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7화 돈은 모든 것을 해결할 힘을 가지고 있다
세이지의 직접투자 소식은 신선한 바람을 불러왔다.
신생기업 혹은 신규사업에 진출하는 회사에 투자하겠다는 이야기는 투자자는 물론이고 기업과 기업가들에게도 희망에 부푼 마음을 가지게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세이지라면 다를 수 있다.”
“세이지라면 우리를 알아봐 줄 수 있다.”
“세이지가 투자했다는 사실만으로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세이지라면…….”
“세이자라면…….”
그동안 보여준 세이지의 행보로 인해 기대감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다.
세이지라는 이름이 증명서가 되어 투자받은 기업에 성공이라는 간판을 달아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소식은 일반투자자의 마음을 부풀게도 했다.
세이지가 투자금을 모으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겠다는 이야기가 어렴풋이 사람들 사이에서 돌며 또 하나의 높은 수익률의 펀드가 생긴다는 기대감이 투자자들 사이에서 솟아난 것이었다.
코스피의 하락추세를 정확하게 맞추어 자금을 집행한 곳이었다.
그것도 남들이 모르게 ‘그랬었다’라는 확인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알 수 있게 공중파에 나와 도장을 찍어 버리기까지 했다.
세이지는 시장을 정확히 예측하여 고객들의 돈을 불려주는 곳이라는 것이 온 국민들 앞에서 증명된 것이었다.
그런 곳이 직접투자를 한다면 얼마나 잘할지 모두 기대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게다가 투자자까지 모집하여 펀드를 조성한다고 하니 일반 투자자들은 물론이고 법인 투자자들까지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세이지의 놀랄만한 수익률의 파도에 이번에도 혹은 이번에는 꼭 타고 싶다는 사람들의 열망이 불어온 것이었다.
사람들은 1,650을 기준으로 하여 횡보하던 지수가 1,700을 뚫고 다시 회복하는 것을 보며 세이지가 어서 펀드를 열어주기를 바라기 시작했다.
한진영은 동우로 가는 차 안에서 조지훈의 보고를 들었다.
“현재 중국에서 대서양화장품에 대한 인기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보고서가 전략실을 통해 올라왔습니다. 중국에서 쓰는 SNS에 대서양화장품에 관한 이야기가 일간 5천만 건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이는 화제성 지수 10위에 해당하는 것으로 화장품은 물론이고 여성용품 중에 1위에 해당하는 성적이라고 합니다.”
“대서양화장품에서의 반응은?”
“본격적인 중국 사업의 확장을 준비하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을 최우선 지역으로 선정하여 그동안 북미지역에 집중했던 마케팅 자원까지 모두 중국으로 돌린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역시 기회를 그냥 놓쳐 버리지 않았네. 잘 선택했어. 되는 곳에 힘을 몰아주는 선택이 지금 시점에 딱 맞아.”
한진영은 지난 시절을 떠올리고는 가벼운 목소리로 조지훈에게 말했다.
“홍 실장님에게 200만 원 이하로 팔 생각하지 말라고 전해.”
“200만 원이요?”
조지훈은 한진영이 혹시 잘못 말한 게 아닌가 싶어 다시 물었다.
“대표님. 대서양화장품의 주가가 200만 원이 될 때까지 버티라고 말씀하신 게 맞습니까?”
“맞아. 뭘 그렇게 놀라?”
“대표님. 지금 대서양화장품의 가격은…… 25만 원을 조금 넘는 수준입니다. 그런데 200만 원이라면 최소 8배 이상 가격이 올라야 하는 일인데…… 그게 맞는 건가요?”
“맞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1년? 1년 정도면 200만 원을 넘길 테니 그때까지 버티라고 전해.”
“1년 만에 8배가 오른다는 말씀이십니까?”
“새삼스럽게 왜 그래? 8배가 아니라 10배 가까이 오를만한 종목이야. 어깨쯤에서 팔라는 말로 200만 원을 이야기한 것이고…… 테라로 벌써 10배를 먹은 사람이 왜 대서양화장품이 10배 오른다는 말에 그렇게 놀라?”
한진영의 농담과 같은 말에 조지훈은 놀랐던 얼굴을 급히 지웠다.
한진영의 말대로 조지훈은 벌써 테라로 10배에 달하는 수익을 올린 상태였다
이미 10배를 먹은 사람이 다른 곳이 10배 오른다는 소리에 왜 놀라냐는 한진영의 말에 부끄러운 마음이 일어난 조지훈이었다.
한진영은 얼굴이 살짝 붉어 오는 조지훈의 표정을 보고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계속 들고 가.”
“네?”
“테라 말이야. 계속 들고 가. 내가 팔라고 말하기 전까지 쭉~ 쭉~ 알았지?”
“아~ 네. 알겠습니다.”
“테라는 없는 돈이라고 생각하고 묵혀둬도 좋은 종목이야. 나중에 더 빛을 발할 테니까 그냥 들고 가.”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테라는 자기의 손을 떠나 버렸다고 생각한 조지훈이었다.
수익이 20억이 넘어간 순간부터 무섭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을 따르는 것만이 지금은 가장 최선이라는 것을 떠올리며 대서양화장품에 대한 의문도 지워냈다.
한진영이 10배가 오른다고 말한 시점에 대서양화장품의 운명도 결정이 났다고 생각한 조지훈이었다.
지금은 한진영이 말하는 것이 모두 이루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점점 동우와 가까워져 오는 것을 확인하고 한진영을 향해 은밀히 물었다.
“그런데 대표님. 오늘 동우에는 어쩐 일로 가시는 겁니까?”
잠시 딴 생각하고 있던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돌아보고 웃었다.
“어쩐 일이겠어? 뻔하지. 경기증권이 하려는 일에 나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 아니겠어?”
“그…… 사기 말씀입니까?”
조지훈은 슬쩍 운전석을 살피고 한진영에게 말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에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괜찮아. 김 기사님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니까. 안 그렇습니까?”
김 기사는 한진영의 말에 미소를 머금은 뒤 살짝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운전대를 잡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바로 그를 채용한 사람을 위해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한진영은 그런 김 기사를 흐뭇하게 바라보고는 조지훈에게 말했다.
“고르고 고른 분이니까 눈치 보지 마. 오히려 그런 모습이 김 기사님에게 실례가 될 수 있어.”
“네. 알겠습니다.”
언제까지나 조지훈에게 운전까지 시킬 수 없어 찾은 사람이었다.
김 기사는 지난 시절에도 한진영의 차를 운전했던 사람이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말을 아낀 채로 자기가 하는 일인 운전에만 최선을 다했고, 마지막까지 한진영의 곁에서 운전대를 잡아 준 사람이었던 것을 한진영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지난 시절보다 3배나 많은 월급을 주고 김 기사를 다시 데리고 왔다.
그것이 그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감사의 뜻이라 생각한 한진영이었다.
조지훈은 가볍게 김 기사가 바라보는 룸미러를 향해 인사를 하고는 한진영에게 다시 이야기했다.
“대표님. 정말 사기를 치는 일로 대표님을 부른 건가요?”
“그럴 거야.”
“그런데 정말 동우가 사기를 치는 겁니까? 동우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되는 곳 아닙니까?”
“흐흐. 그렇지.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곳이지.”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이 우스웠던지 몇 번이나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는 말을 되뇌며 웃었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의아해하는 조지훈을 향해 이야기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곳도 한가지 이유에는 움직이기 마련이지.”
“어떤 이유 말씀입니까?”
“당연히 돈이지. 돈은 모든 것을 설명할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한진영이 이야기를 하는 사이 차는 어느새 동우 로펌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다.
***
오랜만에 동우의 꼭대기에 자리한 bar에 도착한 한진영은 자기보다 먼저 도착한 사람을 향해 가볍게 손을 내밀었다.
“박 사장님을 이곳에서 뵈니 새롭습니다. 잘 지내셨지요?”
“안녕하셨습니까? 저야말로 이곳에서 한 대표님을 만나 뵈어서 더욱 반갑습니다. 세이지의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새로운 사업 분야에 진출하신다고요?”
“새롭다기보다는 기존에 하던 것을 조금 더 확장하는 개념이지요.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방법이야 예전부터 해오던 일이니까요.”
가볍게 이야기를 나눈 한진영과 박지훈은 서로 나란히 자리에 앉았다.
조금 뒤 찾아올 사람들을 위해 위쪽 자리를 비운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앉아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며 사람들을 기다렸다.
“어이구. 일찍 오셨습니다. 저도 일찍 온다고 왔는데 한 대표님께서 먼저 오셨네요. 그런데 이쪽은…….”
한진영의 뒤를 이어 도착한 현봉국 기재부 제1차관이 박지훈을 바라보고 묻자 한진영이 박지훈을 소개했다.
“경기증권의 박지훈 사장님이십니다. 박 사장님. 이쪽은…….”
“알고 있습니다. 현 차관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박지훈이라고 합니다.”
박지훈이 현봉국을 향해 크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현봉국은 그런 박지훈을 손을 잡은 채로 위아래로 살폈다.
“아~ 박 사장님이시군요.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앉아서 이야기 나누실까요?”
현봉국이 관심을 보이자 박지훈은 현봉국의 곁으로 자리를 옮겼다.
한진영은 냉큼 자리를 옮긴 후 현봉국에게 착 달라붙어 이야기를 나누는 박지훈을 바라보고 혼자 웃음을 흘렸다.
박지훈이 지금 어떤 심정일지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알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현봉국이 들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둘 속속 멤버들이 자리로 들어왔다.
박지훈은 그때마다 들어온 사람을 향해 깍듯이 인사를 건넸고, 새로 들어온 사람의 곁으로 자리를 옮기기를 계속 이어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대부분 모였을 때 안혁규가 자리로 들어왔다.
“안 실장님.”
이번에는 박지훈이 먼저 아는 체를 하며 안혁규에게 달려들었다.
안혁규는 그런 박지훈의 모습에 손을 들어 다가오는 것을 가로막은 후 먼저 와 있던 사람들에게 물었다.
“누구입니까?”
“저 경기증권의 박지훈입니다.”
다른 사람이 대답하기 전에 먼저 박지훈 자신을 스스로 소개했다.
안혁규는 그런 박지훈의 대답에 여전히 손을 들어 올린 채로 박지훈을 위아래로 살폈다.
“박지훈? 박지훈이 누군데? 경기증권이라니? 그게 어디입니까?”
안혁규는 인상을 쓰며 한진영을 돌아봤다.
아무래도 증권사라는 이름이 나온 만큼 한진영이 자리에 있는 사람 중 가장 박지훈에 대해 잘 알 것으로 생각 들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그런 안혁규를 향해 간단한 말로 박지훈을 설명했다.
“클론매매를 진행했던 곳입니다.”
“아~ 거기.”
안혁규는 클론매매라는 말에 그제야 생각이 난 얼굴로 박지훈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박지훈은 자기를 알아봐 주는 안혁규의 모습이 그저 좋은 것인지 스스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네. 클론매매. 저입니다.”
“아~”
안혁규는 박지훈을 향해 입꼬리를 올리고 손을 내밀었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과찬이십니다. 저야말로 안 실장님을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박지훈은 안혁규의 손을 양손으로 맞잡은 뒤 황송하다는 몸짓을 보였다.
안혁규는 이런 모습이 익숙한 것인지 가볍게 악수하고 박지훈의 어깨를 두드렸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엇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인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박지훈의 뜻을 알 수 있었다.
안혁규는 그런 박지훈의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고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인 후 비어 있는 자리로 걸어가 앉았다.
박지훈은 그런 안혁규의 뒤를 따라 곁에 엉덩이를 비집고 들어갔다.
안혁규는 그런 박지훈의 모습에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다.
너무 찰싹 달라붙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채 자리 잡기 전에 박지훈은 안혁규의 마음을 녹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듣기 달콤한 말과 낮은 자세로 임하는 박지훈은 안혁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안혁규가 오기 전에 미리 작업해둔 사람들의 도움을 받으며 안혁규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했다.
“제가 좋은 방법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정권에 도움이 되는 카드를 손에 들고 안혁규와 마주한 덕분에 결국 안혁규의 관심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미있게들 하십니까?”
안혁규가 한창 박지훈에게 관심을 보일 때 김교철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습니까?”
김교철이 룸으로 들어오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교철은 자리에 있던 사람들과 하나하나 눈인사를 건넨 후 박지훈에게로 마지막 시선을 보냈다.
“박 사장님도 오셨군요.”
“저를 이렇게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박지훈은 감히 김교철과 눈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바닥만을 쳐다봤다.
그리고 진심으로 감사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김교철을 향해 인사를 보냈다.
김교철은 그런 박지훈의 모습에 웃어 보이고는 가장 가운데 위치한 상석으로 천천히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앉으시죠.”
감히 김교철에게까지 곁에 가 앉을 수 없었던 박지훈은 자연스럽게 뒤로 물러 나와 한진영의 곁으로 가 앉았다.
한진영이 가장 바깥쪽에 앉아 있어서 한진영의 옆자리가 편한 것도 있었지만 김교철이 등장하며 긴장된 분위기에 본능적으로 그래도 몇 번 만나본 한진영의 옆자리가 안전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김교철은 가장 바깥쪽에 앉은 박지훈을 한번 바라보고 다시 안혁규에게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까?”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민영화요?”
김교철이 흥미로운 듯한 눈으로 안혁규를 바라보자 안혁규는 조금 전 박지훈이 가지고 온 이야기를 김교철 앞에서 펼쳐 보였다.
“박 사장님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지난 정권에서 한번 실패했던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는 묘수가 있다고 하는군요.”
“지난 정권에서 실패했던 민영화를 성공시킬 수 있는 묘수요? 어떤 민영화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난 정권에서 진행하려 한 민영화 사업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박 사장님. 직접 김 대표님께 이야기해보시겠습니까?”
안혁규가 박지훈에게 판을 깔아주자 박지훈이 마른침을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보다 더 빨리 기회가 온 것에 박지훈은 각오를 다지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진영은 큰 숨을 몰아쉰 박지훈을 올려다보고 웃었다.
‘먹잇감을 보여주고 꼬시는 방법은 오래됐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는 하지.’
한진영의 눈에는 훤하게 보이는 박지훈의 속셈에 가만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