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의 증권사 생활-399화 (399/650)

399화 뉴욕에서 사업하기 위해 필요한 것

쿵 쿵 쿵 쿵.

넓은 방 안에는 계속 밖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의 베이스 부분이 들리고 있었다.

이성우는 술잔에 술을 따르는 한진영을 보고 당황한 듯이 물었다.

“그러니까 우리보고 3,000억을 책임지라고?”

“책임지라니. 내가 너한테 책임을 전가하듯이 말하네. 그게 아니라 너희에게 3,000억에 대한 지분을 주겠다는 거야.”

“그게 어떻게 지분이야?”

이성우는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4조에서 우리보고 3,000억을 맡으라면서?”

“그러니 지분을 주겠다는 거지.”

이성우는 도저히 한진영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는 듯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한진영이 술이 담긴 술잔을 이성우에게 내밀며 말했다.

“나중에 왜 3,000억만 줬냐고 욕하지 마.”

“뭐?”

“나중에 가서 왜 5,000억 혹은 1조 치의 물량을 배정해주지 않았느냐면서 욕하지 말란 뜻이야.”

“나중에…… 욕하지 말라고?”

이성우는 한진영의 말에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조금 전 문을 열고 떠난 노아 스미스를 떠올리고 물었다.

“저거…… 돈이 되는 거냐?”

“돈이 되냐고?”

한진영은 웃음을 흘리고는 술잔을 들어 올렸다.

“기풍그룹의 재계 서열이 바뀔 수 있는 수준이다.”

“재계 서열이…… 바뀌어?”

이성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지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조지훈은 이성우의 시선에 이성우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건넸다.

“사장님 추천으로 저도 테라 상장 때 돈을 넣었는데 그게 다섯 배가 되었습니다.”

“뭐? 다섯 배?”

이성우는 놀란 표정으로 조지훈과 한진영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리고 노아 스미스가 나간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소리쳤다.

“상장 가격 보다 다섯 배가 올랐는데도 저렇게 죽는소리를 한 거야? 그렇게 올랐는데 돈이 부족했다면 자기 지분 팔면 될 거 아니야? 지금 그게 아까워서 너한테 온 거냐? 마치 내일 당장 망하기라도 할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이성우는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노아 스미스가 떠난 문을 다시 쳐다봤다.

노아 스미스는 한진영을 향해 애원에 가까운 부탁을 한 뒤 방을 떠났다.

그리고 문 앞에서 잘 부탁한다는 말과 함께 조금만 시간을 주면 헐리우드 배우를 섭외하여 오겠다는 말까지 건넸었다.

한진영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말로 노아 스미스의 제안을 거절하고 자리에 앉아 이성우 등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내가 없었으면 그랬을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사람이란 게 그렇거든.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 어떤 길이 더 안전하고 확실한지 알아보기보다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어 움직이기 마련이니까.”

여전히 이성우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진영은 술잔에 담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이성우를 향해 천천히 설명했다.

“보유하고 있는 주식을 팔아 자금을 마련하고 어려움을 헤쳐가는 게 확실히 미래를 위해서는 노아 스미스에게는 더 좋은 길이야. 하지만 눈앞에 내가 있는 걸 본 순간 그런 건 머릿속에서 다 지워지고 말았을 거야. 당장 주머니에 들어있는 자기 주식을 내놓고 싶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감도 하늘을 뚫는 사람이라 더더욱 나를 선택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을 테고…….”

“자신감? 무슨 자신감?”

한진영은 이성우에게 술을 맛보라고 손짓했다.

이성우는 궁금해 죽겠는데 지금 술이 눈에 들어오냐는 눈빛으로 한진영을 바라봤다.

그러나 한진영은 이성우의 눈빛에도 굴하지 않고 계속 마시라고 손짓했다.

이성우는 한진영의 손짓에 더는 싫다고 말하지 못하고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크으~”

쓴 기운이 몰려오자 입에서 저절로 소리가 나온 이성우였다.

한진영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이성우를 향해 큰 소리로 웃었다.

“그래 잘했다. 놀러 왔으니 시원하게 한잔 먹어야지.”

“크으~ 여기는 뭔 안주도 없냐?”

쓴맛을 지우기 위해 주변을 살핀 이성우는 한국과 달리 안주가 보이지 않는 것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고는 한진영을 돌아보고 한진영이 했던 손짓을 그대로 되돌려줬다.

“빨리 이야기해. 네 이야기를 안주 삼아야겠다. 아우~ 써. 뭔 술이 이렇게 써. 물 건너오면 술도 써지는 거냐?”

한진영은 호들갑을 떠는 이성우의 모습에 웃으며 조금 전 하던 이야기를 마저 했다.

“자기가 최고라는 자신감. 지분을 나눠줘도 회사를 장악할 자신이 있다는 마음가짐. 그것 때문에 지분이 우리 쪽에 많이 흘러가는 걸 알면서도 내놓겠다고 한 거야. 그리고 기왕이면 지분이 여러 곳에 퍼져 희석되기보다 한 곳에 집중되는 편이 노아 스미스 입장에도 더 좋고…….”

“쓰읍~ 더 좋다고? 뭐가 더 좋은데?”

이성우는 여전히 쓴맛이 입에서 가시지 않았는지 입가를 훔치고 한진영을 바라봤다.

한진영은 이성우에게 그래도 안주라고 억지로 이름 붙인다면 유일해 보이는 레몬을 건넸다.

그리고 레몬 맛에 몸서리치는 이성우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지분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다면 여차했을 때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더 편하거든.”

“아~ 백기사처럼?”

“그래. 그래서 나에게 부탁한 거야. 그런 일을 부탁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사이가 돈독했던 곳에다 이야기해야 하거든.”

이제는 쓴맛이 아닌 신맛에 정신을 못 차리게는 이성우는 입가에 번들거리는 침을 손바닥으로 닦아내며 물었다.

“너하고 사이가 돈독했었냐? 전에는 본 적도 없었다며?”

“이 정도면 돈독한 거야. 아무런 트러블도 없었으니까.”

쓴맛과 신맛이 어느 정도 섞이기 시작하자 이제야 좀 살겠는지, 이성우는 웃고 있는 한진영을 보며 동의한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하긴. 그 사람 보니까 주변에 죄다 적만 있을 거 같더라. 성격이…… 별로야.”

“맞아. 그러니 부탁할 사람이 없는 거지. 그리고 우리 같은 투자사에 지분을 넘기는 편이 더 좋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어떤 거?”

“바로 지분 회수에 용이하다는 것. 우리 같은 투자사의 경우에는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에 나중에 돈만 맞춰준다면 지분을 다시 가져올 수 있거든.”

“지분을 다시 가져간다고? 노아 스미스가?”

“그래. 그래서 나에게 그렇게 애걸한 거다.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나만 한 사람이 없거든. 그리고 자금 동원력까지 더한다면 내가 유일한 방법이고…… 물론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었지만 자존심이 강한 노아 스미스는 한 번 자기가 내린 판단에 의문을 품지 않으니 나한테 그렇게 애걸복걸한 거다.”

이성우는 더 좋은 방법이 뭐인지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한진영의 말이 이성우보다 먼저였다.

“자 그럼 이제 저쪽의 모든 의도를 알았으니 우리가 뭘 해야 할까?”

이성우는 한진영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테라를 상대로 뭘 할 수 있는지 한번에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답은 매우 단순했다.

“뭐긴 뭐야? 돈을 벌어야지.”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얼굴에 가득 미소를 지었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은지 그의 표정에서는 기쁨이 넘쳐흐를 지경이었다.

이성우는 그런 한진영의 표정에 친구라서 다행이라는 말을 나직이 내뱉으며 작게 몸서리쳤다.

***

한진영이 떠난 대한민국은 격변의 연속이었다.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이 연속으로 튀어나오며 정국을 혼란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연일 터지는 정치 뉴스에 실망감을 가득 드리우고 있을 때 경제면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세이지증권이 미국 전기차 업체인 테라의 유증에 참여할 것으로 보여. 투자 총 예상 금액은 30억 달러이며, 테라와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는 국내 유수의 기업들이 유증에 참여할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고 업계 관계자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테라에 대한 유상증자 소식이 전해지며 한진영이 미국에 가서도 가만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 아님을 알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지훈은 쇼핑을 하는 한진영의 뒤에서 대한민국에서 건너온 이야기를 보고하고 있었다.

“전략실에서는 현재 주가의 15%까지 낮출 여력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한진영은 고르고 있던 시계를 내려다보다 점원에게 말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 그냥 다 포장해 주세요. 고르는 것도 귀찮네요.”

한진영은 말하고 하나를 꺼내 조지훈의 손목에 채워줬다.

“이건 바로 하고 갈게요.”

한진영은 점원에게 말한 후 앞으로 걸어가며 조지훈에게 손짓했다.

“다음 매장으로 가자.”

“사장님.”

조지훈은 보고를 하다 말고 자기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흔들어 보고는 당황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걸…….”

“괜찮아. 받아. 받은 다음에 나 대신 한국에 좀 들어갔다 와. 들어가면 여러 사람이 귀찮게 할 텐데, 그 시계는 거기에 대한 보수 개념이니까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조지훈은 시계 하나에 10,000달러가 넘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 시계를 보수 개념이라고 이야기하니 도대체 얼마나 귀찮은 사람이 찾아오는 건지 감이 오지 않을 정도였다.

“뭐 해?”

“네? 죄송합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조지훈을 보고 한진영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나 본부장은 언제 넘어온다는 거야?”

“아~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일 저녁 비행기로 출발하여 온다고 합니다.”

한진영은 자기를 대신하여 테라와 협상을 진행할 인물로 나창운을 불러들였다.

기본적으로 유증에 참여하는 것은 변함이 없지만, 가격 정도는 깎는 것이 당연하기에 대리인을 내세워 가격 흥정에 나설 참이었다.

“푹 쉬고 모레부터 시작하자고 해.”

“네. 알겠습니다.”

“테라에는 대충 언질을 줘놨지?”

“조금 당혹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혹해해?”

“네. 가격을 깎을 것이 없다는 게 그쪽 태도였습니다. 이미 공매도로 인해 주가가 부양되지 못한 상황에서 여기서 가격을 더 깎는 것은 너무하지 않냐는 말도 나왔습니다.”

“너무한 사람이 누군데…….”

한진영은 어이없다는 듯이 실소를 흘리고는 옷 매장으로 들어갔다.

매장의 점원들은 한진영이 오기 전부터 문 앞에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한진영은 매장 전체가 울릴 것 같은 인사에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고객님이 불편하지 않도록 다른 손님들을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편하게 보시고 언제든 저희를 불러주시기를 바랍니다.”

기대에 가득 찬 눈빛을 한 매니저는 한진영을 향해 자기가 지을 수 있는 가장 상냥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한진영은 매니저의 웃음을 바라보고 조지훈에게 슬쩍 이야기했다.

“소문났나 보다.”

“소문이 안 날 수가 없지요. 지금 여기 거리를 초토화하고 계시지 않으십니까?”

조지훈은 말을 마치고 뒤에 서 있는 경호원 쪽을 슬쩍 돌아봤다.

거구의 경호원 여섯 명의 손에 쇼핑백이 가득 들려져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 대처해야 할 경호원이 지금은 여자친구에 억지로 끌려와 짐을 대신 들어주는 남자친구의 얼굴을 하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난감한 표정의 조지훈을 한번 두드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도 옷 좋다.”

한진영이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들을 살피고는 조지훈을 향해 말했다.

조지훈은 한진영의 말에 한 걸음 다가가 말했다.

“사장님. 이러실 거면 차라리 집으로 오라고 하시죠. 이렇게 하시면 너무 눈에 띄지 않으십니까?”

“눈에 띄어?”

“네. 밖을 보십시오.”

매장 유리창 너머로 사람들이 모여 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기에 유명 브랜드 매장을 통째로 빌려 쇼핑을 하는 건지 궁금한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이었다.

몇몇은 휴대폰을 들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에 의해 바로 제지당했다.

눈으로 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지만, 사진을 찍어 기록을 남기는 것만큼은 막으라는 한진영의 지시를 따른 것이었다.

“재미있지 않나?”

“이게 정말 재미있게 느끼시는 겁니까?”

“그래. 재미있잖아.”

한진영은 밖에 사람들이 잘 보도록 몸을 돌려세웠다.

그리고 양팔을 벌려 마치 콘서트장의 가수 같은 포즈를 취하기도 했다.

밖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은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매우 궁금해하는 모습이었다.

젊은 사람이 십여 명의 경호원을 끌고 명품 거리로 유명한 맨해튼 5번가를 통째로 빌린 것처럼 행동한다니 그의 정체에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지 몰랐다.

한동안 사람들에게 자기 얼굴을 보여준 한진영은 멀찍이 대기하고 있던 점원을 불렀다.

“그냥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다 싸주세요.”

“다 말입니까?”

“네. 다 포장해 주세요.”

“고객님. 그럼 사이즈는…….”

“사이즈 상관없습니다. 걸려있는 거 다 주세요.”

사이즈조차 상관없이 모든 옷을 달라는 한진영의 모습에 점원은 마치 강림한 천사를 마주한 것처럼 기쁨에 겨운 모습을 보였다.

단숨에 매장 한 달 매출을 올려준 것에 매니저는 떠나는 한진영을 따라 나와 거리에서도 인사를 하고 또 했다.

한진영은 멀어져 가는 매니저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조지훈을 곁으로 불렀다.

“뉴욕에서 사업을 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무엇인 줄 알아?”

“혹시 그럼 명성을 얻기 위해 이런 모습을 보이신 겁니까? 평소 쇼핑을 극도로 좋아하지 않으시면서요?”

“명성. 포괄적인 의미에서 비슷하지만 조금은 달라.”

한진영은 말과 함께 걷던 걸음도 멈췄다.

그러자 한진영이 멈춰 선 곳 앞에 자리한 명품 매장의 문이 안에서 바깥으로 열리며 점원들이 일제히 나와 한진영을 향해 인사했다.

“저희 매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한진영은 들어가겠다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나와 인사하는 명품 매장 직원들을 바라보고 조지훈에게 작은 목소리로 정답을 알려줬다.

“돈이 있다는 것. 그것도 아주아주 많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게 중요해. 이곳 뉴욕에서는 말이지.”

한진영은 가볍게 조지훈의 등을 손바닥으로 두드리고는 열린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렇게 우리를 맞아주시니 여기도 들어가야지. 가자.”

한진영은 말을 마치고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갔다.

조지훈은 한진영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쇼핑백을 들어줄 경호원 숫자가 부족하다는 것.

조지훈은 경호업체에 인력 충원을 위해 전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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