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87화 (387/650)

387화 내가 그렇게 나쁜 놈 같아 보이나?

대한민국의 CDS를 구입하려는 행렬이 줄을 이었다.

외부에서 시작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비판이 이제는 내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용평가사들 또한 지금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부정적 전망을 유지하고 있던 신용평가사들은 신용등급 하향을 다시 한번 검토할지 모른다는 인터뷰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의 결정은 기름을 붓고 말았다.

여전히 반성할 줄 모르는 대한민국에 무역 관세를 때리겠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다.

수출로 먹고사는 국가인 대한민국이 최대 수출국 중 하나인 미국에 관세를 뚜드려 맞았다는 사실에 시장 참여자들은 경기침체를 넘어선 경기 붕괴를 걱정하는 시선을 보내기 시작했다.

이렇게 험악해진 분위기에서 세이지증권만은 차분함을 유지했다.

오히려 손을 가리고 웃을만한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 내부를 단속할 정도였다.

조지훈은 한진영에게 그들이 단속하고 있는 이야기를 보고했다.

“우리가 총보유하고 있던 CDS 18억 달러 분량 중 현재 12억 달러 치가 정리가 된 상황입니다.”

“오늘 내에 모두 정리가 가능한가?”

“오늘까지는 힘이 들겠지만, 내일이면 모두 정리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내일까지라…….”

한진영은 턱을 쓰다듬으면서 달력을 바라봤다.

“집회가 잡혀 있는 날이 내일이라고 했던가?”

“네. 내일 저녁 6시부터 광화문에서 집회가 있을 거라는 고지가 나온 상태입니다.”

“내일 저녁 6시면…… 그래. 내일까지는 험악한 분위기가 이어질 테니 무리가 없겠네.”

한진영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짓고 다음 이야기를 물었다.

“CDS를 팔아 확보한 현금은 어떻게 하고 있지?”

“외환 팀에서 1,600원대에 원달러 환율이 근접할 때부터 달러 매도 포지션을 잡기 위한 것과 주식 매수 비용으로 약 10억 달러가 투입된 상황입니다.”

“나머지는?”

“나머지는 CDS가 모두 정리가 되는 대로 계획되었던 대로 움직일 예정입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네.”

“저…… 사장님.”

모든 보고를 마친 조지훈은 한진영을 향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이번에는 또 뭐가 궁금한데?”

“죄송합니다.”

“아니야. 궁금한 게 당연해. 내가 뭐라고 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니까 궁금하면 숨기지 말고 모두 물어봐. 그편이 자네나 나한테 모두 좋으니까.”

“감사합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이 허락으로 생각되어 인사를 하고는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에서 매수가 맞는 건가요?”

“지난 회의 때 설명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나 보구나.”

“솔직히 그렇습니다. 김준하 실장이 확률과 수치로 설명했지만 사실 머리가 그걸 제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서요.”

“그럴만해. 지금 분위기가 영 좋지 못하니까.”

한진영이 말을 하고 TV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서는 경찰청장이 직접 나와 집회를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나오고 있었다.

지난 집회에서 불상사가 벌어진 만큼 이번에는 그때보다 더 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말로 주의를 주며 시민 안전을 위해 집회는 철회되어야 하는 게 맞는다고 말하고 있었다.

“경찰청장이 저렇게 호소하고 있지만 집회가 취소될 리가 없지.”

“맞습니다. 철회는 고사하고 이번에는 충돌이 있을 게 눈에 선합니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파국이지.”

조지훈이 꺼내지 못한 말을 한진영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이야기했다.

조지훈은 이런 한진영의 모습에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했다.

“혹시…….”

“내가 너무 자연스럽게 이야기하니까 이상하지?”

“네.”

조지훈은 대답하고 잠시 입술에 침을 묻힌 후 한진영을 향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편이 우리가 돈을 더 많이 벌 길이라서 그런 건가요?”

조지훈의 말에 한진영이 잠시 몸을 뒤로 물리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 다들 나를 왜 이렇게 나쁜 놈처럼 생각하지?”

“네?”

“그렇잖아. 내가 한 일이 아닌데 세상에 대한민국을 똥통에 처넣었다고 하지를 않나, 집회에서 시민과 경찰이 충돌해서 불상사가 일어나면 좋은 일이라서 그렇게 되기를 바란다고 생각하지를 않나. 내가 그렇게 나쁜 놈 같아 보여?”

“죄송합니다.”

조지훈은 말실수했다고 생각한 건지 긴장한 얼굴로 한진영을 향해 사과했다.

한진영은 그런 조지훈의 모습에 크게 웃고는 손을 흔들었다.

“농담이야. 농담. 그렇게 긴장하지 마.”

“네.”

조지훈은 한진영의 농담이라는 말에도 긴장을 놓지 않았다.

한진영이 하는 말속에 뼈가 담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거 이해해. 사실 내가 움직이는 것의 모든 중심에는 돈이 있는 게 맞으니까. 지금도 그래. 다들 정신없는 와중에 우리는 돈을 벌고 있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게 아니지. 하지만…….”

한진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양손을 깍지를 낀 채로 TV를 바라봤다.

그리고 조금은 섭섭하다는 듯한 말투로 이야기했다.

“나 그 정도로 나쁜 놈 아니야. 아무렴 우리나라가 망하기를 바라는 사람이겠어? 나도 기왕이면 우리나라가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야.”

“죄송합니다.”

조지훈은 긴장한 표정으로 한진영을 향해 다시 사과했다.

그의 등 뒤로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한진영이 좋은 말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말속에 자기를 그런 식으로만 바라보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진영은 조지훈을 가만히 바라보고 말했다.

“내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한 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말하기 때문이야.”

“일어나지 않는다는 게 뭘 말씀하시는지…….”

“내가 지금 매수 타이밍의 기점을 뭐로 잡았어?”

“어…… 탄핵이요?”

조지훈은 한진영이 했던 말을 곱씹으며 떠올렸다.

그리고 한진영이 매수에 관한 타이밍을 탄핵 이야기가 나오는 시점으로 하라는 말을 했던 걸 머릿속에서 찾아냈다.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탄핵 이야기가 나올 때가 매수로 포지션을 갈아탈 때라고 이야기했던 때야. 그렇다면 뭐겠어?”

“그렇다는 말씀은…… 아~ 탄핵이 안 이뤄진다는 판단을 내리신 거군요.”

“딩동뎅.”

한진영은 조지훈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고 경쾌한 목소리로 맞췄다는 신호를 외쳤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목소리에 조금은 긴장을 풀 수 있었다.

“맞아. 탄핵은 이뤄지지 않아.”

“그런데 지금 분위기는 거의 이뤄진 것처럼 보이지 않나요? 1,000만 명이 모이면 탄핵이 가능하다는 말도 떠돌고…….”

“누가 그래?”

“SNS에서요.”

“그러니까 SNS에서 하는 말이 맞다는 증거가 있어?”

한진영은 조지훈의 얼굴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예전에 스위스와의 월드컵 기억나?”

“기억나죠. 그걸 어떻게 기억하지 못하겠어요. 엄청 억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요.”

“그때 100만 명인가? 서명받으면 피파에서 재경기해줄 거라는 소문이 돌았던 거 기억해?”

“그것도 기억해요. 그래서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사인하고 막 그랬는걸요.”

“그런데 결과는 어때?”

“결과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죠.”

“그래.”

한진영이 조지훈을 똑바로 천천히 웃었다.

“그리고 정치인들이 탄핵을 진행했던 것도 기억나?”

“네. 제가 중학교 다닐 때인데 선생님께서 그 이야기를 엄청 열정적으로 하셨던 기억이 나요. 그때는 뭐가 뭔지도 모르고 뉴스에서 탄핵 이야기만 주야장천 나왔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 어떤 결과가 나왔는지 기억해?”

“내용은 어려서 잘 몰랐지만, 결과는 기억하고 있어요.”

“어떻게 됐지?”

“탄핵은 무산되고 탄핵을 밀어붙였던 의원들만 무너져 내렸던 거로 기억해요. 지금 집권 여당의 경우 살려달라고 국민들에게 울고불고했던 기억이 나요.”

한진영은 조지훈의 말을 가만히 듣다 이제 알겠냐는 눈빛을 보냈다.

조지훈은 그런 한진영의 눈빛을 보고 깨달았다.

이번에도 지난번과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1,000만 명이 모이든 5,000만 명이 모이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거로 탄핵이 결정되는 건 아니었다.

그리고 자기들 딴에는 완벽하게 탄핵이 가능한 사항이라고 하더라도 국가원수를 끄집어 내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과거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었다.

한진영이 탄핵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본래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하듯이 미래가 깜깜한 지금이 지나면 해가 뜨고 밝음이 찾아올 거야. 그러니 우리는 해가 뜬 뒤를 준비해야지. 그리고…….”

한진영은 비웃음이 살짝 옅게 보이는 표정으로 이야기했다.

“탄핵은 이번 일이 아니야.”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탄핵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말과 달리 탄핵은 이번 일이라는 아니라는 말이 은근히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사장님. 이번 일이 아니라는 말씀은…….”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우선은 눈앞에 있는 것부터 처리하자. 홍 본부장에게 말해서 포지션 단단히 강화하라고 해. 김 실장에게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오는 전략들 각 팀에게 잘 뿌려주라고 하고.”

“네. 알겠습니다.”

조지훈은 개운치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무언가 이야기가 더 있을 것 같은 데 한진영이 일부러 말을 피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조지훈이 사무실을 나가자 한진영은 느긋이 의자에 기대고 뉴스에서 나오는 이야기를 가만히 바라봤다.

TV에서는 경찰이 강경 진압을 예고한 다음 시위를 불안한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

수요일 집회에서도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집회 참석자 중 하나가 크게 다쳐 인근 병원으로 호송되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호송될 때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이며 병원에 가서도 심폐소생술을 펼쳤을 만큼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경찰은 과격 시위를 벌여 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로 의도치 않은 일이라고 변명했지만, 사람들의 분위기는 진압이 과했다는 쪽으로 흘러갔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경찰은 한 걸음도 물러나지 않았다.

정부로부터 강경정책을 전달받은 것인지 더욱 강력한 진압책을 쓰겠다는 것으로 맞불 작전을 펼치기까지 했다.

해외 언론은 서로 마주 보고 달리는 경주차를 바라보며 우려 섞인 이야기를 내보였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즉각적으로 시장에 반영됐다.

“CDS 프리미엄이 결국 500bp를 터치했습니다.

세이지증권이 물량을 쟁여놓으며 막아놓은 400bp 선이 무너지자 단숨에 500bp까지 치솟아 오른 것이었다.

이제 원금이 1,000만 달러인 채권의 보험료가 50만 달러에 달한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5년 만기 상품이 0.80달러에 거래가 되고 있었다.

즉, 원금이 1,000만 달러인 채권이 800만 달러에 거래되고 있으며 보험료 50만 달러를 더하더라도 850만 달러만 내면 1,000만 달러짜리 채권을 구입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대한민국이 망하지만 않는다면 850만 달러로 1,000만 달러를 만들 기회가 채권시장에서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었다.

“됐어. 지금 다 집어넣어.”

홍대민은 CDS 프리미엄이 500bp에 도달한 순간 채권 쪽에 5억 달러의 물량을 집행했다.

이번 CDS 프리미엄 급등으로 인해 세이지 증권이 벌어들인 20억 달러가 넘는 돈의 약 1/4을 채권시장에 집어넣은 것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돈을 또 집행하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이드카까지 5포인트 남았습니다.”

“됐어. 사이드카 같은 거 염두에 두지 말고 그냥 매수하라고 해. 전략실에서 나온 계획대로 말이야.”

“알겠습니다.”

최수찬은 홍대민의 지시를 받아 각 팀에 내용을 전달했다.

시작하라는 지시가 나온 만큼 각 팀은 전략실에서 받은 정보를 이용하여 각자 잘하는 방식에 따라 매수를 진행할 것이 분명했다.

최수찬은 명령을 내린 후 홍대민이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홍대민은 가만히 현황판을 바라보다 다가온 최수찬을 향해 물었다.

“달러 매도 포지션은 어떻지?”

“1,600부터 계속 치고 있습니다.”

“흐음…… 저기가 가장 위험한데 괜찮겠지?”

홍대민이 1,600 돌파를 계속 시도하는 원달러 환율을 바라보고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최수찬은 그런 홍대민의 모습이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게 걱정입니다. 1,600 돌파를 어떻게든 막고 있는데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거의 우리 혼자 막고 있는 게 아니냐고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 그런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해. 금액적으로 우리가 때리는 물량이 많지는 않겠지만 실질적으로 매도 포지션을 잡는 사람이 헤지 형태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네이키드로 접근하는 게 거의 우리가 유일한 상황이니까.”

“맞습니다. 순수하게 매도를 바라보고 있는 건…… 저희가 유일하게 보입니다. 그래서 말입니다.”

최수찬은 홍대민과 마찬가지로 걱정스러운 눈으로 현황판을 바라보고 물었다.

“여기서 잘못되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여기서 잘못되면 우리도 큰 손해를 보겠지. 하지만 그뿐이야.”

“그뿐이라고요?”

모든 금융시장에서 한 가지 포지션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인데 왜 그뿐이라는 것인지 최수찬은 이해하지 못했다.

잘못하다가는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와야 정상인 것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홍대민의 생각은 달랐다.

“결국 우리가 잡고 있는 포지션이 무슨 돈이야?”

홍대민의 질문에 최수찬은 가만히 생각하고는 대답했다.

“CDS 프리미엄 거래를 통해 얻은 수익입니다.”

“그러니까 만약의 경우가 발생하더라도 어떻게 되겠어?”

“얻은 수익을 잃는 것으로 끝나겠군요.”

최수찬의 대답에 홍대민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사장님은 정말 대단해. 이런 것까지 놓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연결해 나가고 있어. 만약의 경우가 터지더라도 절대 손해를 보지 않는 경우를 만들어가고 있어. 그리고 예상대로의 일이 벌어지면…….”

“대박이 터지는 거고요.”

최수찬이 홍대민의 말에 맞장구쳤다.

지금까지 세이지 증권이 어떤 식으로 성장해 왔는지를 떠올리고는 자기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걱정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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