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0화 내가 재미있는 거 보여줄 테니 따라와라
“어? 민준이 왔다. 여기야. 어서 와.”
호프집 문이 열리자 김민준을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손을 들어 김민준이 온 것을 반겼다.
“어? 뒤에 있는 게 누구야? 진영이냐?”
“진영이? 한진영?”
“6반의 그 한진영?”
“한진영도 왔어? 어디? 어디 있는데?”
김민준에 이어 들어온 한진영을 사람들이 격하게 반겼다.
너무나 오랜만에 등장한 인물의 곁으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게 얼마 만이냐? 10년은 아닌 것 같고 15년 만인가?”
“졸업하고 처음 보는 거니까 그 정도는 됐겠지.”
“이야. 학교 때는 키가 요만했던 것 같은데 훌쩍 컸네. 길거리에서 봤으면 못 알아봤겠다.”
“아니야. 옛날 얼굴 그대로 있는데? 난 한눈에 알아봤을 것 같다.”
남자고 여자고 먼저 도착했던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한진영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만큼 새로 등장한 한진영에게 모두 관심이 많았던 것이었다.
“왜 그동안 나오지 않았어?”
“야 오랜만이다. 그동안 뭐 하고 살았냐?”
“신수가 훤한 게 잘 지냈나 보다? 너 어디 다니냐?”
“옷 좋다. 이거 무슨 옷이냐? 비싸 보이는데?”
한진영을 둘러싼 친구들이 한진영을 향해 한마디씩 던졌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 보이고는 웃었다.
“우선 앉자. 앉아서 하나씩 이야기하자.”
한진영이 말을 하고 빈자리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
친구들은 그런 한진영의 모습에 과거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느꼈다.
‘한진영이 이렇게 주도적인 애였나?’
어린 시절에는 조용하기만 했던 아이로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커서 만난 뒤에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친구들은 잠시 자기 기억 속에 있던 한진영이 맞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거기서 서서 뭐 해?”
한진영의 말에 정신을 차린 친구들은 아까까지 앉아 있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앉아서 한진영에게 이 나이 때에 가장 궁금해하는 것부터 질문하기 시작했다.
“너 뭐하냐? 회사 다니냐?”
“진영이 세이지증권 다닌단다.”
“세이지증권? 이번에 그…… 경기증권인가 거기 인수했다는 세이지증권?”
“너 세이지증권 다니냐?”
한진영을 대신해서 먼저 한진영이 어디 다니는지 알고 있던 김민준이 대답했다.
한진영이 세이지에 다닌다는 이야기를 듣자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 사이에서 반응이 격하게 나왔다.
“나 경기증권 펀드 들었거든 그거 어떻게 되는 거냐?”
“야. 나 세인지증권 펀드 있거든? 그거 대박이더라. 네가 운용하는 거냐?”
“안 그래도 나 세이지증권 펀드 가입하고 싶었거든. 근데 막혀서 더는 가입이 안 된다는 거야. 그거 가입할 방법 없냐?”
친구들은 한진영을 향해 질문을 쏟아내기 바빴다.
지금 제일 화제가 되는 곳인 만큼 그곳에 관한 관심이 매우 높은 듯 보였다.
그들은 회사에 대한 질문도 잊지 않고 한진영에게 던졌다.
“거기 연봉 끝내주게 많이 준다며?”
“연봉이 아니라 성과급. 성과급이 죽인다던데? 얼마나 나오냐?”
“너는 얼마나 버냐? 너도 막 다른 사람들처럼 성과급으로 몇억씩 받아 가냐?”
“너 거기 어떻게 들어간 거냐? 거기 들어가기 엄청 힘들다던데. 너 학교 어디 나왔어? 혹시 유학 다녀온 거냐?”
“그래. 너 대학교 어디 나왔냐? 어디 나왔길래 세이지에 들어갔어?”
이야기가 흘러 흘러 한진영의 출신 대학으로까지 흘러갔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말없이 가만히 지켜보다 하나씩 대답해줬다.
“어 경기증권 펀드는 크게 걱정하지 마. 우리가 손실분 다 메워줄 테니까. 다만 시간은 좀 걸릴 거야. 한두 달 만에 그 손해를 다 메울 수는 없는 거니까.”
한진영은 다음 질문을 던졌던 친구로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펀드 운용은 직접적으로 내가 하는 건 아냐. 그리고 실질적으로 누가 운용하냐고 묻는다면 컴퓨터가 운용한다고 보는 게 맞아.”
“컴퓨터?”
“어. 우리는 컴퓨터가 분석한 것을 토대로 운용하거든. 하여튼 내가 전적으로 담당하는 건 아니지만 가끔 운용에 참여하기도 해. 많이는 아니지만…….”
다시 다음 친구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회사 펀드 오픈은 조금 시간이 걸릴 거 같아. 경기증권 인수가 마무리되고 내부적으로 정리하느라 지금 정신이 없거든. 그거 다 마무리되고 인력 재배치와 채용까지 마무리된 뒤에 오픈을 할 거 같아. 내 생각에는 이번에는 규모가 좀 더 커질 거 같아. 그래서 엄청 가입 경쟁이 세고 그러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있는 게 좋아. 그렇게 지켜보다 오픈 이야기가 나오면 바로 가입 신청을 하도록 해. 그래도 우리 쪽 펀드가 수익률이 좋은 편이라 관심도가 높으니까.”
한진영의 자세한 설명에 친구들의 궁금증은 하나하나 해소가 됐다.
“연봉은 민준이한테도 이야기했지만 다른 곳하고 크게 다르지는 않아. 성과급이 차이가 나는데 이번에 실적이 좋아서 신입직원들도 대충 3~4억 정도 가지고 갔어. 나는 입사를 했다기보다는 만들었다는 쪽이고…… 채용계획은 내부 정리가 끝나고 대규모로 채용할 계획이 있으니까 관심 있으면 너도 원서 넣어봐. 그리고 나 대학교는…… 유학은 다녀오지 않았어. 그냥 서울 끄트머리에 있는 겨우겨우 인서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을 나온 정도야.”
친구들은 입을 벌린 채 한진영의 대답을 가만히 들었다.
모든 것을 다 기억했다 빠지지 않고 대답하는 모습에 친구들은 모두 놀라고 말았다.
“너 완전히 똑똑해졌다. 못 본 사이에 어떻게 된 거야?”
“그러게, 너 완전히 스마트해졌는데? 우리가 알던 한진영이 아니야. 어릴 때 모습은 어디로 간 거냐?”
한진영은 자기에게 쏠린 관심을 싫지 않은 듯이 웃으며 앞에 놓인 물컵에 물을 채워 넣었다.
“어이~”
친구들이 한진영에 시선이 쏠려있는 사이 입구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친구들은 모두 고개를 돌려 입구 쪽에 서 있는 남자와 여자를 바라봤다.
“종빈이도 온다고 했냐?”
입구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친구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옆에 은희 같이 있는 거 보이지 않냐? 은희가 이야기했겠지.”
“아~ 쟤네 오면 분위기 별로인데.”
새로 등장한 두 사람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친구들이었다.
한진영은 그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돌렸다.
“이게 누구야? 한진영 아니야?”
김종빈은 재미있다는 얼굴로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앉아 있는 한진영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신수가 훤하다. 요즘 먹고 살기 좋나 봐?”
“너도 좋아 보인다. 너야말로 먹고살기 좋은 거 같다.”
“하하하. 많이 컸다. 어렸을 때는 질질 짜고, 콧물만 흘리던 놈이…… 이 새끼야. 나 김종빈이야.”
“알아. 너 김종빈인 거. 난 한진영이야. 서로 통성명하자고 서 있는 거냐?”
한마디도 지지 않는 한진영의 모습에 김종빈은 썩은 미소를 지으며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이게 뒤지려고…….”
김종빈이 손을 들자 주변에 있던 친구들이 말렸다.
“야야. 왜 그래?”
“야. 참아. 오랜만에 만났는데 그러지 말고…….”
“이리 와서 앉아.”
친구들이 말리며 한진영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김종빈을 끌고 갔다.
한진영의 주변에 있던 친구들은 멀어지는 김종빈을 바라보고는 한진영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너 왜 그래? 쟤 김종빈이야.”
“너 소문 못 들었구나? 쟤 지금 어디 조직에 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조직은 아니고 뭐 사채하고 있다는 말 들었는데?”
“사채가 그런 조직이 하는 일 아니냐? 그거나 그거지.”
“나는 어디 용역업체 사장이라는 말 들었다. 직원들 데리고 건설 현장이나 재개발하는 곳 때려 부수는 거 말이야. 거의 깡패나 마찬가지라고 하더라.”
“깡패나 마찬가지가 아니고 깡패야 깡패.”
한진영을 둘러싸고 친구들이 김종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진영은 김종빈이 있는 쪽을 돌아봤다.
김종빈은 마치 자기가 대장이라도 된 것처럼 사람들을 모아놓고 시끌벅적 떠드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곁에 있는 그의 여자친구이자 같은 동창인 이은희는 똥 씹은 표정을 하고 김종빈 곁에 자리하고 있었다.
‘내가 저놈 때문에 여기에 왔지.’
한진영이 이렇게 귀찮게 초등학교 동창회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다름 아닌 김종빈이라는 인물 때문이었다.
지난 시절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그를 괴롭혔던 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한진영은 이렇게 다시 초등학교 동창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그에게 받은 괴롭힘을 열 배로 갚아주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이었다.
한진영은 앞으로 김종빈과 있을 일을 떠올리며 기분 좋은 미소를 띠었다.
***
서산에서 초등학교를 나왔기에 서울의 동창회는 서울과 경기도 근교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만 모이게 됐다.
그래서 분위기는 조촐했고 매번 보던 얼굴들만 만날 수밖에 없었다.
거창하게 동창회라는 이름을 붙였지만, 실상은 친목회 정도의 모임이었다.
그런 초등학교 모임이 오늘은 시끌벅적하기만 했다.
“아 맨날 여기만 오냐? 야. 나가자. 나가. 내가 한잔 제대로 살 테니까 모두 나와.”
김종빈이 호프집에서 나온 쏘야 볶음 안주를 보고 자리에 있던 친구들을 향해 소리쳤다.
“언제까지 이런 호프집에서 놀 생각이야? 우리가 주머니에 돈 없던 애들도 아니고…… 다들 사회생활 한 지 몇 년이나 됐는데 제대로 된 곳에서 마셔야지 않겠냐? 내가 좋은 곳 데려다줄 테니까 따라와.”
호기롭게 소리를 지른 김종빈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자리에 있던 친구들을 향해 손을 휘두르고는 밖을 향해 휘적휘적 걸어갔다.
김종빈 근처에 있던 친구들은 그런 김종빈의 모습을 바라보다 하나둘 따라 일어났다.
자신 있고 호기로운 모습에 그를 따르면 좋은 곳에 갈 수도 있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한진영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너도 가려고?”
함께 이곳에 온 김민준이 한진영의 옷을 앉은 채로 붙잡고 말했다.
“그냥 우리는 여기서 더 이야기하다 가자.”
“아니. 저기가 더 재미있을 것 같으니 저기로 가자.”
“저기를 뭐 하러 따라가? 따라간다고 좋아 보이지도 않는데…….”
좋은 곳이라는 곳이 대충 어떤 곳인지 알 것 같았던 김민준은 그런 불편한 자리에 가느니 이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편이 더 좋다고 생각한 듯했다.
한진영은 그런 김민준을 향해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가기 싫다고 해도 저 녀석이 억지로라도 날 끌고 가려 할걸. 봐라.”
이야기를 다 마치기 전에 나갔던 친구 중 하나가 다시 안으로 들어와 한진영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야. 너는 꼭 와야 한다고 한다. 따라와.”
한진영은 마치 미리 알고 있기라도 하다는 듯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여전히 옷자락을 잡고 있는 김민준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따라와. 내가 재미있는 거 구경시켜줄 테니까. 너희도 재미있는 거 보고 싶으면 나하고 같이 가자.”
한진영과 함께 자리에 앉아 있던 친구들은 한진영의 말에 주춤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진영이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진영이 세이지 소속이라는 거에 믿음이 더욱 갔다.
사회에 나와보니 돈이 곧 권력이었고 세이지는 돈을 많이 준다니 한진영도 돈이 좀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입고 있는 옷도 뭔지는 몰라도 믿음을 불러오기에는 충분했다.
한진영은 자기 옷을 살피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친구들을 보며 코트를 살짝 펄럭였다.
‘돈 쓴 게 아깝지 않아.’
다른 사람에게는 4,650만 원이라는 돈이 1년 생활비겠지만, 한진영은 오늘 있을 재미있는 광경에 관객을 더 불러오기 위해 과감히 지출한 돈이었다.
그리고 이런 지출을 한진영은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다.
한 명이라도 관객을 더 모으는 것이 그에게 큰 행복을 안겨다 주기 때문이다.
한진영이 밖으로 나오자 김종빈이 비웃음을 흘리며 한진영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그러다 한진영 뒤로 사람들이 보이자 움찔하는 모습을 보였다.
계산에 없던 친구들이 보이자 살짝 놀란 김종빈이었다.
그가 좋은 곳에 가자고 큰소리를 쳤을 때는 그와 비슷한 부류의 친구들만 함께 할 것으로 생각하고 큰소리친 것이었다.
그와 비슷한 부류가 아닌 친구들은 자기를 따라갈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직 오랜만에 등장한 한진영을 놀리기 위해 그만 콕 집어 데리고 나오라고 한 것이었다.
그런데 한진영을 비롯해서 흔히 말하는 범생이 놈들이 모두 따라가겠다고 나왔으니 김종빈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민준은 서로 대치하듯이 서 있는 한진영과 김종빈을 바라보고 슬쩍 한진영에게 다가갔다.
“여기 카드.”
김민준은 한진영에게 카드와 영수증을 건넸다.
“얼마 안 먹었다고 해도 15만 원이나 나왔다. 여기서 더 있을 줄 알고 시킨 게 있어서 그런가 봐.”
김민준의 말에 한진영은 영수증을 확인하지도 않고 지갑에 넣으며 김종빈을 향해 말했다.
“여기 술값은 내가 계산했어. 네가 좋은 곳 데려다준다니까 이 정도는 내가 내야지. 좋은 곳은 네가 낼 테니까. 그렇지?”
한진영의 말에 김종빈의 표정이 붉으락푸르락 변했다.
그런 김종빈의 모습을 본 이은희가 김종빈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제라도…….”
“이거 놔.”
아무래도 말리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이은희의 손을 뿌리친 김종빈이 한진영을 향해 비웃음을 흘렸다.
“좋아. 당연히 내가 가자고 했으니 내가 내야지. 단 넌 내 옆에 있어야 해.”
“뭐 그것도 나쁘지 않지.”
한진영이 마치 네가 말하지 않았다면 내가 말했을 거라는 듯이 김종빈이 있는 곳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김민준은 그런 한진영을 향해 안타까운 목소리로 불렀다.
“진영아.”
괜히 자기가 오랜만에 동창회에 나오라고 전화하는 바람에 한진영이 김종빈에게 안 좋은 꼴을 당할까 봐 걱정된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런 김민준을 향해 한진영은 손을 들어 올리고 김종빈의 목에 팔을 걸었다.
“네가 좋다는 데가 어딘데? 가자.”
한진영과 김종빈을 바라보던 친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보다 김종빈이 더욱 놀란 얼굴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사람들의 놀람이 즐거운 것인지 환하게 웃으며 김종빈을 더욱 강하게 끌어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