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44화 (344/650)

344화 불완전판매

한진영이 건넨 수표를 들고 나간 지 한 시간이 흘렀을 무렵 조지훈은 손에 몇 장의 서류를 들고 회사로 돌아왔다.

“어디 갔다 와요?”

조수아는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조지훈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조지훈은 그런 조수아를 향해 펀드가입 서류를 들어 보이고 대답했다.

“펀드에 가입하고 오는 길입니다.”

“펀드요?”

조수아는 조지훈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흥미를 느끼고 머그잔을 근처 탁자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조지훈이 들어 보인 서류를 빼앗듯이 낚아채고는 말했다.

“무슨 펀드요?”

“이번에 새롭게 출시한 경기증권 펀드요.”

“뭔 펀드요?”

조수아는 조지훈의 예상치 못한 대답에 펀드 가입 계약서를 내려다보던 것을 멈추고 조지훈을 올려다봤다.

조지훈은 그런 조수아를 향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대표님이 가입하라고 해서 하기는 했는데…… 뭐 딱히 이상한 것도 없고…… 잘 모르겠네요.”

“대표님이 가입하라고 했다고요?”

조수아는 조지훈의 말에 큰 관심을 보이며 다시 펀드 가입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조수아와 조지훈이 사무실 가운데 모여 무언가를 들여다보자 직원들이 관심을 가지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뭐 하고 있어?”

최근 방송에 나가는 것을 자제하고 있던 최석영이 가장 큰 관심을 보이고 다가와 조지훈과 조수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물었다.

“사무실 가운데 떡하니 서서 뭐 재미있는 걸 보는 거야?”

최석영이 고개를 빼 들고 조수아의 손에 들려진 펀드 가입 계약서를 훔쳐봤다.

“에? 펀드 가입서? 경기증권? 이거 누구 거야?”

조수아는 말없이 손가락을 들어 조지훈을 가리켰다.

최석영은 눈썹을 역팔자로 만들고는 소리쳤다.

“미쳤어? 경기증권 펀드를 가입해? 지훈아. 너 회사 더 다니고 싶지 않은 거냐?”

“대표님이 가입하라고 돈까지 주신 거예요.”

“아~ 그래?”

금방이라도 불을 내뿜을 것 같던 최석영은 한진영이 시켰다는 말에 물을 끼얹은 장작불처럼 금세 사그라들었다.

조수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웃고는 서류를 내려다보고 살폈다.

가입 계약서는 다른 것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수수료에 대한 부분이라든지 운용 계획 같은 것들도 일반 펀드와 대동소이했다.

조수아는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는 펀드 가입 계약서를 다시 조지훈에게 건네고는 물었다.

“정말 대표님께서 시키신 거예요?”

“네. 대표님과 대화하면서 느낀 건데 대표님은 이 펀드에 이상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

곁에서 이야기를 듣던 최석영이 이번에는 조지훈의 손에서 펀드 가입 계약서를 뺏어 들었다.

그리고 안에 들어가 있는 내용을 자세히 살폈다.

그러나 최석영의 눈에도 이상한 것이 나타나지 않았다.

“뭐 그냥 평범한 계약서인데?”

“저도 이곳에 오기 전에 몇 번이나 살폈는데…… 똑같았어요.”

“흐음~”

최석영은 조금 더 꼼꼼히 살피기 위해 계약서를 이리저리 둘러봤다.

그러나 여전히 최석영의 눈에 이상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최석영이 포기하고 계약서를 다른 직원에게 건네자 직원들은 번갈아 가며 가입 계약서를 살폈다.

몇 명의 직원들 손에 펀드 가입 계약서가 옮겨졌다.

그렇게 몇 차례 손을 거쳐 갔음에도 이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너무나 평범한 계약서였다.

어디에서나 쓰이는 계약서로 이상한 것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 손을 모두 거쳐 간 뒤 다시 계약서는 조지훈의 손에 돌아왔다.

최석영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한 뒤 조지훈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조 비서 투자성향이 공격 투자형이었어? 적극 투자형도 아니라?”

최석영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계속 이야기했다.

“조 비서 평소 성격 보면 위험중립도 아니라 안정형인 줄 알았는데 말이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소심하다고 느껴질 만큼 굉장히 신중하잖아. 하는 일이 그래서 그런가 나는 그런 조 비서의 성격이 지금 위치에서 딱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투자성향은 그렇지 않나 봐.”

최석영의 말에 조지훈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거기 가입서에 체크되어 있는 투자성향 말이야. 거기에 공격 투자형에 체크되어 있던데?”

“네?”

조지훈은 전혀 몰랐던 사실인지 급히 계약서를 펼쳐봤다.

최석영을 비롯한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이 의외였던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조지훈에게 이야기했다.

“네가 체크한 거 아니야?”

“저는…… 공격 투자형이 아니에요. 그런데 왜 공격 투자형에 체크가 되어 있죠?”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가입할 때 물어보지 않았어?”

“잠시만요.”

최석영의 말에 조지훈이 품에서 다급히 녹음기를 꺼냈다.

“이건 뭐야?”

최석영은 조지훈이 꺼낸 녹음기를 내려다보고 물었다.

조지훈은 녹음기를 조작하며 은행에 들어갔을 때로 시간을 돌리며 대답했다.

“대표님께서 녹음기 가지고 가서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녹음하라고 하셨거든요.”

“대표님이?”

“네. 여기서부터가 처음이에요.”

조지훈은 최석영의 말에 대답하고 녹음기를 작동시켰다.

녹음기에서는 상담사가 인사하는 목소리부터 들려왔다.

조지훈을 중심으로 모여있던 사람들은 조용한 모습으로 차분히 녹음기 말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인사가 끝난 뒤 상품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마치고 가입이 시작됐다.

가입 절차는 가입서에 적혀 있는 것들만큼이나 여느 펀드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이런 똑같아 보이는 상황에서 조수아의 귀에 이상한 것이 걸려들었다.

“잠깐. 멈춰봐요.”

조수아의 말에 조지훈이 급히 녹음기를 멈췄다.

조수아는 그런 조지훈을 향해 손을 뒤로 돌리며 말했다.

“조금 전 뒤로…… 한 10초만 뒤로 넘겨봐요.”

“10초요.”

조지훈은 조수아가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생각하고 녹음기를 뒤로 넘겼다.

그리고 조수아의 눈치를 살피며 다시 녹음기를 켰다.

녹음기에서는 상담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여기 체크하시고…… 여기는 그냥…… 넘겨도 되고…… 여기에 날짜와 서명하시면 돼요.

조수아는 녹음기 속의 상담사 목소리를 따라 가입 계약서에 적혀 있는 것들을 살폈다.

그리고 넘겨도 된다는 말이 나온 순서에 투자성향 체크박스가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손가락으로 계약서를 두드렸다.

“여기를 그냥 넘기라고 설명했네요. 조 비서님은 몰랐어요?”

“저는 몰랐습니다.”

당황한 표정의 조지훈은 가입 계약서를 들어 여기저기 살피며 고개를 저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상황이 흘러가서 저는 여기에 제가 체크하지 않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돌려받았을 때는 체크가 되어 있기에 그냥 의례적으로 이루어지는 은행에서 체크하는 부분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최석영은 팔짱을 끼고 의심의 눈초리로 가입 계약서를 내려다봤다.

“얘네들이 왜 투자성향을 묻지도 않고 체크했을까?”

“물어보면 되죠. 조 비서님. 전화해서 물어봐요.”

“전화해서 물어본다고? 은행에? 걔들이 순순히 대답해 주겠어?”

“뭐라도 대답해 주겠죠. 그것만 들어도 대충 추측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물어봐요.”

“어~ 그런가? 그래. 뭐라고 변명하는지 나도 궁금하기는 하다. 지훈아. 연락해봐. 뭐라고 그러는지 들어보기라도 하자.”

조수아의 말에 최석영이 동조하자 조지훈은 전화기를 열어 조금 전 펀드를 가입했던 두리은행 여의도지점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저 조금 전에 펀드 가입한 사람인데요. 제가…….”

스피커폰으로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전화한 조지훈은 간단하게 전화를 건 이유를 상대방에게 이야기했다.

“지금 가입 계약서를 보니 투자자 성향에 매우 높음 쪽에 체크되어 있더라고요. 제 기억으론 제가 체크한 기억도 없고, 질문하셔서 대답한 기억도 없거든요. 그런데 왜 공격 투자형에 체크가 되어 있는 거죠? 그리고 여기에 체크가 되어 있다면 뭐가 달라지는 거죠?”

-아~ 고객님.

스피커에서는 매우 귀찮아하는 느낌이 전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투자자 정보 확인서에 체크하는 란이 있는데 그거 사실 가입할 때마다 바꿀 수 있는 거라 크게 의미가 없어요. 그리고 기본이 공격 투자형이거든요. 그래서 제가 기본에 체크한 거예요.

“기본이라고요? 그럼 묻지도 않고 그곳에 체크하는 게 기본이라는 말씀이세요?”

-아~ 참. 네. 불편하시면 지금이라도 와서 새롭게 작성하시면 되죠.

상담사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조지훈은 상대방의 태도에 화가나 버럭 하려 할 때 조수아가 급히 조지훈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의 귀에 귓속말을 전하며 다른 것을 물어볼 것을 이야기했다.

조지훈은 조수아의 말을 듣고 눈을 크게 떴다.

그가 놓친 부분이 또 하나 있었던 것이었다.

조지훈은 화를 차분히 가라앉히고 책상 위에 놓여 있는 휴대폰을 향해 이야기했다.

“또 하나 궁금한 게 있습니다.”

-뭔데요? 말씀해보세요.

조지훈은 귀찮다는 듯한 상담사의 목소리에 기분이 언짢아지는 것을 겨우 참고 입을 열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투자설명서나 간이 투자설명서와 같은 것을 고객에게 나눠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저는 받은 게 없거든요.”

-받은 게 없어요?

“네.”

-잠시만요.

상담사의 수화기로 무언가를 찾는 듯한 소리가 들린 뒤 상담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 받기를 거부했다는 곳에 체크되어 있는데요? 고객님이 받기 싫다고 거부하시지 않으셨어요?

“아니요. 저는 그런 기억이 없는데요. 그런 투자설명서가 있다는 말도 듣지 못했어요.”

-그럴 리가요. 그때 분명…….

상담사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이 말을 하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아까와는 조금은 다른 말투로 이야기했다.

-어…… 그러니까. 대부분의 고객께서는 투자설명서를 받지 않으세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투자설명서를 안 받는다니요?”

-이게 그렇거든요. 어려운 말들만 잔뜩 쓰여 있고, 재미도 없고…….

“아니. 누가 그걸 재미로 봅니까?”

-재미가 있어야 눈에 들어오잖아요. 그런데 쓰여 있는 것들이 죄다 모를만한 내용이니 눈에 들어오겠어요? 그러니 재미가 없죠.

“제가 그 이야기를 모를 거라는 생각을 왜 상담사님이 혼자 판단하시는 건가요?”

-그게…… 대부분 그래요. 아 참. 그것도 드려요? 필요하시면 오셔서 가지고 가세요. 거참 귀찮게…….

“이봐요!”

조지훈이 화가나 소리를 치려 하자 상대편이 먼저 이야기했다.

-보니까 500만 원 가입하셨네요. 사실 우리 펀드의 경우에는 최소 가입 금액이 정해져 있는 거예요. 이렇게 소액으로는 받지를 않아요. 그런데 특별히 고객님이 꼭 가입하고 싶다고 하셔서 가입시켜드린 건데…… 찜찜하시면 취소하세요. 취소 수수료도 제가 다 물어드릴게요. 고객님 같은 분은 이런 좋은 펀드와는 맞지 않는 것 같으니까요.

조지훈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얼굴로 같이 이야기를 듣던 사람들을 돌아봤다.

자기가 이렇게 화가 나는데 최석영이라면 더 화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최석영에게 가장 먼저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최석영은 조지훈의 생각과 달리 화를 내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팔짱을 끼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이 화가 났다기보다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조지훈과 상담사의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었다.

조수아도 마찬가지의 표정이었다.

오히려 최석영보다 더 의아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드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모습이었다.

조지훈은 최석영과 조수아의 모습을 확인하고 지금의 이야기가 마냥 화를 낼 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가만히 생각하던 최석영이 조지훈을 향해 손짓했다.

이제 그만 전화를 끊으라는 뜻을 조지훈에게 건넨 것이었다.

조지훈은 생각하고 찾아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최석영에게 무엇이 잘못된 거냐고 물었다.

“이상해. 많이 이상해.”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이건…… 많이 이상해요.”

“대표님이 가입하고 오라고 시켰다고?”

최석영과 조수아가 번갈아 이상하다는 말을 내뱉었다.

그리고 조지훈을 향해 다시 한번 지금의 일을 물었다.

조지훈은 두 사람이 뭐가 이상하다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한 채 대답했다.

“네. 대표님께서 직접 가서 뭐가 잘못된 건지 직접 확인해보고 오라며 시키셨어요. 누락이 있을 수 있다는 말씀과 함께…… 설마 누락이 이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런 것 같아.”

최석영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수아를 바라보자 조수아도 동의한다는 말을 건넸다.

“투자성향을 물어보는 것을 누락하고 투자설명서를 주는 것을 누락하는 걸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이건 정말 생각도 못 했는데요.”

“그러니까. 이것들 이러면 불완전판매 아냐?”

“맞아요. 불완전판매죠.”

조수아는 최석영의 말에 동의한 뒤 조지훈에게 불완전판매에 관해 설명했다.

“금융상품을 판매할 때 고객에게 기본적인 내용과 투자 위험성을 제대로 안내해야 하는 의무가 있어요. 그걸 지키지 못하면 완전한 계약이 성사됐다고 보지 않는다고 법으로 정해놓았어요. 그래서 손해를 봤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금융사에서는 고객에게 원금을 상환해야 하고 벌금과 함께 한동안 상품을 판매할 수 없다는 제재도 받아야 해요.”

“말씀을 들으니 제가 불완전판매에 해당하는 것 같네요.”

“이건 뭐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에요. 투자성향을 정확하게 기재해야 가입한 펀드와 고객의 성향이 맞는다는 게 성립이 되는데…… 잠깐만요.”

조수아는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말을 하다 말고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조지훈을 향해 다시 물었다.

“투자설명서 받지 못하셨죠?”

“네.”

“구두로 무슨 펀드라는 이야기는 들으셨어요?”

“대충요. 뭐 혼합형이라고 하던데…… 주식과 채권은 물론이고 메자닌? 뭐 거기에도 투자한다던데요. 원금을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개방형이라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요. 결국 그거네.”

조수아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모르고 불완전판매를 한 게 아니라 일부러 불완전판매를 한 거였어요.”

“일부로요? 일부로 왜요?”

“말로는 원금을 언제든 찾을 수 있는 개방형이라지만 메자닌에 투자한 이상 개방형이 될 수가 없어요.”

조수아의 말에 최석영도 이제야 모든 것이 이해가 간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그렇네 이것들 일부러 그런 거네. 고위험 고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을 팔면서 위험을 고지하기 싫어서 일부러 그런 거네. 그리고 돈이 묶인다는 사실도 알리고 싶지 않아 개방형이라는 말만 건네고 실제로 어떻게 운용되는지 알려주지 않고…… 이것들 돌았는데?”

“네. 돈 거 같아요. 큰 사고 한번 치게 생겼어요.”

최석영과 조수아 그리고 주변에 있는 세이지 직원들과 설명을 들어 이제 이해가 된 조지훈 모두 경기증권과 두리은행의 행태에 혀를 내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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