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8화 ‘절대’ 들어가면 안 된다
박지훈은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후 천천히 민영화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정권과 이번 모두 핵심으로 생각하는 게 민영화입니다. 민영화는 필히 진행해야 할 사항으로 모두가 힘을 합쳐…….”
“알겠으니 바로 본론부터 이야기하세요.”
김교철이 장황하게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박지훈을 향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박지훈은 그런 김교철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그의 말대로 바로 본론을 꺼냈다.
“공기업을 통째로 민영화를 진행한다고 하면 반발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요금이 오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 불안감을 지우기 위해 쪼개서 진행하는 방향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쪼개서? 어떻게 쪼개서 민영화를 진행한다는 거죠?”
“전기나 수도 같은 것은 힘든 일일지도 모릅니다. 쪼개는 방향을 지역으로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하지만 철도는 다릅니다.”
“철도?”
“철도는 라인별로 쪼갤 수 있으니까요. 지하철을 통해서 한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박지훈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1호선부터 4호선까지와 5호선부터 다른 라인들을 나누어 진행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누었다고 하여 특별히 다를 것은 없었다.
두 곳 모두 심각한 적자를 겪는 것은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하철의 경우에는 실패한 쪼개기였습니다. 단순히 비대해진 몸집을 줄이기 위해 순서대로 라인을 쪼개다 보니 양쪽 모두 심각한 적자를 면치 못했지요. 그래서 다시 통합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고 있고요.”
“실패한 쪼개기라면 성공한 쪼개기 방법도 있다는 이야기입니까?”
“네. 있습니다. 바로 제가 드릴 말씀이 그것입니다.”
박지훈은 입에 침을 묻히고 숨을 골랐다.
오늘 자리의 성패를 좌우할 순간이 이제 곧 찾아오기 때문이었다.
사실 오늘 이곳에 온 이유는 민영화 때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진행하기 위한 핵심으로 민영화 이야기가 꼭 필요했다.
한진영의 생각대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꾀기 위한 미끼 역할을 민영화가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지훈은 잠시 숨을 몰아쉰 뒤 천천히 준비해왔던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라인을 아무 계획 없이 나누니 결과 또한 아무런 의미 없게 나온 겁니다. 계획 있게 나누었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겁니다.”
“계획 있게 어떻게 나눈다는 겁니까?”
“돈이 되는 라인과 돈이 되지 않는 라인으로 확실한 컨셉을 잡고 나누었어야지요.”
박지훈의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그걸 누가 몰라서 그럽니까? 그렇게 했다가는 돌 맞아 죽기 딱 좋습니다. 아무리 국민이 바보라고 하더라도 그걸 그냥 지켜볼 거로 생각한 겁니까? 나 참.”
현봉국 기재부 차관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자리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현봉국과 같은 생각을 했다.
바보도 그런 일을 가만히 지켜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박지훈은 현봉국을 비롯하여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코웃음을 치는데도 흐트러지는 모습 하나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는 지금과 같은 상황 또한 이미 예상했던 일이었다.
박지훈은 코웃음 치는 사람들을 한번 둘러본 후 이야기했다.
“당연히 돈이 되는 것을 안다면 반발하겠지요. 하지만 돈이 되는 일인 줄 모른다면 어떻겠습니까?”
“돈이 되는 일인 줄 모른다?”
김교철이 흥미가 생긴 듯이 물었다.
박지훈은 그런 김교철을 향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했다.
“네. 돈이 되는 일인 줄 모르는 라인을 민영화하는 겁니다. 그와 반대로 돈이 안 되는 일을 기존에 있던 공기업에 다 몰아넣는 것이고요.”
“그런 게 있습니까?”
“있습니다. 이번에 새롭게 진행하려고 준비하는 라인. 바로 수서발 고속철도 사업. 그걸 민영화하면 되는 겁니다.”
“수서발 고속철도 사업? 그런 것도 있습니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현봉국을 일제히 바라봤다.
현봉국은 조금 전까지 코웃음을 치던 모습을 지우고 지금은 깊게 인상을 쓰는 중이었다.
현봉국은 사람들의 시선이 모이자 천천히 입을 열어 박지훈이 이야기한 것을 설명했다.
“기존 KTX 라인이 아니라 수서와 동탄을 지나는 새로운 라인을 진행할 계획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저도 알고 있습니다.”
“수서와 동탄 라인이라면 신도시 쪽 사람들이 강남으로 들어오는 통로 아닙니까?”
“네. 그걸 염두에 두고 신설된 라인입니다. 기존에는 광명을 지나 용산, 서울역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강남으로의 접근성이 떨어졌지요. 그리고 출퇴근용으로의 염두도 두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하철을 이용하기에는 거리가 좀 있으니 철도 라인을 이용해서 시간을 단축하겠다는 뭐 그런 의도인데…….”
현봉국의 설명을 듣자 사람들은 일제히 의문을 가졌다.
“이건 누가 들어도 알짜 라인 아닙니까? 이걸 모른다니요?”
“모르게 만들면 됩니다.”
박지훈은 손을 앞으로 내밀어 차분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새로운 라인이 알짜라인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도록 철도공사의 적자를 계속 사람들의 뇌리에 심어주면 됩니다. 노조에게 파업하도록 유도해 철도공사의 적자 상황을 자연스럽게 외부에 노출하면 효과는 더욱 클 테고요. 그리고 신설라인 사업을 진행하고 싶어도 진행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포장하여 정부에 지원을 요청한다면, 사람들은 언제나 그렇듯이 또 세금으로 사업을 하려 한다고 불만을 가지게 될 겁니다. 그때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그쪽에서 사업을 진행한다고 발표하면 됩니다. 신도시 쪽 사람들이 불편해한다는 여론도 만든다면 법인 신설은 더욱 쉬운 일이 될 게 분명합니다.”
박지훈의 설명을 가만히 듣던 김교철은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게 됐다.
알짜라인을 철도공사가 아닌 다른 곳으로 빼낸다면 민영화 작업이 더욱 수월할 것이기 때문이다.
철도공사의 민영화는 부정적이겠지만 철도공사의 곁가지쯤은 민영화 작업에 문제가 될 것이 없다는 생각에 김교철을 비롯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동의했다.
“그런데 여전히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채영석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채영석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점 한 가지를 내놓았다.
“아무리 잘 포장해도 민영화는 민영화입니다. 말씀대로 그렇게 쉽게 되겠습니까?”
“말씀대로 아무리 적자가 많다고 하더라도 민영화란 것이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겁니다. 그래서 한가지 눈속임 작업이 필요합니다.”
“눈속임이요?”
박지훈이 사람들을 돌아봤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고 일이 잘 풀려가고 있음을 확신했다.
사람들의 눈에 의구심이 아닌 기대가 담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박지훈의 눈에 한진영이 들어왔다.
‘왜 저렇게 바라봐?’
박지훈은 한진영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다.
눈은 웃고 있건만 마치 속을 훑어보는 시선에 박지훈은 한진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한 것이었다.
박지훈은 한진영의 시선을 피해 다른 곳을 돌아봤다.
자리의 중요성과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을 때 그냥 한진영의 시선을 피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자기의 시선을 피하는 박지훈을 재미있다는 듯이 계속 쳐다봤고, 박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시선을 외면한 채로 계속 이야기했다.
“바로 민영화를 하겠다고 하면 당연히 싫어할 겁니다. 하지만 방식을 조금만 바꾼다면 사람들이 싫어할 일이 없습니다.”
“바꾼다니? 어떻게?”
“우선은 철도공사의 자회사로 진행을 하는 겁니다. 지분 약 40%를 철도공사가 가지고 가고 나머지를 재무적 투자자를 모집하여 진행하는 방식으로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재무적 투자자도 명목상으로는 국책은행들이 되는 것이고요. 그렇게 된다면 민영화라고 사람들이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럼 우리는? 우리는 어떻게 들어간다는 겁니까?”
“이름은 국책은행이 들어가겠지만 그건 이름표만 그렇게 되는 것일 뿐 실제로 안에 들어간 껍질은…….”
“아~ 이해가 됐습니다. 국책은행이 투자자를 모집하여 대표 이름으로 들어가는 방식을 진행하면 되겠군요. 그렇게 된다면 겉으로 보이기엔 국책은행 즉, 국가의 소속이 되겠지만 실제로는…….”
채영석의 말에 박지훈이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맞장구를 쳤다.
“그겁니다. 겉으로 보이기에는 공기업 하나가 더 생긴 것뿐입니다. 조금 더 효율을 올리기 위해 새로운 회사를 설립한 것일 뿐 달라지는 것은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알짜 라인이 우리 손에 들어오게 되는 겁니다. 겸사겸사 철도공사가 경영에 개입하지 못하게 막는다면 민영화는 더욱 쉬워지게 될 겁니다. 경영이 불가능한 지분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니까요.”
박지훈의 말에 다들 입맛이 도는 표정을 지었다.
공기업의 경우에는 배당 성향이 다른 사기업보다 월등히 좋게 편성된다는 것을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다.
대부분의 투자자가 국책은행 혹은 국가기관이었기에 그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뜻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10여 년 혹은 그보다 짧은 시간 내에 투자금 회수를 기대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처럼 대놓고 돈을 버는 곳의 경우에는 5년이면 얼추 투자금을 모두 뽑아낼 수 있었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박지훈의 이야기가 끝난 뒤 빠르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당장 투자를 진행한다고 했을 때 내놓을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박지훈은 사람들의 눈빛이 빠르게 굴러가는 것을 확인하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좋은 미끼를 던진 만큼 오늘 자리에서 있을 이야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것이 기대됐기 때문이다.
박지훈은 흐뭇한 표정으로 사람들을 돌아볼 때 한진영과 또다시 눈이 마주쳤다.
‘이런…….’
박지훈은 다시 한번 속을 훑어내는 한진영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꼈다.
마음 같아서는 왜 사람을 그렇게 바라보냐고 소리치고 싶은 정도로 불편하기만 한 시선이었다.
하지만 박지훈은 이번에도 억지로 한진영을 향해 웃어 보인 후 한진영의 눈을 피했다.
굳이 불편한 시선과 계속 마주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김교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좋은 생각입니다.”
김교철의 칭찬에 박지훈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김교철은 여전히 서 있는 박지훈을 향해 손짓했다.
“자자. 그렇게 서 있지 말고 와서 이야기합시다. 오늘 이렇게 모인 진짜 이유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지 않았습니까?”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김교철이 박지훈의 제안을 허락했다고 생각했다.
김교철은 웃으며 박지훈을 가까이 부른 후 자리에 앉는 박지훈을 향해 말했다.
“돈을 꼭 벌어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생겼군요. 수서발 고속철도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니 말입니다. 자 그럼 이제 본론을 이야기해보세요. 돈을 기가 차게 많이 벌 방법이 있다고요?”
김교철의 말에 사람들의 관심이 박지훈에게 쏠려 들어갔다.
평소에도 돈은 많을수록 좋았지만, 지금은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바로 조금 전 철도 민영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 방법이 있다고 하니 사람들은 관심이 박지훈에게로 쏠린 것이었다.
한진영은 사람들이 박지훈의 입만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며 말없이 미소 지었다.
그들의 최후가 눈에 그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인사를 마친 사람들은 모두 같은 표정을 한 채로 뿔뿔이 흩어졌다.
돈에 대한 열망.
그들은 오늘 두 가지의 안정적이고 큰돈을 벌 수 있는 이야기를 들은 것에 흥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과 인사를 한 후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조지훈에게로 걸어갔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로비를 통해 밖에 나온 것을 확인하고 김 기사에게 차를 가지고 올 것을 이야기했다.
한진영과 조지훈이 그렇게 문 앞에 서서 기다리고 있을 때 그들에게로 한 사람이 다가왔다.
“한 대표님.”
바에서도 조용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프라임리츠의 정병선 회장이 한진영을 찾아온 것이었다.
“정 회장님. 마침 정 회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바쁘지 않으시다면 함께 차에 타고 가실까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하는 한진영의 모습에 정병선은 고개를 끄덕이고 비서인 김영철에게 차를 가지고 따라올 것을 지시한 후 한진영의 차에 올라탔다.
안 그래도 한진영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한진영과 정병선이 차에 올라탄 뒤 조지훈까지 조수석에 타자 차는 동우 로펌을 떠났다.
한진영은 동우 로펌의 건물이 손바닥만 하게 작아졌을 때 정병선을 향해 이야기했다.
“오늘 들은 이야기 때문에 그러시죠?”
“네. 바로 그것 때문에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대표님.”
정병선은 은근한 어조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들어가기 어떠냐고 물어보시는 겁니까?”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은 깊은 고민에 빠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두 가지 다 너무 달콤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고민입니다. 달콤함 뒤에 숨겨져 있는 독약과 같은 것이 있지 않냐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역시 정 회장님은 신중하시군요. 다른 분들은 전혀 그런 생각들을 하지 못한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이 낮게 웃음을 흘렸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다들 정치나 법 혹은 행정 분야 같은 곳에 한평생을 보냈던 사람들입니다. 돈 냄새를 맡는 데는 저와 대표님에 비할 바는 못 되지요. 그걸 알고 또 다른 돈 귀신이 붙어 장난을 치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민영화.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민영화 단계 전까지 가고 멈춘다면 문제없겠지요.”
“네?”
한진영이 예상과 달리 긍정적인 모습을 보여서 그런 것인지 정병선은 놀란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정병선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민영화로 넘어가기 전에 멈춘 채로 배당만 계속 지급하는 것만으로도 수서발 고속철도 이야기는 말이 됩니다.”
“그럼…… 들어가도 괜찮은 건가요?”
“네. 저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오히려 두 번째 이야기지요.”
“CB 말씀이십니까? 저는 오히려 그건 타당해 보이던데요.”
“겉으로 보이기에는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됩니다.”
한진영의 단호한 모습에 정병선은 더는 한진영에게 괜찮아 보인다고 말하지 못했다.
한진영을 설득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런 대답을 듣기 위해 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수서발 고속철도는 들어가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CB 펀드에는 절대 들어가지 마십시오.”
“‘절대’입니까?”
“네. ‘절대’ 들어가지 마십시오. 눈길도 주지 않는 게 프라임리츠를 위한 길입니다.”
딱 잘라 이야기하는 한진영의 모습에 정병선은 이유를 묻지도 못했다.
정병선이 자랑하는 위기 감지 능력이 마구 비상벨을 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