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46화 (346/650)

346화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고 있는 거다

경기증권의 펀드는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언론에서 좋은 상품이라고 이야기한 것이 큰 효과를 거둔 모습이었다.

펀드의 흥행을 견인한 것은 언론만이 아니었다.

정부 각료회의에서 뜬금없이 경기증권 펀드를 언급한 것이 노출되며 정치 뉴스에서조차 경기증권이라는 이름이 노출된 것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예능에서조차 경기증권 펀드 이야기가 나오기까지 했다.

게스트로 초대한 연예인에게 요새 어떠냐는 자연스러운 질문에 게스트가 경기증권 펀드에 가입했다는 대답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까지 했다.

경제나 시사에 취약하지만, 예능은 빼놓고 보지 않는 계층을 노린 것으로 그 효과는 대단했다.

출시 사흘 만에 1조가 넘는 자금을 모았으며,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3조가 넘는 자금이 경기증권의 펀드로 유입되어 들어왔다.

고객들의 니즈에 맞출 수 있는 여러 상품이 있다는 것을 어필한 덕분에 출시 40일 차에 드디어 5조라는 상징적인 금액을 모집하며 대성공을 거두었다.

단일 상품으로 경기증권의 펀드보다 더 많은 금액을 모은 펀드는 수두룩했다.

하지만 경기증권과 같이 단일 기간, 단일 회사로 5조가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경기증권은 역사를 써 내려가는 중이었다.

이렇게 경기증권이 엄청난 성공을 보이는 와중에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펀드 하나가 또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세이지 자산운용이 3호 펀드로 신생기업 혹은 스타트업 등에 투자하는 펀드를 출시한 것이었다.

이미 예고가 되어 있었던 만큼 사람들은 세이지의 펀드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관심만큼 흥행은 초반부터 삐걱거렸다.

지난 1호와 2호 펀드들과 달리 자금 쏠림이 예상보다 못한 것이었다.

그리고 세이지가 펀드를 출시하기 전 시장에 내놓았던 경기증권과의 비교에 더욱 성적표가 초라해 보일 정도였다.

-어떻습니까? 세이지의 출발이 이전과는 다르다는 이야기가 들리는데요.

한 주의 시장을 되돌아보는 코너에서 세이지의 펀드 이야기가 나오는 중이었다.

-이전과는 많이 다릅니다. 출시하자마자 설정 금액을 무섭게 채웠던 지난 펀드들과 달리 이번 펀드의 경우에는 출시하고도 상당 시간 동안 목표치를 채우지 못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증권방송의 기자가 나와 출시한 지 일주일이 지난 세이지 펀드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아나운서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기자를 향해 질문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분명 출시 전 대중들에게 큰 관심을 받으며 어서 상품을 판매하라는 독촉 이야기까지 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모습이 나온 거죠?

-맞습니다. 말씀대로 시장에서는 출시 전 세이지 펀드에 큰 관심을 보이며 출시를 앞당기라는 요청까지 나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출시 전 몇 가지 변수가 발생하며 흥행에 빨간불이 켜지고 말았습니다.

-변수요? 어떤 변수가 있었던 거죠?

-우선 첫째로 이번 펀드의 경우 생소한 스타트업과 신생기업에 투자한다는 사실이 대중에게 낯설게 다가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기자는 고개를 돌려 카메라를 바라보고 말했다.

-기존에는 주식과 채권과 같은 상품에 투자하는 방식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기업에 직접 투자를 하는 것으로 과연 이것이 얼마나 성공적일지 가늠을 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세이지의 펀드가 완전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와 유사한 유명한 펀드가 여럿 있기는 합니다. 특히 미국과 일본 그리고 우리나라 등에 투자한 유명한 펀드는 수십 배 혹은 수백 배에 달하는 회수율을 올리며 사람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성공 뒤편에 자리한 성공률이 투자자들의 불안감을 자극하여 가입에 소극적인 모습을 만들었습니다.

-성공률이 많이 낮은가요?

-현재 알려진 바로는 10%가 채 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허어~ 10%가 안 되는 것은 치명적이기는 합니다.

-그렇습니다. 10개의 회사에 투자하여 1개만 성공시킬 수 있고 그곳이 10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을 때야 겨우 본전이 된다는 뜻입니다. 만약 10개의 투자회사 모두 성공에 실패하거나 10배가 안 되는 수익을 올렸을 때는 원금이 보장 안 된다는 치명적인 단점을 세이지의 펀드는 가지고 있는 겁니다.

아나운서는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기자를 향해 말했다.

-이야기만 들었을 때는 성공이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정확하게 어떤 상황인 겁니까?

아나운서의 질문에 기자는 가지고 온 자료를 내려다보고 대답했다.

-출시 일주일째인 오늘 기준으로 1,000억을 겨우 넘은 것으로 판단되고 있습니다.

-1,000억이요? 목표치에 한참 모자란 수치 아닙니까? 심각한데요.

-심각합니다. 당초 세이지가 목표로 했던 3조는 물론이고 지난 펀드들의 설정액에도 한참 모자라는 수치입니다.

기자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지난 펀드들의 경우에는 설정액을 하루도 안 되는 시간에 모두 채웠었습니다. 물론 금액이 크지 않아 가능했던 일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두 이번 3호 펀드의 1,000억은 우습게 넘겼었습니다. 3호 펀드는 지난 펀드들의 1/5 수준의 자금밖에 모집하지 못한 것입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세이지의 상황이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그렇다면 이런 결과가 나온 두 번째 이유는 무엇입니까?

-네. 생소하다는 첫 번째 이유에 이어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경기증권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경기증권이요? 경기증권이 왜 세이지의 이번 펀드와 연관이 있다는 것이죠?

아나운서의 질문에 기자는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바로 시중자금을 경기증권이 모조리 빨아들여서 이렇게 됐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아~ 그럴 수 있겠군요.

맞장구치는 아나운서의 말에 기자는 계속 이야기했다.

-현재 시장은 횡보장에 들어선 상태입니다. 오르지도 그렇다고 떨어지지도 않는 시장이 앞으로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상태에서 길을 잃은 시중자금이 먼저 오픈 한 경기증권의 펀드에 몰려든 것이지요. 20개가 넘는 여러 펀드를 오픈하며 고객들의 니즈를 맞추었고, 세이지보다는 조금 더 친숙한 투자방식에 사람들은 세이지가 펀드를 출시하기까지 기다리기보다 먼저 경기증권 펀드에 가입하는 것을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일리가 있는 판단으로 보입니다. 그럼 앞으로 세이지는 어떻게 될까요?

아나운서의 말에 기자는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

이런 모습은 카메라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부정적인 모습으로 전해졌다.

-현실적으로 목표한 설정액을 채우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실패했을 때 과연 세이지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주식이나 채권과 같은 것들을 투자할 때는 설정액에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기업에 투자할 때는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10곳에 투자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7군데 밖에 투자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기자는 침울한 표정으로 계속 이야기했다.

-조금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기업투자의 경우 특히 세이지가 하려는 신생기업 투자의 경우에는 열 군데에 투자하여 한 군데를 살리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만약 돈이 모자라 투자하지 못한 세 군데 중의 하나가 성공한 회사이며 투자한 일곱 군데가 모두 실패한 회사가 되는 경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세이지의 펀드는…… 매우 안 좋은 상황입니다.

조지훈은 화면 속의 기자 이야기를 들으며 곁에 앉아있는 한진영의 안색을 계속 살폈다.

너무나 노골적으로 세이지에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통에 한진영이 기분이 나빠졌을지 몰랐기 때문이다.

조지훈은 한진영을 바라본 채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대경TV 측에 강력하게 항의해볼까요?”

“아니. 놔둬.”

조지훈의 걱정과 달리 한진영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리고 세이지에 이어 다음 주제로 넘어간 TV를 끄고 조지훈에게 말했다.

“나와 달라는데 나가지 않아서 삐쳐서 저러는 건데 항의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그래도…….”

“해결책은 대경TV에 나가는 거야. 그런데 우리 입장에서는 이제 대경TV에 나갈 이유가 없잖아. 안 그래?”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이미 공중파에서 자리를 잡은 상황인데 굳이 케이블 그것도 주식방송에 나갈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무시해.”

“하지만 저렇게 계속 우리 쪽에 안 좋은 이야기를 하는 게…… 펀드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영향이 있겠지. 그리고 그러라고 저렇게 이야기하는 거고…….”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무언가를 깨닫고 이야기했다.

“그럼 경기증권에서 대경TV 측에 압력을 가한 건가요? 우리와 경쟁이 되는 것 같아서요?”

“글쎄. 어디서 압력을 가했는지는 모르지. 하지만 압력이 있었던 것만큼은 사실일 거야. 그렇지 않다면 저렇게 심한 워딩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 아무리 삐쳤다고 하더라도…….”

말을 하는 한진영의 표정에서는 불쾌감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대경TV의 태도가 오히려 편하게만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잘 됐어. 저렇게 나와주는 게 편해.”

똑똑.

조지훈이 왜 편하냐고 말을 물으려 할 때 사무실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조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노크를 한 비서실 직원이 조지훈을 향해 인사를 하고는 무언가를 이야기했다.

조지훈은 알겠다는 뜻을 전한 후 한진영에게로 다가갔다.

“대표님. 오셨다고 합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지훈을 향해 가볍게 조금 전 방송 이야기를 계속했다.

“대경TV가 오히려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우리를 도와준다고요?”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을 들으며 한진영의 옷을 털어줬다.

손님을 만나는 데 옷에 먼지가 묻었을까 봐 걱정된 손길이었다.

열심히 한진영의 뒤를 손으로 털어내면서도 한진영의 다음 말에 귀를 기울였다.

손은 바삐 움직이고 있지만 조지훈의 마음은 왜 대경TV가 세이지를 도와준다는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펀드의 주요 고객으로 생각하는 곳이 어디야?”

“기업 고객입니다.”

“그래. 그러니 도와준다고 내가 이야기하는 거야.”

한진영은 이제 그만 먼지를 털어내도 된다는 뜻을 조지훈에게 건네고는 사무실을 나섰다.

손님이 도착했다는 데 기다리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면서도 말하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여전히 조지훈의 의문이 풀리지 않고 있음을 알고 있었던 한진영이었다.

“개인 고객이 늘어나서 우리가 계획한 설정액을 모두 차지해 버린다면 기업 고객을 유치할 수 있겠어? 우리가 컨트롤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으니 무한히 고객을 받을 수도 없는데 말이야.”

“그럼 대경TV가 저렇게 이야기한 덕분에 개인 고객의 가입이 막히게 된 거고 그 자리를 기업 고객으로 채우게 됐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지.”

한진영은 잘했다는 뜻으로 조지훈의 등을 손바닥으로 소리 나게 때린 후 손님이 와 있다는 회의실 앞에 섰다.

“그 덕분에 이렇게 고객이 찾아오는 거 아니겠어? 개인 고객들로 펀드가 가득 찼다면 이렇게 찾아온 고객을 내보내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한진영은 웃으며 이야기한 후 문을 열라는 뜻을 전했다.

조지훈은 천천히 회의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회의실에 들어가는 한진영의 등을 바라보고 생각했다.

‘혹시 대경TV에 오늘과 같은 워딩을 해달라고 대표님이 부탁한 건 아닐까?’

한진영의 이야기를 듣자 갑작스럽게 든 의문이었다.

오늘의 방송이 세이지에게 도움이 된다면 이런 도움 또한 한진영이 만들어낸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우선은 한진영과 함께 고객을 맞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습니다.”

한진영의 인사에 한창실업 장교훈 회장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어디서 본 적이 있습니까?”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생각하던 장교훈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한진영에게 말했다.

“세이지의 한 대표님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나 보네요. 요전에 찜질방에서…….”

“아~”

장교훈은 그제야 생각이 났다는 표정으로 무릎을 치며 말했다.

“맞습니다. 찜질방에서 최 과장님과 뵀었지요?”

“네. 그때 설렁탕 맛있게 먹었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장교훈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살피며 말했다.

“저는 그때 최 과장님을 따라온 동료 후배쯤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맞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최석영 과장님의 후배였지요.”

“그럼…….”

장교훈은 한진영의 말을 듣고 새삼스러운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젊은 나이에 빠르게 성공하셨습니다. 제가 알고 있기로는 최 과장님도 이곳 소속이라고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장교훈은 찜질방에서 봤을 때만 해도 최석영 과장의 후배였던 사람이 짧은 시간 만에 이렇게 자산운용사의 어엿한 주인이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장교훈은 한진영을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고 이야기했다.

“놀랍습니다. 얼핏 듣기는 했지요. 세이지의 오너가 신성증권 소속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그때 찜질방에서 만났던 분이라니……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해요.”

“감사합니다. 우선 앉으시지요.”

한진영의 제안에 장교훈은 자리에 앉으면서도 한진영을 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장교훈에게는 뜻밖의 일이었다.

“사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장교훈은 자리에 앉자마자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세이지가 기업 고객을 유치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기풍을 비롯한 대한정유 등으로부터 거액을 먼저 유치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곳에 제가 오게 된 것이고요. 하지만 불안감도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신생 운용사이니 신뢰가 부족한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한 대표님을 뵈니 없던 신뢰도 생겨났습니다.”

“저를 본 것만으로 말씀입니까?”

“네.”

장교훈은 잠시 옛 생각을 떠올리며 말했다.

“당시 최석영 과장님과 함께 있던 젊은 친구의 얼굴이 똑똑히 기억이 났으니까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대표님의 얼굴에는 자신감이 가득 차 있습니다.”

장교훈은 한진영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제 나이쯤 되면 배우지 않아도 관상이라는 것을 대충 볼 수 있게 됩니다.”

“제 관상이 좋은가요?”

“좋지요. 아주 좋습니다. 얼굴을 보기 전까지 100억을 내어놓아도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한 대표님의 얼굴을 보고 결정했습니다. 1,000억. 한창실업의 이름으로 1,000억을 투자하도록 하겠습니다.”

장교훈의 말에 빙그레 웃는 한진영과 달리 조지훈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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