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2화 조심성이 없어서 당했다
한진영이 예상한 이야기가 일주일 뒤 발표됐다.
동우가 주축이 된 컨소시엄이 사인노스에 총액 10억 달러에 달하는 투자를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사인노스의 지분 5%를 취득하는 조건으로 사인노스의 기업가치를 200억 달러에 책정하여 진행된 투자계약이었다.
한진영이 예상했던 8억 달러를 훌쩍 넘기는 초대형 계약이었다.
순식간에 방송과 언론이 사인노스 이야기로 가득 덮였다.
어제만 해도 경기증권 이야기로 시끄러웠던 경제계도 언제 그런 이야기가 있었냐는 듯이 사인노스 이야기에 열을 올렸다.
언론의 호들갑은 조금 더 특별했다.
마치 사인노스가 우리나라의 기업이라도 됐다는 듯이 단숨에 바이오산업의 신흥강자로 우리나라가 올라갈 수 있다며 떠들어대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런 소란이 일반 대중에게 나쁜 인상보다는 좋은 기대로 다가간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 또한 기대에 섞인 분위기로 사인노스 투자 건을 바라봤기 때문이다.
그만큼 안 좋은 이야기보다는 좋은 이야기에 사람들의 마음이 더 간다는 뜻이었다.
언론이 호들갑을 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괜히 오버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려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인노스 이야기를 좋아했으며 이런 결정에 도움을 준 정부에게도 박수를 보냈다.
곤두박질치던 정부의 지지율이 반등을 보였다.
20% 선까지 깨졌던 지지율이 사인노스의 이야기에 40% 위로 올라간 것이었다.
이대로 조금만 지나면 다시 정권 초기 지지율을 회복할 것처럼 보였다.
이런 효과에 정부도 사인노스를 특별하게 신경 썼다.
정부가 지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여 동우 컨소시엄을 밀어줬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인노스를 홍보했다.
사인노스도 이런 대한민국 정부의 홍보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강연과 토크쇼에 나가 제일 먼저 하는 이야기로 대한민국의 지원을 이야기했으며, 기업가치 200억 달러는 사인노스를 소개하는 단골 소재가 됐다.
아직 직원 50명에 불과한 사인노스가 순식간에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에 이름을 올리게 됐고, 그 계기를 동우와 대한민국 정부가 제공한 것이었다.
***
“어떻게 됐어요?”
“오늘도 안 된대요. 그런데 오늘 정우 어머니는 보이지 않네요. 항상 저기 앉아 있었는데…….”
조금 전 경기증권 본사 문을 두드렸던 사람은 며칠 전만 해도 항상 화단 부근에 앉아 있던 정우 어머니라는 사람이 보이지 않아 이상해했다.
“모르셨나 보네요.”
“네?”
화단을 바라보고 있던 사람이 고개를 돌렸다.
몰랐냐며 이야기를 꺼낸 사람은 침울한 표정으로 정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며칠 전에 세상을 뜨셨어요.”
“뭐라고요?”
“남편 퇴직금에 아들이 모아놓은 결혼자금까지 다 넣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무조건 돈을 찾아야 한다고 그러셨는데…… 아저씨는 돈 찾지 못하면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셨고, 아들은 결혼할 여자와 파혼까지 했다고 해요. 그래서 어떻게든 돈 찾아보려고 여기 오셨는데…… 돈을 찾을 길이 보이지 않으니까 그냥 그대로 가셨다네요.”
정우 어머니 이야기를 차분한 목소리로 전한 사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남일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자기도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모아 넣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앞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는 나았다.
조금 전 경기증권 본사 문이 열렸는지 알아보기 위해 갔다 온 사람의 경우에는 집안 돈까지 모두 끌어다 넣었다고 했다.
질끈 감았던 눈을 뜨고 조심스럽게 앞에 앉아 있던 사람을 바라봤다.
그는 정우 어머니 이야기를 들은 뒤 얼굴이 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마치 미래 자기의 모습을 정우 어머니에게서 본 것인지 그의 표정은 죽을 날을 받아놓은 사람처럼 보였다.
“기억하세요? 여기 경기증권이 펀드를 내놓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세이지에서 펀드를 내놓은 걸 말이에요.”
생뚱맞아 보이는 이야기에 정우 어머니 이야기를 전했던 사람이 파랗게 얼굴이 질려 있는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네. 기억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이야기는 왜…….”
“저하고 같은 시기에 퇴직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퇴직금 정산이 조금 늦게 돼서 세이지 펀드에 가입했다고 하더군요.”
“그렇군요.”
자기에게 그런 이야기를 왜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그런 그의 심드렁한 표정도 다음 이야기를 들은 뒤 바뀌고 말았다.
“지금 벌써 수익률이 20% 가까이 찍혀있다고 합니다.”
“뭐라고요? 그게 진짜입니까? 설마 세이지도…….”
경기증권도 이 사태가 벌어지기 전에는 수익 중이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래서 세이지도 속이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뜻으로 물으려고 했다.
“아니요. 거짓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혹시 몰라 일부 환매 신청했더니 진짜 수익률이 20% 찍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금감원에서도 세이지 수익률이 사실이라고 인증해줬고…… 혹시 들어보지 못하셨습니까? 대서양화장품 이야기 말입니다.”
“그거 결국 300만 원도 넘겼다던데…….”
“그걸 제 동료가 가입한 펀드에서 25만 원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25만 원에요. 그런데 수익률 20%가 거짓말이겠습니까? 대서양화장품 하나만으로 10배가 넘기는 모습을 보여줬는데 말입니다.”
세이지 이야기를 꺼냈던 남자의 목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세이지가 펀드 출시한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그 짧은 시간을 참지 못하고 경기증권에 들어간 자신을 탓하는 것만 같은 목소리였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이도 스스로를 탓했다.
그 또한 세이지가 펀드를 출시한다는 것을 알았으면서도 경기증권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기증권 본사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 모두 같은 처지였다.
그래서 더 화가 나는 것이었다.
세이지는 20% 수익을 보여주고 있는데 자기들은 원금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쌍놈들을…….”
생각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인지 한참 이야기하다 말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리고 다시 굳게 닫힌 경기증권의 문을 향해 몸을 돌렸다.
“부수고 들어갑시다.”
누가 먼저 이야기해주길 기다렸던 것인지 부시자는 말에 경기증권 본사 앞을 지키고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동의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대로 앉아서 돈을 주기만을 기다려서는 끝이 없겠습니다. 그냥 들어가서 돈이 될만한 걸 가지고 나옵시다. 돈을 주기를 기다리기보다 우리가 직접 가지고 나옵시다.”
돈을 가지고 나오자는 선창에 사람들이 좋다고 화답했다.
모두 경기증권 앞에서 진을 치고 기다리며 생각하던 것인 듯했다.
말리는 사람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들고 일어났다.
콰쾅!
굳게 닫혀있던 유리문이 어디서 가져온 지 모를 커다란 돌덩이에 그대로 부서져 내렸다.
따르릉!
비상벨이 시끄럽게 울렸지만. 사람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부러진 몽둥이와 쇠 파이프 등을 손에 든 사람들은 열린 문을 뚫고 들어가 단숨에 경기증권 본사 입구로 몰려들었다.
안에서 회사를 지키고 있던 보안직원들은 사람들을 말릴 생각도 하지 못했다.
몰려온 1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을 막아 세울 엄두가 나지 않는 것이었다.
조용히 본사 문 앞에 자리 깔고 앉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던 투자자들이 단숨에 잃은 돈을 찾기 위해 폭도가 되어 버렸다.
***
경기증권 본사로 뛰어 들어가 집기들을 들고나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그대로 담겨 방송됐다.
본사 앞을 지키던 100명의 투자자가 일으킨 폭동에 경기증권 본사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뉴스에서는 아무리 그래도 폭동을 일으키지는 말았어야 한다는 내용이 전파를 탔다.
차분한 목소리로 펀드 환매를 요청해야 했고, 정부에서 이 사태를 인지하고 있는 만큼 정부를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뉴스를 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했다.
한때 시끄럽게 떠들던 언론도 어느 순간 사그라든 상태였다.
지금은 사인노스 이야기로 시끄러웠으며 경기증권 이야기는 자투리 소식으로만 전할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시간이 흐르다 보면 나오는 결과는 지난 여러 사건과 다를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펀드에 가입한 가입자만 욕심에 눈이 먼 존재가 되어 버린 채 아무 보상도 받지 못하고 끝이 나는 전형적인 엔딩이 투자자 눈에 보인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직접 움직이기로 했다.
본사에서 일어난 일이 각 지점과 경기증권의 펀드를 다룬 은행으로 번져나갔다.
특히, 적극적으로 경기증권의 펀드를 판매한 두리은행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는 심각했다.
불완전판매가 의심되는 상황에서 두리은행이 고의로 돈을 잃을 투자자를 모집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게다가 두리은행의 몇몇 임원과 경기증권의 최종필이 가깝게 지냈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최종필의 로비 대상에 두리은행도 포함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았다.
분노한 투자자들이 경기증권의 지점을 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뒤를 이어 펀드를 판매한 두리은행에 투자자들이 찾아와 난동을 부렸다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진행되다가는 폭력 사태로까지 진행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 정부는 경찰력까지 동원했다.
조금의 폭력행위라도 보인다면 바로 그 자리에서 체포하여 구금할 거라는 말로 화가 난 사람들을 잠재우려 했다.
그러나 이런 방법은 불길에 기름을 쏟아부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사람들이 화를 낸 핵심을 외면한 채 화를 냈다는 것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모습에 분노는 더욱 크게 불길처럼 일어났다.
이제 단순히 본사와 지점에 쳐들어가 손해 본만큼 집기를 가지고 나온다는 개념이 아닌 직접적으로 이런 사달을 일으킨 주인공을 향해 칼을 겨누어야겠다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바로 경기증권의 사장인 박지훈 사장을 향해 분노의 칼날이 드리워진 것이었다.
박지훈의 전화번호가 공개됐다.
가족 사항과 사는 곳도 곧이어 공개됐다.
경찰에서는 개인신상을 유포하는 것은 범죄이며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아 이야기했지만, 사람들의 분노는 그런 것을 무시하게 했다.
내 돈이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 범죄행위 자체가 지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수천만 원, 수억을 해먹은 나쁜 놈을 처벌하는 것이야말로 정의를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일이 진행되며 발생한 자그마한 일들을 사람들은 범죄로 보지 않았다.
사인노스로 시선을 돌리려던 정부도 더는 사람들의 눈을 가릴 수 없었다.
그리고 우선 분노의 대상이 경기증권의 박지훈으로 좁혀진 것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듯이 한발 물러서는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
한진영과 조지훈은 늦은 밤 노량진으로 향했다.
박지훈의 요청에 의한 것으로 조심스럽게 홀로 찾아와주기를 바란다는 연락에 움직인 것이었다.
조지훈은 좁은 골목길 사이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젊은 사람들을 돌아보며 한진영에게 말했다.
“박 사장이 이곳에 몸을 숨길 줄은 몰랐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 곳에 숨다니…… 투자자에게 잡히면 어쩌려고 그런 건지 모르겠습니다.”
시간상으로 자정을 넘어가는 시간이건만 가방을 멘 젊은 사람들이 거리에 쉬지 않고 지나다녔다.
조지훈은 이런 곳을 은신처로 삼은 박지훈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지 걸어가면서도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
“여기만큼 좋은 곳이 없어.”
“네? 여기가 좋은 곳이라고요?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요?”
“그래. 그래서 박 사장도 이곳을 선택한 거야. 봐봐. 조 실장 눈에는 사람이 많은 것만 보이겠지만 지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살펴봐.”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이 다시 한번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을 자세히 살폈다.
노량진 그중에서도 공부에 매진하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학원부터 독서실 그리고 고시원으로 이어진 거리였다.
그래서 늦은 시간임에도 독서실에서 공부를 마친 학생들로 거리에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보였던 것이었다.
조지훈은 눈에 보인 사람들을 확인하고 한진영에게 말했다.
“시험 준비를 하는 젊은 사람들로 보입니다.”
“그래. 그러니 여기가 가장 숨기 좋은 곳이지.”
한진영은 여전히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조지훈을 향해 설명했다.
“지금 이 시각까지 공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시험밖에 담겨 있는 게 없어.”
“이렇게 시끄럽게 박지훈 사장에 대하여 떠드는데도 말씀입니까?”
“당연하지. 그런 거에 신경 쓰는 사람이 이 시간까지 공부할 것 같아?”
한진영의 말에 조지훈은 스쳐 지나가는 사람을 확인했다.
그의 손에 두꺼운 법전이 들려 있는 것이 아무래도 폐지가 얼마 남지 않은 사법고시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인 것만 같았다.
그는 곁에 어떤 사람이 지나가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로 희미한 가로등에 기대 법전에 쓰인 글자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니 여기가 가장 안전하다는 거야. 아무리 숨어 지내더라도 밖에는 나와야 하는데 여기는 밤에 나오면 안전한 곳이니까.”
한진영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박지훈과 약속한 장소 앞에 발걸음을 멈췄다.
안남슈퍼라는 다 쓰러져 가는 간판 아래 놓여있는 평상에 깊은 벙거지를 쓴 박지훈이 앉아 있었다.
바닥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에 신발 두 쌍이 들어오자 살며시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한진영과 조지훈을 확인했다.
“분명 혼자 오시라고 말씀드렸는데…….”
수염으로 얼굴을 가득 뒤덮은 박지훈의 모습에 조지훈은 밝은 하늘 아래서 그와 마주했어도 알아보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속으로 되뇌며 한걸음 뒤로 물러났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박지훈 곁에 앉으며 말했다.
“조 실장이 주변을 살펴줄 겁니다. 달랑 둘만 이렇게 앉아 있는 것보다는 이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한진영의 말에 박지훈은 잠시 조지훈 쪽을 바라봤다.
조지훈은 뒤로 물러나 가로등이 비추지 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어둠 속에 서서 박지훈을 찾으러 오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보였다.
“확실히 나아 보입니다. 역시 저보다 한 대표님께서 몇 수 더 앞을 내다보시는 것 같습니다.”
“아닙니다. 그저 남들보다 걱정이 많아 조심하는 습관이 몸에 배 그런 겁니다.”
“저도 한 대표님처럼 조심했어야 했는데…… 조심성이 없어서 결국 이런 꼴을 당한 것 같습니다.”
“조심성이요?”
한진영이 의아한 듯이 바라보자 박지훈은 허탈하게 웃었다.
“최종필. 그 작자 말입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우리 회사에 온 것 같았습니다. CB가 어쩌고, BW 어쩌고 떠들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사기를 치려고 마음먹고 우리나라에 온 거고 그걸 우리 회사를 내세워 했던 겁니다. 한 대표님처럼 조심했다면 최종필에게 당할 일이 없었는데…….”
박지훈은 분한 얼굴로 씩씩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