기가 놓친 것이 있었다는 사실을 빠르게 알아챘다.
한진영의 말대로 가장 밑바탕에 있는 것은 고객이었던 것이었다.
“고객이 없다면 운용은 아무 의미 없어. 내 돈으로만 할 거면 뭐 하러 이런 자산운용사를 만들고 증권사로 점프할 생각을 꿈꾸겠어? 그냥 사무실 앉아서 혼자 내 돈만 굴리면 되지.”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습니다.”
“안다니 다행이다. 그래서 바로 최 차장님 같은 분이 필요하다는 거야.”
한진영은 올렸던 손을 내리고 다시 몸을 돌리고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객을 끌어오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우리에겐 최석영 차장님이란 거지. 사람들이 많이 보는 예능에 가서 주식 투자에 대한 거부감을 낮춰주는 것만으로도 잠재적인 고객이 될 수 있어. 알잖아. 아직 주식은 바보들이 하는 돈놀이와 같다는 인식이 파다한 상태라는 것 말이야.”
“네. 제 주변에도 주식을 하는 젊은 친구들은 잘 없었습니다. 대부분 나이 드신 분들이 은퇴 뒤에 돈벌이 수단으로 주식에 접근하고 있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바뀌게 될 거야. 젊은 사람들도 투자의 수단으로 주식에 접근하는 시대가 분명히 와.”
한진영은 잠시 먼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시선을 두고 이야기했다.
“그때가 온다면 그들은 가장 먼저 익숙한 곳에 처음 계좌를 트려고 할 거야. 아무렴 사이버 머니가 아닌 내 돈을 넣는 일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곳보다 익숙한 곳이 더 낫다고 생각하지 않겠어? 그리고 익숙한 곳은…….”
“익숙한 얼굴이 되겠군요.”
“잘 알아듣네. 맞아. 익숙한 얼굴이 있는 곳이 바로 익숙한 곳이 되는 거야.”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웃으며 이야기했다.
“익숙한 얼굴. 익숙한 이름. 그 사람이 있는 곳. 우리는 주식이 투자되는 시장을 기다리며 씨를 뿌린다는 심정으로 준비를 하는 거야. 어차피 그 시대가 멀리 있는 게 아니니까.”
한진영은 주식 광풍이 불던 때를 기다렸다.
코스피가 2,000을 향해 달려 나가던 시절과 그 전 닷컴버블이 불어 닥쳤을 때보다 더 강력한 주식 바람이 불었던 때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러니 나가고 싶은 곳 어디든 나가시라고 해. 그리고 자주 나가서 많은 곳에 얼굴을 알리라고 해. 예능에서 인지도를 쌓고 시사경제 프로그램에서 신뢰를 쌓으면 되니까.”
조지훈은 감탄한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단순하게 최석영을 세이지의 얼굴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더 먼 곳을 바라봤고,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했던 것이었다.
조지훈은 감히 한진영의 그릇 크기를 재단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
1,900은 어떻게든 지킬 것 같았던 코스피가 맥없이 떨어져 내리고 말았다.
그리고 1,900을 깨며 큰 틀 안에서의 박스권도 완벽하게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이제 추세는 명확하게 하락추세임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1,800대에 돌입하자 하락 속도가 점점 빠르게 변하고 말았다.
응축됐던 힘을 아래로 모두 쏟아내 버리겠다는 듯이 지수는 하염없이 빠져 내리고 만 것이었다.
“마감지수 나왔습니다. 마감은 -2.1% 하락에 1,877입니다.”
마감을 알리는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목소리 속에 담긴 감정이 듣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해질 정도로 기쁨이 목소리 속에 담겨 있었다.
“대표님. 축하드립니다.”
“뭘 축하해?”
“진짜 하락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럼 가짜로 하락이 나올 줄 알았던 거야?”
한진영이 말장난과 같은 대답으로 조지훈을 놀렸다.
그리고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지 모르게는 조지훈의 등을 두드렸다.
“농담이니까 그렇게 심각한 표정 하지 않아도 돼.”
한진영은 현황판을 바라보고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이제 시작이야. 이대로 1,600대까지 다이렉트로 간다.”
한진영의 긴장을 풀었던 조지훈은 다시 놀라고 말았다.
이제 시작이며 이대로 1,600대까지 다이렉트로 간다는 말에 두근대는 마음을 조지훈은 감추지 못했다.
그만큼 한진영의 말은 강렬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한진영의 말대로 시장은 계속 힘없이 추락했다.
“-1.7% 하락 마감했습니다. 마감지수는 1,845입니다.”
“-1.1% 하락 마감했습니다. 마감지수는 1,824입니다.”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종합주가지수의 하락은 계속 이어졌다.
처음 변동성이 터졌을 때만큼 큰 폭의 하락은 아니었지만 단 하루도 상승하는 날 없이 계속 이어지는 하락에 어느새 지수는 1,800대 초입까지 도달하고 만 것이었다.
1,900대에서 1,600대를 이야기했을 때만 해도 여러 논란의 여지가 있었었다.
너무 과한 생각이라는 말부터 시작하여 시장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라며 안 좋은 이야기를 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그들의 목소리는 점차 힘을 잃어만 갔다.
1,800대 초반까지 힘없이 빠져 내려간 지수는 1,800마저 단숨에 깰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코스피는 2,100보다 1,600이 더 가까운 자리까지 오고 만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국내 증시만의 특이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대만과 홍콩을 비롯한 아시아권 전역에서 보여주는 동일한 하락이었다.
일본만이 다른 곳과 달리 조금 더 견고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 하락의 추세는 일본도 마찬가지일 정도로 획일적인 모습이 나타날 정도였다.
그러나 이런 아시아권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곳이 있었다.
바로 뉴욕증시는 아시아권의 하락과는 달랐던 것이었다.
물론 아시아처럼 큰 폭의 하락과 다르다는 것이지 상승으로의 방향을 보인다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일본보다도 더 견고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차별화가 나타났다는 뜻이었다.
이런 뉴욕증시의 차별된 모습은 결국 세이지의 말에 힘을 더 실어주는 일이 되고 말았다.
신흥시장으로부터의 자금 유출.
결국 출구전략을 시행하게 되면 가장 먼저 신흥시장에서부터 자금이 빠져나올 거라는 최석영의 말을 증명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난 것이었다.
이제 논란은 더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세이지가 말한 1,600대가 오느냐 아니면 그보다는 조금 더 나은 자리에서 멈추느냐를 가지고 이야기할 정도로 분위기는 세이지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다.
이렇듯 세이지가 힘을 받자 함께 힘을 받는 사람이 생겨났다.
바로 카메라 앞에서 세이지를 대신하여 얼굴을 내밀었던 최석영이 사람들의 관심 인물이 되어간 것이었다.
공중파의 힘은 위대하다는 것이 최석영을 통해 증명되는 중이었다.
시사 프로그램에 한 번 나가면 예능 섭외 전화가 5개가 들어왔다.
예능에 잠깐 얼굴을 비춰 주식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 광고 문의 전화까지 올 정도였다.
세이지와 함께 최석영의 이름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