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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90화 (390/650)

390화 조언자

크게 먹은 것을 직원들과 축하할 겨를도 없이 한진영은 차를 타고 청와대로 향했다.

조지훈은 한진영과 함께 청와대로 들어가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 한진영을 향해 물었다.

“사장님. 혹시 청와대에서 누가 부른 건지 아십니까?”

“글쎄? 짐작 가는 곳이 있기는 한데…….”

“그게 누구입니까?”

“자네가 궁금해하는 사람. 안 실장 위에 있다는…….”

“정말입니까?”

조지훈은 놀란 표정을 짓고 몸을 돌려 앉았다.

“그 사람이 청와대에 있는 겁니까?”

조지훈은 한진영에게 질문을 던진 뒤 자기의 질문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청와대에서 대통령 외에 비서실장보다 높은 사람이 있기는 한가요?”

“없지.”

“그런데…… 어떻게…….”

한진영은 궁금해하는 조지훈을 향해 간단하게 설명했다.

어차피 조금 뒤에 만나게 될 사람을 아무 정보도 없이 만나게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청와대 직원은 아니야. 그렇다고 대통령은 더더욱 아니고…… 그저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 안혁규보다 더 가까운 사람, 그런 사람이 청와대에서 나를 부른 거야.”

“안혁규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요?”

대통령의 복심이라고 불리며 대통령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안혁규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안혁규보다 더 가까운 사람이 누가 있다는 건지 조지훈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진영이 확신에 가까운 모습으로 이야기했기에 더는 묻지 않았다.

한진영이 만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가는 자리인 만큼 예상 밖의 일을 걱정할 것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차는 어느새 청와대에 도착했다.

청와대 앞을 지키고 있던 이들이 차 넘버와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을 확인하고 길을 내어줬다.

조지훈은 그 모습을 보고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가 누구인지 아는 눈치입니다.”

“아니까 부른 거지. 조 실장은 걱정할 필요 없어. 걱정은 나만 하면 되니까.”

한진영은 말을 멈추고 창밖으로 비치는 청와대를 바라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만나고 싶지 않던 인물이었다.

괜히 귀찮은 문제에 엮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많은 인물.

오래가지 못하고 얼마 뒤면 모든 국민에게 손가락질받을 인물.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누구보다 커다란 권력을 가진 인물.

한진영은 자기를 부른 사람으로 인해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도착했습니다.”

차가 청와대 영빈관 앞에 도착하자 청와대 의전 담당 비서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자.”

한진영의 지시에 조지훈이 먼저 차에서 내려 한진영이 타고 있던 뒷문을 열었다.

한진영이 차에서 내리자 의전 비서관이 다가와 인사했다.

“한진영 세이지증권 사장님 맞으십니까?”

“네. 제가 한진영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의전 담당 김수영 비서관이라고 합니다.”

“네. 안녕하십니까?”

한진영은 가볍게 인사를 받은 후 모르는 척 질문을 던졌다.

“저희 비서실로 청와대에 들어오라는 말을 전하셨다고 하는데 어느 분께서 저를 부르신 겁니까? 안혁규 비서실장…… 아 지금은 전이라고 해야 하나요? 여하튼…… 안 비서실장님께서 부르신 겁니까?”

조지훈은 슬쩍 한진영을 돌아봤다.

분명 차 안에서는 누가 불렀는지 안다고 말했던 한진영이었다.

그런 한진영이 막상 도착해서는 누가 불렀냐고 물어보고 있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모습을 보고 한진영이 지금의 만남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의전 담당 비서관은 한진영의 질문에 잠시 머뭇거렸다.

“그게…….”

불편한 표정을 지어 보인 의전 담당 비서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안에 들어가 보시면 아시게 될 겁니다. 안 실장님은…… 일주일 전에 청와대를 나가셨습니다.”

“일주일 전에요?”

한진영은 짐짓 놀란 표정을 지었다.

“오늘 발표가 나왔는데 나가신 건 일주일 전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그렇게 됐습니다. 안에 기다리고 계실 테니 우선 안에 들어가서 자세한 내용을 듣도록 하시지요. 그럼…….”

의전 담당 비서관은 더는 이곳에 서서 이야기하는 의미가 없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앞으로 걸어 나가며 슬쩍 뒤를 돌아봤다.

어서 따라 들어오라는 의전 담당 비서관의 눈빛에 한진영은 모르게는 표정을 지으며 발걸음을 뗐다.

의전 담당 비서관을 따라 영빈관에 들어간 한진영은 기다란 회랑을 지나 굳게 닫힌 문 앞에 서게 됐다.

“이곳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의전 담당 비서관은 손잡이 문을 잡은 채 조지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비서님의 경우에는 옆에 자리를 마련해 놓았으니 그곳으로 가시면 됩니다.”

“저 혼자 들어가라는 말씀이신가요?”

“네. 혼자 들어가셔야 합니다.”

한진영은 의전 담당 비서관의 말에 조지훈에게 옆에서 기다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의전 담당 비서관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의전 담당 비서관이 한진영이 들어갈 수 있도록 살며시 문을 열었다.

한진영이 살짝 열린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자 그의 눈에 과거 매체를 통해 봤던 익숙한 두 사람의 얼굴이 들어왔다.

“어머. 어서 오세요.”

두 사람 중 여자가 자리에 앉은 채로 한진영을 향해 인사했다.

“만나서 반가워요. 앉으세요.”

둥그런 탁자에 앉아 있는 여자는 자기의 오른편을 손으로 가리킨 뒤 한진영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식사하셨어요?”

“어…….”

한진영은 잠시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여자는 그런 한진영의 표정에 입을 가리고 크게 웃었다.

“호호호호. 그렇게 놀라지 마세요. 저도 여기 식구니까요.”

한진영은 식구가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진영은 그녀가 누구인지 진작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런 표정을 짓고 계속 모르는 척 가면을 쓰는 이유는 지금 이 시점에서는 그녀의 정체를 모르는 것이 더 어울렸기 때문이다.

여자도 그런 한진영의 모습이 이상하지 않은지 의자를 손으로 두드리기까지 했다.

“천장 무너지겠어요. 어서 와서 앉으세요.”

한진영은 재차 권유하는 그녀의 말에 못이기는 척 자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여자의 왼편에 앉아있는 노인을 향해 인사했다.

“여기서 뵐 줄 몰랐습니다.”

“누군지 아세요? 혹시 두 분이 만난 적 있으셨어요? 저는 실장님에게 듣지 못했는데…….”

여자가 노인을 바라보고 자기에게 왜 이야기하지 않았느냐는 표정을 짓자 한진영이 급히 말을 정정했다.

“죄송합니다. 만나 뵌 적은 없습니다. 그저 제가 어린 시절 신문과 뉴스를 통해 뵈었던 분이라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넨 것뿐이었습니다.”

“아~ 그러셨어요? 하긴 우리 실장님은 유명하시니까. 그렇죠?”

“네.”

한진영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인을 향해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노인은 한진영의 인사를 가볍게 받았다.

김교철이 밖에 나와 법조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면, 눈앞에 앉아있는 노인은 내부에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사람이었다.

김교철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으며 홀로 동우 전체가 가진 힘보다 더 큰 힘을 가지고 있던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눈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었다.

군사정권 시절 검찰의 요직을 다 앉아 봤으며 독재정권의 근간을 이루는 헌법을 만든 사람.

35살의 나이에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이라는 무서운 것 없는 권력을 쥐었던 사람.

청와대 법률 비서관과 검찰총장, 법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3선의 국회의원을 내리 지낸 사람.

김교철이 검찰을 좌지우지하는 존재였다면 앞에 앉아있는 노인은 검찰 그 자체였던 사람이었다.

김교철조차 노인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할 존재가 바로 노인이었다.

그런 사람이 지금은 여자 옆에 조용히 앉아 앞에 놓인 차만 홀짝이고 있었다.

“오늘 한 사장님을 뵙자고 한 건 제가 보고 싶어서 그런 거예요.”

“저를…… 그런데 누구십니까?”

한진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여자를 바라봤다.

세련되어 보이게 입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이지만 겉으로 풍기는 모습은 동네 아줌마 그 이상이 아니었다.

푸짐한 몸매에 앉아있는데도 느껴지는 작은 키는 그녀를 더욱 볼품없게 만들었다.

한진영은 그녀가 누구인지 잘 알고 있었지만,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일부러 드러냈다.

“저는 정말 모르겠습니다. 저를 아십니까?”

“알죠. 많은 사람에게 한 사장님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심지어 안 기사에게도요.”

“안 기사? 혹시 안혁규 실장님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실장은 무슨 실장. 운전기사 놈이 잘할 수 있다고 큰소리를 쳐서 한번 해보라고 시켰더니 아주 난장을 피워서 골이 다 흔들렸어요. 하필이면 내가 그때 나가 있는 상황이라서…… 어휴~”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다는 듯이 여자는 관자놀이를 양손의 엄지로 눌렀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한진영을 향해 웃는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래요. 제가 누구인지 소개부터 먼저 해야겠죠? 저는 그러니까. 으음…….”

막상 자기를 소개하려니 마땅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은 것인지 여자는 잠시 머뭇거렸다.

그리고 적당한 단어를 떠올린 것인지 웃으며 손으로 자기 가슴을 두드리며 말했다.

“조언자. 대통령의 조언자라고 저를 소개하면 되겠네요. 그렇죠 실장님?”

“조언자. 좋은 표현인 것 같습니다. 여사님께서 각하께 조언하는 것이 사실이니까요.”

한진영은 스스로를 조언자로 소개하는 여자의 말에 웃음이 터지려는 것을 허벅지를 꼬집어대며 억지로 참아냈다.

한진영은 그녀가 어떤 인물인지 지난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말이 얼마나 황당한지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조언자는 개뿔.’

한진영은 속으로 비웃음을 날렸지만,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고개를 갸웃하며 여자와 노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저는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어떤 조언을 하신다는 것입니까? 비서관은 아니신 것 같고…….”

“그 이야기는 차차 하도록 하시죠. 아직 시간이 많습니다.”

최순옥은 손바닥을 들어 한진영의 말을 잠시 막고는 밖을 향해 소리쳤다.

“김 비서관.”

최순옥의 말에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의전 담당 비서관이 안으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식사 내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마치 집에서 부리는 직원에게 지시를 내리듯이 청와대 의전 담당관에게 지시를 내린 최순옥이었다.

김한춘 전 의원은 물론이고 의전 담당 비서관까지 최순옥의 지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진영은 이런 웃지 못할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최순옥은 나가는 의전 담당 비서관을 잠시 바라보다 앞에 놓인 재떨이를 자기 앞으로 끌어당겼다.

그리고 자그마한 핸드백을 열어 안에서 담배를 꺼내 들었다.

“담배 한 대 태우시겠어요?”

“여기서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여기 공기 청정 시스템 잘 돼 있어서 냄새 금방 빠져요.”

최순옥은 아무렇지 않은 듯이 말하고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한진영을 바라보고 웃으며 말했다.

“한 사장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대단하시더라고요.”

“과찬이십니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많이 들으신 건지…….”

“돈을 많이 버셨던 데요? 그것도 요 몇 년 새에 말이에요.”

“운이 좋았습니다.”

“으음. 아니에요.”

최순옥은 입에 담배를 문 채로 손을 내저었다.

“운으로 벌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거 저도 잘 알고 있어요.”

똑똑.

이야기하는 도중에 노크 소리가 들리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미리 준비되어 있던 음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어서 드세요. 먹으면서 마저 이야기해요.”

최순옥은 애피타이저로 나온 샐러드를 한진영에게 먹을 것을 권했다.

음식을 다 놓은 의전 담당 비서관은 최순옥을 향해 귓속말을 전달했다.

김한춘 전 의원과 함께 있는 자리인데도 최순옥의 지시를 듣고 최순옥에게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두 사람 사이에서 최순옥의 위치가 더 높음을 잘 알려주는 모습이었다.

최순옥은 이야기를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자 의전 담당 비서관이 고개를 숙이고 자리를 떠났다.

최순옥은 의전 담당 비서관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본 뒤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우선 좋은 소식부터 알려드려야겠네요.”

“좋은 소식이요?”

“네.”

최순옥은 김한춘을 슬쩍 돌아본 뒤 말했다.

“미국 정부에서 이번 조치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어요. 백악관 대변인을 통해 적절한 조치였다며 무역 보복을 준비하던 것을 멈추겠다고 하네요.”

“잘 됐습니다.”

김한춘이 큰 걱정을 덜었다는 듯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순옥은 그런 김한춘을 바라보고 계속 이야기했다.

“신용평가사들도 긍정적인 평가들을 내놓았어요. 주변 국가들도 모두 우리를 새롭게 봤다며 칭찬 일색이라고 하고요. 이렇게 쉽게 정리가 될 걸 그동안 참 뭣들 하고 있었는지…….”

최순옥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젓고는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렇지 않나요?”

“맞습니다. 문제의 근원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적절히 사과하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들에게 알맞은 처벌을 내린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었습니다. 대처만 잘했다면 욕은 먹었겠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까지는 이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맞아요. 제 말이 그 말이에요. 하아~”

최순옥은 답답하다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한테만이라도 일찍 이야기를 전했다면 처리가 빨랐을 텐데 하필 독일에 나가 있는 사이에 일이 터졌으니. 그리고 그 안 기사. 그놈이 문제였어요.”

화가 치밀어 오르는 듯이 소리를 지르려던 최순옥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혔다.

“에이. 지금 화를 내봤자 무슨 소용이겠어요. 어쨌든, 일은 정리가 다 됐으니 지난 일은 잊어야지요.”

“여사님 말씀이 맞습니다. 각하께서도 그걸 원하실 겁니다.”

“그래도 김 의원님께서 비서실장 자리를 수락해주셔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앞으로 김 의원님께서 언니 곁을 지켜주신다면 저도 걱정을 좀 덜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한진영은 김한춘과 최순옥의 대화를 들으며 이루어질 역사는 어떤 식으로든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리고 두 사람의 말로와 현재 청와대 주인의 미래도 머릿속에 함께 그려졌다.

한진영이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최순옥이 고개를 돌려 한진영을 돌아봤다.

“으음…….”

한진영을 바라보고 눈을 크게 뜬 최순옥은 웃는 표정을 얼굴 가득 지어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시선에 언짢은 기분이 마구 솟구쳐 올라 참기 어려워하는 한진영을 향해 말했다.

“저는 언니 곁에 김 실장님 외에 한 분이 더 계셨으면 하는데…… 어떠세요? 한 사장님. 함께 일하실 생각 없으세요?”

최순옥의 말에 한진영은 걱정하던 일이 벌어졌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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