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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의 증권사 생활-403화 (403/650)

403화 우리는 변하지 않는다

조지훈의 예상대로 아무런 연관이 없고 할 말도 없다는 보도문에 사람들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 시작했다.

아직 정권이 살아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이야기했다가 잘못될지 몰라 말을 아낀다는 이야기부터 할 말이 없다는 이야기는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까지 해석하는 사람들이 살을 붙여 이야기를 완성해 나간 것이었다.

세이지증권이 입을 다물고 있으면 입을 다물수록 사람들은 안쓰러운 눈으로 세이지증권을 바라봤다.

한창 국내에서 활동해야 할 한진영이 해외로 쫓겨간 것에 세이지가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이야기된 것이 아니었다.

방송에서조차 이와 같은 주제가 토론에서 이야기되기 시작했다.

현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 방송에 각계각층의 전문가들과 관계자들이 자리했다.

그들은 혼란스러운 정국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며 세이지 이야기 또한 곁다리로 함께 이야기 나누기 시작했다.

-이건 세이지 혼자 감내 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시사평론가는 화가 난 듯한 표정으로 사회자를 비롯하여 다른 패널들을 향해 열성적으로 이야기했다.

-세이지증권이 어떤 곳입니까? 우리나라가 절벽 끝에 서서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을 때 홀로 금융시장을 지켜내던 곳입니다. 외국인은 물론이고 다른 기관들조차 더는 희망이 없다며 주식과 채권을 집어 던질 때 그렇지 않다며 우리나라는 아직 희망이 있다며 그것들을 받아내던 곳입니다.

시사평론가의 말에 다른 패널들도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시사평론가는 사회자를 향해 벌겋게 달궈진 얼굴로 이야기했다.

-그런 곳이 정권 실세들에 안 좋게 찍혔다는 이유만으로 이런 대접을 받는다는 것. 저는 이런 상황이 정말 견딜 수가 없습니다. 애국자가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는 겁니까? 그 옛날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싸웠던 독립투사들이 다 쓰러져가는 판잣집에서 사는 것과 홀로 금융시장에 맞서 싸운 세이지증권이 제대로 된 평가는 물론이고 영업조차 정상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이 뭐가 차이가 있습니까? 이게 정녕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사실에 울분이 터져 나옵니다.

흥분해있는 시사평론가의 모습에 유명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도 한마디를 더했다.

-세이지증권의 대우는 모든 사람을 분노케 하기에 충분합니다. 사실 세이지는 자산운용사로 시작된 곳입니다. 그 이후 경기증권을 인수하여 세이지증권으로 탈바꿈 한 곳이지요. 고객에게 관리 수수료를 받지 않으며 수익이 났을 때만 수수료를 제하는 매우 파격적인 영업 형태로 유명한 곳입니다. 그만큼 수익을 내는 것에 자신이 있고 절대 고객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어쩌면 가장 고객 친화적인 기업이 세이지증권이라고 할 수 있지요.

경제학과 교수는 사회자를 향해 차분한 목소리로 계속 이야기했다.

-그런 고객을 위하는 곳이 이번 일로 피해를 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고 생각됩니다.

잠시 교수가 이야기하는 동안 흥분을 가라앉혔던 시사평론가가 교수의 말을 받아 다시 이야기했다.

-이번 사태 전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인노스 사건을 모두 기억하고 계실 겁니다. 바로 지금 사건의 도입부라고 이야기해도 되는 사건이었는데 세이지증권 이야기는 바로 여기까지 올라가야 제대로 이해를 할 수 있는 겁니다.

가만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번갈아 듣던 사회자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사인노스 이야기까지 올라가야 한다고요?

-네. 맞습니다.

시사평론가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조금 전과는 다른 냉철한 모습으로 이야기했다.

-사인노스 사건은 모든 분께서 아실 거로 생각하니 따로 설명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야기의 핵심은 처음 동우 패밀리라고 불리는 곳에 세이지도 있었다는 것이 이야기의 핵심으로 봐야 할 겁니다.

-세이지도 포함되어 있었던 겁니까?

-네. 사인노스 사건을 오랫동안 심도 있게 조사했던 기자에 따르면 세이지의 한진영 사장도 동우가 함께했던 여러 멤버 중 하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동우 로펌의 패밀리라고 불리는 사람 명단에는 한진영이라는 이름이 없었는데요.

-바로 거기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시사평론가는 눈을 가늘 게 뜨고 범죄 현장을 보고 사건을 재구성하는 형사처럼 조각나 있는 이야기를 맞추어 나갔다.

-동우 패밀리에 들어갈 때만 해도 세이지의 입지는 지금 같지 않았습니다. 라이징 스타처럼 떠오르는 샛별 정도가 세이지에 대한 시장 평가였지요. 그런 곳이 모종의 이유로 동우 패밀리에서 빠지게 됐습니다. 그리고 빠진 세이지를 대신하여 들어간 곳이 경기증권입니다.

-세이지가 인수한 경기증권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그리고 경기증권이 들어가서 진행한 작업이 바로 사인노스입니다.

시사평론가는 주변에 앉아있는 패널들을 한차례 훑어본 후 말했다.

-처음 사인노스가 접촉한 것은 세이지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이지가 충분히 검토하기 전에 동우 측에서는 사인노스를 강탈하듯이 뺏어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동우와의 악연은 계속된 겁니다. 그러니까 세이지증권에 대한 현 정부의 가혹하다 싶은 배제는 경제수석 내정부터가 아니라 사인노스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씀대로라면 세이지가 사인노스 사태로 무너지는 시장을 막은 것은…….

-순전히 애국심에서 발현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시장을 막기 위해 투입한 자금은 고객 자금이 아니라 세이지가 보유하고 있던 자금을 중심으로 한 투입이었다고 합니다.

시사평론가의 말에 사회자는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 있는 패널을 돌아봤다.

패널 일부도 몰랐던 사실이었는지 그들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조지훈은 서서 화면을 바라보다 차 비서에게 지시했다.

“저 양반한테 고맙다고 전해.”

“네 알겠습니다.”

차 비서는 조지훈의 지시에 가볍게 대답했다.

그리고 조지훈이 바라보고 있는 화면을 바라본 채로 감탄을 내뱉었다.

“실장님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뭘?”

조지훈이 고개 돌려 차 비서를 바라보자 여전히 차 비서는 감탄하는 빛을 얼굴에 담은 채 이야기했다.

“저는 당연히 돈을 줘야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돈을 왜 줘?”

“우리에게 유리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입니다.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신 차려.”

조지훈은 차 비서를 향해 짧게 혀를 차고 말했다.

“돈을 주고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시키는 건 범죄야.”

“거짓을 말하게 하는 건 아니니까요.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지훈은 차 비서의 말에 피식 웃었다.

“앞으로 배워야 할 게 많아.”

“저 말씀입니까?”

“그래. 여기에 차 비서하고 나밖에 없는데 그럼 내가 누구에게 말하는 거겠어?”

차 비서는 타박에 가까운 말을 조지훈에게 들었음에도 여전히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조지훈은 그런 차 비서의 얼굴을 보고 한숨과 함께 설명하기 시작했다.

“잘 봐. 돈은 사람을 매수하는 거야. 그 방법은 하책 중의 하책이야. 모든 사람에게 먹히지도 않고 가격도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주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돼. 하지만 돈보다 더 중요한 걸 해결해주면 이번처럼 우리가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주게 되어 있어.”

“저 사람 딸이 유학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처럼 말씀입니까?”

“그렇지.”

차 비서의 말에 조지훈이 잘 말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이야기했다.

“사람에게는 다 나름대로의 고충이 있기 마련이야. 순탄하게 사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어. 그걸 잘 파악하고 있다가 이렇게 적재적소에 고충을 해결해주면…… 봐. 저렇게 알아서 우리를 위해 힘을 써주잖아.”

화면 속의 시사평론가는 세이지증권을 위해 모든 국민이 1인 1계좌 가지기 운동을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게 나라를 위해 힘을 쓴 세이지증권을 도와주는 길이라며 핏대 세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었다.

조지훈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화면을 바라본 채로 이야기했다.

“그게 우리 비서실이 해야 할 일이야. 우리가 접근해야 할 사람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고충이 무엇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 그리고 그걸 해결할 방법을 찾는 것. 그걸 빠르게 파악하여 적절한 타이밍에 해결해주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중점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일이지.”

조지훈은 알겠냐는 표정으로 차 비서를 바라본 채로 계속 이야기했다.

“이쪽이 돈보다 더 큰 효과가 있어. 그리고 직접적으로 돈을 주며 함께 딸려오는 위험도 회피하기 쉽고…… 우리가 대학 못 갈 딸을 억지로 입학시켜준 게 아니잖아. 갈 수 있는 학교를 찾아주고 연결해준 것뿐이야. 그 뒤에 가고 말고는 저 사람 딸이 알아서 할 문제이고…….”

차 비서는 조지훈이 그 뒤의 일은 딸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천재지변이 일어나 학교가 사라지지 않는 한 무조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곳을 찾아주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시사평론가가 이렇게 고마워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이렇게 상황을 만든 것 자체가 대단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관업무가 이런 식으로 이루어진다고 했는데 이걸 여기에 써먹을 줄은 차 비서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차 비서는 존경심이 가득 담긴 눈으로 조지훈을 바라봤다.

조지훈은 차 비서가 자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신경 쓰지 못했다.

지금 조지훈의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은 이런 방법을 알려준 한진영이 미국에서 홀로 있다는 사실밖에 담겨있지 않았다.

‘혼자 잘하고 계시려나?’

한진영이 일을 그르치거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어려움에 처할 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곁에 누가 있어 도와줄 수 없다는 사실이 조지훈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지훈은 빨리 이쪽 일을 처리하고 미국으로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

조지훈의 걱정과 달리 한진영의 미국 생활은 별다른 것이 없는 상태였다.

콘도 내부에서 모든 것이 해결이 가능했기에 밖에 나갈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문자들은 로비에서 적절히 막아주었기에 한진영은 생각보다 더욱 평온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저 하루에 한 번 관리센터를 통해 오늘 방문했던 사람들이 어디의 누구였다는 이야기를 보고받으면 일과가 끝이 나는 생활을 이어가는 중이었다.

“죽을 맛이겠군.”

한진영은 과일을 입에 물고 거실에 달린 커다란 화면을 바라보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한진영이 집을 구입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세이지증권에 있는 시스템을 자그마하게 뉴욕 집에 구현하는 것이었다.

뉴욕 집에서의 시스템은 시세를 확인하고 각 매체의 시황을 따오는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지금 시장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진영의 눈에 지진계가 흔들리듯이 움직이는 테라의 주가 흐름을 보며 전화기를 켰다.

-부재중 메시지가 64건 도착해 있습니다.

한진영은 전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부재중 메시지 건수를 듣고는 실소를 흘렸다.

“하이고 많이도 연락했다.”

한진영은 메시지들이 어떤 내용이 알겠는지 메시지를 듣지도 않고 모두 지웠다.

그리고 캘리포니아에서 테라와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나창운에게 연락했다.

-사장님. 안녕히 지내셨습니까?

나창운은 한진영이 전화했다는 사실에 반색하며 전화를 받았다.

한진영은 너무나 반가워하는 나창운의 목소리를 들으며 웃었다.

“왜 그렇게 반가워하십니까?”

-사장님과 연락이 되지 않아 궁금했었습니다. 조 실장이 괜찮다고 말하기는 했는데 여간 신경 쓰인 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한번 찾아뵈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좀 일찍 연락할 걸 그랬습니다. 그랬다면 조금 더 협상에 집중하실 수 있으셨을 텐데 말입니다.”

-아닙니다. 협상도 나름 잘하는 중입니다.

나창운은 한진영의 말에 급히 아니라고 대답했다.

한진영을 신경 쓰느라 협상을 잘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자기 이야기가 비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창운은 바로 협상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현재 테라와 대략적인 협상에 대한 내용은 마무리가 된 상태입니다. 유증 날짜와 인수 후 테라가 원할 시 주식을 다시 사가겠다는 계약의 경우에도 마무리 단계에 들어간 상태입니다. 사장님의 지시대로 테라가 원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원할 때는 무조건 주식을 사가야 한다는 조항을 넣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한진영은 탁자 위에 올라간 전화기의 스피커폰으로 들리는 나창운의 목소리를 들으며 만족한 모습을 보였다.

한진영은 화면을 바라본 채로 손 위의 공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뉴욕에서 혼자 지내며 새로 생긴 취미로 홀로 테니스공을 이리저리 튀기며 생각을 정리하고는 했다.

한국의 부실한 건물에서는 층간소음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이곳에서는 테니스공 정도는 튕겨도 주변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에 부담 없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한진영은 벽에 공을 튀기며 말했다.

“다른 계약들은 순조롭지만 가격 문제는 그렇지 못하겠습니다.”

-네. 안 그래도 그 말씀을 드리려고 했습니다. 현재 주가가 90달러에 근접하자 테라에서는 무조건 100달러에 계약을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상태입니다.

“우리가 주장하는 65달러에는 코웃음만 치겠습니다.”

-농담인 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격은 뒤로 미뤄놓은 채 다른 것들을 먼저 조정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렇습니까?”

한진영은 웃으며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서는 테라에 대한 루머로 인해 주가가 흔들리고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었다.

워낙에 공매도가 많이 쌓여있는 종목이었다.

일반적으로 보자면 오르기 어려운 종목이었지만 대규모 투자를 위한 유상증자라는 호재가 덮친 상태이기에 느리지만 계속 우상향하여 주가가 오르는 중이라는 설명이 나오는 중이었다.

-사장님. 이제 슬슬 가격 협상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인데 어떻게 할까요?

나창운은 65달러라는 목표를 받고 캘리포니아에 왔지만, 상황이 바뀌지는 않았을까 생각되어 한진영에게 물은 것이었다.

“그대로 갑니다.”

-그대로라면…… 65달러를 말씀하시는 것이죠?

재차 확인하는 나창운의 말에 한진영이 벽에 테니스공을 튀기며 웃었다.

“우리는 65달러. 이건 변하지 않습니다.”

한진영은 짧게 다시 나창운에게 목표를 알려준 후 화면을 바라봤다.

“마침 최 이사님이 CNBC에 나옵니다. 보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네. 알겠습니다. 그러면 다시 연락주실 때까지 65달러를 기준으로 하여 협상을 진행하고 있겠습니다.

나창운은 한진영의 목소리를 듣고 목표가격은 끝까지 변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굳이 한진영에게 계속 가격을 확인하는 것보다 한진영의 지시에 맞춰 움직이는 편이 맞는다고 생각하여 대답했다.

한진영은 다시 연락하여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나창운의 대답에 만족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화면 소리를 조금 더 키워 최석영 이사의 CNBC 인터뷰 방송을 집중해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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