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54화 (354/650)

354화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한진영은 양손을 들어 올린 정병선을 보고 웃으며 물었다.

“선물이 무엇입니까?”

“뭐 특별한 건 아닙니다.”

정병선은 웃음기를 머금은 채 들어 올린 손을 내렸다.

“들으니 사람을 많이 채용하셨다고요?”

“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 비해 직원 수가 2배가 넘었습니다.”

한진영은 감회가 새롭다는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좀 무리한다 싶게 2개 층을 사용했는데…… 물론 정 회장님이 배려를 해주셔서 싼값에 들어올 수 있게 되어 선택한 거지만 말입니다.”

정병선은 한진영이 잊지 않고 있는 것을 보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그런 정병선을 바라본 채 계속 이야기했다.

“그런데 지금은 좁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외부에 새로 사무실을 얻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이 잘됐다는 듯이 무릎을 쳤다.

“그럴 줄 알고 선물을 마련해 왔습니다.”

“네? 그럴 줄 알고 선물을 마련했다고요?”

한진영이 그게 무슨 말이냐며 되묻자 정병선은 손을 활짝 펼친 채로 말했다.

“이 건물. 다 사용하십시오.”

“건물을 다요?

한진영이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정병선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신이 난 듯이 이야기했다.

“여기 건물 통째로 내어드리겠습니다. 월세도 관리비를 받는 수준으로만 받겠습니다. 1층. 아니. 지하부터 꼭대기, 옥상까지 모두 사용하십시오.”

정병선은 들어 올린 손을 펼쳐 한진영 앞에 내민 뒤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다른 데 갈 생각하지 마시고 여기 계세요. 여기 건물을 통째로 쓰시고 나중에 여기도 좁다고 느껴지신다면 제가 더 좋은 곳을 또 마련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한진영은 정병선의 뻔한 속내가 보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싫다고 할 이유가 한진영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정병선도 싫다는 말을 하지 않는 한진영의 모습을 반쯤은 허락으로 받아들였다.

“위와 아래에 들어와 있는 업체들에는 나가라는 말을 미리 해놓은 상태입니다. 다음 달까지는 무조건 비워드릴 테니 마음껏 사용하십시오. 안에 인테리어부터 시작해서 공사해야 할 곳이 있다면 그것도 말씀만 해주시면 제가 다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너무 다 제 입맛에 맞춰 사용하다가는 나중에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십니까?”

“다른 사람이 쓰지 못하고 대표님과 세이지만 쓰면 되죠. 저는 그거면 만족합니다.”

정병선의 말에 한진영이 나직이 웃으며 물었다.

“설마 저를 계속 끼고 있을 생각은 아니시죠?”

“할 수만 있다면 그러고 싶은 심정입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한 정병선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정병선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물었다.

“내부에서 이상 현상이 일어난 겁니까?”

웃고 있던 정병선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정병선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이것도 티가 나던가요?”

“저에게 괜히 선물을 해주실 리는 없을 테니까요. 뭐 고속철도 사업으로 수익을 볼 걸 예상하여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듯싶어서 말입니다. 그 외에 저에게 이렇게 선물을 주실만 한 일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니 한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아서요.”

한진영은 정병선을 가만히 바라본 채 물었다.

“제 말이 맞는 겁니까?”

기대에 찬 표정의 한진영이었다.

정병선은 그런 한진영의 표정을 보고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

내 발로 나온 것도 아니라 쫓겨나온 입장에서 나를 쫓아낸 곳이 안 좋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진영은 그런 것보다 더 큰 이유로 내부 이야기를 물어본 것이었다.

붕괴의 조짐.

그 조짐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서였고 정병선은 궁금해하는 한진영을 위해 내부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경기증권이 문제를 일으킬 것 같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프라임리츠의 정병선 회장은 웃던 얼굴을 굳히고 이야기했다.

“돈이 물밀듯이 들어오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지금까지 이렇게 돈을 많이 모아보지 못해서 그런 것인지 고객들의 돈을 마치 자기 주머니에 있는 돈인 것처럼 물 쓰듯이 쓰고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정병선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처음에는 동우 로펌에 2,000억을 대여해주는 일로 시작됐습니다. 뭐 말이 대여지 실상은 상납이나 마찬가지이지요. 거기까지는 이해했습니다. 이런 일이 드문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권력 앞에 돈을 내어놓는 일은 어쩌면 가장 쉬운 일 중 하나니까요.”

상납을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한 정병선이 얼굴을 굳힐 정도로 안 좋은 일이 벌어졌다는 것에 한진영은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게 됐다.

한진영은 가만히 정병선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정병선은 말을 멈추고 잠시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에 혹시 누가 듣고 있는 건 아닌가 걱정하는 눈치였다.

한진영은 불안해하는 정병선을 안심시켰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곳에는 카메라도 없으니까요. 안전합니다.”

한진영의 말에 정병선이 미안한 듯이 웃어 보였다.

“대표님을 믿지 못해 그러는 건 아닙니다. 다만 워낙에 중요한 이야기라…….”

“이해합니다.”

정병선은 이해한다는 한진영을 바라보고 큰 숨을 몰아 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안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경기증권의 펀드를 욕심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동우가 돈을 받자 다른 사람들도 자기도 받기를 원한 건가요?”

“그뿐이 아닙니다. 그냥 자기 주머니처럼 사용하기를 바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병선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든 뒤 계속 이야기했다.

“이사를 하는데 이사비를 달라는 건 애교 수준이었습니다. 아이들 유학비나 술값 정도는…… 뭐…… 늘 그러는 거니까. 그것도 그러려니 할 수 있습니다.”

“그럼 뭘 하려 한 겁니까?”

“노골적으로 돈을 요구했습니다.”

“노골적으로요?”

“네. 핑계는 다른 사람들을 구워삶기 위한 로비 명목이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말뿐이고 실제로는 자기들 주머니를 채우고 싶어 경기증권에 돈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얼마나 요구했길래 그러십니까? 술값 정도는 조금 전에 늘 있었던 일이라고 이야기하신 것 보니까 술값 이상을 요구한 것 같아 보이는데 말입니다.”

정병선은 썩어가는 표정으로 손가락 하나를 들어 올렸다.

한진영은 손가락을 바라본 채로 물었다.

“1,000만 원이요?”

“아니요.”

“그럼…… 설마 1억이요?”

“그것도 아닙니다.”

정병선은 한숨을 내쉬고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답을 알려줬다.

“10억. 10억을 요구했습니다. 그것도 매달 말입니다.”

“네? 매달 10억이요?”

“미친 겁니다. 미쳤어요. 매달 10억이라니요? 다들 돈에 눈이 뒤집혔습니다.”

한진영은 정병선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장 중요한 말이 지금까지 나오지 않아 직접 물어본 것이었다.

“그걸…… 경기증권이 들어줬습니까?”

한진영의 질문에 잠시 딴생각하던 정병선이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그러니 더 환장할 노릇이라는 거 아닙니까? 그 미친 요구를 들어준다니…….”

“2,000억을 내어준 마당에 매달 10억을 내어주는 것쯤은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그게 그거하고 같지 않아요.”

정병선은 한진영이 뭘 잘 몰라서 그런다고 생각하고 손을 열정적으로 휘두르며 한진영을 향해 설명했다.

“애초에 2,000억을 처음 줄 때의 명분은 경기증권의 법률적 상담 및 펀드 상품들에 대한 보호 목적이 있었어요. 2,000억이라는 돈이 매우 많아 보이지만 20년짜리 장기계약에 1,000억은 동우에 투자한 형식으로 돈이 흘러 들어간 겁니다. 즉, 1년에 50억짜리 법률 상담 계약을 맺은 것에 불과하다는…… 뭐……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명분이 살아있는 일이었어요.”

“그럼 매달 10억씩 준다는 건…….”

“명분이 없어요. 매달 10억씩 모임에 있는 사람들 전부를 언제까지 준다는 뭐 말도 없이 준다는 겁니다. 2,000억은 최소한 동우 로펌이라는 회사 대 회사로 계약이라도 맺었는데 이건…… 개인에게 그냥 준다는 겁니다. 그냥이요.”

한진영은 열이 오른 정병선을 향해 그가 이렇게 흥분한 게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야말로 뇌물이네요.”

“맞아요. 뇌물. 적절한 표현이네요. 뇌물입니다. 뇌물.”

정병선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허탈한 모습으로 말했다.

“대표님께서 거리를 두라고 하지 않았다면 저도 돈을 내놓았거나 혹은…… 돈을 받아 챙겼을 겁니다. 매달 10억은…… 저에게도 큰돈이니까요.”

“큰돈이지요. 아무것도 따라붙지 않는 공돈 10억, 그것도 매달 10억은 누구나 혹할만한 돈이기는 합니다.”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며 수입을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었다.

어디에다 쓰든지 간에 지출을 신고하지 않아도 됐다.

그야말로 비자금으로 쓰기에 이만한 돈이 없었던 것이었다.

한진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입꼬리를 말아 올린 채로 정병선에게 물었다.

“아무리 경기증권이라고 하더라도 2,000억이라는 돈과 모임 멤버들 모두에게 매달 10억씩을 나누어준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일 텐데…… 어떤 방법으로 돈을 마련한다고 합니까? 펀드로 5조를 모았다고 하더라도 자금이 조금만 유출돼도 지금의 일이 세상에 그대로 드러나게 될 텐데 말입니다.”

“그게 문제입니다. 그게요.”

정병선은 말을 하면 할수록 답답해져 오는 것에 숨을 쉬기 힘들어하기까지 했다.

***

조지훈은 한진영의 지시로 경기증권 펀드에 관한 분석에 들어간 상태였다.

비서실이 총출동하여 뜯어볼 정도로 경기증권 펀드는 복잡한 구조로 되어 있었다.

“실장님.”

조지훈은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 곳으로 걸어갔다.

그곳에서는 펀드 관계도를 그리고 있던 직원이 조지훈에게 새롭게 찾아낸 것이 있음을 알렸다.

“플루토 D-1호 펀드의 확정금리 자산 3호 아래 FI레버리지 펀드가 자펀드로 편입되어 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또 다른 게 뭐 없나 확인해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새롭게 찾아낸 관계도를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가며 혀를 내둘렀다.

“미친놈들 뭐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어?”

한진영의 지시를 받아 경기증권의 펀드 구조를 파악할 때만 해도 별일이 아닐 거로 생각했다.

비서실 직원 한 명에게 시키면 하루 나절 혹은 다음 날이면 결과를 가지고 와서 보고할 것으로 생각했던 조지훈이었다.

그런데 조지훈이 지시를 내린 그 날 점심 무렵 지시를 받은 직원이 울 듯한 표정으로 다가와 조지훈의 생각이 틀렸음을 알렸다.

복잡하다는 말로 표현이 불가능할 정도로 꼬이고 꼬여있던 것이었다.

한 개의 모펀드에 자펀드가 수두룩하게 모여 있는 구조.

자펀드끼리도 얽히고설켜 있었으며 심지어 어떤 것의 경우에는 손자펀드에 모펀드와 자펀드가 섞여 있는 구조로 되어 있기도 했다.

평범과는 거리가 먼 일반적이지 않은 펀드였던 것이었다.

이런 펀드가 존재할 수 있었던 데는 투자설명서에 쓰인 ‘세부 사항은 운용역 판단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란 문구 때문이었다.

이런 문구의 첨언은 투자자들이 어디에 투자하는지 모르게 했다.

신용보증 매출 채권에 투자한 투자자가 모펀드에 딸린 다른 자펀드에 투자하게 했다.

즉, ‘프리미엄’ 어쩌고저쩌고나 ‘플러스’ 어쩌고저쩌고의 이름을 가진 자펀드에 투자한 투자자가 모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다른 ‘인슈어드’ 펀드에 투자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이런 구조의 복잡성에 관한 문제점은 내가 원하는 펀드에 돈이 들어가지 않는 것 외에 더 중요한 문제를 일으켰다.

바로 언제든지 환매를 할 수 있는 개방형 펀드를 마음대로 환매할 수 없는 폐쇄형으로 만든 것이었다.

개방형 펀드는 언제든 현금화가 가능한 주식, 채권 등에 투자해야 했다.

그래야 투자자가 환매를 요청했을 때 손쉽게 보유분을 정리하여 돈을 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기증권의 펀드 그중에서도 모펀드는 이런 개방형과는 거리가 멀었다.

바로 혼합형 자산을 담고 있었던 것이었다.

혼합형 자산은 전환사채인 CB나 신주인수권부사채인 BW 등을 말했다.

당장 팔 수 없고, 정리하지 못하는 자산을 담고 있었기에 투자자들이 환매를 신청해도 돈을 돌려받을 수가 없었다.

바로 이런 상황이 연출된 데는 투자설명서에 쓰인 ‘세부 사항은 운용역 판단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라는 문구 때문이었다.

자펀드에 투자했지만, 모펀드로 강제로 옮겨진 것.

그리고 모펀드의 다른 자펀드로 자연스럽게 이동한 것.

이런 상황이 경기증권 펀드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조지훈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은 채 자리에 가 앉았다.

“대표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구나.”

조지훈은 한진영을 가까이서 보필하며 놀랐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한진영과 함께한 시간이 길었던 만큼 더는 놀랄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다.

이제 눈빛만 봐도 알만한 사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놀랄 일이 튀어나오고는 했다.

이번에도 그랬다.

한진영은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확인하기 위해 혹은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조지훈에게 지시를 내린 것처럼 보였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외부 사람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펀드런이 벌어지지 않는 한 드러나지 않았을 사실이었어.”

조지훈은 경기증권 펀드의 관계도를 내려다보고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복잡하게 얽히고설켰지만 펀드런이 벌어져 너도나도 돈을 뽑아내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누구도 모를 만한 일이었다.

어쨌든 약관의 명시대로 움직이고 있었으며 겉으로 보기에는 잘 움직여나가고 있는 펀드였기 때문이다.

그걸 한진영은 꿰뚫어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펀드의 내부를 살펴 확실한 정보를 모았을 때 두 곳에 정보를 제공하라고 했다.

서준일보와 태훈 로펌.

한쪽은 언론이었으면 다른 쪽은 검찰을 압박할만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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