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훈은 비서실 직원들에 의해 수집되어 올라오는 자료들을 하나하나 정리하며 양쪽에 언제 넘겨야 할지 타이밍을 쟀다. 355화 처음부터 동우였다
한진영이 구축한 2차전지 3각 연합은 생각보다 빠르게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특히, 테라로의 안정적인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은 2차전지 사업을 부흥시키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동안 가능성으로만 점쳐오던 고용량 대형 배터리의 사용처가 생긴 것에 시장은 다른 시각으로 배터리를 바라봤다.
페이퍼 수준의 가능성만 보이는 것과 실제 제품이 출시된 것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시장의 반응에 LZ그룹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바로 LZ신소재의 상장을 추진한 것이었다.
상장 추진 과정 전에 우선 주식 수를 늘리는 작업부터 들어간 LZ그룹이었다.
1,000만 주에 불과한 발행 주식을 유상과 무상 증자를 번갈아 시행하며 주식 수를 늘리려 계획했다.
시장에 유통되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주식이 있어야 한다는 판단에서였다.
LZ신소재가 상장은 LZ그룹의 후계 구도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됐다.
상장에 성공한다면 LZ그룹의 상속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룹의 계열 정리에서 핵심으로 LZ신소재가 떠오르는 만큼 LZ신소재의 상장 흥행 성공은 쉽게 예상이 되는 이야기였다.
증자는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1,000만 주에 불과한 주식 수가 증자 완료 후 단숨에 5,000만 주로까지 늘어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증자부터 상장까지 모든 것을 주관하는 곳은 2차전지 연합의 한 축인 기풍그룹의 기풍증권이 도맡아 진행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이성우의 사무실에 찾아간 한진영은 잠시 이성우의 사무실을 구경했다.
“여기가 부회장실이냐?”
“얘가 큰일 날 소리 하네. 부회장실은 무슨 부회장실? 그런 거 아니야. 아버지가 들으시면 어쩌려고…….”
“정말 아니야?”
한진영은 구경하던 것을 멈추고 이성우를 돌아봤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시선에 급히 주변을 살피고는 한진영의 입을 막았다.
“너 인마. 어디 가서 그런 이야기 하지 마. 아버지가 들으면 나 모가지 날아간다.”
“회장님께서 벌써 널 견제하시냐? 역시 권력이란 아들과도 나누지 않는 비정한 거였던 거야?”
“야. 농담하지 마.”
이성우는 한진영을 슬쩍 밀어내고는 응접용 소파로 걸어갔다.
그리고 소파에 털썩 앉으며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너 돈 좀 벌었겠다.”
화제를 돌리는 이성우의 말에 한진영은 이성우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이성우가 돈 좀 벌었겠다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뭐…… 그렇지. 조금 벌었다.”
“조금은 무슨…… 우리 쪽에서 LZ신소재 상장 준비하는 거 알지?”
“알지.”
“그런데 누굴 속이려고 해.”
이성우는 장난식으로 팔을 들어 한진영을 위협했다.
그리고 조금은 부러운 눈으로 말했다.
“네가 처음에 가지고 있던 게 10,000주였던가?”
“LZ로부터 처음 선물 받은 게 10,000주였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모았던 것도 있고?”
“맞아. 내가 개인적으로 장외에서 모은 게 40,000주쯤 돼.”
“그러면…… 증자 전에 50,000주였고…… 지금은 50,000주가 250,000주가 됐겠네?”
“남의 주식 수는 왜 자꾸 계산해?”
한진영이 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휘저었지만, 이성우의 계산은 멈추지 않았다.
“지금 상장 공모가가 5만 원에 잡혀있고…… 따상 들어가면…… 대충 300억쯤 되는 거네?”
“아니. 그러니까 왜 남의 주식을 자꾸 계산하냐고?”
“너 진짜 부자구나?”
손가락으로 계산하던 이성우가 새삼스럽게 놀랐다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대충 한진영의 재산이 많을 거로 생각하기는 했지만 이렇게까지 많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이성우였다.
그리고 LZ신소재는 한진영이 가진 재산 중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을 떠올리고 계속 한진영의 재산을 계산했다.
“너 테라 지분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냐?”
“그냥 회사 보유분 대비해서 쪼~금. 아주 쪼~금 가지고 있다.”
“그 쪼금이 LZ신소재 주식보다 많지 않아?”
“뭘 그런 걸 계산해?”
“그리고 이번에 뭐? 코인 뭐? 거기에도 네 지분이 들어갔다며?”
한진영은 별걸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책임 있는 투자자가 되기 위해 투자한 것뿐이다.”
“정말 그 이유 때문이야? 돈이 될 것처럼 보여서가 아니고?”
“겸사겸사지. 겸사겸사. 너는 뭘 또 그런 것까지 다 후벼 파냐?”
“너 재산이 얼마큼이나 되는 거냐? 대충 내가 계산해봐도 한 1,000억쯤 되는 것 같은데…… 아닌가? 1,000은 우습게 넘나? 맞다!”
이성우는 이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무릎을 치고 한진영을 향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세이지 자산운용. 그거 다 네 거잖아.”
“어허. 내 거라니? 우리 세이지 직원 모두의 것이지.”
“미친놈. 농담하지 말고…… 그거 다 네 거 맞잖아?”
한진영은 웃는 얼굴로 진지한 표정의 이성우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지분을 말하는 거라면 맞아. 100% 다 내가 보유하고 있어.”
“어디 다른 곳에서 투자받은 것도 없잖아?”
“그랬으니까 지분 100%를 유지할 수 있는 거겠지?”
“너 올해 배당 얼마나 나오는 거냐?”
“뭐 배당이야…… 쓰읍. 소소하게 가지고 갈 생각이다. 받으면 쏠쏠하고 재미있기는 한데…… 세금이 너무 많아. 어차피 내 주머니나 회사 주머니나 같은 주머니인데 굳이 세금을 낼 필요 없잖아? 세금으로 나갈 돈까지 더해서 계속 투자금을 늘려갈 생각이다.”
“소소하다고 하더라도 1~20억은 훌쩍 넘지 않아?”
“아니. 나 참.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럴까? 내 재산에 왜 그렇게 관심이 많아?”
한진영은 더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이 이성우의 말을 가로막았다.
“내가 다른 사람이 내 재산에 관심이 많았다면 그러려니 했을 거야.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니라 천하의 기풍 자제께서 어? 다른 자식도 아니라 차기 자리에 가장 근접하신 이성우 실장님께서 어? 그러지 마. 아직 너에게 비하면 별거 아닌 수준이다. 남들이 들으면 코웃음 칠 거야. 재벌 집 아들이 이제서야 겨우 힘겹게 돌아가는 회사 어렵게 끌어가는 사람 주머니를 부러워한다고 말이야.”
“이제서야 힘겹게 돌아가? 어렵게 끌고 가? 오히려 너를 아는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이해할 거다. 도대체 네 재산이 얼마나 있는 건지 나만큼이나 다들 궁금해할 거야.”
한진영은 이성우의 말에 말없이 웃고는 서류 봉투 하나를 던졌다.
텅!
두꺼운 서류뭉치가 나무 탁자 위에 놓였다.
이성우는 자기 앞에 던져진 서류 봉투가 뭐냐는 눈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그런 이성우를 향해 서류 봉투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남의 재산이 얼마나 있는지 궁금해하지 말고 그거나 받아.”
“이게 뭔데?”
이성우가 서류뭉치를 내려다보고 물었다.
한진영은 이성우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며 말했다.
“네 궁금증을 내 재산에서 다른 데로 날려버릴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내가 전에 말했던 거. 그거니까. 제수씨한테 전해줘.”
한진영의 말에 이성우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이거 그거냐? 그 경기증권…… 어?”
자기 사무실에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아낀 이성우였다.
그만큼 한진영이 내민 서류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내용 정리해서 넘긴 거니까 확인해보고 맛있게 써달라는 내 부탁 꼭 전해줘. 으챠.”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소파에서 일어났다.
이성우는 서류뭉치를 내려다보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한진영을 보고 엉거주춤 따라 일어났다.
“왜 일어나?”
“가야지.”
“간다고?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너 나하고 술 한잔하려고 온 거 아니었냐?”
“술은 무슨…… 나 바빠. 술은 집에 가서 제수씨랑 오붓하게 먹어.”
“야. 진짜 갈 거야?”
“그럼 진짜 가지 가짜로 가겠냐? 나간다.”
한진영은 손을 흔들고 몸을 돌렸다.
“나오지 마. 내가 알아서 갈 테니까.”
“어디 가는데? 회사 가는 거야?”
간다며 나오지 말라는 한진영의 모습에 이성우는 더는 한진영을 붙잡지 못했다.
한진영은 문을 열며 가볍게 웃었다.
“그거랑 똑같은 거 전해주러 간다.”
“이걸 다른 곳에도 전해준다고? 다른 곳 어디?”
“실제로 동우를 작살내줄 곳. 간다.”
한진영은 짧게 대답하고는 손을 흔들고 이성우의 사무실을 나갔다.
이성우는 천하의 동우를 작살낼 곳이 어디 있다는 건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떠나는 한진영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
태훈 로펌 사람들은 굳게 닫힌 대표변호사 문 앞을 지나가며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누구예요? 누가 왔길래 대표님이 저렇게 문을 굳게 닫고 계시는 거예요?”
“그러게. 아까 이번에 새롭게 결성된 해외사업팀 사람들도 찾아온 사람에게 인사하러 간다고 대표님 방으로 가던데…… 누구지?”
“엄청 젊은 사람이던데요?”
“그러니까. 나도 언뜻 봤는데 엄청 젊어 보이기는 하더라.”
사람들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면서도 조준범의 사무실 문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관심 있어 하는 사무실 문 안에서는 더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오가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게…… 동우를 날릴 수 있는 이야기란 말씀인가요?”
긴장한 표정의 조준범은 이곳에 오기 전 이성우에게 건넨 서류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한진영에게 물었다.
세이지와 업무협약을 맺고 법률 자문을 하면서 한진영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 조준범이었다.
한진영은 절대 허언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야기한 것은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켰고, 과장되게 이야기하거나 없는 사실을 있다고 부풀려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 한진영이 동우에 심대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며 건넨 서류였다.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아직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조준범은 한진영의 말에 무조건 맞을 거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동우와 악연이 깊습니다. 어쩌면 그런 악연 덕분에 우리가 이 자리에까지 올라왔는지도 모르고요. 동우에 반감을 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로 모여들었으니까요. 그걸 동우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어떻게든 괴롭히려 했고, 우리는 그 괴롭힘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습니다. 그런데…….”
조준범은 한진영이 건넨 서류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그런데 꿈에 그리던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이 안에 담겨 있다는 말씀입니까?”
한진영은 조준범이 내준 커피를 마시며 가볍게 말했다.
“거창하게 한 방에 동우를 날릴 수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관련된 자들을 잘라내어 팔다리를 잃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코너로 몰아붙일 수도 있고요. 그 이후에 마지막을 처리하는 것까지 다 계산에 두고 있습니다. 그 서류는 그 일을 진행하는 단계의 서막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한진영의 말에 기대에 찬 조준범은 서류를 열어보려다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한진영을 올려다본 채로 물었다.
“저야 동우와 묵은 사연이 있다지만…… 대표님께서는 무슨 이유로 동우와 이렇게까지 하시는 겁니까?”
“제가 이야기하지 않았던가요?”
“위험부담이 있어 동우와 멀어지고 싶다는 이야기만 했습니다. 당시에는 그 말을 믿었지요. 대표님은 위험을 즐기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조준범은 한진영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한진영의 숨겨져 있는 뒤편의 모습을 바라보고 싶다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던 조준범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이 상황이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동우가 싸움을 걸어오지도 않았는데 먼저 싸움을 거는 모습을 그 이야기만으로 이해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럼 제가 왜 그러는 것 같습니까?”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조준범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한진영을 향해 솔직히 이야기했다.
“워낙 이상하게 느껴져서 우리 나름대로 따로 알아보기는 했습니다.”
“저와 동우의 관계를 말입니까?”
“네. 사실 대표님의 말만 믿고 따르기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았으니까요.”
“이해합니다.”
고민 없이 내뱉은 한진영의 말에 오히려 조준범이 당황했다.
누구라도 이런 말을 듣는다면 기분이 나빠질 만한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진영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조준범의 말을 받았다.
“당연히 알아봐야지요. 그건 저도 마찬가지니 그렇게 이상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마찬가지라고요?”
한진영은 조준범의 질문에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태훈 로펌을 알아봤습니다. 제가 왜 세이지의 파트너로 태훈을 선택했겠습니까? 단순히 대형 로펌이라서? 천만에요. 동우와의 관계가 있기 때문에 태훈을 선택한 겁니다.”
“그럼 애초에 목표가 동우였다는 말씀입니까?”
조준범의 말에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동우였습니다. 왜 저에게 이렇게까지 하냐고 물으셨지요?”
조준범은 한진영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진영은 그런 조준범을 향해 몸을 살짝 숙이고 말했다.
“동우가 저를 몰아붙였습니다.”
“네? 동우가 한 대표님을 몰아붙였다고요?”
“저뿐만이 아닙니다. 세이지도 몰아붙였습니다.”
“도대체 왜? 왜 세이지와 한 대표님을 몰아붙였다는 말씀입니까?”
조준범이 의아한 듯이 묻자 한진영은 숙였던 몸을 일으켜 세우고 잠시 먼 곳을 바라봤다.
그렇게 잠시 상념에 빠져있던 한진영은 조준범이 듣기에는 지금 같지만, 사실은 지난 시절 한진영이 겪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저는 순진하게 저와 세이지를 끌어들인 이유가 제가 필요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긴…… 제가 필요한 건 맞기는 했지요. 다만, 제 생각과 조금 달랐지만 말입니다.”
“생각과 달랐다니요? 어떻게 달랐다는 말씀입니까?”
한진영은 먼 곳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조준범을 바라본 채 말했다.
“저는 저를 이용해 금융시장에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란 말씀입니까?”
“동우를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동우가 그런 놈들이던가요?”
오히려 되묻는 한진영의 말에 조준범은 말이 없어졌다.
조준범이 알고 있는 동우와 김교철은 절대 그럴 인물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동우는 절대 세이지와 같은 초짜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 놈들이었다.
이미 정점에 앉아 있는 이들이기에 세이지와 같은 햇병아리와는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은 놈들이었다.
조준범은 한진영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는 한진영에게 물었다.
“맞습니다. 그놈들이 순순히 햇병아리에게 곁을 주는 놈들이 아니지요. 이런…… 죄송합니다. 세이지가 햇병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동의합니다. 동우가 보기에는 저희는 햇병아리가 맞습니다.”
순순히 인정하는 한진영의 모습에 조준범은 조심스럽게 조금 전 말했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렇다면 동우는 세이지를 어떤 이유로 받아들인 건가요?”
“사석(死石). 저희를 죽은 돌로 쓰기 위해 받아들였던 겁니다.”
“사석이요?”
조준범은 한진영의 말에 알 듯한 표정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